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발생했던 이른바 ‘땅콩 회항’ 사건 이후 박창진 전 대한항공 사무장이 이듬해 산업재해(이하 산재)를 인정받았다.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으로부터 욕설과 폭행을 당한 뒤 우울증, 적응 장애, 불면증 등에 시달리고 있다며 고용노동부 산하 근로복지공단에 낸 산재 승인 신청이 받아들여졌다. 과거에는 작업 도중 신체적 사고만 산재로 인정됐지만 최근에는 정신 질환도 산재로 인정된다.

미국에서는 직장인의 신체건강은 물론 정신건강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는 움직임이 더 이전부터 있었다. 신체적인 부상과 질병을 막는 것뿐만 아니라 스트레스 수준, 직장 동료나 상사와 관계 등 심리적인 부분도 관리해줘야 건강이 유지된다는 인식을 확산하기 위한 프로그램도 운영하고 있다. 미국 정부가 2011년 6월 선보인 종합건강지원(Total Worker Health) 프로그램의 L.케시 초스우드 총괄을 이메일로 인터뷰했다.


2015년 기준 미국 성인의 7%가 심각한 우울증을 겼었다. 생산성 손실액은 510억달러로 추정된다.
2015년 기준 미국 성인의 7%가 심각한 우울증을 겼었다. 생산성 손실액은 510억달러로 추정된다.

미국의 종합건강지원 프로그램에 관해 설명해달라.
“직장인의 웰빙(wellbeing·육체적으로나 심리적으로 행복을 느끼는 것)을 높이는 방법을 찾는 프로그램이다. 40년 이상 직장인의 보건과 안전에 대해 연구한 국립산업안전보건연구원의 노하우를 토대로 복지를 증진할 방법과 모범 사례를 찾는다. 또 직장인과 고용주가 업무 과정에서 직면한 과제를 해결하는 데 필요한 방법을 연구해 제공한다. 스트레스, 직장 동료나 상사와 관계는 물론 임금, 근무 시간, 업무량, 유급 휴가 기간 등 일과 관련된 모든 요인을 관리해야 한다는 점을 사회에 알리는 역할을 한다. 전에는 작업장에서 발생하는 신체적 위험으로부터 보호하는 데만 초점을 맞췄는데 이를 바꾸려는 시도다.”

종합건강지원 프로그램이 기업이나 조직에 제안하는 방법은.
“가장 먼저 직원의 업무 스트레스를 줄이는 데 초점을 맞추라고 조언한다. 이를 위해서 10가지 방법을 제안한다. 직무와 관련해 발언할 기회를 제공하는 등 직원 중심으로 조직을 운영하라. 건강한 작업 환경을 만들라. 적정한 임금과 의료 지원금을 지급하고 유급으로 병가를 쓸 수 있도록 하라. 임금을 공정하게 지급하고 초과근무는 자발적인 경우만 하도록 하라. 성과 평가와 승진 기회는 공평하게 제공하라. 작업 일정을 유연하게 관리할 수 있도록 하라. 고용 불안 문제를 최대한 해결하라. 관리자를 교육하는 프로그램을 운영하라. 직원이 의미 있는 작업을 하도록 하라. 직원이 일과 삶 균형, ‘워라밸’을 찾을 수 있도록 지원하라.”

‘직무와 관련해 발언할 기회를 주라’고 하는 이유는.
“직원이 직무와 관련한 의사 결정 과정에 참여할 수 있는 자율권과 통제권 수준이 높을수록 직무 만족도가 높아지고 조직에 헌신할 가능성이 커진다. 이직과 결근도 적게 하고 생산성 향상에도 영향을 준다. 미국심리학협회에 따르면 ‘자신이 가치 있다’고 느끼는 직원일수록 직무 관련 스트레스를 만성적으로 느낄 가능성이 줄어드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2017년 기준으로 미국 직장인의 58%만 ‘고용주가 의사 결정에 참여할 충분한 기회를 제공한다’고 느끼고 있었다.”

이런 방법은 어떻게 마련하나.
“국립산업안전보건연구원의 파트너인 수천 개의 공공·민간·노동 단체와 학계가 함께 연구한다. 뉴욕주립대, 캘리포니아대, 미국산업위생협회, 기업건강위험관리협회, 직업건강심리학회 등이 우리 파트너다. 10만 명 이상의 과학자와 의료진, 기업가, 학자가 종합건강지원 프로그램을 만드는 데 힘을 보탰다.”

전문가들은 종합건강지원 프로그램처럼 직원의 정신건강을 챙기는 것이 조직과 직원에게 도움이 된다고 말한다. 근거는.
“정신건강에 투자하지 않으면 직원은 물론 기업과 사회가 비용을 치러야 한다. 미국 의학 전문지 ‘정신건강 저널’은 직원의 우울증으로 기업이 한 해에 치르는 비용이 2003년 기준 310억달러(약 37조47억원) 정도라고 추정했다.”

미국에서 우울증 앓는 사람은 얼마나 되나.
“2015년 조사 결과를 보면 18세 이상 미국 성인 인구의 7%에 해당하는 1600만 명이 지난 1년 동안 심각한 우울증을 겪었다고 답했다. 경미한 정신 질환까지 합치면 수치는 더 올라간다. 2016년 기준 우울증을 포함한 모든 종류의 정신 질환을 겪은 사람은 4470만 명으로 집계됐다. 정신건강 상태가 나쁘면 비만, 고혈압 같은 질병을 일으켜 신체건강을 위협한다. 우울증만으로 미국 기업이 겪는 생산성 손실액은 현재 연간 510억달러(약 60조8787억원)로 추정된다.”

미 정부에서 시행하는 프로그램이라면 모든 기업이 따라야 하나.
“아니다. 자발적인 의사에 따라 하는 프로그램이다. 미국은 정신건강 또는 심리건강을 지키기 위한 방안에 따를 의무를 부여하지 않는다. 캐나다와 호주만 정신건강 관련 안전 표준을 갖고 있다. 다만 많은 기업과 기관이 종합건강지원 프로그램을 시행 중이다. 글로벌 제약사 존슨앤드존슨, 알루미늄 회사 알코아(Alcoa), 국립공원관리공단, 미 오리건주 벤드 경찰서 등이 도입했다.”

캐나다는 세계 최초로 직장인의 정신건강과 안전을 위한 국가표준을 만들어 2013년 부터 시행 중이다. 국가표준은 직장인의 정신건강에 해를 끼치는 요소를 제거할 수 있는 지침을 담고 있다. 캐나다 국민 5명 중 1명이 정신건강 문제나 질병을 앓는다. 캐나다는 이로 인한 사회적 비용을 연간 500억캐나다달러(약 44조8725억원) 규모로 추정했다.


L.케시 초스우드는 누구?

조지아 의과대를 졸업하고 코네티컷대 가정의학과에서 레지던트 과정을 밟았다. 미국 남부 조지아주에 있는 에모리대 보건대학원에서 보건정책관리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미 보건복지부 산하 질병통제센터(CDC)에서 일했으며 현재 에모리대 가정의학과 조교수로 있다. 질병통제센터 보건안전국장을 역임하면서 직원 1만5000명의 건강과 안전을 보호하는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현재는 질병통제센터 소속 연구기관인 국립산업안전보건연구원(NIOSH)이 만든 종합건강지원(Total Worker Health) 프로그램 총괄을 맡고 있다.

정미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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