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DA의 성과로 독일 지멘스는 이집트에서 90억달러 규모의 발전소 설립 계약을 따냈다. 사진 지멘스
ODA의 성과로 독일 지멘스는 이집트에서 90억달러 규모의 발전소 설립 계약을 따냈다. 사진 지멘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해가 지지 않는 나라’로 불리던 대영제국(British Empire)이 몰락했다. 대영제국은 섬나라 영연방(UK)으로 전락했다. 프랑스나 스페인, 포르투갈 등 다른 유럽 국가도 사정은 비슷했다.

“어떻게 하면 구식민지 지역에 대한 영향력을 유지할 수 있을까. 정치 대신 경제적으로 종속시키면 되지 않을까?”

전 세계 공적개발원조(ODA) 총액의 과반(2018년 기준 744억유로)을 차지하는 유럽 ODA는 다소 이해타산적인 목적에서 시작됐다. 그러나 1990년대 이후에는 개발도상국에 만연한 빈곤을 퇴치하고 경제적·사회적 개발을 촉진하는 ‘인도주의’로 선회했다. 오늘날 유럽은 ‘ODA를 통해 인도주의와 자국 실익,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겠다’는 현대 개발경제학의 중심지다. 유럽연합(EU)은 ‘지속가능한 개발 목표(SDGs)’라는 대전제 아래 큰 틀에서 인도주의적 원조 정책을 시행한다. 개발도상국 지원, 빈곤 퇴치, 무역 촉진, 민주주의, 기후변화 대응 등 인류 보편적 가치를 위해 지역·주제별 9개 기금을 운용한다.

EU와는 별개로 유럽 각국도 독자적인 ODA 정책을 시행한다. 인도주의적 원조가 중심인 영국이나 프랑스 같은 국가가 있는가 하면, 개발 협력을 통한 경제적 이익에 초점을 맞춘 독일이나 네덜란드 같은 국가도 있다.


영국, 식민지 관리에서 인도주의로 선회

아프리카 에티오피아 빈곤 퇴치는 영국 인도주의 원조의 최대 성과 중 하나다. 1997년 설립된 영국 국제개발부(DFID)는 2000년 1300만달러였던 ODA 지출을 2011년 4억8800만달러로 37배나 늘렸다. 식량과 생필품, 의약품 등 직접적인 원조 외에도 ‘물고기 잡는 법’을 가르치기 위해 학교를 짓고 주민들을 교육했다. 그 결과, 2000년 44%에 달했던 에티오피아의 빈곤율은 2011년 30%까지 감소했다.

1970년대부터 본격화한 영국 ODA의 초기 목표는 구식민지 국가에 대한 영향력을 확대하고, 이를 통해 무역 수지를 개선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1997년 토니 블레어 총리가 집권하며 원조 정책의 기본 철학이 ‘빈곤 해소’로 바뀌었다. 이를 위해 개발원조의 조건으로 자국 물자 사용을 강요하는 구속성 원조(tied aid)도 금지했다. 당장 취할 수 있는 눈앞의 이익보다 인도주의 원조를 통해 획득하는 유·무형의 자산이 더 가치 있다고 본 것이다.

DFID는 대외원조 정책 수립부터 예산 관리, 사업 시행까지 일원화한 독립 부처다. ODA 정책의 독립성을 보장하기 위해 1997년 장관급 부처로 설립됐고, 매년 영국 국민총소득(GNI)의 0.7%에 해당하는 180억달러 규모의 예산안을 확정한 뒤 직접 집행한다. DFID의 모든 개발원조 사업은 ‘경제개발을 통해 수여국에 돈 되는 사업을 만들어줄 수 있는가(Value for money)’를 잣대로 평가된다. 반면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나 다름없는 직접적인 예산 지원은 최대한 지양한다.

오늘날 영국은 양적·질적 측면 모두에서 ODA의 모범 사례로 자리 잡았다. DFID에 따르면, 영국은 2010년부터 2015년까지 ODA를 통해 전 세계에서 6890만 명에게 재정을 지원하고, 아동 1100만 명에게 기초교육을 제공했다.

그러나 최근 영국의 집권 보수당인 토리당을 중심으로 ‘ODA는 인도주의보다 국익 창출에 중점을 둬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브렉시트(Brexit·영국의 EU 탈퇴)이후의 대외무역 불확실성 문제에 대비해, 개발원조의 역할을 영국 기업의 해외 진출 마중물로 되돌려야 한다는 것이다.


독일, ‘기술협력’ 앞세워 해외 진출과 경제개발을 동시에

수혜국의 사회·경제적 발전을 촉진하면서 자국의 경제적 실익도 도모하는 ODA 전략을 펼쳐온 대표적인 국가는 독일이다. 2016년 독일의 에너지 기업 지멘스(Siemens)는 미국의 제너럴 일렉트릭(GE)을 제치고 이집트 정부로부터 90억달러 규모의 발전소 설립 계약을 따냈고, 올해도 22억달러 규모의 이집트 풍력발전소 설립 사업을 수주했다. 당시 이집트 통상산업부 장관은 “이집트 산업 부흥을 위해서는 이집트에서 오랜 노하우를 축적한 독일의 첨단기술을 활용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수십 년 동안 이집트의 산업화를 물심양면으로 지원해 온 독일 ODA를 언급한 것이다.

독일의 대(對)이집트 ODA 전략은 ‘교육의 독일화’와 ‘기술의 독일화’로 요약된다. 독일은 이집트에 직접 학교를 세우거나, 현지 대학과 연계해 이집트인 수십만 명이 독일어와 독일 문화를 배우도록 했다. 이집트의 산업 인프라를 확충하면서 독일 기술을 적극적으로 전수했고, 이 과정에서 독일 민간기업도 활발하게 협력하도록 했다. 마침내 이집트가 연평균 경제성장률 5.6%를 자랑하는 아프리카의 신흥산업국으로 떠오르자, 그 과실은 독일 기업에 돌아갔다. 2017년 기준 이집트에 투자된 독일 자금은 17억7000만달러에 이르고, 양국 간 무역액은 64억달러로 추산된다.

독일은 매년 약 240억달러를 ODA로 지출하는 세계 2위 공여국이다. 외교부와 경제부로부터 독립된 연방 경제협력개발부(BMZ)가 개발원조를 전담하고, 그 아래엔 기술협력에 특화된 국제협력 유한책임회사(GIZ)가 국가별 맞춤 사업을 진행하는 구조다. ‘독일에 의한 원조’가 부각되기 힘든 다자 원조보다 독일의 이해관계를 반영하기 용이한 일대일 양자 원조에 주력한다. 시리아나 아프가니스탄과 같은 지역에서는 인도주의 ODA를 중국과 인도, 남아프리카공화국과 같은 신흥공업국에서는 실리주의 ODA를 구사한다.


plus point

[Interview] 애날리사 프리존 ODI 선임연구원
“사업 경제성 평가하는 컨트롤타워가 핵심”

최상현기자

애날리사 프리존(Annalisa Prizzon) 이탈리아 파비아대 공공재정학 박사, 세계은행 컨설턴트
애날리사 프리존(Annalisa Prizzon)
이탈리아 파비아대 공공재정학 박사, 세계은행 컨설턴트

“공적개발원조(ODA)의 효율성을 높이려면 수많은 개별 원조 사업을 아울러 시너지를 낼 수 있는 장관급 컨트롤타워가 필요하다. 전반적인 정책 목표를 설정한 뒤 이에 따라 각 원조 기관을 조율해야 하고, 사업이 진행된 이후에는 그 경제성을 평가해야 한다.”

애날리사 프리존(Annalisa Prizzon) 해외개발연구소(ODI) 선임연구원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와 세계은행(WB)을 거친 개발경제학 전문가다. ODI는 전 세계 개발경제학을 선도하는 싱크탱크로 영국 런던에 본부를 두고 있다.


유럽 국가들이 ODA에 많은 예산을 지원하며 적극적으로 나서는 동기는.
“크게 명시적 동기와 암묵적 동기로 나뉜다. ‘구 식민지 국가의 빈곤 구제’나 ‘자연재해에 따른 국제적 연대’와 같은 명시적 동기는 인도주의적 원조를 이끌어낸다. ‘개발 협력을 통해 자국 기업의 신시장 진출을 용이하게 한다’라거나 ‘새로운 무역 기회를 확보한다’ 등의 경제적인 목적은 암묵적 동기다. 대외원조의 배경에는 두 가지 동기가 결합해 있다.”

그렇다면 원조 정책에서 자국 실익과 인도주의를 어떻게 조화해야 하나.
“자금 규모가 제한된 무상원조는 최빈국에 집중해 인도주의적 ODA를 실현하고, 중진국에는 유상차관을 집행해 자국 실익을 챙길 수 있다.”

구체적으로, 어떤 개발 협력 사업이 도덕적이면서 경제적인가.
“세 가지를 고려해야 한다. 수혜국의 니즈(수요)와 우선순위에 따라 원조 정책을 수립해야 하고, 수혜국이 자립해서 운영할 수 있는 개발 협력 사업을 벌여야 한다. 다른 공여국과 개발 협력 영역이 겹치지 않도록 전체적인 로드맵을 그려야 한다.”

최상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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