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소형 서울대 경영학과, 맥킨지 컨설팅 / 사진 비투링크
이소형
서울대 경영학과, 맥킨지 컨설팅 / 사진 비투링크

“삼성전자 스마트폰 중국 점유율이 0%대로 무너지는 데 1년이 채 걸리지 않았다.”

화장품 유통 스타트업 비투링크의 이소형 대표는 중국 시장의 K뷰티 상황을 묻자 삼성전자를 사례로 들었다. 한때 중국 시장 점유율 20%로 1위를 기록했던 삼성전자 스마트폰은 2017년 점유율이 급격하게 무너졌다. 1분기 3.1%에서 4분기 0.8%로 떨어졌다. K뷰티 업계에도 같은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는 위기감의 표현이다.

비투링크의 이소형 대표는 2014년부터 K뷰티와 중국 시장을 연구해온 유통·데이터 전문가다. 작은 브랜드의 화장품을 골라내 해외 대형 유통사와 연결해주는 B2B(기업 간 거래) 회사다. 중국 티몰·징둥닷컴·카올라, 미국 아마존·코스트코, 동남아 왓슨스·사사 등 12개국 대형 유통 기업 60여 곳을 거래처로 두고 있다. 여기까지는 중간 유통상과 다름없다.

비투링크는 여기에 데이터 분석을 더해 서비스를 차별화했다. 이를 위해 티몰, 타오바오 등 중국 대규모 이커머스에서 거래되는 7만4000개 브랜드 528만 개 상품 정보를 매일 수십만 건씩 수집해 데이터베이스화한다. 고객사는 자사 제품이 중국 어느 이커머스 채널에서 얼마에, 어떤 판매자를 통해 판매되는지 등을 다각도로 분석할 수 있다. 마케팅·유통 전략을 짜거나 제휴 브랜드, 채널 등을 결정할 때 도움이 된다.

이 대표는 중국 시장에 K뷰티 열풍이 불기 시작할 때부터 사업을 시작해 2016년 절정을 지나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한한령(限韓令·한류금지령) 등 K뷰티의 부침(浮沈)을 모두 겪었다. 2016년 사드 사태로 K뷰티 고객사 매출이 급락하던 충격을 목격한 그는 오히려 지금 위기 의식을 더 강하게 느끼고 있다고 했다. 3년 전 K뷰티가 어쩔 수 없는 외부 충격에 휘청였다면 지금은 내부 경쟁력 약화로 흔들리고 있고, 이 문제가 더 심각하다고 본 것이다. 이소형 대표를 9월 18일 서울 강남구에 있는 비투링크 사무실에서 인터뷰했다.


비투링크가 느끼는 K뷰티 현실은 어떤가.
“매우 어렵다. 중국 이커머스 시장에서 팔리는 뷰티 제품 데이터 수십만 건을 매일 분석한다. 가장 최근 데이터를 작년 같은 기간과 비교해보니 몇 가지 뚜렷한 움직임이 눈에 띄었다. 상위 10대 브랜드에서 K뷰티 브랜드가 빠진 것이다. 작년 7월 이니스프리가 10위였는데, 지금은 상위 20위권에서도 사라졌다. J뷰티 브랜드는 항상 상위권이고, C뷰티 기업들은 부침이 잦긴 해도 꾸준히 새로운 기업들의 순위가 급상승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한마디로 K뷰티는 위로는 J뷰티에 눌리고, 아래로는 C뷰티에 위협받는 ‘샌드위치’ 형국이다.”

이 위기의 원인을 짚어준다면.
“중국인의 화장품 소비 트렌드 변화, C뷰티 기술력 성장 등 여러 원인이 있지만, 뷰 티 유통 업계 경험을 토대로 한 가지만 꼽자면 앞선 성공을 다음 성공으로 이어 가는 데 실패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K뷰티 성공은 ‘직접 만든 수요’에서 시작된 게 아니었다. 이게 약점이다. 한류에 열광한 중국 소비자가 K뷰티 제품에도 열광한 것이다. 한국인이 쓰던 제품 그대로 가져다 팔았다. 수요를 만들어 봤다면 다시 한번 다음 수요를 만들 수 있을 텐데 아쉽다. 첫 번째 성공으로 거둔 돈으로 제품 연구·개발(R&D), 브랜딩 등에 투자해 실력을 쌓았어야 했다. 대기업은 잘하고 있다 쳐도 거의 모든 화장품 기업은 아직도 그동안 방식대로 유행하는 제품을 너도나도 만드는 식으로 중국 시장에 접근하고 있다. 시트마스크가 대표적이다. 몇몇 브랜드가 시트마스크로 성공하니 지금 시트마스크를 다루는 브랜드가 수백 개나 된다. 게다가 지금 와서 이 구조를 바꿔보려 해도 어렵다. 잘나갈 때, 그러니까 K뷰티가 주도권을 갖고 있을 때 협상했어야 했다. 지금은 지는 타이밍이다. 어렵다.”

그럼 누가 이기고 있나.
“지난 3년 동안 K뷰티 제품군 판매 단가가 꾸준히 하락한 반면 J뷰티 제품군 판매 단가는 뚜렷하게 상승하고 있다. K뷰티 제품군의 매출 총액은 아직 증가하고 있지만 단가가 하락하고 있다는 게 문제다. 시장에서 K뷰티 가치가 떨어지고 있다는 방증이기 때문이다. 반면 J뷰티의 총매출 규모는 K뷰티보다 아직 작지만 판매 단가가 올라가고 있다는 것이 무섭다. 중국 이커머스 시장에 돌아다니는 J뷰티 리뷰를 모두 모아 분석해봤다. 무려 25만 건에 달했다. 단어별로 정리해서 봤더니 ‘정품(正品)’ ‘장인(匠人)’이라는 단어가 1, 2위를 차지했다. ‘장인정신이 느껴진다’ ‘정품이라 믿을 수 있다’는 식이다. 이것들이 바로 중국 소비자가 생각하는 J뷰티의 장점이다. K뷰티 브랜드가 브랜딩할 때 염두에 두고 고민해 봐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한국은 장인정신보다 ‘속도감’ ‘트렌디함’쪽에 가까운 것 같다. 이게 글로벌 시장에서 큰 장점으로 어필돼 왔는데, 지금은 그렇지 않나.
“물론 속도감은 K뷰티의 장점이다. 다만 여기에 정확한 분석을 기반으로 한 브랜딩 작업을 더해야 할 것 같다. 정확한 분석이 없어 실패한 대표 사례가 중국 소비자가 빨간색을 좋아한다고 해서 제품의 외형 색깔을 무조건 빨간색으로 하고, 마스크팩을 만드는 게 유행이라고 해서 무조건 마스크팩을 만들었던 것이다. 브랜드 정체성이 모호해진다. ‘치고 빠지기’는 오래갈 수 없는 전략이다. 누구나 따라 할 수 있다. 심지어 요즘 C뷰티 제조사들이 K뷰티 제조사보다 훨씬 더 브랜딩에 신경 쓰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로레알 등 글로벌 뷰티 기업에 있던 중국인이 독립해 고급 C뷰티 브랜드를 만들기도 하는데, 이런 브랜드의 전략이 한국 브랜드의 전략보다 뛰어날 때도 있다.”

치고 빠지기 실패 사례를 든다면.
“너무 많다. 마유(馬油)크림이라고 들어봤나. 일본이 원조이긴 하지만, 한국에서는 클레어스코리아에서 처음 만들어 유행시켰다. 상처 치료나 화상 회복을 돕는 말기름을 원료로 해서 만든 크림이다. 한국뿐만 아니라 중국에서도 인기가 많아지자, 여기저기에서 비슷한 제품을 만들어냈다. 카피 제품만 100종이 넘었다. 그런데 중국 시장에 막상 여러 브랜드의 마유 제품이 풀렸을 때는 이미 유행이 지나고 난 후였다. 그래서 악성재고가 많이 쌓였다. 출시됐을 때 개당 109위안(1만8000원)에 팔리던 크림 제품이 지금 가격이 79위안(1만3000원)까지 떨어졌다.”

이런 문제를 어떻게 풀 수 있을까.
“그래서 데이터 기반 분석이 필요하다. K뷰티가 발 빠른 것은 사실이다. 그런데 중국 시장도 그에 못지않게 빠르게 바뀐다. 그런 시장에서 정확한 분석 없이 달리기만 하는게 단점이다. 발은 빠른데 시야가 좁고 어쩔땐 아예 눈이 가려져 있는 것 같다. 도매상이 ‘뭐가 유행한다’고 하면 바로 적용해 재빨리 만들어내기만 하지 이게 유행이 지났는지, 경쟁 제품들이 얼마나 있는지, 누가 따라잡을 것인지 등을 모르는 곳이 태반이다. K뷰티는 그동안 ‘중국인이 좋아하는 제품 하나로 대박을 터트려 보자’는 식으로 접근했다. 그런데 지금처럼 소비자가 바뀌고 유통상들이 돌아서면, 물건을 만들어놓고도 아예 팔 수 없게 된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브랜딩은 물론 쉽지 않은 작업이다. 그러나 반드시 가야 할 방향이다. 나는 이것을 브랜드를 뾰족하게 다듬는다고 표현한다. 제품 콘셉트를 정교하게 만들어서 입지를 다져야 한다. 만약에 ‘패스트 뷰티 브랜드’ 즉, 시장 변화를 빠르게 캐치해 소비자가 지금 원하는 제품을 공급하고 싶다면, 시장을 제때 제대로 이해해야 한다. 앰플이 중국 시장에서 뜨는 카테고리라고 치자. 이걸 만들고 싶다면, 어떤 콘셉트가 잘 팔리는지, 어느 정도 가격대가 잘 팔리는지 등을 모두 따져봐야 한다.”

송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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