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일랜드 스워즈에 위치한 SK바이오텍 아일랜드 스워즈 공장. 사진 이민아 기자, SK바이오텍
아일랜드 스워즈에 위치한 SK바이오텍 아일랜드 스워즈 공장. 사진 이민아 기자, SK바이오텍

‘SK Biotech’. 나지막한 직사각형 건물에 로고가 붙어 있었다. SK바이오텍 아일랜드 공장 입구였다. 9월 25일(현지시각) 아일랜드의 수도 더블린 시내에서 차를 타고 30분쯤 달려 도착한 곳이었다. 공장은 시내에서 북쪽으로 14㎞ 떨어진 스워즈에 있었다. 1998년 설립된 SK바이오텍은 합성 원료 의약품(API)을 글로벌 제약사에 공급하는 의약품 위탁 생산회사(CMO·Contract Manufacturing Organization)다. 공장 입구의 큼지막한 팻말에는 회사 이름과 함께 ‘환영합니다’라는 한국어가 쓰여 있었다.

이 공장은 SK바이오텍이 브리스톨마이어스스퀴브(BMS)의 의약품 생산 시설을 지난 2017년 6월 인수한 것이다. 인수 대금 1700억원, 인수 대상 공장 부지 8만2600여m²(약 2만5000평) 규모의 ‘대형 딜’이었다. BMS는 SK바이오텍의 고객사이기도 한 글로벌 제약 회사다. 한국의 제약 회사 가운데 첫 아일랜드 진출이면서, 고객사로 오랜 관계를 유지해왔던 글로벌 ‘톱 티어(Top Tier)’ 회사로부터 생산 설비를 인수한 것이라는 이유로 업계에서 주목받았다. SK바이오텍은 SK㈜의 자회사로, SK㈜가 지분 100%를 갖고 있다. 이전에 한국 기업 최초로 아일랜드에 진출했던 곳은 비디오테이프 제조 회사 새한미디어의 새한미디어 아일랜드였다. 이 회사는 지난 2007년 자본잠식으로 사라졌다.

SK바이오텍을 비롯한 외국계 제약사들이 아일랜드를 유럽 진출의 전초기지로 삼는 이유는 기업 친화적 환경 때문이다. 아일랜드의 법인세는 12.5%로, 다른 유럽 국가의 법인세(15~30%)보다 낮다. 게다가 제약 산업 특성상 연구·개발(R&D)과 직원 교육비 지출이 많은 편인데, 이와 관련된 비용의 37.5%를 세액에서 공제받는다. 유럽연합(EU) 국가 가운데 영국을 제외하면 유일한 영어 사용 국가이므로 언어 장벽도 낮다.

SK바이오텍도 스워즈 공장을 통해 유럽 시장 내 영향력을 확대하겠다는 목표를 가지고 있다. SK바이오텍 아일랜드의 지난해 매출은 1763억원이었는데, 올해 예상 매출은 2000억원이다. 김현준 SK바이오텍 아일랜드 공장장(상무)은 “스워즈 공장이 만들어진 지는 50년이나 됐지만, 그동안 꾸준히 제조 설비를 개선해 업무 자동화율이 높다”면서 “전통과 경쟁력을 동시에 갖췄다고 자부한다”고 설명했다.

스워즈 공장에서 만들어지는 제품은 API다. API는 원료를 들여와 화학반응을 일으켜 제조 과정을 거친 뒤 만들어지는 분말이나 액체다. API는 환자에게 투약하는 완제 의약품 전(前) 단계의 제품이다. 이 API를 가지고 캡슐·주사제 등 완제 의약품을 만든다.


아일랜드 직원 370명, 이 중 한국인은 4명뿐

SK바이오텍 직원과 함께 스워즈 공장 내부를 둘러봤다. 입구에서 휴대전화를 맡긴 뒤에야 안으로 들어설 수 있었다. 직원은 “보안이 매우 중요하기 때문”이라면서 “지난해 우리 공장을 찾았던 이낙연 국무총리도 입구에서 휴대전화를 맡기고 들어오셨다”고 설명했다. 우선 사무동 건물로 들어갔다. 이곳에서 발을 보호할 수 있도록 표면이 딱딱한 신발을 신고, 헬멧과 조끼를 받아 입었다.

전 직원 370명 중 한국인은 4명뿐이다. 나머지 인력은 BMS 시절부터 이 공장에서 일했던 아일랜드인이다. SK바이오텍이 공장을 인수하면서 설비와 인력까지 함께 넘겨받았기 때문이다. 공장 직원들은 왼쪽 가슴에 SK바이오텍 로고가 박힌 유니폼을 입고 작업에 열중하고 있었다.

공장은 사무 시설, 의약품 제조 시설, 연구 시설로 분류된다. 제조 시설 안으로 들어가니 수많은 파이프라인으로 연결된 은색의 대형 가마솥이 눈에 띄었다. ‘반응기(reactor)’라는 설비였다. 철광석을 녹여 철 제품을 제조하는 용광로와 같은 역할을 한다. 반응기에 의약품 원료를 넣고 가열과 냉각 작업을 반복하다 보면 걸쭉한 반죽이 나온다. 반죽을 정제·여과하고 건조해 분말 형태의 제품을 만든다.

스워즈 공장은 6개의 제조 시설에 총 30대의 반응기를 갖추고 있다. 당뇨치료제를 주로 생산하는 대규모 제조 시설에는 총 10기, 항암제를 주로 생산하는 소규모 제조시설에 총 20기의 반응기가 있다. 반응기 용량을 모두 합치면 8만1300ℓ에 달한다. 소규모 제조 시설은 고성능 활성 제약 성분(HPAPI) 제조가 가능하다. HPAPI는 독성이 강해 제조 과정에서 엄격한 생산·품질 관리가 필요한 API다. 이 때문에 높은 기술력을 보유한 일부 제약사들만 생산해왔다. SK바이오텍은 이 공장을 인수하면서 HPAPI 제조 기술과 운영 노하우까지 물려받았다.

시설 밖으로 나와 둘러본 공장 부지에는 시설 내부에서 봤던 반응기를 추가로 설치하는 공사가 한창이었다. 김현준 공장장은 “주력 제품 중 하나인 당뇨병 치료제에 대한 시장 반응이 좋아서 고객사들의 수요가 지속적으로 늘어나고 있다”면서 “해당 제품 생산량을 두 배로 늘리기 위해 제조 설비를 추가하는 중”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올해 말부터는 1만4000ℓ 규모의 반응기 2기, 원심분리여과기 1기, 진공건조기 1기가 추가 설치돼 가동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제조를 완료한 API를 보관하는 창고에 들어섰다. 창고에는 노동자가 지켜야 할 동선을 표시한 발자국 스티커들이 붙어있었다. 안전사고를 예방하기 위해서다. 발자국을 따라 움직이며 둘러보니 약 1m 높이의 드럼통들이 높은 선반에 층층이 보관돼 있었다. 드럼통에는 고객사로 떠날 준비를 하는 API가 담겨 있다.

눈에 띄는 것은 자체 소방 시설이었다. 제조 시설 사이에 붉은색 소방차 한 대와 ‘소방서(fire house)’라는 간판이 적힌 작은 건물이 보였다. SK바이오텍 직원은 “생산 시설에서 일하는 모든 직원은 사고가 났을 때 즉각 대응할 수 있도록 소방 교육을 받는다”고 설명했다.


plus point

[Interview] 김현준 SK바이오텍 아일랜드 공장장(상무)
“운영 23개월 만에 증설…아일랜드 정부가 도왔다”

송현·이민아 기자

김현준 고려대 화학공학과 석사, 유공
김현준 고려대 화학공학과 석사, 유공

SK바이오텍은 아일랜드의 의약·바이오 제조에 투자한 첫 번째 한국 기업이다. 아일랜드에 법인을 둔 한국 기업 4곳 중에서는 가장 최근 진출했다. 1997년 유공으로 입사해 22년간 SK에서 일하고 있는 김현준 SK바이오텍 아일랜드 공장장(상무)을 이메일로 인터뷰했다.

아일랜드를 선택한 이유는.
“SK바이오텍은 BMS의 원료 의약품 생산 공장을 그대로 인수해서 설립한 회사다. 이런 이유 외에도 아일랜드는 제약·바이오 회사들이 사업하기에 매우 좋은 환경을 갖추고 있다는 점이 기업 입장에서 큰 장점이다. 낮은 법인세가 대표적이다. 그래서 글로벌 주요 제약사들의 생산 설비 대부분이 이곳에 있다. 지리적 장점도 있다. 아일랜드는 세계 제약 시장의 양대 축인 북미와 유럽 시장 중간에 자리잡고 있다. 물류 측면에서 최적의 입지다.”

정부로부터 어떤 도움을 받았나.
“직원 교육 비용에 대한 세제 혜택이 대표적이다. 위탁 생산 비즈니스 특성상 직원 교육 비용이 많이 드는 편이다. 한국에도 비슷한 제도가 있긴 하지만, 현장에서 느끼는 지원의 정도가 다르다. 아일랜드 쪽이 매우 적극적이다. 아일랜드 투자발전청(IDA)이 직접 여러 혜택을 ‘챙겨주는’ 느낌이다. 더 거슬러 올라가면 2017년 6월 SK바이오텍이 이 공장을 인수한 시점부터다. SK바이오텍 전담 공무원이 배정됐고, 이 공무원을 통해 전폭적인 지원을 받았다. 신규 법인 설립을 위한 각종 인허가 업무 관련 안내, 지원뿐 아니라 공장 운영과 사업 추진에 필요한 파트너 연결, 전문 인력 추천까지 포함해서다. 어찌 보면 사소하지만 몰랐다면 난감할 뻔했던 일들을 처리하는 데 많은 도움을 받았다. 정부 지원 외에 기업 친화적인 분위기가 확실히 느껴진다. 사회도 안정적인 데다 시스템이 잘 갖춰져 있기 때문에 기업을 운영할 때 닥칠 수 있는 돌발 변수나 위험 요인이 적은 편이다. 영어를 공용어로 쓴다는 점도 큰 장점이다.”

2018년 1월 공장 가동을 시작한 이후 만 2년이 안 돼 증설까지 했는데.
“주력 생산 의약품인 당뇨병 치료제 반응이 좋기 때문이다. 수요를 맞추기 위해 생산 용량을 2배로 키웠다. 연말부터 본격 가동할 예정이다. 지난해 반응기가 용량별로 총 18기였는데 증설을 통해 총 32기가 될 예정이다. 작년 1700억원이었던 매출이 올해는 2000억원을 넘을 것 같다.”

현지 직원을 위해 특별히 하는 일이 있나.
“직원 370여 명 중 상주하는 한국인 인력은 4명뿐이다. 현지 직원들과의 접점을 넓히기 위해 업무 외에 지역 사회 봉사나 기부 프로그램에 적극 참여하고 있다. 또 한국과 관련한 간단한 콘텐츠를 제작해 공유하거나 추석 등 명절에 구내식당 특식 메뉴로 불고기, 잡채 등을 준비하는 등 한국 알리기에도 힘쓰고 있다.”

아일랜드인과 한국인의 공통점이나 차이점을 꼽는다면.
“역사뿐만 아니라 민족성도 비슷한 점이 많다. 아일랜드인은 흥도 정도 많다. 또 우리처럼 음악을 좋아하고, 술 마시면서 이야기 나누는 것도 좋아한다. 업무할 때 다르다고 느낀 점은 절차나 시스템에 집중한다는 것이다. ‘빨리빨리’보다는 ‘천천히’ ‘꾸준히’에 가깝다. 상대적으로 남성보다 여성이 더 주도적이고 씩씩한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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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일랜드에 기반 둔 글로벌 바이오·제약 기업들
J&J·로슈·다케다 등 톱10 기업 10년간 13조 투자

송현 기자

다케다약품공업은 2017년 아일랜드에 거점을 둔 영국계 제약 회사 샤이어를 427억파운드에 인수했다. 사진 블룸버그
다케다약품공업은 2017년 아일랜드에 거점을 둔 영국계 제약 회사 샤이어를 427억파운드에 인수했다. 사진 블룸버그

세계 최대 제약 기업인 존슨앤드존슨(J&J)은 10월 7일 아일랜드 남쪽에 있는 코크에 생명공학 센터를 열었다. 3억유로(약 4000억원)를 투자해 만든 연면적 2만㎡의 4층짜리 복합건물에는 물류 센터, 실험실, 행정동 등이 들어섰다. J&J는 새로 지은 이 건물 외에도 코크에 또 다른 시설을 갖고 있다. 1940년대 아일랜드에 처음 진출한 J&J는 현지에 자회사를 비롯해 총 7곳의 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아일랜드 정부는 1960년대부터 바이오·제약 산업을 전략적으로 육성하기 위해 기업들에 파격적인 인센티브를 제공했다. 정부가 최저 수준의 법인세율, 특허 소득 추가 감면, R&D(연구·개발) 비용 세액 공제 등을 내걸자 글로벌 기업들이 몰려들었다. 2019년 기준 글로벌 바이오·제약 기업 톱10 모두 아일랜드에 거점을 두고 있다.

대부분의 글로벌 바이오·제약 기업들은 더블린에 본사, 남쪽의 코크에 제조 기반을 두고 있다. J&J, 로슈, 노바티스 등이 대표적이다. 이들은 1940년대부터 일찌감치 아일랜드에 진출해 바이오 클러스터 조성에 앞장섰고, 그 뒤를 이어 현재 아일랜드 전역에 75개 글로벌 바이오·제약 기업과 이들의 생산 기지 90곳이 자리 잡고 있다.

이들은 아일랜드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는다. 아일랜드 투자발전청(IDA)에 따르면 글로벌 바이오·제약 기업들이 지난 10년간 아일랜드에 투자한 자금은 총 100억유로(약 13조원)였고, 관련 일자리 3만 개를 창출했다. 이들 기업은 유럽 본사뿐만 아니라 생산 공장도 아일랜드에 두고 있는데, 여기서 수출되는 규모만 매년 390억유로어치다. 덕분에 아일랜드는 세계 7위 의료·의약 제품 수출국으로 자리 잡았다.

기업들도 아일랜드 진출을 통해 얻는 이득이 적지 않다. 대표적인 사례가 일본 최대 제약사 다케다(武田)약품공업이다. 다케다는 1997년 아일랜드 수도 더블린에 생산 기지를 구축했다. 첫 해외 진출이었다. 회사는 유럽 시장 점유율을 확대했고 진출 20년 만인 2017년 아일랜드에 거점을 둔 영국계 제약 회사 샤이어를 427억파운드(약 62조원)에 인수했다. 매출 기준 글로벌 제약 업계 순위 17위였던 다케다는 샤이어 인수를 통해 10위권으로 올라섰다.

세계 2위 의료기기 회사인 미국 메드트로닉도 아일랜드 바이오 클러스터 안에 있는 회사를 인수·합병(M&A)하며 몸집을 불렸다. 2014년 아일랜드 의료기기 업체 코비디엔을 인수했는데, 법인을 아예 아일랜드로 이전했다. 미국의 높은 법인세(35%)를 피해 유리한 입지를 찾은 것이다.

더블린(아일랜드)=이민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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