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동작구에 사는 2년 차 직장인 김미소씨는 퇴근 후 집에서 와인을 마시며 회사에서 쌓인 업무 스트레스를 푼다. 거실 벽에 걸린 그림, 테이블 위에 놓인 와인잔과 한 다발의 꽃은 덤이다. 와인과 그림, 꽃은 전문가가 골라서 보내준 것들이다. 김씨는 집에서 누릴 수 있는 작은 호사를 위해 한 달에 10만원 남짓한 돈을 쓴다.

일정한 돈을 주고 상품이나 서비스를 사용하는 구독경제 서비스의 범위가 넓어지고 있다. 과거엔 구독경제를 생활에 편리함을 더하기 위해 생수, 면도기 같은 생활필수품을 주기적으로 받아보는 서비스로 여겼다. 하지만 최근에는 여가 생활이나 취미 활동을 돕는 제품으로 영역을 넓히고 있다.

대표적인 상품은 그림, 와인, 꽃이다. 먹고 마시고 즐기는 상품이라 한 사람의 취향을 보여줄 수 있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대신 전문 지식이 요구되는 분야이기도 하다. 예컨대 그림 전시회에 자주 가는 사람이라도 미술 전공자가 아니라면 그림에 대해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을 수 있다. 이를 반영해 전문가가 고른 제품을 배송하는 구독경제 서비스가 늘고 있다.


1│거실을 갤러리로

미술품 구독 서비스 ‘오픈갤러리’는 ‘고가의 그림은 미술관에서 보는 것’이라는 편견을 깼다. 오픈갤러리는 한 달에 최저 3만9000원을 내면 3개월에 한 번씩 그림을 빌려준다. 구매할 엄두도 내지 못하는 고가의 미술 작품을 집에서 즐길 수 있는 것. 전문 설치 기사와 큐레이터가 집으로 찾아와 그림 걸 위치를 잡아주고 그림에 대해 설명도 해준다. 마음에 드는 작품은 구매할 수도 있다.

박의규 오픈갤러리 대표는 “40명의 직원 중 큐레이터가 15명 이상”이라며 “미술품을 감상하고 싶다는 마음을 가진 일반인이 주요 소비층”이라고 말했다.

‘핀즐’도 미술품을 빌려주는 서비스를 한다. 핀즐은 큐레이터가 매달 선정한 작품을 보내준다. 오픈갤러리는 소비자가 직접 고른 그림을 빌려주는 방식을 취하는 반면 핀즐은 전문가의 취향이 반영된다는 것이 차이점이다.


2│집에서 정기적으로 맛보는 인생 酒

‘술담화’는 전통주를 집으로 배송해주는 서비스다. 한국에서 만드는 전통주는 2000 종 이상. 술담화는 매달 한 곳의 술도가를 선정해 그곳에서 생산하는 두 종류의 술을 보낸다. 전통주를 담은 박스에 술의 원료, 향, 술도가와 관련한 설명을 적은 카드도 넣는다. 어떤 안주와 함께 먹으면 좋을지 등의 내용이 담겨 있다. 말린 밤과 같은 간단한 안주를 함께 보내기도 한다.

술담화에 대한 소비자 반응은 좋은 편이다. 올해 1월부터 서비스를 시작해 8월까지 1000명이 넘는 고객을 모았다. 고객의 대부분(78%)은 20~30대다. 이재욱 술담화 대표는 “몰라서 못 마시는 전통주를 소비자에게 소개하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와인을 매달 보내주는 서비스도 있다. 2018년 6월 설립된 ‘퍼플독’은 소믈리에 등 와인 전문가들이 선별한 와인을 매달 한 차례 고객의 집으로 배송한다.


3│계절에 맞는 꽃을 집 안으로

핀란드어로 꽃을 의미하는 ‘꾸까’는 한 달에 두 번 꽃을 받아볼 수 있는 서비스다. 꾸까에 소속된 전문 플로리스트는 계절별로 가장 예쁜 꽃을 골라 고객에게 배송한다. 연인이나 가족을 위한 꽃뿐만 아니라 자신에게 꽃을 선물하는 사람을 위한 디자인도 준비돼 있다.

꾸까가 한국 최초로 꽃 구독 서비스를 내놓자 ‘꽃사가’ ‘데일로즈’ ‘어니스트플라워’ ‘두시’ 등이 비슷한 서비스를 운영 중이다.


plus point

[Interview] 박춘화 꾸까 대표
“화장품 정기배송, 꽃 구독 아이디어 줘”

박춘화 꾸까 대표는 공대를 졸업한 남성이다. 그는 대학 졸업 후 아모레퍼시픽 경영부서에서 2년 정도 일했고, 독일에 본사를 둔 스타트업 인큐베이팅 회사 로켓인터넷에서 일하면서 구독경제 서비스를 접했다. 박 대표는 이곳에서 화장품 구독 서비스인 ‘글로시박스’를 운영했다.

박 대표는 “한국 사람이 특별한 날이 아닐 때도 꽃을 늘 가까이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갖고 창업했다”고 말했다.


어떻게 꽃과 관련된 구독경제 서비스를 선보일 생각을 했나.
“화장품 정기배송 서비스를 운영하면서 꽃을 구독할 수 있는 서비스를 만들어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화장품 하면 생각나는 브랜드가 많지만, 꽃은 떠오르는 브랜드가 없었기 때문이다. ‘꽃 하면 꾸까’라는 인식을 만들고 싶다.”

한 달에 몇 송이의 꽃을 배송하나.
“계절별로 차이가 있지만 한 달 평균 2만~4만 송이의 꽃을 배달한다. 5월이 성수기고 여름은 비수기다.”

정기구독으로 거두는 매출 비중은.
“B2C(기업·소비자 간 거래) 매출의 30~40%는 정기구독에서 나온다. 나머지는 ‘어버이날’ ‘빼빼로 데이’ 등 기념일 선물이 차지한다. 기업을 대상으로 한 B2B 사업을 강화하고 있다. 현재 현대자동차와 까르띠에는 기업 복지 차원에서 승진하는 사람에게 꾸까 꽃을 선물한다. 60개 회사와 협력하고 있다.”

구독경제의 한계는 무엇인가.
“정기구독 서비스만으로는 사업을 유지하기 힘들다. 사람들은 특정 제품을 주기적으로 받으면 쉽게 질린다. 소비자는 제주삼다수를 1년 동안 구독해도 싫증을 느끼곤 한다. 이 때문에 정기구독을 하는 소비자는 일정 정도 증가한 이후 더 늘리기 어렵다. 정기구독 외에 기업을 대상으로 한 사업, 오프라인 매장을 운영하는 이유다.”

정미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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