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대체육 제조기업 ‘비욘드미트’의 제품.
미국 대체육 제조기업 ‘비욘드미트’의 제품.

“나는 음식의 미래를 맛보았다.”

2013년 자신의 블로그에 가짜 닭고기로 만든 타코를 먹은 경험을 소개한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 빌 게이츠는 “내가 경험한 것은 고기 대체품 그 이상”이라며 이같이 썼다. 자신이 잘 속는 편이 아닌데도 타코 속 닭고기가 진짜인지 가짜인지 구별할 수 없었다고 했다. 그가 먹은 가짜 닭고기는 미국의 ‘비욘드미트’가 만든 식물성 고기(plant based meat)였다. 빌 게이츠는 비욘드미트뿐만 아니라 식물성 고기 제조 스타트업인 ‘임파서블푸즈’, 동물 세포를 이용해 만드는 배양육(lab grown meat) 제조 스타트업 ‘멤피스미트’ 등에 투자했다. ‘가짜 고기’ 대체육(alternative meat) 업계의 큰손으로 떠오른 것이다.

가짜 고기 맛에 빠진 거물은 빌 게이츠뿐만이 아니다. 구글 공동창립자 세르게이 브린과 할리우드 스타 리어나도 디캐프리오, 패스트푸드의 대명사 맥도널드와 미국 최대 축산업체 타이슨푸드 출신 경영인들까지 비욘드미트에 투자했다.

비욘드미트는 2009년 미국 실리콘밸리에 설립돼, 2013년 콩·버섯·호박 등에서 추출한 식물 단백질로 만든 대체육을 처음 선보였다. 올해 5월 뉴욕증시에 상장한 당일 주가가 65달러로 공모가(25달러)보다 163% 뛰었다. 상장 당일 주가가 2.6배 이상 치솟은 것은 2000년 ‘닷컴 버블’ 이후 처음이었다. 비욘드미트 주가는 7월 말 234달러로 정점을 찍은 뒤 하락세를 보였지만, 여전히 공모가의 3배 이상이다. 시가총액은 49억달러 수준이다.

비욘드미트의 경쟁사로 꼽히는 임파서블푸즈는 2016년 식물성 햄버거 패티로 만든 ‘임파서블버거’를 선보이며 주목받았다. 임파서블버거는 한입 베어 물면 육즙이 뚝뚝 떨어져 ‘피 흘리는 채식 버거’로 불리기도 했다. 임파서블푸즈는 올해 초 세계 최대 가전 박람회인 CES 2019에서 ‘임파서블버거 2.0’을 선보였는데, 정보통신기술(ICT) 업체의 주 무대인 CES에 식품 제조업체가 참가한 것은 최초였다.

임파서블푸즈의 투자자로 빌 게이츠를 비롯해 코슬라벤처스, 알파벳GV, 테마섹 등 유명 벤처캐피털, 팝 가수 케이트 페리와 힙합 가수 제이 지까지 이름을 올리고 있다.

임파서블푸즈가 유치한 투자금은 현재까지 모두 7억5000만달러, 기업가치는 20억달러로 평가된다.

가짜 고기를 채식주의자의 전유물이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비욘드미트와 임파서블푸즈는 미국 현지에서 KFC, 델타코, 버거킹, 던킨 등 유명 패스트푸드 전문점과 손잡고 식물성 고기로 만든 치킨, 타코, 햄버거, 샌드위치 등을 선보였다. 비욘드미트와 임파서블푸즈 입장에서는 패스트푸드 전문점의 판로를 활용해 식물성 고기에 대한 소비자들의 진입 장벽을 낮출 수 있었고, 패스트푸드 전문점은 건강한 이미지의 식물성 고기를 제공하면서 ‘정크 푸드’ 꼬리표를 뗄 수 있는 윈윈 전략이었다.


식품 대기업도 ‘눈독’

실리콘밸리발(發) 가짜 고기 열풍에 전통적 식품 공룡들도 바짝 긴장했다. 블룸버그인텔리전스는 비욘드미트의 성공이 대형 식품업체의 대체육 연구·개발 및 투자를 압박하고 있다고 분석하기도 했다. 대체육 시장에 뛰어든 대형 식품업체도 늘고 있다. 미국 최대 축산업체 타이슨푸드와 다국적 식품업체인 네슬레 등은 대체육 연구·개발과 투자에 힘을 쏟고 있다. 미국 대형 식품업체인 켈로그는 검은콩을 주원료로 하는 대체육 브랜드 ‘모닝스타팜즈’를 통해 비건 버거, 치킨너겟, 버팔로윙, 소시지 패티 등 가공식품을 선보였다. 미국 식품업체뿐만 아니라 캐나다 육가공업체 메이플리프푸드, 유럽계 자체브랜드(PB) 식품점 알디 등이 대체육 사업을 미래 먹거리로 키우고 있다.

가짜 고기 시장은 이제 틈새시장을 넘어 스타트업과 대기업이 경쟁하는 식품업계 각축장이 된 것이다. 시장조사기관 유로모니터 조사 결과, 2010년 12억달러 규모였던 전 세계 대체육 시장은 2018년 18억달러를 돌파했고, 2024년까지 연평균 6.4%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영국 바클레이스는 2029년 대체육 시장 규모가 1400억달러에 이를 것으로 내다봤다.

대체육과 함께 식물성 대체식품이 대거 개발되면서 유제품이나 달걀까지 먹지 않는 완전 채식도 대체식품만으로 가능한 수준이 됐다. 미국 식물성 식품 제조 스타트업 ‘햄튼크릭푸즈’는 약 10여 가지 식물에서 추출한 단백질로 만든 인공 달걀과 인공 달걀로 만든 마요네즈를 비롯해 40종이 넘는 식물성 제품을 선보였다. 한국 푸드테크 스타트업인 ‘더플랜잇’ 역시 달걀이 아닌 콩으로 만든 마요네즈를 개발했다.


새로운 시대의 식습관

20년 전 미국의 채식주의자는 8만 명 수준이었지만 현재 650만 명으로 늘어난 것으로 조사됐다. 채식주의자들이 대체육 시장 성장에 기여한 것은 분명하지만 전부는 아니다. 건강에 대한 관심이 많은 밀레니얼과 Z세대의 등장이 시장 성장의 원동력이 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들은 비만을 피하기 위해 육류를 줄이고, 사육과 도축 과정에서 동물이 먹는 사료나 동물에게 주사하는 호르몬제 등에 의구심을 품는다. 나아가 살균된 연구실에서 만들어진 배양육을 진짜 고기보다 ‘깨끗한 음식’으로 받아들이는 경향까지 있다는 것이다.

세포 농업, 분자 엔지니어링 등 푸드테크 발전으로 가짜 고기 맛이 향상된 점도 대체육 시장 확대 요인으로 꼽힌다. 대체육은 과거에 씹는 맛이나 육즙 등이 진짜 고기에 미치지 못해 소비자의 외면을 받았다. 하지만 미국 경제지 ‘포천’이 멤피스미트의 배양육으로 만든 미트볼로 실험한 결과, 이를 맛본 사람은 배양육이라는 사실을 전혀 알아차리지 못했고 ‘강렬한 고기 맛’을 느꼈다고 한다. 임파서블푸즈 창업자인 패트릭 브라운도 “채식주의자를 위한 음식이 아닌 육식을 즐기는 사람들이 먹고 만족할 수 있는 음식”이라고 강조했다.

국내에서는 대기업 식품·유통업체를 중심으로 대체육 시장이 확대되고 있다. ‘동원F&B’는 국내 독점 공급계약을 맺고 비욘드미트 제품을 판매하고 있고, ‘롯데푸드’는 대체육 브랜드 ‘엔네이처 제로미트’를 통해 2가지 닭고기 대체육 제품을 선보였다. ‘CU’와 ‘세븐일레븐’ 등 편의점은 100% 식물성 재료로 만든 버거, 김밥, 도시락 등 간편식을 내놨다.

김동그라미 코트라 뉴욕 무역관 연구원은 “대체육 시장은 미국 식품 시장의 니치 마켓에서 메인스트림이 되었으며 PB 상품을 중심으로 가격 경쟁이 치열해질 것으로 전망된다”며 “배양육의 경우 다양한 시장 진입장벽이 존재하는데 첫 번째 요인은 높은 가격이며, 두 번째는 배양한 고기에 대한 소비자 인식이다”라고 했다. 이어 “한국 수출기업도 채식 및 대체육 열풍에 맞춰 제품 개발 및 홍보 전략을 수립할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임수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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