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3일 관악구 ‘샤로수길’에 위치한 액세서리점에서 행인들이 가판에 놓인 액세서리를 구경하고 있다. 사진 김소희 기자
10월 3일 관악구 ‘샤로수길’에 위치한 액세서리점에서 행인들이 가판에 놓인 액세서리를 구경하고 있다. 사진 김소희 기자

10월 3일 개천절 오후 3시. 공휴일 점심시간을 훌쩍 넘겼는데도 서울대입구역 2번 출구 인근 ‘샤로수길’은 20·30대 방문객으로 붐볐다. 샤로수길은 낙성대(인헌초교) 방면 750m 직선 골목길로 맛집이 몰려 있는 감성 상권으로 유명하다. 길 이름은 서울대 정문 조형물 ‘샤’와 강남구 가로수길을 합쳐 만들어진 것이다.

이날 부티크 인테리어의 베이커리 카페엔 젊은 연인들이 빈틈없이 자리를 메우고 있었다. 멕시코 음식점의 테라스에서 낮 맥주를 즐기거나 대만식 우육면 가게 앞의 흰색 벤치에 앉아 간판을 배경으로 사진 찍는 사람들도 있었다.

불과 5년 전만 해도 이곳은 거주민이 이용하는 한산한 시장 골목이었다. 샤로수길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아직도 감성적인 카페와 음식점 사이사이에 오래된 철물점, 노래연습장, 농수산물 할인마트가 숨어 있다. 샤로수길에서 한 블록만 벗어나도 낡은 벽돌식 빌라가 겹겹이 펼쳐진다. 샤로수길 초입에서 7년간 부동산중개사무소를 운영한 김민경 공인중개사는 “5년 전 이곳은 어지럽고 오래된 골목이라 외지에서 인구가 유입되지 않았다”면서 “지금처럼 공휴일에도 사람이 붐빌 줄은 상상도 못 했다”고 했다.

어느새 샤로수길은 서울시에서 가장 인기 많은 상권으로 떠올랐다. 지난 6월 우리금융경영연구소가 서울 주요 상권을 분석한 결과, 서울대입구역 상권의 매력도가 가장 높았다. 2013년 14위에서 1위로 수직 상승한 결과였다. 이곳은 서울 주요 상권 중에서 공실률(0.6%)이 가장 낮고, 임대료 상승률(5.3%)이 가장 높았다. 샤로수길의 흥행에 탄력받아 서울대입구역 인근에 올해 들어 20층 규모의 오피스텔이 4채나 들어섰다.

샤로수길은 3층의 낮은 상가 건물과 33㎡(10평)의 소규모 점포가 특징이다. 규모가 작지만 상권이 활성화하기 전 건물을 매입한 건물주들은 많은 이득을 봤다. 이곳 일대의 5년 전 임대료는 50만원, 보증금은 1000만원 수준이었는데 최근 임대료 200만원, 보증금 2000만원 수준으로 올랐다. 김민경 공인중개사는 “상권이 뜨기 전에 물건을 매입한 건물주는 10% 내외의 임대수익률을 내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했다.


갈 곳 없는 넥타이 부대의 휴식처

서울을 사등분 했을 때 서남 생활권은 강서구·양천구·구로구·영등포구·금천구·동작구·관악구에 해당한다. 이곳은 30·40대 중산층 직장인 ‘넥타이 부대’가 방문할 만한 젊은 상권이 부재했다. 그간 강남권으로 출근하는 직장인을 위한 베드타운 역할에 머물렀기 때문이다. 거주민들도 즐길 곳을 찾으려면 신촌·홍대 지역이나 강남 지역으로 이동해야 했다.

하지만 2010년대부터 서남 생활권에 오피스 지대가 생겨나면서 지역 분위기가 달라졌다. 과거 제조업 생산 시설이었던 구로 공단은 2000년대에 구로디지털단지와 가산디지털단지로 명칭을 바꿨다. 2010년대엔 정보기술(IT) 벤처기업들이 주를 이루는 디지털단지로 자리 잡았다.

아파트형 공장을 IT 기업 입주 오피스텔로 바꾼 지식산업센터도 여럿 들어섰다. 금천구에는 ‘현대지식산업센터’ ‘디폴리스지식산업센터’, 구로구에는 ‘대명벨리온지식산업센터’가 있다.

새로운 수요층이 생겼지만 이들을 받아줄 만한 상권은 부재했다. 영등포구 대림시장이 서남 생활권에서 그나마 활성화한 상권이었다. 하지만 재래시장에 근거한 50·60대 중장년층이 찾는 상권이어서 젊은 세대의 인기를 끌지 못했다. 차이나타운의 특색이 강해 진입 장벽이 높은 것도 한계였다.

김명식 JLL 이사는 “사당역부터 신도림역까지 2호선 라인은 재래시장에 근거한 오래된 상권이 주를 이뤘다”면서 “소비 성향이 높은 넥타이 부대가 퇴근길에 맥주 한잔 걸치거나 회식으로 간단히 방문할 만한 곳을 찾으면서 샤로수길이 성공했다”고 설명했다.


샤로수길에 있는 생맥주 전문점, 대만식 우육면 가게 뒤로 낡은 벽돌 빌라가 들어서 있다. 사진 김소희 기자
샤로수길에 있는 생맥주 전문점, 대만식 우육면 가게 뒤로 낡은 벽돌 빌라가 들어서 있다. 사진 김소희 기자

임대료 낮아 젊은 창업주 몰렸다

넥타이 부대의 수요를 받아줄 공급도 있었다. 대학가 중에서도 서울대 상권은 오래된 원룸촌으로 임대료가 저렴해 20·30대 젊은 창업주들이 유입됐다. 수제버거집 ‘저니(Journey)’가 시작이었다. 2010년 2월 저니를 차린 김혁진(43·창업 당시 34세) 대표는 한 언론과 인터뷰에서 “대학가 주변에서 가게를 열고 싶었는데, 서울대입구가 임대료가 낮았다”고 했다. 서울대입구역 인근 공인중개사 관계자 A씨는 “5년 전 임대료는 서울의 다른 대학가 골목길 상권과 비교하면 10% 수준에 불과했다”고 했다.

샤로수길 명물 술집 ‘막걸리카페 잡’, 남미 음식점 ‘수다메리까’, 샐러드 가게 ‘스윗 밸런스’ 모두 20·30대 청년이 만든 가게다. 이렇게 하나둘씩 생긴 가게들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타고 홍보되면서 인기를 모으기 시작했다. 이탈리아, 프랑스, 멕시코, 스페인 등 이색적인 음식점과 술집이 모여 있는 것이 눈길을 끌었다.

구청의 역할도 컸다. 현재 샤로수길이 있는 관악로14길을 샤로수길로 정식 명명한 것은 관악구청이다. 강남구 ‘가로수길’에서 상권 이름을 본떠 입소문을 타기 좋았다. 관악구청이 2015년 샤로수길 초입에 팻말을 세우면서 상권 홍보에 나섰다.

다만 과한 임대료 상승은 주의해야 한다. 또 다른 감성 상권인 경리단길의 사례처럼 임대료를 견디지 못한 창업자가 늘어나면, 공실률이 상승해 거리가 특색을 잃기 때문이다.

익명을 요구한 서울대입구역 인근 공인중개사무소 관계자는 “임대료가 급등하면서 폐업으로 인해 매물이 나오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면서 “그나마 권리금이 1억원으로 크게 늘어 샤로수길 초기 창업자들은 수익이 떨어져도 견디고 있지만, 다음 세대 임차인들은 어떻게 견뎌 나갈지 걱정된다”고 했다.

김소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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