LG디스플레이 직원들이 문경 힐링센터에서 다도와 명상을 하고 있다. 사진 LG디스플레이
LG디스플레이 직원들이 문경 힐링센터에서 다도와 명상을 하고 있다. 사진 LG디스플레이

LG디스플레이 직원 A(35)씨는 얼마 전 회사에서 운영하는 심신건강관리 전용시설인 ‘문경 힐링센터’를 다녀왔다. 사내 게시판에 힐링센터 참가자 모집 공고를 보고 신청한 것이다.

1박 2일간 진행된 힐링 프로그램을 통해 조용한 종 소리 음악을 들으며 명상을 하고, 따뜻한 차를 마시며 참가자들과 함께 내면의 목소리를 공유했다. 또 흔들리듯 타오르는 촛불을 보며 머릿속 짐을 비우는 이른바 ‘멍 때리기’까지 다양한 심신 회복 활동이 진행됐다. 전문 강사의 지도 아래 컬러테라피 등 오감을 깨우고 마음을 치유할 수 있는 프로그램도 체험할 수 있었다.

A씨는 “1박 2일의 짧은 시간이었지만 복잡한 일상을 벗어나 조용한 분위기에서 나 자신을 되돌아보는 성찰의 시간이자 리프레시의 기회가 됐다”며 “스트레스를 걷어내고 심신의 안정을 찾으니 더욱 업무에 집중할 수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우리나라 기업들도 직원들의 정신건강 관리에 힘을 쏟고 있다. 특히 대기업들은 대부분 사업장 내에 심리상담센터를 두고 여러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정신과 전문의나 심리상담 전문가를 상주시켜 직장 내에서의 스트레스 관리나 대인관계 소통, 가족 내 부부 문제나 자녀 문제 등에 대해 치료 또는 상담을 해준다. 각 사업장 상담센터에 명상실을 마련해 여러 가지 테마의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기업도 있다.

삼성전자는 업무과다자, 번아웃(Burn-out) 우려자를 대상으로 힐링 프로그램을 제공해 임직원들의 마음 건강 리스크를 사전에 관리하고 있다. 사내 14개 전문상담센터와 8개 마음 건강 클리닉을 운영하면서 각 사업장 상담센터에 명상실을 마련해 먹기 명상, 걷기 명상, 컬러테라피, 통증 완화 프로그램 등을 시행하고 있다.

SK그룹은 1987년부터 최고경영진은 물론 임직원까지 심기신(心氣身) 수련으로 임직원들의 몸과 마음 건강을 지키고 있다. 심기신 수련은 단순한 물리적 건강관리가 아니라 ‘기(氣)’를 통해 몸과 마음을 동시에 튼튼하게 하는 관리법으로 명상·호흡·체조 등으로 구성돼 있다. SK그룹 임직원들은 사내 심기신수련원에서 아침·점심·저녁 세 차례 진행되는 심기신 강의를 들을 수 있다. 심기신 수련 과정은 직원 가족들까지 대상을 확대해 부부 과정, 부인 과정, 부모 및 자녀 과정 등을 운영 중이다.

신영철 강북삼성병원 기업정신건강연구소 소장은 “우리나라는 1990년대부터 일부 대기업을 중심으로 직원 정신건강의 중요성을 깨닫고 심리상담센터를 만들기 시작했고 2000년대에 대부분 대기업으로 확산됐다”고 말했다.

현대차의 경우 2000년대 들어 과로사나 극단적 선택을 하는 직원들이 생겨나면서 2005년 남양연구소에 심리상담센터를 설립했고 2011년에는 양재동 본사에, 2013년에는 전국 모든 공장에 심리상담센터를 만들었다. 현대차 관계자는 “처음에는 직원들이 심리 상담에 대해 정신병이나 마음의 문제가 있는 것 아니냐는 시선 때문에 꺼리는 경향이 있었으나 한 번 상담을 받아보면 실제 도움이 되기 때문에 주기적으로 상담을 받게 된다”며 “상담 스케줄이 꽉 차 있어서 심리상담센터를 더 늘려야 하지만 비용이나 공간 문제로 대폭 확대하지는 못하고 있다”고 밝혔다.

도시에서 멀리 떠나 며칠간 진행되는 프로그램도 있다. LG디스플레이는 2017년 4월 경북 문경에 힐링센터를 열었다. 폐교에 명상실, 다도실 등을 꾸렸고 명상, 컬러테라피, 아로마테라피, 소통 스킬 훈련 등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2017년 6월에 경북 영덕에 명상을 위한 연수원을 만들어 3박 4일 일정으로 숲 체험 명상, 바다 명상, 별빛 명상 등 명상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LG화학도 업무에 지쳤거나 스트레스 관리가 필요한 직원들을 대상으로 2박 3일간 곤지암리조트에서 신체적, 정신적 에너지를 충전하는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하지만 한계도 있다. 우리나라 대기업들은 일부를 제외하고 대부분 신청한 직원들을 대상으로 심리상담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일단 문제가 발생한 후에 사후 대응을 해주는 것이다. 구글 등 직원 정신건강 관리에 앞서 있는 미국 기업들이 문제가 발생하기 전 일반 직원들을 대상으로 명상 프로그램 등을 운영하면서 사전 관리를 하는 것과 차이가 있다.

또 비용 부담이 걱정되는 중소기업들은 직원 정신건강 프로그램 자체를 운영하기가 어렵다. 고용노동부가 산업안전보건공단과 함께 전국에 근로자건강센터를 만들어 100여 개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건강 개선 프로그램을 시행하고 있지만 턱없이 모자란 실정이다.


plus point

[Interview] 한국내면검색연구소 유정은 대표
“꾸준한 명상 통해 스트레스 대응력 길러야”

유정은 한국내면검색연구소 대표는 프라이스워터하우스쿠퍼스(PwC), 액센추어, IBM 등에서 인사 경영컨설턴트로 일하다 서울대 조직심리학 박사과정을 밟던 중 구글의 ‘내면 검색’을 접했다. 2014년에 내면 검색 지도자 과정이 처음 생겼을 때 그 과정을 수료하고 내면 검색을 한국에 들여왔다.


한국 기업 중에 내면 검색을 활용하는 곳은.
“삼성, SK텔레콤, 포스코 등 알 만한 기업 대부분에서 강의만 했을 뿐 실제 내면 검색을 활용하는 곳은 없다. 명상은 단순히 스트레스를 해소하거나 그냥 눈만 감고 하는 게 아니다. 반복적으로 해야 하는 마음 훈련인데 우리나라 기업들은 한두 번 강의로 끝나는 게 대부분이다. 삼성 담당자, 카카오 담당자에게도 명상을 조직 문화로 만들어야 한다는 얘기를 한다. 구글이나 인텔, SAP 등에서 명상 프로그램을 만든 사람들은 엔지니어 출신이다. 본인 일을 하면서 명상하는 과정도 만든 것이다. 우리나라 기업도 이런 분위기가 필요하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선 명상을 하고 마음을 가꾼다고 하면 이상한 사람이라고 낙인찍는다.”

한국에서 그런 문화를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조직 리더의 의지가 있어야 한다. 우리나라 기업이 안타까운 건 인사담당자도 명상을 해보지 않아 잘 모른다. 그냥 명상 강의를 듣고 끝이다. 왜 좋은지 직원 스스로 느끼기 힘든 구조다. 반대로 구글에는 명상 관련 ‘러닝 시스템’이 있다. 직원이 원하면 언제든 할 수 있다.”

같은 스트레스라도 받는 정도가 다를 텐데.
“자극에 반응하는 수준이 다른 것이다. 명상을 하면 성향이 바뀌는 게 아니라 그릇 크기가 커진다. 만일 작은 그릇에 잉크 한 방울 떨어뜨리면 금방 검게 되지만 그릇이 크면 다르다. 그릇 자체를 넓혀가는 연습이 필요하다. 명상은 스트레스를 받은 다음에 치유하는 게 아니라 스트레스를 덜 받도록 하는 것이다. 사후 관리보다 사전 예방 역할이다.”

명상이 생산성에도 도움을 줄까.
“명상은 집중력, 주의력에서 시작한다. 집중력 때문에 생산성이 높아진다. 또 팀 내 불필요한 갈등이나 충돌이 없어지면 역시 생산성이 향상된다.”

멘털 강한 사람의 특징은 뭔가.
“회복 탄력성이 높은 사람이다. 두려워하지 않거나 소심해지지 않는 게 아니라 두려워하더라도 빨리 빠져나오는 것이다. 우울함 등 감정을 느끼더라도 지나가는 것으로 받아들이고 인정해서 빨리 나올 수 있는 것이다. 고통스러운 순간이 오더라도 지나가는 것이라고 받아들여야 한다.”

정재형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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