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리콘밸리의 정보기술(IT) 의학·명상·심리학계 인사들은 2009년부터 매년 명상 콘퍼러스인 ‘위즈덤 2.0’에 참여하고 있다. 사진 위즈덤 2.0 홈페이지
실리콘밸리의 정보기술(IT) 의학·명상·심리학계 인사들은 2009년부터 매년 명상 콘퍼러스인 ‘위즈덤 2.0’에 참여하고 있다. 사진 위즈덤 2.0 홈페이지

5월 15일. 오후 3시가 되자 리프트, 드롭박스 등 60여 개의 미국 스타트업 직원들이 업무를 중단하고 노트북을 닫았다. 미국의 명상 애플리케이션 기업 ‘샤인(Shine)’이 이날을 ‘국민 정신건강 휴식(National Mental Health Break)’의 날로 지정했기 때문이다. 이 캠페인에 참여한 사업주들은 이날 직원들에게 일제히 오후 3시에 30분~1시간 동안 휴식 시간을 줬다. 직원들은 동료와, 혹은 홀로 길거리 산책에 나섰다. 이날 트위터에는 이 캠페인 명칭에 해시태그(#nationalmentalhealthbreak)를 달고 맑은 하늘 사진, 쿠키를 먹고 있는 셀프 카메라, 명상 인증 사진이 올라왔다.

샤인이 이 캠페인을 기획한 이유는 직장인들이 정신건강의 중요성을 잊고 살 때가 많기 때문이다. 샤인의 공동창업자 매라 리디(Marah Lidey)는 “모든 사람이 자기 관리를 중시하지만, 직장에서 정신건강에 대해 이야기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면서 “어떻게 직장에서 정신건강에 관한 대화의 시간을 마련할 수 있을까 고민했다”고 했다.

미국 스타트업들의 관심사는 ‘직원들의 정신건강 관리법’이다. 잦은 밤샘 근무가 일상인 정보기술(IT) 업계에서 직원들이 혁신을 지속해나가려면 정신건강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미국 샌프란시스코 실리콘밸리에서는 일찍이 기업 내 명상 문화를 받아들였다. 스티브 잡스 전 애플 창업자나 제프 베이조스 아마존 창업자, 래리 페이지 구글 공동창업자들은 모두 정신건강을 유지하기 위한 명상법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스티브 잡스 전 창업자는 “(명상을 하면) 더 미묘한 것들에 귀를 기울일 여유가 생기고, 직관이 꽃 피어나 상황을 좀 더 명확히 바라보게 되면서 현재에 충실하게 된다”고 했다.

실리콘밸리 IT 인사와 의학·명상·심리학계 인사들은 2009년부터 매년 명상 콘퍼런스인 ‘위즈덤 2.0’을 연다. 기술보다 빠른 속도를 강요받는 삶에서 자아를 성찰하는 법을 배우는 강연을 듣기 위해서다.

구글은 2007년부터 ‘내면 검색(Search Inside Yourself)’이라 불리는 사내 교육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내면 검색은 뇌과학과 심리학 이론에 기반해 총 7주간 명상 기반 리더십을 교육하는 프로그램이다. 구글에는 회사 안에 걸으면서 명상할 수 있는 미로도 있다. 페이스북과 트위터도 사내에 명상 공간을 만들었다.

미국 대기업도 정신건강에 신경 쓰고 있다. 직원의 스트레스가 경영 비용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한 연구에서 10개 기업의 3만4622명의 직원을 대상으로 25개 질병의 재정적 영향을 조사한 결과, 가장 많은 경영 비용이 소요되는 질병은 우울증이었다. 우울증을 호소한 환자들은 연간 27일 동안 제대로 일하지 못했다는 결과가 나왔다. 이 중 9일은 병결이나 조퇴 때문이었고, 나머지 18일은 생산성 저하 때문이었다.

자동차 회사 포드는 일상에서 직원들의 정신건강 관리를 돕는다. 정신건강 전문가와 직원들은 점심시간을 활용해 ‘휴일 활용법’ ‘건강한 인간관계’ ‘까다로운 사람과 함께 지내는 법’ 등의 주제로 토론한다. 우울증이나 가족관계로 힘들었던 사례를 포스터나 사내 신문에 싣기도 한다.


일본은 법적으로 사내 전문의 배치해야

일본에서는 정부가 나서서 ‘건강경영’을 내세운다. 우리나라와 인구 구조가 비슷하기에 눈여겨볼 곳이다. 저출산과 고령화의 늪에 빠진 일본은 건강보험조합 적자액이 2013년 기준 1162억엔(약 1조2862억원)에 달한다. 일본 정부는 장기적 의료 비용을 줄이기 위해 직장인들의 건강 관리에 힘쓰고 있다.

일본 정부가 주목하는 부분도 역시나 정신건강이다. 일본은 2015년 12월부터 상시 고용 인원 50인 이상 기업을 대상으로 직장인 스트레스 체크를 의무화했다. 2017년 기준 일본 기업의 82.9%가 스트레스 체크를 실시하고 있으며 이 중 78%가 실제 진단을 받은 것으로 조사됐다.

자료가 있는 덕분에 후속 연구 결과도 가능했다. 의미 있는 결과도 나왔다. 직원들의 스트레스가 심할수록 생산성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후생노동성 산하 연구원에 따르면 ‘고스트레스 위험군’이 1년 후 한 달 이상 휴직을 신청한 비율은 그러지 않은 군에 비해 3~6배(남성 6.6배, 여성 2.8배)까지 높았다.

이런 현상 때문에 일본에서는 ‘프리젠티즘(presenteeism)’과 ‘앱센티즘(absenteeism)’이라는 용어가 주목받았다. 프리젠티즘은 ‘출석하다(present)’와 ‘상태(-ism)’가 결합된 말로, 고용주나 상사에게 잘 보이기 위해 아파도 쉬지 않고 장시간 근무하는 것을 말한다. 앱센티즘은 ‘결석하다(absent)’와 ‘상태(-ism)’가 합쳐진 말인데, 건강 악화로 결석이 습관화된 상황을 의미한다. 두 상태 모두 기업에 큰 손해다. 직원이 아파서 출근을 못 하게 되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출근은 했더라도 육체적·정신적 컨디션이 정상이 아니라면 업무 효율이 떨어질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2016년 2월 도쿄대학이 발표한 연구에 따르면 기업의 의료 비용은 의료비(15.7%), 산재보상비(0.9%) 등 직접적 직원 건강 관련 비용이 16.6%인 반면 프리젠티즘(77.9%)과 앱센티즘(4.4%) 등의 간접적 비용이 80%나 차지했다.

일본 기업들은 직장 내 ‘산업전문의’를 배치하는 방식으로 대처하고 있다. 산업전문의는 직원들의 건강을 관리하는 전문 의료인이다. 일본에서는 상시 고용 50인 이상 사업장에 산업전문의를 의무적으로 배치해야 한다. 산업전문의는 건강검진 지도를 비롯해 장시간 노동자의 스트레스를 점검한다. 또 건강에 유해한 근무 환경이 있으면 경영진에게 환경 개선과 재발 방지 노력을 요구할 권리가 있다.

경제산업성도 기업에 건강경영 정책을 실시할 인센티브를 주고 있다. 2015년부터 상장 법인 중에서 ‘건강경영 종목’을 선정하는 것이다. 대표적인 예가 2015년에 선정된 아사히 그룹이다. 아사히 그룹은 전국 주요 거점에 보건사를 배치하고, 정신과 의사와 계약해 직원 정신건강 교육을 강화했다. 그 결과, 2013년 건강보험조합의 일인당 의료비가 2010년 대비 6.5% 감소했으며 상병 휴직자 수는 33%나 줄었다.

직원들의 정신건강을 의무 조항으로 체계적으로 관리하는 기업들도 있다. IBM재팬과 도시바는 시간 외 근로가 월 80시간을 초과한 직원은 산업전문의와 의무적으로 면담을 진행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일본 엔지니어링 기업 치요타는 6개월 이상 해외 근무자의 정신건강 검진을 의무화하고 있다.

김소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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