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인 러닝 크루 ‘크루고스트’ 크루원들이 대열을 이뤄 동작역 앞 공터에서 뛰고 있다. 사진 박채원 인턴기자
사회인 러닝 크루 ‘크루고스트’ 크루원들이 대열을 이뤄 동작역 앞 공터에서 뛰고 있다. 사진 박채원 인턴기자

“네 줄로 맞춰 조깅하겠습니다!”

한 남성의 말에 100여 명의 사람이 일제히 대열을 만들어 공터를 돌기 시작했다. 10월 21일 저녁 8시, 동작역 5번 출구 앞의 모습이었다. 반팔 운동복 차림의 20대와 30대가 대부분이었다. 해가 저문 어둑어둑한 밤, 가로등 불빛을 받으며 달리는 ‘달밤의 마라톤’이 펼쳐졌다.

올해 3주년을 맞이한 러닝 크루인 ‘크루고스트’는 매주 월요일과 목요일 저녁 여의도, 노들섬, 선유도공원 등 달리기 좋은 곳에 모인다. 러닝 크루는 달리기를 연습하는 사람들의 자발적인 모임을 의미한다.

크루고스트는 학교를 졸업한 대상 러닝 크루 중 규모가 가장 크다. 6개월 동안 크루고스트 러닝 세션에 나온 사람은 약 7000명으로 국내 최대다. 세션마다 100여 명의 크루원(러닝 크루에 참가한 사람)이 나와서 달린다.

이날 모인 크루원들은 400m 조깅과 준비운동을 마친 이후 한강변을 50분 동안 달렸다. 달리기 그룹은 실력(달리기 속도)에 따라 7개로 나뉘었다. 한강의 밤바람을 맞은 이후 다시 동작역 집결지로 돌아온 이들은 스태프로부터 간식인 바나나를 받고 세션을 마무리했다. 세션 종료 후엔 크루원들끼리 이야기를 나누거나 사진을 찍었다. 달리기 동호회의 필참 코스인 뒤풀이는 없었다.

중장년 세대의 취미활동이었던 달리기가 젊은 세대로 확산하고 있다. 젊은 세대 달리기 트렌드의 특징은 거의 완전한 자율, 부담감 제로(0)다. 크루고스트의 의미가 이를 잘 보여준다. 크루고스트의 뜻은 ‘유령(ghost)처럼 모였다가 사라지는 모임’이다. 누구나 달리고 싶을 때 달리고 흩어지고 싶을 때 흩어진다. 크루고스트에 세 번째 참가한 장영일(26)씨는 “참여에 대한 부담을 주지 않기 때문에, 소극적인 성격의 사람들도 다른 사람 눈치 보지 않고 쉽게 참여할 수 있다”고 말했다.

참여 방법도 색다르다. 크루고스트의 경우 별도의 애플리케이션(앱)이 있다. 크루고스트 앱에 ‘러닝 세션 모집’ 알림이 뜨면 온라인으로 신청 가능하다. 참가비는 무료. 신청이 순식간에 끝나서 티켓팅하듯 심혈을 기울여야 한다. ‘크루고스트’ 앱은 지금까지 약 1만4000명이 다운로드받았다. 카카오톡 플러스 친구 계정에 메시지, 온라인 구글 설문조사, 인스타그램 메시지로 신청 가능한 크루도 있다.


여러 크루 모여 체육대회 열기도

러닝 크루의 활동 무대인 인스타그램에 ‘#러닝 크루’ ‘#running crew’를 검색하면 50여 개의 계정이 나온다. 러닝 크루별 특색은 각양각색이다. 동네 친구를 사귀는 지역 기반의 러닝 크루도 있다. 이 중 ‘JSRC(잠실 러닝 클럽)’가 가장 인기가 많다. 인스타그램 팔로어 7200명을 보유하고 있다. 매주 금요일 저녁에 올림픽공원, 잠실 종합운동장 보조경기장, 잠실 한강공원 등지를 달린다. 크루에 별도 가입할 필요 없이 인스타그램에서 신청서를 작성하면 된다.

관심사가 비슷한 젊은 세대끼리 크루를 만드는 경우도 있다. 2013년 생긴 ‘젊은 러너들의 모임’은 1985~2000년 출생자만 가입할 수 있다. 동년배(同年輩) 모임인 ‘띠 크루’도 마찬가지다. 1984~96년생 대상인 총 13개의 개별 크루가 있다. 예컨대 1991년생 양띠는 양띠 크루 ‘뛰꼬양’에만 들어갈 수 있다. 뛰꼬양의 크루원 유영수(28)씨는 “크루에 동갑내기 친구들만 있기 때문에 첫 만남부터 다들 말을 놓는다”면서 “관심사를 공유하는 친구들과 편안한 분위기에서 연습할 수 있어 좋다”고 말했다.

러닝 크루가 직접 행사를 개최해 러닝 문화를 만들어가기도 한다. 뛰꼬양은 지난해부터 ‘띠림픽(띠+올림픽)’을 개최했다. 13개 크루가 모두 참여해 ‘파이프 공 나르기’ ‘몸으로 말해요’ 등 팀워크 게임을 펼치는 체육대회다. 띠 크루뿐만 아니라 누구나 참여 가능한 러닝 훈련 ‘엘에스띠: 모두 다 같이’를 반기마다 개최하기도 한다. 각양각색의 크루들이 화합하는 장을 만드는 것이다.

크루고스트의 경우에는 올해 4월 러닝 행사 ‘미라클365’를 가수 션과 공동 기획했다. 참가비 3만원은 장애 어린이 치료기금으로 기부했다. 총 730여 명이 행사에 참여했다. 기업 기부금을 더해 7700만원을 푸르메재단 넥슨어린이재활병원을 이용하는 환아들의 재활치료비로 기부했다. 신철규(43) 크루고스트 크루장은 “자주 활동하는 크루원들끼리 기부 행사를 주기적으로 기획하려고 노력한다”고 했다.

러닝 크루의 또 다른 묘미는 마라톤 대회 출전이다. 혼자 준비하는 것보다 여럿이 함께하면서 끈기 있게 도전할 수 있다. 풀코스 마라톤 대회 100일 전부터 다 같이 준비를 시작한다. 보통 풀코스를 여러 번 뛰어본 크루원이 훈련 일정을 계획한 뒤 매 주말 모여 훈련을 진행한다. 마라톤 대회에 나가기 전 가슴팍이나 등판에 크루명이 적힌 운동복도 맞추면서 의지를 다진다.

출전하지 않더라도 운동복을 맞춰 입고 대회에 나오는 크루원들도 있다. 달리는 크루원들을 찾아다니다가, 크루원이 지나가면 크루명이 적힌 큰 깃발을 흔들며 응원한다. 같은 크루가 아니어도 “화이팅!”을 외치면서 목청 높여 응원한다. 콜라나 레몬 등 영양을 보충할 식음료를 준비하는 크루도 있다. 러닝 크루 ‘필레이디’에서 활동하는 김나현(25)씨는 “단체로 가발을 쓰거나, 팡파르를 터뜨리면서 응원하는 등 크루별로 응원 문화가 다양하다”면서 “풀코스를 뛰다 보면 고비의 순간이 있는데 응원을 받으면 힘이 난다"고 했다.


plus point

40·50과 20·30, 달리기로 만난다

정미하 기자

달리기가 20‧30대와 40‧50대를 이어 주고 있다. 달리기가 세대를 뛰어넘는 관심사로 부상하면서 전 세대가 어울릴 수 있는 소통 수단이 된 것이다. 달리기 모임을 함께하거나 경험 많은 중장년층이 20‧30대의 멘토 역할을 하는 등 세대가 융화되는 효과를 낳고 있다.

황현철(28) 서울교통공사 사원은 2년 차 마라토너다. 그는 서울교통공사에 입사하기 전인 2017년까지 부산에서 마라톤 동호회 활동을 했다. 동호회에서 만난 50대 임재근씨는 황씨에게 마라톤에 적합한 식단과 몸 관리법을 소개해줬다. 15년 이상 마라톤을 하면서 터득한 노하우를 알려준 것이다. 황씨는 마라톤 대회 참가를 앞두고 두 달 넘게 임씨로부터 1 대 1 코치도 받았다. 황씨는 “덕분에 마라톤을 시작한 지 4개월 만에 ‘Sub-3(풀코스를 3시간 이내에 완주)’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10대부터 50대까지 함께 모여 달리기 연습을 하는 모임도 있다. 이윤민(37)씨가 속한 ‘크루고스트’가 대표적이다. 크루고스트 회원은 20대부터 50대를 아우른다. 최근에는 이씨가 자신의 10대 딸과 함께 뛰기 시작하면서 연령대가 더 다양해졌다. 이씨는 “나이가 비슷한 또래 모임이 많은 것이 사실이지만, 세대를 뛰어넘는 모임도 생기고 있다”고 말했다.

박채원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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