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리하우스 라운지. 방마다 작은 주방이 있지만 라운지에 있는 공동 주방을 이용하는 사람이 많다. 다양한 요리를 해 먹고 거주자 간 소통할 수 있는 공간이다. 사진 김유정 기자
트리하우스 라운지. 방마다 작은 주방이 있지만 라운지에 있는 공동 주방을 이용하는 사람이 많다. 다양한 요리를 해 먹고 거주자 간 소통할 수 있는 공간이다. 사진 김유정 기자

서울 지하철 9호선 언주역에서 2호선 역삼역 방향의 대로를 따라오다 옆길로 새면 빌라촌이 나타난다. 아담한 빌라들을 지나면 회백색의 트리(나무) 모양 건물이 우뚝 솟아있다. 코오롱하우스비전 사업부에서 분할해 설립한 회사 ‘리베토’가 만든 코리빙(co-living·주거 공유) 하우스 ‘커먼타운’ 중 가장 최근에 지은 ‘트리하우스’다. 11월 9일부터 12일까지 4일간 이곳에 살며 공간 구독을 체험했다.

9일 오전 11시, 트리하우스에 도착해 매니저를 만났다. 이곳에 들어가는 첫 문부터 비밀번호가 필요했다. 외부인은 로비에조차 발을 들일 수 없단 뜻. 문을 열고 들어서자 잘 만든 카페 같은 라운지가 한눈에 들어왔다. 한쪽 벽면에 설치된 공동 주방을 보며 ‘아 이곳은 카페가 아니라 코리빙 하우스였지’라며 정신을 차렸다.


‘힙한’ 집을 구독하다

입실 절차를 밟았다. 체험을 위해 배정받은 방은 3층 복도 맨 끝방. 3개월 기준 보증금 300만원에 월세 139만원, 관리비 월 10만원이 별도다.

이번 생에 가당키나 할까. 강남 역세권 신축 건물에 살 기회를 얻었다는 생각에 들떴다. 부동산 중개 수수료, 집주인 횡포, 부동산 사기 등 부동산 계약 때마다 나를 짓눌렀던 걱정은 필요 없었다. 최소 계약 기간이 3개월인 데다 살다가 맘에 안 들면 계약 기간에도 다른 커먼타운(전체 33곳)으로 이사할 수 있도록 계약 조건이 가볍다. 물론 월세는 친절하지 않다. 고정 관리비 한 번만 내면 전기, 수도, 라운지 등 공간 내 시설을 무제한으로 이용할 수 있다. 마치 넷플릭스에 월정액을 내고 원하는 만큼 자유롭게 즐기는 시스템 같다.


트리하우스 지하 주차장에서 차량 구독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다. 스타트업 네이비가 제공하는 공유 차량. 사진 리베토 제공
트리하우스 지하 주차장에서 차량 구독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다. 스타트업 네이비가 제공하는 공유 차량. 사진 리베토 제공

호텔과 원룸, 그 중간쯤

방 인테리어는 우아하게 살고 싶은 욕망을 채우기에 충분했다. 노출 콘크리트 천장에 레일 조명, 바퀴 달린 이동식 원목 테이블에 타일 바닥까지. 친구에게 영상통화를 시도하니 그는 내가 카페에 있는 줄 알았다고 했다. 그동안 누추한 집을 보여주기 싫어 영상통화를 거절해왔지만, 이곳에선 모든 전화를 영상통화로 하고 싶어졌다.

다만 16㎡(5평) 남짓한 방은 군더더기라고는 찾아볼 수 없을 만큼 너무 심플해 걱정이 앞섰다. 침대와 식탁·주방이 나란히 머리를 맞대고 있었고, 미니멀한 화장실은 흡사 일본 도쿄나 오사카 호텔의 그것과 닮아 있었다.


“여기 왜 사세요?”

매달 150만원가량을 지출해야 한다니 평범한 직장인한테는 부담스러운 가격이다. 그런데도 트리하우스는 78가구 중 입주율 90%를 꾸준히 유지하고 있단다. 이런 곳에는 어떤 사람이, 왜 사는 것일까. 로비 한쪽에 마련된 비즈니스 미팅룸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는 남성 두 명이 눈에 들어왔다. 익명을 요구한 남성 두 명은 각각 28세와 31세로 스타트업 창업자였다.

여기에 왜 사냐는 질문에 그들은 “하고 싶은 일에 집중할 수 있고, 인맥을 쌓고 경험을 넓힐 수 있어서”라고 답했다. 월세만 내면 시시콜콜한 집안일에 신경 쓰지 않고 자신의 관심사에 집중할 수 있다는 것이다.

아무리 그래도 너무 비싼 것 아니냐는 질문에 그들은 “계산기 열심히 두드려 봤는데 비용 차이가 그렇게 크지도 않고 이득이 되는 부분이 많다”고 했다. 역삼동 인근에 있는 비슷한 규모의 신축 풀옵션 원룸은 대부분 보증금 300만~1000만원 정도에 월세 100만원 이상을 내야 하는데, 여기에 요가·피트니스 등 운동을 다니면서 쓰는 비용, 일하기 위해 찾는 카페 비용, 한여름과 한겨울에 급증하는 관리비, 청소비·교통비 등을 고려하면 큰 차이가 없다는 얘기다.


11월 10일 오전 7시 서울 지하철 사당역 7번 출구. 등산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커먼타운 입주자와 프립 가입자가 모였다. 사진 김유정 기자
11월 10일 오전 7시 서울 지하철 사당역 7번 출구. 등산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커먼타운 입주자와 프립 가입자가 모였다. 사진 김유정 기자

네트워킹 플랫폼

무엇보다 이들이 코리빙 하우스에 들어온 가장 큰 이유는 인적 네트워킹 때문이었다. 트리하우스 입주자 중 30~40% 정도는 스타트업 창업자라고 한다. 나머지는 인근 직장인이나 강남 지역 학원에 다니는 수험생, 혹은 한국에 단기 체류하는 외국인 등으로 구성됐다. 스타트업 종사자들이 사업 저변을 넓혀가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이 관심사가 같은 사람 간 정보 교류인데, 코리빙 하우스가 그 플랫폼 역할을 해준다는 것이다.

실제 라운지에서 만난 두 청년처럼 코리빙 하우스에서 만나 창업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인스턴트 타투’라는 간편 문신 제품 스타트업도 커먼타운에서 탄생했다. 창업 열기가 가득한 트리하우스는 흡사 스티브 잡스의 ‘창고’ 같은 느낌이 들었다.


세탁·자동차 등도 구독

두 청년을 뒤로하고 방으로 돌아왔다. 방에 세탁기가 있지만 크기가 작고 건조할 장소가 충분하지 않았다. 대신 전용 주머니에 세탁물을 담아 지하 주차장 한 귀퉁이에 있는 ‘런드리고’ 세탁 서비스 장소에 가져다 놨다. 세탁물을 맡긴 후 다음 날 밤 12시 전까지 세탁된 빨래를 받아볼 수 있다. 월정액으로 이용하면 물빨래를 매달 1회 무료로 제공한다.

역시 강남이라 주차비가 월 9만원으로 부담됐다. 나는 차를 가져오는 대신 트리하우스에서 차를 빌려 쓰기로 했다. 스타트업 ‘네이비’가 제공하는 차량 구독 서비스로 시간당 6000~7000원 정도에 테슬라·벤츠·BMW 등 고급 수입차를 빌릴 수 있다.

트리하우스가 서비스를 정기구독해주니 거주자에게는 시중 가격보다 저렴하게 제공됐다. 트리하우스는 거주자의 제품도 구독해준다. 공동 주방에서 제공하는 커피 원두는 트리하우스에 거주하는 카페 창업자에게서 정기적으로 구매하고 있다. 거주자가 개발한 음료수를 구매해 공동 주방에 시음용으로 내놓기도 한다.


돈 주고 사는 ‘경험’

10일 오전 7시. 찬 새벽공기를 마시며 서울 지하철 사당역 7번 출구로 향했다. 트리하우스가 운동 커뮤니티 ‘프립’과 제휴해 제공하는 전북 순창 강천산 산행에 참여하기 위해서다. 참가비는 4만원인데 트리하우스 거주자는 2만6000원으로 할인해준다.

사당역에 도착해 북적이는 인파를 보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서울 전역 커먼타운 거주자 20여 명과 그 외 참여자 20여 명 등 총 40여 명이 모였다. 20~30대가 대부분이었고 대학생부터 직장인, 자영업자 등 직업도 다양했다.

‘아웃도어 큐레이터’라고 불리는 전문가가 참가자 수준에 맞는 적절한 산을 고르고 효율적인 동선을 짠 후 리드하면 조별로 나뉘어 등산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프립에 정기적으로 참여하는 김지훈(33·가명)씨는 “이동 경로·교통수단·식당 등을 정하는 귀찮은 일은 전문가한테 맡기고 우리는 즐기기만 하면 된다”며 “전문가의 경험을 정기구독한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김유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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