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리단길’의 인기 커피숍 ‘자판기’. 6층짜리 아파트 1층에 있다. 사진 정미하 기자
‘망리단길’의 인기 커피숍 ‘자판기’. 6층짜리 아파트 1층에 있다. 사진 정미하 기자

10월 1일 오후 3시, 지하철 6호선 망원역 2번 출구를 나와 이면도로로 들어서자마자 왁자지껄한 시장이 펼쳐졌다. 고구마순, 호박잎 등 채소 몇 가지를 바닥에 늘어놓고 파는 상인이 줄지어 앉아있었고 늙은 호박을 쌓아놓고 파는 채소가게, 제철 과일을 파는 과일가게, 세계과자할인점이 망원시장 입구까지 이어졌다. 이곳은 평균 연령 60대로 보이는 이들로 북적였다.

그런데 이곳에서 불과 150m를 더 걸어가 포은로에 다다르자 전혀 다른 풍경이 펼쳐졌다. 우선 연령대가 낮아졌다. 이곳 주민으로 보이는 사람들 사이로 셀카봉을 든 20대 여성들과 연인들이 왕복 1차선 도로를 오갔다. 이들은 ‘망리단길’로 알려진 이곳의 유명 상점을 찾아 인증샷을 남기느라 여념이 없었다. 최고 높이가 6층인 다세대주택, 세탁소, 미용실 등이 있는 평범한 주택가 사이사이에 들어선 조그마한 카페와 소품점, 옷가게 등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있었다.

최근 20·30대에 인기 있는 상권은 종로, 명동, 신촌이 아니다. 이들은 망리단길을 비롯해 성수동 수제화거리·가로수길·샤로수길·익선동·송리단길 등 서울 곳곳에 숨어있는 골목길을 찾아간다. 그 중심에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가 있다. 망리단길에서 만난 대학생 이시연(22)씨는 친구 박은지(22)씨와 연신 휴대전화를 들여다보며 다음에 갈 곳을 확인했다. 이씨는 “노원구에 살지만 SNS에서 본 가게에 가려고 시간을 내 일부러 왔다”고 말했다. 망리단길의 유명 커피숍 ‘자판기’ 앞에서 사진을 찍고 있던 대학생 김효은(21)씨는 “인스타그램에 올리기 좋은 사진 찍을 곳을 정해서 왔다”며 친구 윤모씨를 이끌고 인근 소품점으로 향했다.

20·30대가 기존 상권이 아닌 골목 상권을 찾는 이유는 뭘까. 트렌드에 민감한 20·30대에 인기가 있는 곳은 임대 수익이 잘 나오기 마련인 만큼 최근 ‘뜨는’ 골목 상권의 공통점을 살펴봤다.


1│이색 가게 들어올 수 있는 골목

서울 성동구 성수동에 있는 카페 어니언은 폐허나 다름없다. 과거 공장으로 쓰였던 건물 벽은 시멘트가 그대로 노출돼 있고, 주변에는 잡초가 무성하다. 음료를 주문하고 디저트를 고르는 공간만 깔끔하게 정돈돼 있을 뿐이다. 하지만 주말마다 골목을 굽이굽이 돌아 찾아온 사람들이 이곳을 가득 메운다. 차가운 시멘트 바닥에 방석 하나 던져둔 자리에 서로 앉으려고 눈치싸움도 치열하다.

20·30대는 기존의 획일화된 상권보다 새롭고 개성 강한 장소를 찾는다. 대로변에 있는 프랜차이즈 매장은 공장에서 찍어낸 제품을 파는 곳이라 여긴다. 빈티지한 공간에서 파는 수제 맥주, 수제 햄버거, 수제 공예품 등 그 가게에서만 즐길 수 있는 것을 찾는다. 이렇게 기존에 없던 독특한 공간을 만드는 데는 소자본 창업이 가능한 소형 상점이 유리하다. 이 때문에 임대료가 상대적으로 낮은 골목을 중심으로 신흥 상권이 만들어진다.

권강수 한국창업부동산정보원 이사는 “기존 상권에 있는 상가 건물은 주로 네모반듯한 형태라 변화에 한계가 있고 임대료가 비싸다”며 “그 대신 이제 막 창업에 나선 젊은 사장들은 한 건물에 주택과 상가가 같이 있는 상가주택을 아기자기하게 리모델링해서 자신만의 가게를 여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임대료가 싼 곳을 찾아 모여든 가게가 여럿 생겨나면서 상권이 만들어지고 SNS로 입소문을 타는 것이다.


2│편리한 대중교통

요즘 뜨는 골목 상권 대부분은 지하철역에서 도보로 이동할 수 있는 곳에 있다. 성수동 수제화거리는 지하철 2호선 성수역, 샤로수길은 지하철 2호선 서울대입구역, 연남동은 지하철 2호선 홍대입구역, 익선동은 지하철1·3·5호선 종로3가역, 가로수길은 지하철 3호선 신사역, 송리단길은 9호선 송파나루역에서 도보로 20분 내 거리다.

이들은 지하철이 인접해 교통이 좋으면서도 낙후됐던 곳이었다. 익선동의 경우 이렇다 할 특색이 없어 죽은 상권으로 취급받았다. 하지만 임대료가 저렴해 새로운 가게들이 들어올 여지가 있었다. 여기다 종로 한가운데 있는 만큼 서울 곳곳으로 연결된 지하철과 버스로 접근성이 좋다. 선종필 상가뉴스레이다 대표는 “한때 익선동 임대료는 종로 상권 평균의 10~20% 수준에 불과할 정도로 뒷골목 취급을 받았었다”며 “한옥 콘셉트에 맞춘 가게들이 들어오면서 특색을 잘 살렸고, 편리한 대중교통이 합쳐져 주목받은 사례”라고 말했다.

성수동 수제화거리, 샤로수길, 연남동, 문래동 철재상가길 등 신흥 골목 상권 상당수는 지하철 2호선을 끼고 있다. 권 이사는 “최근 경향을 보면 순환선인 2호선을 중심으로 상권이 발달하고 있다”며 “요즘 사람들은 교통이 불편한 곳은 잘 찾지 않는 경향이 있다”고 분석했다.


3│SNS에 올릴 만한 볼거리·먹을거리

지하철역 인근에 있는 골목이라고 해서 자동으로 인기 상권이 되지는 않는다. 20·30대를 끌어들이려면 SNS에 올릴 만한 볼거리와 먹을거리가 있어야 한다. 요즘 뜨는 골목 상권은 SNS를 통해 입소문이 빠르게 퍼지면서 인기를 끈 경우가 대부분이다. 인스타그램에 ‘#성수동’을 검색하면 100만 개의 게시물이 뜬다. ‘#익선동’ ‘#샤로수길’은 각각 80만 개, 43만9000개로 뒤를 잇는다. ‘#을지로’ 관련 게시물도 39만 개 이상이다. 대부분 골목 상권에 있는 맛집이나 카페에서 찍어 올린 사진이다.

을지로 역시 SNS의 덕을 봤다. 을지로는 ‘힙지로(개성 있고 신선하다는 뜻을 가진 힙과 을지로를 합한 단어)’로 불린다. 직장인들이 퇴근길에 들러 노가리 안주에 맥주 한 잔하던 곳에서 20·30대가 찾는 곳으로 변신했다. 을지로의 낡은 인쇄 골목에 ‘커피한약방’ ‘을지로맨틱’ ‘녁’ ‘호랑이’ 등 독특한 이름의 카페와 바가 들어서기 시작하면서 SNS에서 입소문이 난 것이다.

조현택 상가정보연구원 연구원은 “20·30대를 골목으로 끌어들이는 건 인스타그램의 해시태그 영향력이 가장 크다”며 “특색 있는 식당이나 카페를 찾아 여행하듯 골목을 찾아가는 것이 요즘 젊은 세대의 특징”이라고 말했다.

정미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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