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모레퍼시픽 사옥 전경. 사진 조선일보 DB
아모레퍼시픽 사옥 전경. 사진 조선일보 DB

지난 2분기 아모레퍼시픽은 아시아 시장에서 예상을 크게 밑도는 어닝쇼크(실적 충격)를 기록했다. 아시아 지역 영업이익이 241억원으로 전년 같은 기간보다 56% 급감했다. 해외 사업 비중의 90% 이상인 중국 화장품 시장에서 부진을 겪었기 때문이다. 한때 아모레퍼시픽의 아시아 지역 분기별 영업이익은 870억원에 달했다.

아모레퍼시픽은 한류(韓流)에 따른 한국산 화장품 수요와 함께 급성장한 대표적인 K뷰티 기업이다. 절정기던 2015~2016년 회사 매출은 내수와 해외 시장 성장세에 힘입어 매년 조 단위의 앞자리 수가 바뀌었다. 2014년 3조8000억원이던 매출은 2016년 5조원대에 진입했다. 특히 이 기간 아시아 지역 매출이 눈에 띄게 성장했는데, 2014년 7546억원에서 2016년 1조5760억원으로 두 배 이상으로 급증했다. 당시 아모레퍼시픽 주가는 44만4000원까지 치솟았다. 지금은 당시의 30% 수준인 13만원대에서 움직이고 있다. K뷰티 대표 기업 아모레퍼시픽의 부진이 장기화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표면적인 이유는 C뷰티 시장 키워드인 ‘럭셔리’ ‘색조’ ‘이커머스’에 발 빠르게 대응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최근 중국 시장에서는 고가 브랜드와 이커머스 채널 성장세가 가파르다. 아모레퍼시픽의 매출에서 고가 브랜드인 ‘설화수’ ‘헤라’가 차지하는 비중은 20% 정도다. 50% 정도는 중저가 브랜드인 ‘이니스프리’에서 나온다. 반면 경쟁사 LG생활건강의 고가 브랜드 ‘후’ ‘숨’ 비중은 90%에 달한다. LG생활건강의 2분기 실적은 매출 1조8325억원, 영업이익 3015억원으로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


포인트 1│‘잘나갈 때’ 내수 부진 신호 놓쳐

전문가들은 아모레퍼시픽이 성공의 기쁨에 취해 잘나갈 때 시장 변화를 제때 감지하지 못했다고 진단한다. 같은 기간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 결정 같은 큰 이슈도 판단에 영향을 미쳤다.

첫 균열은 2016년 내수 실적에서 드러났다. 국내 사업 중 화장품을 제외한 생활용품·녹차 사업 부문 매출이 역성장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나 이 기간 중국을 중심으로 회사 실적이 폭발적으로 성장한 영향으로 내수 사업에 대한 위기감이 크게 부각되지 않았다. 박은경 삼성증권 연구원은 “견고하던 국내 내수 시장에서 시장 점유율을 빼앗기는 현상이 나타났으나 사드 사태에 따른 위기감, 전사 실적 개선 같은 큰 이슈에 가려졌다”면서 “내수와 중국 시장이 모두 잘되다가 한쪽이 나빠질 때 경각심을 가졌어야 했지만, 그러지 못했다”고 진단했다.

이후 2017년 아모레퍼시픽 내부에서도 문제 해결에 나서기 시작했다. 내수 부문 실적이 나빠진 데다 한한령 탓에 면세점 매출 역성장이 본격화한 것이다. 당시 아모레퍼시픽은 브랜드 노후화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에스쁘아 등 매장 리뉴얼에 나서기도 했다. 한 화장품 업계 관계자는 “회사가 잘될 때 투자해 개혁에 나서야 하는데, 때를 놓친 측면이 있다”면서 “이미 상황이 나빠진 후에 고치려 해도 쉽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포인트 2│신중함이 발목 잡은 중국 사업

2017년 아모레퍼시픽은 면세점 구매 제한 정책을 시작했다. 한국과 중국을 오가며 면세품을 소규모로 밀거래하는 따이궁(代工·보따리상)이 화장품 가격을 교란해 브랜드 가치를 훼손한다고 봤기 때문이다. 이들은 면세 물품을 저가에 구입한 다음 중간 유통상을 통해 중국 시장에 싸게 푼다. 이 물량을 통제하면 장기적인 브랜드 가치를 지킬 수 있다는 판단이 배경이 됐다.

시도는 긍정적이었지만, 결과는 실적 부진으로 이어졌다. 특히 아모레퍼시픽은 2017년 면세점 인당 구매 개수를 5~10개로 제한하는 강도 높은 정책을 썼다. 사드 사태로 면세점 매출이 나빠지는 상황에서 경쟁사들이 유연하게 대응했던 것과 대조적이다. 게다가 아모레퍼시픽의 강도 높은 유통 채널 통제 전략이 완벽한 효과를 내지 못했다는 내부 시각도 있다. 아모레퍼시픽 내부 관계자는 “따이궁 채널과 같이 본사 통제를 벗어난 해외 유통 채널을 정리하는 데 총력을 다했으나 쉽지 않았고, 결국 100% 잡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사이 중국 유통 채널은 빠르게 변화하고 있었다. 2016년부터 중국에서는 웨이상(微商·위챗과 웨이보 등을 이용해 상품을 파는 사업자), 샤오훙슈(小紅書) 등 SNS를 기반으로 한 C2C(개인 간 거래) 유통 채널이 급부상했다. 면세점에서 물건을 사간 중국인이 각종 SNS를 통해 물건을 팔아준 덕분에 경쟁 K뷰티 브랜드들은 현지에서 ‘공짜’ 홍보 효과를 보게 된 것이다.

이를 통제해 온 아모레퍼시픽이 2018년 뒤늦게 면세점 구매 제한을 완화하고 왕훙(網紅) 마케팅에 나서기 시작했으나, 다소 늦었다는 평가가 많다. 이 유통 채널이 전문화하고 영향력이 커진 것이다. 박은경 연구원은 “그사이 C2C 채널을 적극적으로 활용한 경쟁 업체들은 빅데이터 등을 이용해 고도화한 타깃 마케팅을 구사하게 되는 등, 시간 차가 벌어진 상황”이라고 말했다.

다만 최근 아모레퍼시픽은 이커머스 시장 고객 연구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9월 11일 아모레퍼시픽은 중국 알리바바와 업무협약(MOU)을 하고 빅데이터 기반 소비자 연구와 신제품 개발을 위해 협력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를 위해 항저우 알리바바 본사 인근에 협업 사무소를 열기로 했다. 앞서 지난 4월 시세이도도 알리바바와 협력해 고객 데이터를 연구하기로 하고 본사 옆에 사무실을 열기도 했다.


포인트 3│명확한 현지화·브랜딩 필요

최근 아모레퍼시픽은 고가 라인인 설화수의 중화권 모델로 중국 배우 안젤라 베이비를 발탁했다. 설화수가 중국인 모델을 기용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K뷰티 입지가 좁아지는 상황에서 자국 제품 선호 경향이 뚜렷해진 중국 시장을 공략하기 위해 현지 모델 카드를 꺼내든 것이다.

다만 일부 브랜드, 유통 전문가들은 이번 모델 발탁이 의외였다고 말한다. 중국 화장품 소비 시장의 주력 소비 계층은 20·30대 주링허우·바링허우 세대다. 설화수는 올 초 중국 시장에 이 연령대를 타깃으로 ‘설린’ 라인을 론칭하기도 했다. 그러나 새 모델은 20·30대에 어필하기엔 신선하지 않다는 평이 많다. 실제로 중국 시장을 적극 공략하고 있는 시세이도의 ‘입사(IPSA)’는 이 연령대에서 인기 많은 SNS 스타 ‘젤리빈’을 기용해 호평받고 있다. 한 증권사 연구원은 “회사 내부적으로도 설화수의 중국 시장 브랜드 정체성을 명확하게 정의하지 못했음을 방증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일각에서는 중국 소비자를 ‘감동’시키려는 노력도 부족했다고 말한다. 시세이도는중국 전용 브랜드인 ‘오프레(AUPRESS)’를 일찌감치 론칭했다. 국내 화장품 전문가는 “현지화한 작은 브랜드를 론칭하거나 인수하는 등 중국 시장이 ‘소중하다’는 메시지라도 전달했다면 좋았을 것”이라며 “좀 더 공격적인 움직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송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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