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윤주 뉴욕·도쿄 마라톤 등 총 100여 개 대회 출전, 풀코스 10회, 2018 제주국제트레일러닝대회 100㎞ 2위, 2019 서울국제트레일러닝대회 100㎞ 3위, 영국 노팅엄 트렌트대 패션디자인과 석사
이윤주
뉴욕·도쿄 마라톤 등 총 100여 개 대회 출전, 풀코스 10회, 2018 제주국제트레일러닝대회 100㎞ 2위, 2019 서울국제트레일러닝대회 100㎞ 3위, 영국 노팅엄 트렌트대 패션디자인과 석사

서른두 살이던 2014년 4월 어느 저녁, 회사에서 받은 극심한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한강을 따라 뛰었다. 한 번도 쉬지 않고 6㎞를 달렸다. 나는 그때까지 헬스장 러닝 머신 밖에선 달려본 적이 없는 평범한 직장인이었다. 대학 때는 패션을 전공했기에 언제나 하이힐을 신었다. 그 때문에 지각할지언정 뛴 적이 없었다. 하지만 한강을 따라 처음 뛰던 그날, 나는 머릿속으로 다음에는 어디를 달릴지 생각하고 있었다.

그것이 계기가 돼 러닝 크루와 클럽에 가입했고 서울의 다양한 달리기 코스를 따라 뛰었다. 크루들과 함께 달릴 때는 그것만의 즐거움이 있었고, 혼자 달릴 때는 사색하는 맛을 느끼며 러닝의 매력에 점차 빠져들었다. 달리는 것 자체가 좋아 틈이 날 때마다 한강변과 서울 둘레길을 달렸다.

매주 전국에서 열리는 마라톤 대회와 트레일러닝도 찾아다녔다. 달리기를 시작한 2014년 가을, 마라톤 풀코스와 100㎞ 트레일러닝을 완주했다.

우연히 시작한 달리기는 1년 만에 창업으로 이어졌다. 코스를 완주한 이후 받아든 비닐 봉지는 창업을 결심하게 한 요소 중 하나다. 대부분의 마라톤 대회 주최 측은 결승선을 통과한 참가자들에게 완주 기념 메달, 물, 바나나 등을 담은 비닐 봉지를 건넨다. 비닐 봉지에 담긴 메달이라니. 힘겹게 결승선을 통과한 러너를 배려하지 못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직접 마라톤 대회, 트레일러닝에 참여하면서 느낀 아쉬움을 보완하는 대회를 기획해보자는 마음이 생겼다. 그렇게 달리기 대회를 기획·주관하는 ‘굿러너컴퍼니’를 2015년 설립했다.


‘응원존’ 만들면 러너 의욕 높아져

굿러너컴퍼니의 첫 번째 원칙은 러너 한 명, 한 명이 존중받고 있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는 대회를 만드는 것이다. 한국에선 1년 동안 500개의 크고 작은 마라톤 대회가 열린다. 모든 대회 주최 측은 출발선과 결승선을 만들고 도로 통제에 나선다. 마라톤 대회의 형식에 집중하는 것이다. 물론 참여자를 모으려면 코스를 짜고 관리하는 것이 중요하다. 하지만 마라톤 대회가 지속해서 운영되기 위해선 러너의 마음을 챙길 줄 아는 대회를 만들어야 한다.

그 시작은 러너가 대회에 참가해 달리는 동안 응원받을 수 있는 문화를 만드는 것이다. 마라톤 대회 대부분은 도시 한가운데서 도로를 통제하고 열리기 때문에 시민이 불편을 호소하는 경우가 있다. 일부 시민은 러너를 향해 불만을 표출하기도 한다. 이 경우 러너의 의욕은 떨어진다. 반대로 러너가 달리는 동안 응원을 받으면 그것만으로도 큰 힘이 된다.

굿러너컴퍼니는 4회째인 여의도 한강 릴레이 마라톤 대회장에 응원 구간인 ‘허세존’을 마련했다. 이 대회는 7명이 한 팀을 이뤄 풀코스를 뛴다. 한 명이 뛰는 동안 나머지 6명은 허세존에서 기다렸다가 현재 뛰고 있는 사람을 응원할 수 있다.

러너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허세존에 반응한다. 일부 러너는 허세존에 잠시 멈춰 서서 여유를 즐기고, 몇몇 러너는 기존보다 빠른 속도로 허세존을 통과하면서 이목을 집중시킨다. 러너 중에선 허세존에서 찍을 사진을 고려해 코스프레를 하는 경우도 있다.

대회 완주 메달을 정성스레 건네는 것도 러너를 존중하는 또 다른 방법이다. 보통 국내 마라톤 대회 주최 측은 기념품이 담긴 봉투 안에 메달을 담아준다. 해외에서 열리는 마라톤 대회 관계자들이 러너들의 목에 메달을 걸어주는 것과 상반된다. 굿러너컴퍼니는 결승선을 통과하는 참가자들의 목에 일일이 메달을 걸어준다. 러너를 존중하는 마음을 담아 “수고했다”는 인사도 함께 건넨다.


2018 여의도 한강 릴레이 마라톤 현장 사진과 러너로 구성된 굿러너컴퍼니 직원들(우측 하단). 사진 굿러너컴퍼니
2018 여의도 한강 릴레이 마라톤 현장 사진과 러너로 구성된 굿러너컴퍼니 직원들(우측 하단). 사진 굿러너컴퍼니

러너 취향 파악해야…직원 전원이 러너

굿러너컴퍼니의 또 다른 원칙은 러너의 입장에 서서 기획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직원 전원을 달리기를 좋아하는 러너로 꾸렸다. 직접 뛰면서 원했던 요소를 기획에 반영하기 위해서다.

실제로 직원들의 취향을 반영해 아스팔트나 트랙이 아닌 자연 속을 달리는 트레일러닝 대회를 기획했다. 트레일러닝 대회인 하이원 스카이러닝은 강원도 정선의 하늘길을 달린다. 트레일러닝을 처음 접하는 초보자부터 숙련자 모두가 대회에 참가할 수 있도록 세 가지 코스로 구성했다. 4년 전 첫 대회 때 600명이었던 러너는 올해 1200명으로 두 배 늘었다.

이제 막 달리기를 시작한 러너들의 의견을 듣는 노력도 필요하다. 이제 막 시작한 만큼 숙련된 러너들이 깨닫지 못한 부분을 지적해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굿러너컴퍼니는 매주 월요일 ‘월요 긍정 달리기’ 행사를 진행한다. 이제 막 달리기를 시작한 이들을 위한 행사로 누구나 무리 없이 뛸 수 있는 4~6㎞ 구간을 함께 달린다. 이들과 함께 뛰면서 새로운 영감을 얻을 때도 있다.

유행에 따라 트렌디한 마라톤 대회나 트레일러닝 대회를 기획하는 것도 물론 필요하다.

하지만 그보다는 러너를 존중하면서 그들을 진정성 있게 대하는 마음이 담긴 기획이 더 중요하다. 달리기는 내 삶을 건강하고 긍정적으로 바꿔줬다. 이를 많은 이와 함께 나누며 달릴 수 있는 대회를 계속 만드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

이윤주 굿러너컴퍼니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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