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스 스펜스 심리학자, 영국 옥스퍼드대 통합감각연구소 소장. 2008년 이그노벨상 수상 / 사진 옥스퍼드대
찰스 스펜스
심리학자, 영국 옥스퍼드대 통합감각연구소 소장. 2008년 이그노벨상 수상 / 사진 옥스퍼드대

인기 먹방(먹는 방송) 유튜버 ‘푸메’가 7월 9일에 올린 트러플 짜파게티 큰사발면 먹방의 조회 수는 1014만 회(11월 27일 기준)였다. 매일 7만1408명이 142일 동안 푸메의 짜파게티 먹는 모습을 구경한 셈이다. 11분 42초짜리 영상에서 푸메는 식사 전후로 짧은 멘트를 던지기는 하나, 대부분의 시간을 먹는 데 할애한다. 이 영상은 왜 인기가 있을까. 짜파게티에 트러플(송로버섯)을 넣은 이색 식품이어서? 가녀린 여성이 사발면 3개와 달걀프라이 4개를 한꺼번에 먹어서?

찰스 스펜스 영국 옥스퍼드대 교수라면 영상의 인기 비결을 ‘소리’에서 찾을 것 같다. 옥스퍼드대 통합감각연구소 소장인 스펜스 교수는 “음식은 혀가 아닌 뇌가 맛보는 것”이라고 주장하는 심리학자다. 그는 감자칩을 씹을 때 귀에 ‘바삭’ 하는 소리를 들려주면 뇌가 감자칩을 15% 더 맛있게 느낀다는 연구 결과로 2008년 이그노벨상(괴짜 과학자의 노벨상)을 받았다. 청각이 맛에 미치는 영향이 미각만큼 크다는 사실을 데이터로 증명한 공로였다.

푸메는 음식 소리를 중시하는 ‘ASMR(자율감각 쾌락반응) 먹방’ 콘셉트를 유지한다. 짜장 비비는 소리, 달걀 튀기는 소리, 면발 흡입하는 소리, 총각김치 깨무는 소리가 멘트를 대신해 영상 곳곳을 채운다. 이 달콤한 소리에 취한 시청자는 11분 42초 동안 넋을 잃고 먹방을 지켜보게 된다. 스펜스 교수 말대로 청각 효과가 시청자의 뇌를 자극해 몰입도를 15% 끌어올렸을지 모를 일이다.

‘이코노미조선’은 괴식 문화를 취재하면서 이 독특한 심리학자를 가장 먼저 떠올렸다. 전 세계 스타 셰프와 요식 업계가 사랑하는 연구 파트너 스펜스 교수는 젊은 소비자와 식품 업계를 강타한 괴식 트렌드를 어떻게 바라볼까. 그와 이메일을 주고받았다.


찰스 스펜스 교수가 지난해 출간한 ‘왜 맛있을까’. 사진 알라딘
찰스 스펜스 교수가 지난해 출간한 ‘왜 맛있을까’. 사진 알라딘

한국에서 괴식 문화가 유행한다.
“사람은 오랫동안 새로운 요리를 찾아다녔다. 낯선 재료를 사용하거나 새 요리법을 개발하는 식으로 말이다. 최근에 와서는 음식 섭취를 하나의 경험으로 인식하고, 그 경험을 다른 이와 공유해 관심을 유도하는 사람이 늘었다. 공유는 주로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이뤄진다. 식당 주방장의 경우 플레이팅(음식을 먹음직스럽게 보이도록 그릇이나 접시 따위에 담는 것)을 화려하게 하거나 특이한 접시를 꺼낸다. 손님은 이를 스마트폰으로 찍어 SNS에 올린다. 점점 더 튀고 자극적인 콘텐츠를 원하는 사회 분위기가 괴식 문화 확산에도 영향을 줬다고 본다. 사람은 평범한 토마토 수프에 관심을 주지 않지만, 그 수프에 콜라를 부으면 쳐다본다.”

괴식 트렌드가 해외에서도 나타나는지.
“그렇다. 크루아상과 도넛을 합친 ‘크로넛’, 머핀과 베이글을 조합한 ‘머프글’ 등이 최근 서양권에서 탄생한 이색 식품이다. 영국에서는 맛이 특이한 감자칩을 개발하기 위해 제조사들이 아이디어 공모전에 나서기도 했다. 고급 레스토랑이 괴식 개발에 뛰어든 사례도 있다. 미슐랭 3스타 팻덕(The Fat Duck)의 헤스턴 블루멘털 셰프는 수년간 베이컨과 달걀 아이스크림, 달팽이죽과 같은 이상한 음식 실험을 해왔다. 무조건 이상하게만 볼 일은 아니다. 최근 계산적인 미식가(computational gastronomy)들이 등장하면서 독특하면서도 제법 잘 어울리는 재료 조합에 성공하는 사례가 늘고 있어서다. 화이트 초콜릿과 캐비어, 열대과일과 굴의 조합이 대표적이다.”

괴상한 음식에 반응하는 인간 심리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우리는 어울리지 않는 재료 간 조합에 흥미를 느낄 때도 있고, 반대로 거부감을 느낄 때도 있다. 심리학 관점에서 보면, 음식을 접한 상황적·배경적 맥락이 중요하다. 정체가 확인되지 않은 음식을 먹을 때, 대개는 부정적인 감각과 경험이 먼저 작용한다. 그런데 똑같은 음식을 멋진 레스토랑에서 만난다면? 긍정적인 감각이 뇌를 지배해 음식을 즐기게 될 확률이 높다.”

스펜스 교수는 자신의 책 ‘왜 맛있을까’에 이와 관련한 많은 연구 사례가 담겨 있다고 했다. 예컨대 실험 참가자를 뇌 스캐너에 들여보낸 뒤 두 가지 콜라 가운데 하나를 주기적으로 마시게 하는 연구가 있다. 이때 피실험자가 어떤 브랜드의 콜라를 마셨다고 생각하는지에 따라 뇌의 활성화 패턴이 달라졌다. 특정 브랜드라는 배경이 풍미 지각에 영향을 미친 것이다. 또 다른 실험에서는 두 그룹의 참가자에게 쇠고기 육포와 햄을 주면서 한쪽에는 공장에서 사육한 고기라 말하고, 다른 쪽에는 유기농 방식으로 기른 고기라고 알렸다. 공장 사육 고기를 먹었다고 생각한 부류의 맛 평가가 더 박했다.

연구의 시사점을 괴식 문화에 적용해보자. 많은 경우 대중에게 괴식을 선보이는 주체는 인플루언서(인터넷에서 영향력이 큰 사람)와 식품 업체다. 스펜스 교수가 강조하는 상황적·배경적 맥락에서 보면, 소비자는 공신력 있는 사람과 기업으로부터 낯선 음식을 소개받는 셈이다. 이는 멋진 레스토랑에서 괴식을 만났을 때처럼 경계보다는 도전 욕구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

괴식을 직접 먹지 않으면서 다른 사람의 섭취 장면을 멍하니 시청하는 현상은 어떻게 봐야 하나.
“자연스러운 것이다. 인간이 음식을 볼 때 뇌는 그것을 먹는 행위를 상상한다. 그리고 동시에 과거 해당 음식을 먹었던 경험과 연관 있는 어떤 이미지를 떠올린다. 만약 매운 음식이라면, 뇌 속에 있는 매운맛 관련 이미지가 떠오르는 식이다. 이런 과정을 통해 사람은 실제 음식을 먹지 않고도 충분히 ‘엔도르핀’을 분비할 수 있다. 어떤 풍미에 처음 노출된 경험은 다음 경험에 영향을 준다. 음식 이름이나 생김새가 어떻든지 간에 그 안에는 반드시 기대감을 불러일으키는 요소가 숨어 있기 마련이다. 이런 기대감은 인간의 판단과 지각에 영향을 미친다.”

듣고 보니 괴식 먹방이 인기를 끄는 이유를 알 것 같다.
“나는 한국에서 시작된 먹방에 관심이 많다. 책(‘왜 맛있을까’)에서 다루기도 했다. 먹방은 ‘가상의 식사 동반자’다. 시청자는 스크린 속 진행자와 함께 식사한다고 생각하면서 홀로 밥을 먹을 수 있다. 과거보다 더 많은 사람이 혼자 살고 있다는 점을 고려할 때 먹방 트렌드는 더 거세질 수밖에 없다. 문제는 먹방을 보면서 혼자 밥 먹는 행위가 나쁜 식습관을 형성할 수 있다는 점이다.”

스펜스 교수는 TV 등의 영상 매체를 보면서 식사하면, 음식을 평소보다 15%가량 더 먹는다는 연구 결과를 소개하기도 했다. 그는 “보통 음식과 관련된 감각 단서를 많이 인지할수록 적게 먹는 경향이 있다”며 “TV·모바일 등의 영상 매체 때문에 주의가 흩어지면 음식 자극에 집중하지 못하고, 배가 부르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 채 과식할 위험이 있다”고 말했다.

음식을 사랑하는 심리학자로서 괴식 문화를 바라보는 올바른 시선에 대해 말해달라.
“산낙지를 생각해보자. 움직이는 음식을 먹는 행위는 전 세계 누구나 꺼리는 일이다. 목에 걸려 질식할 수 있다는 두려움이 클 테니 말이다. 그런데 한국 사람은 산낙지를 즐긴다. 또 한국인이 아니어도 산낙지 먹기에 도전해, 즐기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 이런 사람은 산낙지를 더는 괴식으로 여기지 않는다. 다른 음식도 다 마찬가지 아니겠나?”

전준범 기자, 김두원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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