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지혜 서울대 소비자학과 석·박사, <트렌드 코리아 2014~2020> 공저자, 한국소비자원 소비자교육 교사 연수 강사, 월간 ‘신용사회’ 트렌드 읽기 칼럼 연재 / 사진 정미하 기자
최지혜
서울대 소비자학과 석·박사, <트렌드 코리아 2014~2020> 공저자, 한국소비자원 소비자교육 교사 연수 강사, 월간 ‘신용사회’ 트렌드 읽기 칼럼 연재 / 사진 정미하 기자

“구독경제를 즐기는 이들은 대부분 밀레니얼 세대입니다. 평생 돈을 모아도 집 한 채 사기 힘들어진 시대에 태어난 이 세대는 공간·상품·서비스를 소유하는 데 신경 쓰기보다 ‘더 나은 취향을 가진 사람이 되자’고 마음먹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죠.”

해마다 한국 사회를 관통하는 시대 흐름을 정확하게 예측해 주목받는 ‘트렌드 코리아’ 시리즈의 공저자인 최지혜 서울대 소비트렌드분석센터 연구위원은 구독경제가 확산하고 있는 배경을 이렇게 설명했다. 최 연구위원은 서울대 소비자학과 석·박사 과정을 거친 뒤 김난도 서울대 소비자학과 교수가 이끄는 소비트렌드분석센터 연구위원으로 일하고 있다. 그는 2014년부터 7년 동안 ‘트렌드 코리아’를 공저했다.

11월 12일 오후 3시, 서울 강남구 양재천 인근에서 만난 최 연구위원은 기업을 대상으로 내년 소비 트렌드에 대해 강연하고 오는 길이라고 했다. 서울대 소비트렌드분석센터가 꼽는 2020년도 소비 트렌드 10가지 중 하나는 ‘스트리밍 라이프’. 스트리밍 라이프는 일정 기간 돈을 지불하고 재화와 서비스를 추천받는 구독경제와 구독경제라는 용어가 등장하기 이전, 물건을 빌려 쓰는 것을 뜻하던 렌털 서비스를 포괄한다.


소득↓·경험 욕구↑, 구독경제 활성화

구독경제가 주요 소비 트렌드의 하나로 부상한 원인은 뭘까. 최 연구위원은 밀레니얼 세대에서 답을 찾았다.

“밀레니얼 세대는 어릴 때부터 고급 경험을 많이 했기에 취향 수준이 높습니다. 그만큼 많은 경험을 하며 살고 싶어 합니다. 그런데 자신이 원하는 만큼의 경험을 채워줄 자원은 부족합니다. 그래서 소유를 포기합니다. 하지만 다양한 경험을 해보고 싶다는 양적 욕구와 더 좋은 경험을 열망하는 질적 욕구가 모두 충족되길 원하는 마음은 그대로죠. 갖고 싶은 욕망은 크지만 모두 가질 수 없어서 구독경제가 현실적인 타협점이 되고 있습니다.”

일부 경제학자는 1981~96년에 태어난 한국의 밀레니얼 세대가 부모 세대보다 가난한 삶을 살아갈 것이라고 예상한다. 예측이 맞는다면 밀레니얼 세대는 자신의 소유욕을 충족시켜줄 만큼의 소득을 확보하지 못할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소득이 만족스럽지 않다고 다양한 것을 경험하고 싶다는 욕망이 줄어드는 것은 아니다. 이 때문에 구독경제가 뜨고 있다는 것이다.

예컨대 자동차를 소유하면 세금, 주유비, 차량 보수비 등 유지 비용이 들어가고 이를 위한 시간과 노력을 별도로 투입해야 한다. 대신 자동차를 빌려 쓰면 그때그때 사용료만 내면 된다. 밀레니얼 세대가 물건을 소유하는 대신 합리적인 가격대에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는 구독경제로 눈을 돌리는 이유다. 실제로 현대자동차가 지난 1월 선보인 자동차 구독 서비스 ‘현대 셀렉션’ 이용자 중에선 밀레니얼 세대인 30대 비중이 가장 높다.

밀레니얼 세대가 사진 위주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활발하게 이용하는 것도 구독경제 서비스에 관심을 보이는 원인 중 하나로 꼽힌다. 밀레니얼 세대는 SNS를 통해 경험과 취향을 자랑한다. 이런 상황에선 값비싼 가방 하나를 소유하는 것보다 다양한 가방을 사용할 수 있는 구독경제 서비스를 이용하는 것이 효율적이다. 매일 다른 가방을 멘 일상 사진을 올릴 수 있기 때문이다.

최 연구위원은 “전 세계에서 헬리콥터를 살 수 있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되겠어요. 대신 헬리콥터나 잠수함에서 찍은 사진을 올리면 ‘나 헬리콥터 타봤어’ ‘나 잠수함 타봤어’라고 말할 수 있죠. 집에 있는 소파도 마찬가지입니다. 가구 구독 서비스를 이용해 매번 다른 소파에 앉아있는 사진을 올리면 ‘소파를 계속 바꿀 수 있는 경제력을 가진 사람’이라는 이미지를 가질 수 있습니다. 물건을 소유해야만 자랑할 수 있는 시대는 끝났습니다. 지금은 SNS에 사진을 올리기만 해도 자신의 경험을 과시할 수 있는 시대입니다”라고 말했다.

이런 밀레니얼의 생활방식을 두고 ‘겉멋만 추구한다’ ‘허세다’라는 비판도 나온다. 하지만 최 연구위원은 구독경제가 밀레니얼 세대 나름대로 철저하게 계산한 합리적인 소비 방식이라고 평가했다.

“예를 들어 주거공간을 구독하는 서비스를 이용하는 사람은 그 안에서 누릴 수 있는 서비스의 값어치를 다 따져봅니다. 주거공간을 구독하면 커피, 술은 공짜인 경우가 많아요. 그럼 생각해보는 거죠. ‘내가 한 달에 커피숍을 몇 번 가서 얼마를 쓰나’ ‘술은 어느 정도 마시나’ 등을 계산합니다. 주거공간에서 요가 수업을 듣고, 영화를 보면 오히려 이득이라는 사람이 많아요. 특히 함께 사는 사람과 등산하고, 파티하면서 맺은 관계는 값을 매길 수 없는 가치를 갖는다고 이야기합니다. 실제로 같은 곳에 살면서 만나 스타트업을 창업한 사람도 있습니다.”

궁극적으로 밀레니얼 세대는 다양한 경험을 통해 자신을 발전시키고 싶어 한다. 매달 새로운 술을 골라 배달해주는 서비스는 물론 꽃과 그림을 바꿔볼 수 있는 구독경제 서비스를 이용하는 것 역시 자신에게 맞는 취향, 지금까지 몰랐던 경험을 해보기 위해서다. 최 연구위원은 “성공보다 성장을 추구하고자 하는 마음, 어제의 나보다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마음이 구독경제를 하는 궁극적인 이유”라고 말했다.


품질·소비자 마음 잡기가 관건

앞으로 구독경제가 성장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 업계의 중론이다. 최 연구위원 역시 “옷, 전자제품, 가구를 구독해볼 수 있는 시대가 열렸습니다. 가족과 친구를 빼고 모든 것을 구독할 수 있는 시대가 열릴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다만 최 연구위원은 구독경제의 한계도 있다고 지적했다. 최 연구위원은 “한국 소비자는 새 제품을 써보고 싶다는 마음에 구독경제 서비스를 이용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사기 부담스러운 가격의 제품을 할부로 산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강한 편이죠. 이 경우 구독경제 서비스를 운영하는 회사 입장에선 제품의 품질 관리가 중요합니다. 한 번 빌려줬던 제품을 돌려받았을 때 제품 상태가 엉망이라면 회사 입장에선 유지·관리비가 과도하게 들어갈 테니까요”라고 말했다.

최 연구위원에게 ‘또 다른 문제는 없냐’고 물었다. 곰곰이 생각하던 그는 “소비자가 싫증을 빨리 느끼는 편”이라고 지적했다. 구독경제 서비스를 꾸준히 사용하는 소비자라고 하더라도 3월에는 꽃을 받아보다가, 4월에는 그림을 받아보는 등 여러 가지 구독경제 서비스를 돌아가며 사용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이 경우 구독경제 서비스를 운영하는 기업 입장에선 지속해서 매출을 거둘 수 없는 문제가 발생한다. 최 연구위원은 “소비자가 구독하는 제품이나 서비스에 만족하지 못하면 언제든 구독을 종료할 수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둬야 해요”라고 말했다.

정미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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