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혜연 한양대 전자통신공학 전공, 우즈베키스탄 시설농업 합작법인 설립 / 김혜연 엔씽 대표가 10월 29일 서울 강남구 네이버 D2SF에서 열린 ‘아시아의 한국인’ 콘퍼런스에서 발표하고 있다. 사진 김흥구 객원기자
김혜연
한양대 전자통신공학 전공, 우즈베키스탄 시설농업 합작법인 설립 / 김혜연 엔씽 대표가 10월 29일 서울 강남구 네이버 D2SF에서 열린 ‘아시아의 한국인’ 콘퍼런스에서 발표하고 있다. 사진 김흥구 객원기자

“물과 공기가 희박하고 기온은 영하 80℃까지 떨어지는 불모지, 화성에서 농사짓는다는 것은 공상과학(SF) 영화에서나 가능한 상상일까요? 바로 그 불가능한 상상이 우리의 목표입니다.”

스마트팜 스타트업 ‘엔씽’의 김혜연 대표가 ‘화성 농업’에 대한 도전을 시작한 것은 2013년. 밑바닥부터 기초를 쌓아나가며 어떤 극한 환경에서도 작물을 재배할 수 있는 스마트팜 솔루션을 개발해왔다. 그러자 척박한 사막의 땅, 중동이 그의 도전을 먼저 주목했다.

엔씽의 ‘플랜티 큐브’는 외부 환경과 완전히 격리된 26㎡(약 8평)짜리 컨테이너에서 연간 3t의 상추를 키워내는 모듈형 스마트팜이다. 이는 국토 대부분이 황량한 사막으로, 식량 자급이 절실한 중동의 상황에 톱니바퀴처럼 들어맞는 솔루션이었다. 엔씽은 지난 7월 아랍에미리트(UAE) 아부다비에 진출, 현지에 플랜티 큐브를 설치해 신선한 채소를 안정적으로 재배하는 성과를 거뒀다. 이를 바탕으로 내년부터 농장 시스템을 추가 확장하고, 다른 중동 국가에도 진출할 계획을 세웠다.

김 대표는 “석유 산업을 통해 막대한 자본을 축적한 중동은 규모나 잠재력 면에서 매력적인 시장이다”라며 “미국과 유럽, 중국을 비롯한 전 세계가 다투는 치열한 시장이기도 하지만, 한국의 뛰어난 정보기술(IT)을 전통 제조업에 접목하는 방식으로 신(新)산업을 창출하면 경쟁력이 있다”고 말했다. ‘이코노미조선’은 서울 강남구 스타트업얼라이언스에서 김 대표를 만나 인터뷰했다. 소탈한 인상에 점퍼 차림을 한 김 대표에게선 작은 씨앗을 풍성한 작물로 키워내는 농부의 뚝심이 엿보였다.


중동 클라이언트들이 아랍에미리트(UAE) 아부다비에 설치된 ‘플랜티 큐브’ 내부를 살펴보고 있다. 사진 엔씽
중동 클라이언트들이 아랍에미리트(UAE) 아부다비에 설치된 ‘플랜티 큐브’ 내부를 살펴보고 있다. 사진 엔씽

전자공학과 출신으로 농업 스타트업을 시작하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비닐하우스 사업을 하는 삼촌을 거들며 농업에 눈을 떴다. 이후 한 차례 창업했다가 접었고, 전공을 살려 전자부품연구원에서 사물인터넷(IoT) 플랫폼 개발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그러다 ‘농업에 IoT 기술을 결합하면 막대한 시너지가 나겠다’는 생각이 번뜩 들었다. 팀을 모아 두 번째 창업에 뛰어들었다.”

엔씽은 사업 모델이나 핵심 제품이 여러 번 바뀌었는데.
“처음 사업을 시작하며 ‘화성에 스마트팜을 짓겠다’는 비전을 세웠다. 막연한 비전을 현실화하기 위한 전략으로 단계적 피벗(Pivot)을 거쳤다. 2014년 스마트 재배 일지 앱 ‘LIFE’를 출시해 작물 재배 데이터를 수집했다. 이를 기반으로 IoT 화분 ‘플랜티’를 개발했고, 2015년 크라우드펀딩 플랫폼 ‘킥스타터’에 출시해 10만달러를 펀딩했다. 스마트팜에 대한 최소기능제품(MVP)으로 하나의 식물을 키우는 화분부터 시작한 것이다. 2016년에는 비닐하우스 1652㎡(약 500평)를 임대해 IoT센서를 활용한 스마트 농장을 운영했다. 그런데 비닐하우스는 기온 등 재배 환경이 외부 영향에 종속된다는 한계가 있었다. 언제나 최적의 재배 환경을 조성할 방법이 뭐가 있을까, 고민 끝에 개발한 것이 현재의 ‘플랜티 큐브’다.”

플랜티 큐브는 어떤 솔루션이고, 어떤 작물을 재배할 수 있나.
“기존의 컨테이너형 스마트팜은 재배 환경은 안정적이지만 비용 효율성이 떨어진다는 단점이 있다. 플랜티 큐브는 이를 보완한 모듈형 컨테이너 형태로, 여러 동을 병렬 구조로 연결할 수 있어 확장성이 있다. 자동화율이 높아 관리 부담이 적다는 것도 장점이다. 병충해가 발생했을 때는 해당 컨테이너만 차단하면 확산을 막을 수 있다. 플랜티 큐브는 상추나 케일, 시금치 같은 채소류에 특화된 스마트팜이다. 채소류는 계절과 기후에 따라 생산량과 비용이 천차만별로 달라지는데, 스마트팜은 언제 어디서나 생산성이 일정해 경쟁력이 있다. 26㎡(약 8평)짜리 컨테이너 1동에서 연간 3t 정도의 소출이 나는데, 이는 기존 농업과 비교했을 때 효율이 40~100배 정도다.”

어떻게 중동에, 그것도 UAE 아부다비에 진출하게 됐나.
“UAE 아부다비에 있는 ‘하얏트 안다즈 호텔’은 5성급인데, 가끔 조식에 샐러드가 아예 나오지 않는다. 이유를 물어보니 채소 수급이 너무 어렵다고 하더라. 채소류는 대표적인 재배지 중심의 작물이다. 보관 기간이 짧아 무역을 통해 불균형을 해소할 수 없다. 중동에선 비행기로 실어나르지 않으면, 신선한 채소를 좀처럼 맛볼 수 없다. 이런 상황에서 채소류 재배에 집중하는 우리 솔루션이 중동의 니즈에 부합했던 것 같다.”

중동 진출 과정에서 어떤 어려움을 겪었나.
“다들 얘기할 텐데, 우리도 역시 인샬라 문제를 겪었다. 협상이 ‘순풍에 돛 단 듯’ 순탄하게 진행되다가, 계약서에 도장 찍을 때만 되면 ‘무한 대기’ 상태가 됐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중동 클라이언트는 자신들이 돈 많다는 것을 너무 잘 알고, 자기 시장이 매력적이라는 것도 너무 잘 아는 것 같다. 미국·일본·중국·유럽 등 전 세계 스마트팜 회사가 전부 중동 시장에 뛰어든 상황이다.”

그런 정체 상황에서 어떤 전략으로 돌파구를 찾았나.
“실무자를 붙잡고 설득을 이어 나가기보다 결정권자에게 직접 성과를 보여줬다. 우리 솔루션의 최대 장점이 POC(proof of concept·개념 증명)가 쉽다는 점이다. 보통 스마트팜 솔루션은 초기 비용만 수십억원이 들어가는데, 우리는 7000만원 상당의 컨테이너 농장 1동만 설치하면 시범 운영이 가능하다. ‘처음부터 100동을 하라는 것이 아니다. 일단 1동만 해보자’, 이렇게 어필하니 바로 진행이 됐다. 농장에서 신선하고 아삭한 채소를 수확할 수 있는 모습을 보고 현지 결정권자들이 굉장히 만족했다. ‘바로 다음 단계로 가자’라고 하더니 진행이 굉장히 빨라졌다.”

중동 진출을 꿈꾸는 후배 스타트업에 조언한다면.
“사실 우리는 중동 현지에 대한 시장 조사를 철저히 한 편은 아니었다. 우리가 개발하고 있던 기술과 솔루션이 마침 중동에서 찾고 있던 것과 딱 맞아떨어진 경우다. 현지에서 분명 원하는 것이 있다. 자사의 제품·서비스가 이에 부합한다면 주저하지 말고 진출하라고 하고 싶다. 좋은 사업 파트너를 선택하는 것도 중요하다. 스타트업 특성상 리소스가 부족해 현지 사업을 하나부터 열까지 혼자 해내기는 어렵다. 경험 많은 국내 대기업 종합상사 등과 협력하는 것도 좋고, 장기적으로 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현지 파트너를 찾는 것도 좋다.”

최상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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