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3일 서울 등촌동에 있는 ‘강서구 치매안심센터’ 교육장. 왼쪽부터 운동치료 프로그램에 참여한 정상군 노인들이 운동처방사의 구령에 맞춰 다리 올리기를 하고 있다. 음악치료 강사가 키보드 반주를 하자 치매군 환자들이 소고를 두드리며 합창하기 시작했다. 사진 전준범 기자
12월 3일 서울 등촌동에 있는 ‘강서구 치매안심센터’ 교육장. 왼쪽부터 운동치료 프로그램에 참여한 정상군 노인들이 운동처방사의 구령에 맞춰 다리 올리기를 하고 있다. 음악치료 강사가 키보드 반주를 하자 치매군 환자들이 소고를 두드리며 합창하기 시작했다. 사진 전준범 기자

“좋아해. 좋아해. 당신을 좋아해. 저 하늘에 태양이 돌고 있는 한 당신을 좋아해.”

12월 3일 오후 서울 강서구 등촌동에 있는 ‘강서구 치매안심센터’ 교육장. 손녀뻘 강사가 통기타를 연주하며 패티 김의 ‘그대 없이는 못 살아’를 선창하자 수업에 참여한 20명의 얼굴이 일제히 밝아졌다. 익숙한 멜로디에 흥이 오른 그들은 손뼉을 치며 강사의 노랫가락을 부지런히 쫓아갔다. 1절을 마친 강사가 연주를 잠시 멈췄다. “오늘은 첫 시간이니까 각자 자기소개부터 할게요. 노래 가사에 어르신들 이름을 넣어서 부를 거예요. ‘저 하늘에 태양이 돌고 있는 한 ‘김철수(가명)’를 좋아해’ 이런 식으로. 다들 아시겠죠?”

다시 연주를 시작한 강사는 같은 구절을 스무 번 반복해 불렀다. 모든 참여자의 이름이 한 번씩 언급됐다. 마지막에 한 여성이 벌떡 일어나 “선생님도 좋아해!”라고 외쳤다. 교육장이 순식간에 웃음바다로 변했다. 기분 좋아진 강사가 참여자들에게 소고(小鼓·손잡이가 달린 작은 북)를 나눠준 뒤 키보드로 가 신나는 멜로디를 연주하기 시작했다. 오승근의 ‘내 나이가 어때서’였다. 소고를 두드리며 ‘사랑하기 딱 좋은 나이’라고 합창하는 노인들 표정이 어린아이처럼 해맑았다.

이들 모두는 경증 치매를 앓고 있다. 강서구 치매안심센터는 평일 오전 9시부터 오후 4시 20분까지 인지 강화에 도움 되는 각종 치료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다. 이날 본 음악치료를 비롯해 미술치료, 운동치료, 작업치료 등을 제공한다. 센터에서 만난 강선옥 총괄팀장은 “비(非)약물 치료를 통해 환자는 남아 있는 인지 기능을 강화하고 사회 활동에 대한 자신감도 얻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50분 수업이 끝나고 교육장 밖으로 나왔다. 로비는 어느새 북새통을 이루고 있었다. 교육 프로그램을 듣거나 상담하러 온 사람들이었다. 2018년 기준 강서구의 65세 이상 노인 인구는 약 8만 명이다. 서울의 25개 자치구 가운데 송파구 다음으로 많다. 강서구 센터를 포함한 전국 231개(올해 9월 기준) 치매안심센터는 치매 환자뿐 아니라 경도인지장애(치매는 아니지만 기능이 저하된 상태)군, 정상군, 환자 가족 등을 위한 여러 가지 프로그램을 마련해두고 있다. 정부는 연말까지 치매안심센터를 256개로 늘릴 방침이다.

운동 수업에 참여하기 위해 방문했다는 60대 강서구민 박모씨는 “아버지가 생전에 중증 치매를 앓아 온 가족이 고생했다”며 “아버지의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 예방 노력을 철저히 하고 있다”고 했다.

인지 저하 선별검진을 받는 어머니와 동행한 이모씨는 “만 60세 이상 구민 누구나 무료 검사를 받을 수 있다길래 시간을 내 (어머니와) 함께 왔다”고 말했다. 선별검진 결과 인지 저하로 분류된 사람은 신경심리평가와 임상평가 등을 통해 자신의 치매 여부를 확인한다. 만약 치매 진단이 나오면 해당 치매안심센터 수탁 병원에서 뇌영상 검사, 혈액 검사 등 원인 확인 절차에 돌입해야 한다.

쉬는 시간이 끝나고 이어진 교육은 정상군을 대상으로 한 운동예방치료. 노인 10여 명이 푹신한 재질의 숫자판 위에서 운동처방사의 구령에 맞춰 발을 구르기 시작했다. 처방사가 “5!”를 외치면 숫자판의 5를 밟으면서 뛰다가 “3!”을 외치면 3 위로 이동하는 식이었다. 방법은 단순하지만 사람들 이마에는 금세 땀방울이 맺혔다. 다리 올리기, 줄넘기, 윗몸 일으키기 등이 쉼 없이 이어졌다. 수업을 진행한 문창보 운동처방사는 “심장 박동이 평소보다 빨라지는 운동을 규칙적으로 해야 치매 예방에 효과적이다”라고 했다.

같은 시각, 센터 내 진료실에서는 정지향 강서구 치매안심센터장(이대목동병원 신경과 전문의)이 상담을 이어 가고 있었다. “할머니, 작년에는 인지 활동 점수가 상위권이었는데 지금은 하위권이에요. 그런데 너무 걱정은 마세요. 다시 열심히 하면 돼요. 학창 시절에도 시험 잘 볼 때 있고 망칠 때 있었잖아요. 그거랑 비슷한 거니까 희망 잃지 마시고. 응?” 정 센터장의 말에 책상 맞은편 80대 노인이 “오래 살아 뭐하게. 애들 부담 주기 싫어”라며 말끝을 흐렸다. 정 센터장이 휴지를 몇 장 뽑아 건네자 노인이 눈을 가리고 엉엉 울었다.

상담을 마친 정 센터장은 상당수 노인이 경제적 어려움과 고독한 일상을 견디다가 우울증에 빠진다고 했다. 그는 “삶의 의지를 상실하면 치매 관리도 부정적인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며 “곁에서 끊임없이 격려와 칭찬을 해주고 용기를 북돋아 줘야 (노인들이) 치매 극복에 적극적인 태도로 임하게 된다”고 했다.

정 교수는 “잠깐 만나 상담하는 의사의 역할에는 한계가 있다. 사회 구성원 모두가 힘을 합쳐 노력해야 치매라는 산을 넘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


plus point

정지향 센터장이 알려주는 치매 예방 팁

정지향 이대목동병원 신경과 전문의, 이대 의과대 신경과학교실 교수, 강서구 치매안심센터장
정지향
이대목동병원 신경과 전문의, 이대 의과대 신경과학교실 교수, 강서구 치매안심센터장

1|치매 예방의 필수 요건인 뇌 건강 측면에서 보면, 나이 든 후에는 혈압 관리 방법이 조금 달라져야 해요. 늙을수록 뇌혈관의 탄성이 약해지기 때문이죠. 140 정도의 약간 높은 혈압이 뇌혈관 탄성 유지에 도움을 줍니다. 혈당도 마찬가지로 늙어서는 조금 높은 게 나아요. 인체에 쓰이는 포도당의 25%를 뇌가 사용하거든요. 그만큼 대사량이 높은 기관이라는 의미죠. 붉은 살코기도 적당히 먹어줘야 합니다. 군살 뺀다고 채식만 하면 필수 아미노산과 비타민을 공급받을 수 없어요.

2|인지 활동의 포인트는 ‘새로운 것을’ 해야 한다는 점이에요. 익숙한 건 도움이 안 돼요. 새로운 노래, 새로운 책을 찾으세요. 한국은 복지관 시스템이 정말 훌륭하니까 찾아가서 뭐든 새로운 프로그램을 수강해보세요. 손을 움직여 글 쓰는 건 좋은데, 일기 쓰기는 추천하지 않아요. 일상이 변화무쌍하지 않는 한 일기 내용이 대동소이하거든요. 차라리 신문을 여러 번 읽은 후 공책에 적거나 좋아하는 드라마 줄거리를 적으세요. 여기서 중요한 건 육하원칙에 맞춰 써야 한다는 점이에요. 육하원칙을 강조하는 건 순서 기억 훈련에 도움 되기 때문입니다.

3|사회 활동은 어르신들이 가장 힘들어하는 일 중 하나예요. 노인정에 나가도 주류 세력이 있고 왕따가 있거든요. 그런데 사회 활동하라는 게 꼭 타인과 관계를 쌓으라는 의미는 아니에요. 주민센터 문화강좌에 참여하는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사회 활동이 돼요. 부담 가질 필요 없어요. 일주일에 최소 1회, 가능하다면 2회 정도 사회 활동을 하세요.

전준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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