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채승우 객원기자, 김문관 차장
사진 채승우 객원기자, 김문관 차장

색(色)에 빠진 관람객들이 ‘인생샷’ 남기느라 분주했다. 10월 12일 오후 3시, 서울 강남역 근처 ‘아이랩 스페이스’의 풍경이었다. 이곳에서는 ‘왓츠 유어 컬러(What’s your color)’ 전시회가 열렸다. 빨강·초록·파랑 등 삼원색을 소개하는 공간부터 ‘리빙 코랄(Living Coral·황금빛과 주홍빛을 함께 띠는 살구색)’ 빛깔의 제품이 놓인 공간까지, 알록달록한 전시물이 시선을 끌었다. 리빙 코랄은 미국 색채연구소 ‘팬톤’이 선정한 올해의 색이다.

하얀색 방에서는 컬러리스트(색채전문가)가 관람객 피부톤에 어울리는 색을 추천해주고 있었다. 송성경(26) 컬러리스트는 “사람마다 어울리는 색이 따로 있다”며 “원하는 관람객에게 이를 찾아주고 있다”고 했다. 현장에서 상담을 받은 직장인 정다운(25)씨는 “평소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해 ‘핑크’의 ‘핑’ 자도 쳐다보지 않았는데 컬러리스트의 조언을 듣고 직접 매치해보니 의외로 잘 어울리는 것 같다. 집에 가는 길에 분홍색 옷을 사갈 생각”이라고 웃으며 말했다.

왜 사람들은 색에 끌릴까. 색이 존재감을 드러내는 데 가장 직접적이고 효과적인 수단이기 때문이다. 한국색채연구소에 따르면 인간이 사물을 인지하고 판단할 때 영향을 미치는 감각은 시각 70%, 청각 20%, 기타(후각, 촉각, 미각) 10%의 순이다. 그리고 시각에서 50% 이상을 차지하는 요소가 바로 색이다.

기업의 브랜드 아이덴티티(정체성) 역시 시각과 색을 통해 가장 먼저 인지된다.

색채심리학적으로 색에는 각각 고유의 의미가 있다. 파란색은 신뢰를 상징하고 주황색은 활력을 나타낸다. 빨간색은 식욕을 자극하고 노란색은 활동적인 느낌을 준다. 기업은 이런 색의 심리적인 속성을 브랜드와 제품의 성격을 알리기 위해 컬러마케팅을 한다. 적절한 색의 활용은 기업 브랜드와 제품의 부가가치를 높여준다. 색을 제대로 활용하면 돈이 된다는 것이다.

뷰티·헤어, 패션·섬유 등 색 자체가 주요한 요소인 산업군에서는 각각의 소재와 어울리는 색을 활용해 고객을 유혹한다. 식품, 자동차·항공, 전자·가전 역시 주요 컬러마케팅의 분야다.

최근에는 컬러리스트들이 디지털 영상 분야에서 활약하고 있다. 이들은 영화나 드라마, 광고, 동영상의 색감을 조절해 작품 전체의 톤을 결정한다. 온라인 동영상 플랫폼 넷플릭스도 컬러리스트의 주요 활동 무대다. 작품에 잘 어울리는 색감은 작품 전체의 질을 높인다.


스타벅스, 코카콜라, 애플…컬러마케팅 성공사례

전문가들은 컬러마케팅의 대표적인 성공사례로 스타벅스와 코카콜라를 꼽는다. 1971년 미국 시애틀에서 문을 연 커피전문점 스타벅스는 개점 초기에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바다의 요정 세이렌의 형상을 그린 갈색 로고를 썼다. 당시 세이렌의 상반신이 드러난 로고가 선정적이라는 논란이 일기도 했다.

1987년 스타벅스를 인수한 하워드 슐츠는 자신이 기존에 갖고 있던 커피회사 일 지오날레와 스타벅스를 합병하면서 합병회사의 이름을 스타벅스로 통일했다. 하지만 로고는 일 지오날레가 쓰고 있던 초록색으로 교체했다.

하워드 슐츠는 저서 ‘스타벅스, 커피 한잔에 담긴 성공신화’에서 “우리는 왕관을 쓴 ‘스타벅스 요정’을 더 현대적으로 만들었다. 구태에 얽매인 듯한 갈색을 버리고 긍정적인 느낌을 주는 일 지오날레의 초록색을 선택했다”고 밝혔다.

편안하고 안정적인 초록색 이미지를 활용해 스타벅스 로고의 선정성 논란에서 벗어난 것이다. 스타벅스는 33년이 지난 지금까지 초록색 로고를 유지하고 있다. 그리고 이 표준화된 색은 ‘스타벅스 그린’이라 불리며 전 세계에서 스타벅스를 상징하고 있다.

130년이 넘는 역사를 가진 코카콜라의 빨간색 바탕에 하얀 글씨 로고는 그 자체가 곧 회사다. ‘코카콜라 레드’는 과거보다 밝게 조정됐는데 이 색깔의 정확한 데이터값은 ‘제2의 레시피’로 불릴 만큼 기밀로 관리된다. 일본 이온음료 포카리스웨트의 파란색 용기와 하얀색 글씨는 그 자체로 시원하게 갈증을 해소할 수 있다는 느낌을 전해준다.

커피브랜드 네스프레소와 네스카페가 사용하는 화려한 컬러 팔레트 커피캡슐은 색을 통해 맛을 유추할 수 있도록 돕는다.

세계 최고 브랜드 중 하나인 애플도 터닝포인트마다 색을 활용했다. 개인용 컴퓨터는 처음 등장했을 때 사무용 기기 느낌을 주는 칙칙한 회색이었다. 애플은 1998년 컬러풀한 매킨토시 컴퓨터를 생산한 데 이어 누드케이스까지 도입했다. 21세기에 들어서는 아이팟부터 아이폰까지 흰색으로 색을 단순화해 성공을 거뒀다. 그리고 이 ‘애플 화이트’는 현재의 애플을 상징한다. 이 밖에도 이탈리아의 고급 차 브랜드 페라리를 상징하는 색은 붉은색이다. 보석 브랜드 티파니를 상징하는 색은 스카이블루다. 명품 브랜드 에르메스는 주황색이다. 이처럼 때로 색은 기업 그 자체를 상징한다.


색이 기업을 신뢰하게 만든다

기업은 끊임없이 고객의 관심을 끌고 그들과 교류해야 한다. 그래야만 치열한 시장 경쟁에서 생존할 수 있다. 그리고 기업이 고객과의 교류를 이어가려면 고객 스스로가 좋은 기분을 느끼게끔 만들어야 한다. 전문가들은 이 과정에서 색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입을 모은다. 영국의 색채 전문가이자 베스트셀러 작가인 카시아 세인트 클레어는 “적절한 색은 기업 브랜드를 꾸준히 신뢰하게 만드는 효과가 있다”고 했다.

이호정 브랜드마케터(컬러리스트)는 “이미지로 소통하는 비주얼 커뮤니케이션 시대가 활짝 열렸고, 감성의 언어인 색을 이해하고 잘 다룰 수 있는 기업이 고객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이코노미조선’이 만난 컬러리스트와 브랜드 마케터들은 앞으로 컬러마케팅이 더 중요해질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디스플레이 기술의 발전에 힘입어 영상으로 볼 수 있는 색의 종류나 경험 형태가 훨씬 다양하고 화려해졌기 때문이다. 컬러마케팅이 1950년대 이후 컬러TV의 등장과 함께 본격화된 것을 생각할 때 컬러마케팅의 역할은 앞으로 더 커질 전망이다.

전문가들은 컬러마케팅이 성공을 거두려면 섬세함과 꾸준함이 결합돼야 한다고 조언한다. 그만큼 색은 섬세한 분야이기 때문이다. 코카콜라와 스타벅스의 사례가 이를 증명한다. ‘이코노미조선’은 커버스토리를 통해 컬러마케팅의 특성과 다양한 활용 사례를 소개한다.


plus point

각각의 색과 어울리는 사업군은?
빨강은 식욕 자극, 파랑은 신뢰 상징

빨간색으로 식욕을 자극하는 맥도널드 로고.
빨간색으로 식욕을 자극하는 맥도널드 로고.

색채심리학적으로 각각의 색과 어울리는 사업군이 있다. 미국 시장조사기관 ‘업워크’에 따르면 우선 빨간색은 보는 사람의 시선을 사로잡는 효과가 있다. 이는 전 세계 신호등이나 정지표지판 등에 보편적으로 빨간색이 쓰이는 이유다.

빨간색은 신체에 물리적인 영향을 미친다. ①심장 박동수를 증가시키고 혈압을 높이며 ②시간이 실제보다 더 빨리 지나가는 것처럼 착각하게 만들며 ③신진대사를 개선함으로써 식욕을 증가시킨다. 이에 따라 코카콜라와 피자헛, 맥도널드 등 식품 업계 로고에 널리 쓰인다. 백화점 등 오프라인 매장에서 가격 인하 행사를 알리는 ‘세일(SALE)’ 글자도 빨간색을 쓴다.

파란색은 신뢰와 안정감을 상징한다. ①파란색 방은 공부 능력을 향상시키고 생산라인의 생산성을 증가시키며 ②심장 박동 수를 늦추고 ③신뢰와 믿음의 감정과 연관이 있다. 집중력을 높이기 때문에 업무 공간을 파란색으로 칠하면 효과적이다. 푸르덴셜생명 등 금융회사, IBM 등 정보기술(IT) 회사, 유나이티드에어라인 등 항공 업계에서 널리 쓴다.

노란색은 낙관주의, 자신감, 재미, 행복의 느낌을 준다. 창의력 향상에도 도움이 된다. 액세서리나 예술품에서 노란색이 효과적이다. 행복과 재미의 긍정적인 연관성은 소비자에게 브랜드에 대한 따뜻한 느낌을 줄 수 있다. 한국 플랫폼 기업 카카오가 노란색으로 이를 표현한 대표적인 브랜드다.

초록색은 자연, 새로운 생명과 연관돼 있어 편안함을 유도한다. 어두운 녹색은 부와 연관이 있다. 브랜딩에서 초록색은 환경에 대한 의식이 있는 회사 또는 부유한 사람을 위한 회사의 이미지를 제공한다. 스타벅스가 대표적이며 국내 포털 업체 네이버도 초록색을 통해 친숙함을 전달한 브랜드다. 환경 관련 기업 또는 비영리단체(NGO)에서도 초록색을 즐겨 사용한다. 또 보라색은 지배한다는 의미가 있어 프리미엄 전략에 적합하다. 글로벌 화장품 브랜드 안나수이와 한국 식품 배송 업체 마켓컬리가 보라색을 브랜딩에 활용한 사례다.


plus point

세계적인 유니콘 기업들은 ‘검은색’ 선호
無에서 有 창조하는 느낌, 고급스러움 표현해

이민아 기자

(왼쪽부터) 한 운전자가 차량 공유 애플리케이션 우버를 사용하고 있다. 사무실 임대 서비스 회사 위워크는 검은색 바탕에 흰색 사명이 적힌 단순한 로고를 쓴다. 항공우주 장비 제조 회사 스페이스X는 파란색 사명이 적힌 로고를 쓴다.
(왼쪽부터) 한 운전자가 차량 공유 애플리케이션 우버를 사용하고 있다.
사무실 임대 서비스 회사 위워크는 검은색 바탕에 흰색 사명이 적힌 단순한 로고를 쓴다.
항공우주 장비 제조 회사 스페이스X는 파란색 사명이 적힌 로고를 쓴다.

세계 유니콘(기업 가치 10억달러 이상의 스타트업) 기업 10곳 중 4곳은 회사 로고를 비롯한 브랜드 대표 색상이 검은색이었다. 미국의 컬러 시장조사기관 ‘비주얼 캐피털리스트’에 따르면 유니콘 기업 50곳 가운데 38%가 회사의 브랜드 대표 색상을 검은색으로 선택했다. 차량 공유 서비스 업체 ‘우버’, 사무실 임대 서비스 ‘위워크’가 대표적이다. 한국 내 유니콘 가운데는 음식 배달 주문 서비스 ‘배달의민족’을 운영하는 ‘우아한형제들’과 ‘배틀 그라운드’로 막대한 수익을 낸 게임 개발사 ‘크래프톤’이 검은색을 쓴다. 한 컬러리스트는 “검은색은 무에서 유를 창조한다는 이미지가 있는 색상”이라고 분석했다.

검은색은 샤넬이나 프라다·디올 등 명품 패션 회사들이 오랜 시간 사용한 색상이기도 하다. 비주얼 캐피털리스트는 “검은색은 세련됨을 표현하는 가장 좋은 색상”이라고 분석했다. 우버가 자사의 고급 승용차 대여 서비스 이름을 ‘우버 블랙’으로 정한 것도 이 같은 맥락으로 해석할 수 있다.

유니콘 기업이 두 번째로 많이 사용한 색상은 파란색으로 20%를 차지했다. 클라우드 컴퓨팅을 기반으로 하는 파일 공유 서비스 ‘드롭박스’, 일론 머스크의 항공우주 장비 제조 회사 ‘스페이스X’ 등의 브랜드 대표 색상이다.

한국의 간편 송금 서비스 ‘토스’를 운영하는 ‘비바리퍼블리카’도 파란색을 쓴다. 파란색은 생산적이면서도 안정감 있는 색상으로, IBM이나 AT&T 등 대기업들이 브랜드 대표 색상으로 사용하는 색이다.

유니콘 기업의 16%는 대표 색상을 빨간색으로 선택했다. 공유 숙박 중개 서비스 ‘에어비앤비’와 올해 4월 미국 뉴욕증권거래소(NYSE)에 상장한 ‘핀터레스트’가 빨간색을 사용한다. 그 외 나머지 유니콘 기업들이 채택한 대표 색상은 노란색(12%)과 초록색(6%)순이었다.

한 컬러리스트는 “검은색은 가장 개성적이며 젊음을 상징하는 색으로 유행을 타지 않는 특징이 있다”며 “자연스러움, 세심함 그리고 단순함의 혼합”이라고 했다.

김문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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