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포르셰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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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와아아앙!’

운전대 왼편에 달린 시동 버튼을 비틀자 굉음과 함께 차체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부릉부릉’이 아니었다. ‘쿠와아아앙’이었다. 낯선 경험의 신선함을 또 느끼고 싶어 시동을 껐다가 다시 걸었다. ‘쿠와아앙’ 차량이 한 번 더 소리 질렀다. 스스로 촌스럽다는 생각이 들어 살짝 민망했지만, 마음은 즐거워졌다. 격렬한 엔진음과 진동이 엉덩이·등·뒤통수를 타고 올라왔다. ‘아 맞다. 엔진이 트렁크 쪽에 달린 차였지.’ 고개를 들어 정면을 응시했다. 요란한 후방과 달리 새벽의 도로는 한없이 고요했다. 마음속 깊은 곳 어딘가에서 상남자의 질주 본능이 꿈틀거렸다. 13년 방어운전의 소심함도 포르셰 박스터 운전석에서는 대범함으로 바뀌었다.

구독(購讀)경제가 신문과 잡지, 정수기와 비데를 넘어 자동차 산업에도 침투했다. 자동차 구독 서비스는 2017년 캐딜락·포르셰·볼보 등의 회사가 처음 선보인 이후 지난 2년간 빠르게 성장해 왔다. 최근 들어서는 자동차 회사가 아닌 업체에서도 차량 구독 상품을 내놓고 있다. 스마트 모빌리티 플랫폼 기업 비마이카에서 출시한 공유형 차량 구독 서비스 ‘카로(CarO)’가 대표적이다. 포르셰·마세라티·벤츠·랜드로버 등 여러 해외 고급 브랜드 차량을 사용자가 원할 때마다 골라 탈 수 있다는 점이 카로의 매력이다.

‘이코노미조선’은 운전자 입장에서 자동차 구독의 장단점을 직접 느껴보기 위해 11월 6일부터 11일까지 6일 동안 카로 서비스를 이용했다. 사흘간은 포르셰 박스터, 나머지 사흘간 마세라티 르반떼를 몰았다. 차량 선택 기준은 간단했다. 전혀 다른 두 차종(스포츠카와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을 타보는 것. 카로 규정대로라면 한 번 택한 차량을 최소 1개월간 운행해야 하지만, 기업 측에 체험 용도라는 점을 설명하고 1회에 한해 교체를 진행했다.

구독 방법은 어렵지 않았다. 카로 전용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신청하면 업체에서 운전자가 원하는 곳까지 차량을 전달해주는 시스템이다. 6일 오후 회사 근처로 배송된 박스터는 빨간빛을 강렬하게 뽐내며 주변 시선을 끌어모으고 있었다. ‘나 꽤 비싸!’라고 외치는 듯한 외관에 부담감이 밀려왔으나 자기 과실 사고 면책금 50만원의 울타리를 믿어보기로 했다. 운전석 문을 열자 지붕에서 물방울이 조금 떨어졌다. 이상협 비마이카 모빌리티 전략사업부 이사는 “탁송 전 내·외부 세차와 안전 점검을 한 흔적”이라며 “사용자는 유지·관리에 신경 쓸 필요 없이 차를 받아서 타기만 하면 된다”고 설명했다.


이상협 비마이카 이사가 포르셰 박스터를 전달하면서 차량 조작법을 설명하고 있다. 이 이사는 스포츠카를 처음 운전하는 기자를 위해 차량 전면부에도 트렁크가 있다는 사실을 여러 번 안내했다. 사진 전준범기자
이상협 비마이카 이사가 포르셰 박스터를 전달하면서 차량 조작법을 설명하고 있다. 이 이사는 스포츠카를 처음 운전하는 기자를 위해 차량 전면부에도 트렁크가 있다는 사실을 여러 번 안내했다. 사진 전준범기자
주말에는 마세라티 르반떼를 타고 부모님 댁에 방문해 상당량의 짐을 나를 수 있었다. 아내가 “우리 차면 참 좋겠다”라고 씁쓸히 말하며 짐을 내리고 있다. 사진 전준범기자
주말에는 마세라티 르반떼를 타고 부모님 댁에 방문해 상당량의 짐을 나를 수 있었다. 아내가 “우리 차면 참 좋겠다”라고 씁쓸히 말하며 짐을 내리고 있다. 사진 전준범기자

야근이 예정된 날이어서 첫 운행은 6일에서 7일로 넘어가는 새벽에 이뤄졌다. 청와대와 경복고를 지나 윤동주문학관까지 이어지는 창의문로를 귀가 코스로 정했다. 박스터는 구불구불한 부암동 언덕길에서도 직선 주행에서와 같은 무게중심을 유지했다. 바닥에 닿을 것처럼 낮은 차체 덕분이었다. 스켈레톤 위에 엎드린 윤성빈 선수가 된 것 같았다. 몰아보기 전에는 박스터가 시내 출퇴근용에 어울리지 않는 차라고 생각했는데 꼭 그렇지만도 않았다. 다음 날 출근길부터 끼어들기 성공률이 급상승했기 때문이다. 홍해가 열리는 그 경험은 그저 기분 탓이었을까.

르반떼로 교체하는 절차도 박스터를 받을 때처럼 스마트폰으로 간단히 진행됐다. 2016년 제네바 모터쇼에서 처음 공개된 마세라티의 럭셔리 SUV 르반떼는 감각적인 쿠페형 디자인과 넓은 실내 공간으로 좋은 반응을 얻은 모델이다. 르반떼의 넉넉한 트렁크 공간은 주말에 방문한 부모님 댁에서 받은 짐을 나를 때 유용하게 쓰였다. 필요에 따라 차종을 선택할 수 있는 카로 서비스의 장점이 두드러진 순간이었다.

도로 위를 달리면서 르반떼 3L V6 엔진 특유의 부드러움을 박스터의 거친 박력과 비교하는 재미가 쏠쏠했다. 뒷좌석에 설치한 카시트에 앉은 네 살배기 아들이 연신 “우리 차 좋다”고 외쳤다. 굳이 “우리 차가 아니란다”라고 정정해주지는 않았다.

짧은 기간이었으나 차량 구독의 장점은 확실히 알 수 있는 체험이었다. 매월 합리적인 비용으로, 원하는 차종을 선택해, 관리 부담 없이 탈 수 있는 특징 말이다. 107만~226만원(카로 기준)에 이르는 월 구독료가 어떻게 합리적인 비용이냐는 반론이 있을 수는 있다. 하지만 기동점검·정비·보험 등을 하나의 패키지 형태로 제공한다는 점, 이용하지 않을 땐 반납 또는 제삼자 공유를 통해 공유환급금을 챙길 수 있다는 점 등을 고려하면 기존 장기 렌트 대비 부담스러운 가격은 아니다. 카로의 경우 월 구독료 226만원을 내는 블랙 등급 회원의 공유환급금이 하루(24시간)에 8만원이다. 5일만 반납해도 40만원을 돌려받는 셈이다.

다만 평소 차를 ‘애마’라고 부르며 애지중지 관리하는 운전자에게는 공유 대신 소유가 적합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언젠가 돌려줘야 하는 차’ ‘누군가 탔고 또 누군가 타게 될 차’라는 이미지가 애착 형성에 방해물이 될 수밖에 없어서다. 차량 구독 서비스는 차 한 대를 몇 년간 타야 한다는 기존의 소유 관념을 철저히 부정하는 개념이다.

전준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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