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양식품 원주공장에서 생산된 까르보 불닭볶음면이 컨베이어 벨트를 따라 이동하고 있다. 사진 전준범 기자
삼양식품 원주공장에서 생산된 까르보 불닭볶음면이 컨베이어 벨트를 따라 이동하고 있다. 사진 전준범 기자

‘덜컹덜컹, 슈욱, 쾅…’

두꺼운 철제문을 열고 내부로 들어가자 컨베이어 벨트 돌아가는 굉음이 고막을 찔렀다. 문 앞의 라인뿐 아니라 저 멀리 보이는 벨트도 온갖 쇳소리를 내뿜으며 쉼 없이 달리고 있었다. 공장 내부 전체가 바깥의 한기를 잊은 채 뜨겁게 달아오른 상태였다. 신문사 윤전기처럼 생긴 기계가 구불구불한 면발 덩어리를 큼지막하게 뽑아내면, 다음 단계의 로봇이 면을 일 인분 크기로 자르고 용기에 넣는 일을 반복했다. 라인 곳곳에 배치된 직원들은 끊임없이 밀려오는 용기 상태를 점검하느라 정신없었다. 면과 수프를 품은 용기에는 ‘까르보 불닭볶음면’이라고 적힌 분홍색 뚜껑이 붙었다. 비닐 포장까지 마치자 편의점에서 보던 익숙한 자태가 드러났다. 큰 로봇손이 완성된 제품을 한 번에 8개씩 집어 갈색 상자에 넣었다.

11월 21일 오전, 성공한 ‘괴식’의 선두주자 ‘불닭볶음면’ 시리즈의 생산 과정을 보기 위해 강원도 원주시 우산공단에 있는 삼양식품 원주공장을 찾았다. 겨울을 앞둔 공장 외부 분위기는 고요했다. 1200여 명이 일하는 13만867㎡(약 4만 평) 규모의 시설인데도 건물 밖으로 돌아다니는 사람을 만나긴 어려웠다. “안쪽은 매우 분주할 겁니다.” 안내를 맡은 박성관 삼양식품 연구소장이 웃으며 말했다. 박 소장 말대로 생산 라인에 들어가자 전혀 다른 세상이 펼쳐졌다. “원주공장의 라면 라인이 총 15개입니다. 현재 거의 모든 라인을 가동 중이에요. 불닭볶음면 덕분이죠.” 박 소장이 소음에 지지 않으려고 외치다시피 설명했다. 얼굴은 여전히 웃고 있었다.

불닭볶음면은 2012년 4월 출시됐다. 지나치게 맵다는 인식 때문에 초기 반응은 미지근했다. 그러나 이 제품 특유의 중독성 강한 매운맛이 입소문을 타면서 소비자가 몰리기 시작했다. 인기와 함께 매출도 올랐다. 출시 초반 7억원 수준이던 불닭볶음면의 월 매출액(국내 기준)은 1년 만에 약 30억원으로 4배 이상 뛰었다. 요즘은 80억원대를 기록 중이다.

매출이 급격히 늘어난 건 2015년 이후부터다. ‘불닭볶음면 도전(fire noodle challenge)’ 영상을 유튜브에 올리는 것이 세계적으로 유행을 탄 덕분이었다. 2015년 661억원이던 불닭 브랜드(라면·스낵·소스 등)의 글로벌 매출액은 2016년 1418억원으로 2배 이상 급증했다. 2018년 매출액은 2825억원이다. 75억원이던 2012년과 비교하면 6년 새 38배가량 증가한 것이다. 특히 2016년까지는 국내 매출액(757억원)이 해외 매출액(661억원)을 앞섰으나 2017년부터 해외(1796억원)가 국내(764억원)를 넘어섰다. 현재 불닭볶음면은 76개국에 수출된다. 중국·말레이시아·태국·베트남 등 아시아 지역 국가의 반응이 가장 좋다. 삼양식품 해외 매출의 80% 이상이 불닭 브랜드에서 발생한다.

불닭볶음면의 뜨거운 인기는 이날 공장에 견학 온 초등학생들 눈빛에서도 읽을 수 있었다. 학생들은 생산 라인 옆 복도 유리창에 다닥다닥 붙어 창 너머 컨베이어 벨트를 바라보며 열띤 토론을 벌였다. 누군가 “저건 핵불닭 볶음면 아니냐?”라고 외치면 다른 누군가 “핑크는 까르보야!”라고 받아치는 식이었다. 인솔자가 기념품으로 불닭볶음면을 나눠주자 지식 대결을 벌이던 모든 학생이 함박웃음을 지었다. 강원도 춘천에서 왔다는 한 남학생은 “유튜브에서 불닭볶음면 먹방(먹는 방송)을 자주 봤다”며 “집에 가서 친구와 함께 끓여 먹을 것”이라고 했다.

생산 공장을 빠져나와 식품연구소가 있는 연구 관리동을 향해 걸었다. 관리동 뒤편 넓은 공터에 일렬로 늘어선 컨테이너가 눈에 띄었다. 몇몇 작업자와 지게차가 라면 상자를 싣고 있었다. 박 소장은 “수출길에 나설 채비를 하는 것”이라며 “40피트 컨테이너 하나에 라면 박스 2050개가 들어간다”고 설명했다. 삼양식품은 수출 물량 전부를 원주공장과 익산공장 두 곳에서 생산한다. 불닭 브랜드의 해외 수요 급증 덕에 2017년 1억달러, 2018년 2억달러 수출 달성에 성공하고 식품 업계 최초로 2년 연속 ‘수출의 탑’을 수상했다. 삼양식품 관계자는 “올해 수출은 지난해보다 20% 이상 성장할 것”이라고 했다.


종일 라면 냄새 나는 연구소

관리동에 도착해 식품연구소가 있는 2층으로 올라갔다. 2층 복도 전체에 퍼진 라면 국물 냄새가 허기진 후각을 자극했다. 범인은 현재 개발 중인 라면 신제품을 시식하는 연구소 직원들. 하얀 가운을 입은 남녀 연구원 5~6명이 접시와 젓가락을 들고 면발을 흡입 중이었다. “하루에도 몇 번씩 시식을 반복하고 토론합니다. 이게 저희 일상이에요.” 시식실에서 만난 원주연 스프·소스·냉동개발팀장이 말했다. 원 팀장은 “신입 연구원이 불닭볶음면을 시식하면 처음에는 매워서 발을 동동 구르고 땀을 흘리는데, 시간이 조금만 지나면 맛을 음미하고 즐기게 된다”며 “이런 게 불닭볶음면의 매력이 아닐까”라고 했다.

11종에 이르는 불닭볶음면 시리즈도 숱한 시식의 반복이 만든 결과물이다. 삼양식품은 2012년 오리지널 불닭볶음면을 시작으로 치즈, 커리, 마라, 까르보, 짜장, 미트 스파게티, 쫄볶이, 라이트 등으로 라인업을 늘렸다. 불닭오징어·불닭떢볶이 등 간편식과 불닭소스까지 합치면 불닭 관련 브랜드는 24가지에 이른다. 폭발적인 해외 반응과 상품 다각화 등에 힘입어 3000억원을 밑돌던 삼양식품의 2015년 매출액은 지난해 4693억원으로 증가했다. 같은 기간 영업이익은 71억원에서 551억원으로 8배 가까이 불어났다. 올해 매출액은 5000억원을 돌파할 전망이다.

삼양식품은 동남아 지역에 현지 생산 공장 건설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매년 5억 개 이상 팔리는 스테디셀러 불닭 브랜드의 위상을 더욱 공고히 하기 위해서다. 삼양식품 관계자는 “불닭볶음면에 대한 평가가 처음에는 엇갈렸지만, 지금은 ‘한국식 매운맛’이라는 카테고리를 선점한 K푸드의 리더로 인정받고 있다”고 말했다.

원주(강원)=전준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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