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홍배 어니언텍, LG유플러스, 액세스모바일 동남아 모바일 사업 담당, 쉐어트리츠 창업 / 사진 김흥구 객원기자
이홍배
어니언텍, LG유플러스, 액세스모바일 동남아 모바일 사업 담당, 쉐어트리츠 창업 / 사진 김흥구 객원기자

“사업 관점에서 필리핀의 매력은 숫자로 확인할 수 있어요. 우선 동남아 국가 가운데 인구수가 인도네시아(2억7000만 명) 다음으로 많은 1억1000만 명입니다.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6~7%로 아시아에서 가장 높은 수준이고요. 알리바바·텐센트 같은 글로벌 벤처캐피털(VC)이 최근 필리핀으로 향하는 이유죠. 우리에게 유리한 시장 환경이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믿습니다.”

서글서글한 눈매의 한 남성이 손바닥을 펼쳐 보이며 회사 소개를 시작했다. 편안한 인상만큼이나 나긋한 목소리가 사업과는 거리가 멀게 느껴졌다. 본인도 “리더의 DNA를 타고난 스타일은 아니다”라며 쑥스러워했다. 하지만 지금 이국땅에서 하는 일이 무척이나 즐겁다고 했다. 낯선 나라 학생들이 자신이 선보인 서비스로 친구나 가족을 행복하게 만드는 걸 보면 성취감이 밀려온다고도 했다. 필리핀에서 쉐어트리츠를 이끄는 이홍배 대표의 이야기다.

2017년 설립된 쉐어트리츠는 모바일 기프티콘 서비스 업체다. 카카오톡 ‘선물하기’와 비슷한 기능을 필리핀 소비자에게 제공한다고 생각하면 된다. 다만 한국과 다른 현지 특성을 고려해 철저한 현지화 전략을 추구했다. 예컨대 신용카드나 스마트폰 결제가 일반적인 한국과 달리 동남아는 열에 아홉이 선불폰을 쓴다. 비싼 선물을 전송할 수 있는 사용자가 많지 않다는 의미다.

“한국인은 친한 친구의 생일 알림이 뜨면 ‘스타벅스 아메리카노’나 ‘배스킨라빈스 아이스크림’ 같은 걸 선물하잖아요. 필리핀은 다릅니다. 상대적으로 구매력이 약하기도 하고, 선물의 퀄리티로 체면을 따지기보다 그냥 선물을 주고받는 행위 자체에 즐거움을 느끼죠. 작은 과자라든지 핫도그 같은 걸 구매하는 이용자가 많아요. 저희 입장에서도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가 좋은 상품을 영리하게 진열해둬야 합니다.”

필리핀 시장 특징을 분석하는 이 대표의 눈빛이 날카로워졌다. “사실 직장인 시절 제 전공이 서비스 기획이었어요. 저는 어떤 서비스를 만들고 그것이 시장의 반응을 끌어내는 걸 볼 때 희열을 느껴요.” 물 만난 물고기처럼 그의 목소리에 힘이 들어갔다. “동남아의 인터넷 환경이 유선 아닌 모바일 위주로 성장했다는 점도 서비스를 준비하면서 염두에 둘 사항이죠. 한국에서처럼 서비스에 이것저것 추가했다가는 속도가 느려져요. 서비스를 최대한 심플하게 만드는 데 공을 들였습니다.”

창업가로 나서기 전 이 대표는 정보기술(IT) 플랫폼 전문기업 어니언텍과 통신 업체 LG유플러스 등을 거쳤다. 업무는 모두 모바일 서비스 기획이었다. 2010년에는 시스템 소프트웨어 개발·공급 업체인 ‘액세스모바일’로 둥지를 옮겨 동남아 모바일 사업을 담당했다. 2012년부터는 필리핀 법인을 담당했다. 창업의 씨앗을 이때 뿌린 셈이다.

“당시 액세스모바일은 동남아에서 컬러링·벨 소리 등의 모바일 부가서비스 사업을 했어요. 문제는 유행이 끝나가고 있다는 점이었죠. 한국에서는 진작에 관련 시장이 사라졌고, 동남아에서도 점점 컬러링의 인기가 시들어가는 중이었어요. 저희는 각자 맡은 국가에서 잘할 수 있는 신사업을 고민해야 했죠.”

이 대표는 어니언텍·LG유플러스에서의 경험을 살려 모바일 서비스 분야를 계속 개척하기로 마음먹고 필리핀 시장의 틈새를 살폈다. 그때 눈에 들어온 것이 바로 ‘모바일 선물하기’였다. 이 대표는 우선 2015년부터 2년 동안 인큐베이팅을 진행해 사업 성공 가능성을 확인했다. 그리고 2017년 액세스모바일과 협의해 스핀오프(spin-off·분사)했다. 쉐어트리츠가 탄생한 순간이다.

이 대표는 “직장에서 신사업을 발굴하다가 우연한 기회에 스핀오프해 CEO(최고경영자)가 된 경우라고 볼 수 있어요. 처음부터 창업만 바라보고 달려온 분들과는 느낌이 살짝 다를 수 있습니다”라며 웃었다. 순둥이 같다고 느낀 첫인상의 이유가 비로소 채워졌다.


필리핀에 있는 쉐어트리츠 임직원들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 한국인은 이홍배 대표까지 총 2명이고 나머지 25명은 현지인이다. 사진 쉐어트리츠
필리핀에 있는 쉐어트리츠 임직원들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 한국인은 이홍배 대표까지 총 2명이고 나머지 25명은 현지인이다. 사진 쉐어트리츠

2위 업체 입점 전략으로 승부수

인큐베이팅 결과가 좋았던 만큼 창업 초반에는 모든 게 순조롭게 흘러갈 줄 알았다. 그러나 실제 싸움은 생각보다 거칠었다. 이 대표는 서비스에 대형 편의점 브랜드를 입점시키기 위해 세븐일레븐을 찾아간 일화를 들려줬다. “사업 모델에 대해 열심히 설명하면 사이트를 보여달라고 하고, 사이트를 만들어 가져가면 사용자 수를 묻고, 사용자 수를 말하면 너무 적어 안 내키니 나중에 다시 오라는 식으로 거절하더군요. 스타벅스 등 다른 브랜드 반응도 비슷했습니다.”

1년 이상 문전박대를 당한 이 대표는 전략을 바꿔 2~5위권 업체를 타깃으로 했다. 이들 기업이 입점한 기프티콘 서비스가 좋은 반응을 얻자 나중에는 세븐일레븐도 스타벅스도 마음을 열었다. 유명한 브랜드가 유입되기 시작하니 그다음 설득 작업은 한결 수월해졌다. 맥도널드·훼미리마트는 물론 졸리비(햄버거 프랜차이즈)·레드리본(베이커리) 등 필리핀 현지 대형 업체들도 대부분 쉐어트리츠와 손을 잡았다.

동남아의 다소 취약한 모바일 결제 환경을 보완하기 위해 쉐어트리츠는 각종 서비스와 제휴를 택했다. 현지 젊은이들이 가장 많이 쓰는 메신저 서비스 ‘바이버(Viber)’, 월렛 서비스 ‘페이마야(PayMaya)’ 등과 전략적 파트너십을 맺은 것이 대표적이다. 필리핀 최초로 선불폰과 월렛 결제를 커머스에 제공했고, 기프티콘에 대한 막연한 거부감을 줄이기 위해 ‘누구나 선물을 보낼 수 있다’는 슬로건도 내걸었다. 이 대표는 “월 거래 건수가 빠른 속도로 늘어난다”며 “최근 30만 건을 넘어섰다”고 했다.

쉐어트리츠의 빠른 성장세를 눈여겨본 투자자들은 앞다퉈 투자하고 있다. 이 회사는 올해 8월 파트너스인베스트먼트·HB인베스트먼트 등으로부터 총 40억원 규모의 시리즈A 투자를 유치했다. 2017년 9월 본엔젤스·케이브릿지 등의 초기 투자 이후 두 번째다. 누적 투자 규모는 54억원 수준이다. 이 대표는 “사업을 준비하면서 기획했던 대부분을 이행했다. 투자자들이 우리의 실행력을 좋게 봐준 것 같다”고 했다. 그는 또 “내년에는 인도네시아에 진출할 예정인데, 시장 확대 계획도 인정받았다”고 덧붙였다.

이 대표처럼 동남아 지역에서 사업 기회를 얻고 싶은 사람에게 그는 어떤 말을 해줄 수 있을까. 사뭇 진지한 표정을 지으며 이 대표가 마지막 말을 남겼다. “동남아는 완성도 높은 서비스를 잘 만들면 기회가 뒤따를 가능성이 제법 큰 시장입니다. 하지만 동남아에 아무리 오래 살았어도 그들에게 우리는 외국인일 뿐입니다. 소비 행태나 문화를 다 이해한 것 같아도 실은 아닌 경우가 많죠. 현지화 노력은 필수입니다.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전준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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