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본마을, 관동마을 주민과 저수지 사업을 시행한 한국 코카콜라 관계자, 한국생태환경연구소 관계자들이 산본마을 저수지에서 환호하고 있다. 사진 한국 코카콜라
산본마을, 관동마을 주민과 저수지 사업을 시행한 한국 코카콜라 관계자, 한국생태환경연구소 관계자들이 산본마을 저수지에서 환호하고 있다. 사진 한국 코카콜라

12월의 야산(野山)은 내딛는 발길마다 잔디가 산산이 부서져 나갈 만큼 가물어 있었다. 아무리 겨울이지만 이렇게 메마른 곳에서 농사를 짓고 산다니 상상하기 어려웠다. 얼마나 올랐을까. 예상치 못한 지점에서 신기루처럼 물이 그득한 저수지가 모습을 드러냈다. 가까이 다가서자 생각보다 깊고 맑은, 거대한 물웅덩이가 나타났다. 바닥이 훤히 비치는 맑은 물속에선 알 수 없는 작은 생명체들이 분주히 자맥질하고 있었다.

경남 김해 관동마을의 저수지를 12월 12일 찾아갔다. 오랜 기간 말라 있던 저수지에 물이 가득 차고 마을 도랑에도 물길이 끊이지 않는,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다는 곳이다. 이 마을 저수지는 1940년대 마을 주민이 직접 파서 만들었다. 어림잡아 70년도 더 된 시설인데, 물이 차 있을 때보다 말라 있을 때가 많았다고 한다.

저수지는 빗물이 계곡을 통해 내려와 채워지는데, 계곡과 연결된 수로의 위치가 애매해 비가 아주 많이 올 때만 간신히 물이 저수지까지 도달했다. 비가 충분히 오지 않는 해면 관동마을 주민은 농사를 완전히 망쳤다. 물이 부족할 때마다 마을 주민은 자신의 논에 먼저 물을 대기 위해 이른바 ‘물싸움’을 벌였다. 고성이 오가는 날도 많아졌다. 살기 팍팍해지자 하나둘 떠났고 50가구가 넘게 살았던 이 마을에는 이제 25가구만이 남았다.

불과 지난해까지만 해도 마을의 죽고 사는 일은 전적으로 하늘의 뜻에 달려있었다. 그러나 올해 6월 저수지 공사가 마무리되면서 이곳 풍경은 180도 바뀌었다. 공사는 관동마을 저수지를 인근에 있는 산본마을 저수지와 연결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산본마을 저수지는 관동마을 저수지와 같은 야산에 자리 잡고 있는데, 관동마을 저수지와 달리 계곡과 연결된 수로가 충분히 넓어 늘 물이 가득했다.

다만 1차 저장소 역할을 하는 산본마을 저수지가 낙엽 퇴적층과 생활 쓰레기 등으로 수질이 악화된 것이 문제였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산본마을 저수지의 물을 모두 뺀 후 퇴적물과 각종 오물을 제거하는 작업이 선행됐다. 물을 나눠 써야 하는 만큼 저수지 크기도 확장했다. 저수지 입구에는 펌프와 모터를 설치해 관동마을 저수지로 물을 끌어올려 보낼 수 있게 했다.

“내가 요즘 이 물 덕분에 삽니다” 현장에서 만난 김수진 관동마을 이장은 한껏 들뜬 목소리로 저수지를 만든 배경을 설명했다. 그는 한국 코카콜라가 사회공헌 사업을 통해 옆 마을 진례면 시례리 저수지를 확장했다는 소식을 듣고, 코카콜라 측에 관동마을의 저수지 보수 공사를 신청했다. 김 이장은 “무슨 코카콜라가 이런 일을 공짜로 하냐고 어르신들이 납득을 못 하셔서 설득하는 데 애를 좀 먹었다”며 “지금은 물 때문에 싸울 일이 없어지니 그리들 좋아한다”고 했다.


경남 김해 산본마을 저수지와 관동마을 저수지를 한눈에 볼 수 있다. 사진 한국 코카콜라
경남 김해 산본마을 저수지와 관동마을 저수지를 한눈에 볼 수 있다. 사진 한국 코카콜라

기업 자원, NGO 전문성, 지자체 지원 결과

코카콜라는 음료 생산에 사용한 물의 양과 동일한 양의 물을 자연에 돌려주겠다며 2007년부터 전 세계 각국에서 ‘통합적 수자원관리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한국에서는 2017년 평창동계올림픽과 연계해 대관령 일대 물 보호 사업을 펼쳤고 2018년에는 김해 시례마을 저수지 공사와 도랑 습지를 조성했다.

글로벌 기업이 한국 구석구석의 문제점을 빠르게 포착할 수 있었던 것은 비영리법인(NGO) 덕분이다. 코카콜라와 파트너십을 맺고 있는 NGO ‘WWF코리아(세계자연기금 한국본부)’가 물 환원 프로젝트를 수행하기에 적합한 한국의 NGO ‘한국생태환경연구소(KEEI)’를 코카콜라에 연결해줬다. KEEI가 사업을 수행하기 위해 필요한 예산을 코카콜라 재단에 신청하고 재단은 이를 지원해준다. 김해시는 사업 허가를 내주고 공사 작업을 지원했다. 기업의 자원, NGO의 전문성, 지방자치단체의 협력이 일궈낸 삼각 연대의 결과물이라 할 수 있다.

저수지 사업을 총괄한 이상용 KEEI 소장은 “오래전부터 저수지 수질 개선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지만 관동마을이나 시례마을은 정부의 손길이 미치기 어려운 곳이었다”며 “민간기업의 자원이 투입되면서 저수지 수질 개선 사업이 추진력을 얻었다”라고 말했다. 정부에서도 저수지 수질 관리를 하고 있으나 일정 규모 이상이 되는 곳만 관리 대상에 포함하고 있어 소규모 저수지는 사각지대에 놓여있다. 이 소장은 “내년 공사지는 창원에 있는 저수지다”라며 “사람의 몸에서 실핏줄 역할을 하는 작은 강줄기를 하나씩 개선해 나가면 동맥까지 살릴 것으로 믿는다”라고 힘주어 말했다.


plus point

[Interview] 구남주 한국 코카콜라 이사
“기업 사회공헌 콘셉트에 맞는 NGO 선정해야”

물 환원 프로젝트는 어떻게 나오게 된 건가.
“지역사회의 깨끗한 수자원이 확보되지 않으면 우리도 비즈니스를 지속할 수 없다. 지역사회의 행복과 안전뿐 아니라 코카콜라의 지속 가능을 위해 물 환원 프로젝트가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좋은 NGO를 선정하는 방법은 무엇인가.
“코카콜라가 추구하는 지속 가능 경영에 대한 콘셉트를 잘 이해하고 이에 부합하는 사회공헌 사업 역량, 인력 등을 갖추고 있으면 된다. 다만 전 세계 200여 개 국가에서 비즈니스를 하기 때문에 정치적, 종교적으로 중립성을 엄격히 유지하고 있다.”

한국의 저수지 프로젝트에서 코카콜라의 역할은 구체적으로 무엇인가.
“지역사회 공헌 프로젝트는 개별 기업이 단독으로 진행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지역에 대해 잘 아는 전문가들, 지방자치단체가 있어야 하고 필요한 경우 현지의 다른 기업과도 협업한다. 코카콜라는 글로벌 코카콜라 재단을 통해 자금을 지원하고 다양한 파트너십을 구축하며 프로젝트를 이끌어가는 역할을 한다.”

향후 추진할 프로젝트는.
“플라스틱 패키지 문제를 개선해 나갈 것이다. 재활용 스타트업 ‘수퍼빈’에서 운영하는 ‘쓰레기마트’에 파트너로 참여해 재활용 문화를 활성화하고 순환경제 개념을 전파할 예정이다.”

김유정 기자

  • 목록
  • 인쇄
  • 스크랩
  • PDF 다운
ⓒ 조선경제아이 & economy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