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구 황제’ 마이클 조던(가운데)이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남자 농구에서 금메달을 딴 후 어깨에 성조기를 걸친 상태로 시상대에 오르고 있다. 사진 국제올림픽위원회(IOC)
‘농구 황제’ 마이클 조던(가운데)이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남자 농구에서 금메달을 딴 후 어깨에 성조기를 걸친 상태로 시상대에 오르고 있다. 사진 국제올림픽위원회(IOC)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서 남자 농구 금메달을 딴 미국 국가대표팀 선수들은 성조기를 어깨에 걸치고 시상식에 등장했다. 당시 미국은 1988년 서울 올림픽 준결승전에서 소련에 패한 수모를 갚기 위해 마이클 조던, 래리 버드, 매직 존슨, 찰스 바클리 등 당대 최고 선수로 ‘드림팀’을 꾸려 바르셀로나 올림픽에 참가했다. 많은 미국인이 여덟 경기 내내 작전 타임조차 부르지 않고 가뿐히 정상을 차지한 드림팀의 실력에 한 차례 감탄하고, 미 프로농구(NBA) 스타들이 성조기를 품고 시상대에 오르는 장면에 또 한 번 감동했다.

그런데 이 아름다운 애국 드라마 뒤에는 사실 나이키와 리복의 숨 막히는 ‘돈의 전쟁’이 숨어 있었다. 바르셀로나 올림픽 때 미국 농구 국가대표팀의 공식 스폰서는 리복이었다. 따라서 드림팀 선수들은 리복 로고가 새겨진 의상을 입고 시상식에 나서야 했다. 문제는 조던 등 일부 선수가 나이키와 후원 계약을 한 상태였다는 점이다. 나이키는 후원 선수의 경쟁사 제품 착용을 금지했다. 선수들은 고심 끝에 성조기로 리복 로고를 가리고 메달을 받는 데 합의했다.

이처럼 NBA도 NFL(미 프로풋볼리그)·MLB(미 프로야구)와 마찬가지로 거의 모든 부분에서 자본의 지배를 받는다. 스포츠 브랜드는 인기 선수를 앞세운 상품을 출시해 수익을 내고, 선수는 스폰서의 든든한 지원 덕에 막대한 부를 쌓는다. 구단은 경기장 첨단화와 명칭권 판매 등으로 흑자 달성에 사활을 걸고, NBA 사무국 역시 각 팀의 경기력을 높여 관중 유입을 유도하는 동시에 중계권·광고·기념품 등을 팔아 매출을 올린다.


스폰서 덕에 6년째 수입 1위 르브론 제임스

NBA를 둘러싼 머니 게임은 기업의 각종 후원 활동에서 가장 잘 나타난다. 미 경제 전문지 ‘포브스’가 최근 발표한 르브론 제임스(LA 레이커스)의 2019-2020시즌 수입 규모를 보자. 그는 이번 시즌에만 9240만달러(약 1078억원)를 벌어 6년째 리그 최다 수입 선수 자리를 지켰다. 제임스의 연봉은 3740만달러로 스테픈 커리(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4020만달러)보다 적다. 그러나 나이키·코카콜라·월마트·리모와 등 후원 기업이 5500만달러를 보태준 덕분에 총수입에서는 커리(총수입 8520만달러)를 2위로 밀어내고 1위를 차지할 수 있었다.

제임스 하든(휴스턴 로키츠), 야니스 아데토쿤보(밀워키 벅스), 카와이 레너드(LA 클리퍼스) 등 다른 유명 NBA 선수도 여러 기업과 후원 관계를 맺고 있다. 이 중 하든은 지난 2015년 아디다스와 향후 13년간 총 2억달러에 이르는 스폰서 계약을 했다. 신재휴 서울시립대 스포츠과학과 교수는 “사람들은 세계적인 스포츠 선수가 시합에서 보여주는 열정과 페어플레이 정신뿐 아니라 그가 타는 차, 먹는 음식 등에도 열광한다”며 “기업 입장에서 스포츠 후원은 소비자와 소통할 수 있는 최고의 도구 중 하나”라고 말했다.

운동선수 한 사람에게 천문학적인 돈을 쓰는 기업 행태에 대해 미국 경영학자 매슈 생크는 자신의 책 ‘스포츠 마케팅’에서 “소비자는 유명 선수와 관련된 브랜드를 훨씬 빨리 인지한다”고 설명했다. 나이키와 ‘농구 황제’ 조던의 만남이 대표적인 예다. 이들이 선보인 조던 브랜드는 1990년대 이전까지 아디다스·푸마 등 독일 회사보다 인지도가 낮았던 나이키를 단숨에 세계 최고의 스포츠 브랜드로 끌어올렸다. 조던 브랜드는 그가 은퇴한 이후로도 높은 인기를 유지하고 있다. ‘포브스’에 따르면 조던의 자산은 16억달러(약 1조8000억원)에 이른다.


“시설·경기력 좋아야 관중 몰린다”…앞다퉈 투자

물론 수퍼스타의 등장도, 기업의 활발한 후원도, 기본적으로 해당 스포츠 리그에 수많은 관중이 찾아온다는 전제하에서만 가능한 이야기다. 각 구단과 NBA 사무국이 매 경기 좌석을 가득 채우는 방안을 끊임없이 고민하고 실험하는 이유다. 국제 학술지 ‘스포츠 마케팅 계간(Sport Marketing Quarterly)’에 2004년 실린 연구 결과에 따르면, 스포츠 관람에 큰 영향을 미치는 요소로는 경기장의 시설 수준, 이용 편의성, 접근성을 비롯해 경기 전 다양한 이벤트와 무료 증정 행사 등이 있다.

이를 위해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는 2년 8개월간의 공사를 거쳐 올 시즌부터 새 홈구장인 체이스센터를 개장했다. 삼성전자는 이 경기장에 총 64개의 초대형 발광다이오드(LED) 스크린을 설치했다. 구단은 체이스센터를 농구뿐 아니라 콘서트·아이스쇼 등도 즐길 수 있는 복합문화 공간으로 활용할 계획이다. JP모건은 ‘체이스 센터’라는 명칭을 걸기 위해 매년 수천만달러를 지불할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 밖에 새크라멘토 킹스는 가상현실(VR) 중계를 위해 농구장 바닥에 카메라 6대를 설치했고, 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는 3차원(3D) 영상을 이용한 선수 소개로 관중의 눈을 즐겁게 하고 있다.

사무국은 NBA를 한 치 앞도 내다보기 힘든 순위 경쟁의 장으로 만들고자 애쓴다. NBA는 5년 전부터 경기장 곳곳에 설치된 카메라로 선수들의 움직임을 1초에 25번씩 찍는다. 촬영 내용은 각 선수의 가속도, 드리블 횟수, 공 소유 시간 등의 데이터로 재탄생한다. 구단은 이 데이터를 전술 구축에 활용한다. 경기 수준이 올라갈 수밖에 없다. NBA가 미국 뉴저지주에 1500만달러를 들여 지은 리플레이센터는 최첨단 비디오 판독 시스템으로 판정 지연을 크게 줄였다. 이런 노력의 결실로 NBA 30개 팀의 평균 좌석 점유율은 95%에 육박한다. 뉴욕 맨해튼 중심가에 있는 NBA 공식 스토어는 연간 수백만 명의 관광객이 방문할 정도로 인기가 뜨겁다.


‘자본력’ 중국 앞에선 총재도 순한 양

NBA가 철저하게 미국식 자본주의로 움직이다 보니 때로는 ‘돈의 분노’에 난감한 상황을 겪기도 한다. 10월 4일 대릴 모레이 휴스턴 로키츠 단장이 트위터에 올린 글 한 줄에 중국 전체가 분노한 일이 대표적이다. 모레이는 ‘자유를 위한 싸움, 홍콩을 지지한다’고 적었다. 휴스턴 로키츠는 중국의 스포츠 영웅 야오밍 현 중국농구협회(CBA) 회장의 친정이다. 휴스턴은 2002년 드래프트에서 야오밍을 1라운드 1순위로 지명했다. 많은 한국인이 손흥민 선수가 속한 토트넘 홋스퍼를 좋아하듯, 대다수 중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NBA 구단으로 휴스턴 로키츠를 꼽는다. 그런 팀의 단장이 공개적으로 홍콩의 반중 시위를 지지한 것이다.

즉각 중국 관영 CCTV가 NBA 시범경기 중계를 중단하고 시즌 개막전도 방송하지 않았다. 중국 내 인터넷 경기 중계권을 가진 정보기술(IT) 기업 텐센트도 NBA 개막전을 거부했다. 텐센트는 이후 방송을 재개했지만 휴스턴 중계는 여전히 차단 중이다. 텐센트는 최근 NBA 중계권 5년 치를 얻기 위해 15억달러를 지불한 바 있다. NBA 수익 창출의 큰손이 등을 돌린 셈이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2018-2019시즌 중국에서 TV와 인터넷으로 NBA 경기를 본 시청자는 8억 명에 이른다. 미국 시청자보다 2배가량 많다. ‘포브스’는 NBA의 중국 사업 가치를 40억달러로 추산한다. 중국 기업이 후원을 끊으면 NBA가 다음 시즌 팀당 연봉 상한선(샐러리캡)을 최대 15%까지 낮춰야 할 것이라는 전망까지 나온다. 애덤 실버 NBA 총재, 르브론 제임스 등이 비굴하다는 비아냥을 들으면서도 중국 달래기에 나선 이유다.

전준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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