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성환 1976년 경북 의성 출생, 조선대 부속고, 서울대 지구환경공학부, 대우증권, 2008년 타임폴리오투자자문 설립
황성환
1976년 경북 의성 출생, 조선대 부속고, 서울대 지구환경공학부, 대우증권, 2008년 타임폴리오투자자문 설립

“2019년은 사모펀드 업계에 힘든 한 해였습니다. 하지만 그 덕분에 2020년에는 옥석을 가릴 수 있을 겁니다.”

크리스마스 전날이던 지난해 12월 24일, 황성환 타임폴리오자산운용 대표에게 새해 각오를 물었다. 짧지만 자신감 넘치는 답변이 돌아왔다. 대놓고 언급하진 않았지만 ‘옥석’은 그가 이끄는 타임폴리오자산운용이 분명했다. ‘주식 좀 하는’ 대학생에서 한국 자본시장의 차세대 대표주자로 성장한 97세대(1970년대 출생·90년대 학번) 리더다운 패기가 느껴졌다.

황 대표의 금융투자 입문 스토리는 한 편의 영화처럼 흥미롭다. 서울대 지구환경공학부 95학번인 황 대표는 1997년 군 복무 중 홀아버지를 잃었다. 형제도 없는 그의 손에 들린 건 아버지 장례를 치르고 남은 1600만원. 황 대표는 제대 후 이 돈으로 서울 신림동에 옥탑방을 얻고, 과외·아르바이트를 닥치는 대로 하며 생계와 학업을 병행했다.

1999년 어느 날, 황 대표 눈에 당시 우후죽순 생겨나던 PC방이 들어왔다. 그리고 그곳에서 인터넷으로 주식을 사고파는 사람을 봤다. ‘온라인 주식 투자 시대라면 나도 도전해볼 만하겠다.’ 황 대표는 그 길로 주식 세계에 뛰어들었다. 전 재산이나 다름없던 옥탑방 전세금 1600만원을 종잣돈으로 썼다. 황 대표는 이 돈을 1년 만에 3000만원으로 불렸다. 2001년부터는 증권사 주식 투자 대회에 참가해 두각을 나타냈다.

황 대표는 공포 뒤에 기회가 있다는 점을 일찍 깨달았다. 2000년대 초반 닷컴 버블 붕괴, 9·11 테러 등 대형 악재가 연거푸 터졌으나 그는 오히려 그런 약세장을 투자 적기로 삼았다. 사명(社名)에 들어간 ‘타임(time)’은 당장 제일 좋은 주식을 사야 한다는 황 대표의 철학이 반영된 것이다. 공포가 극에 달했을 때 사서 진정된 후 파는 투자로 그는 자산 규모를 20억원대로 늘렸다.

‘재야의 고수’를 눈여겨본 손복조 당시 대우증권(현 미래에셋대우) 대표의 권유로 황 대표는 2004년 대우증권에 합류했다. 그곳에서 1년가량 조직 생활을 경험한 그는 2006년 29세의 나이로 타임폴리오자산운용의 전신(前身)인 타임폴리오앤컴퍼니를 세웠다. 이 회사는 2008년 타임폴리오투자자문을 거쳐 2016년 헤지펀드 운용사 인가를 받으면서 현 사명으로 이름을 바꿨다.

폐쇄적인 사모펀드의 특성상 대중적 인지도를 얻을 기회는 적었지만, 오래전부터 금융 투자 업계와 자산가들 사이에서 타임폴리오자산운용은 ‘어떤 상황에서도 수익을 내주는 운용사’로 통했다. 실제로 이 회사는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 때도, 2011년 유럽 재정 위기 때도 투자자들에게 플러스 수익을 안겼다. 현재 타임폴리오자산운용의 운용 자산 규모는 약 1조6000억원이다. 1999년의 1600만원이 20년 만에 10만 배 늘어난 셈이다. 타임폴리오는 지난해 7월 국내 사모펀드 운용사 중 처음으로 공모펀드 운용사 인가를 받고 새로운 도전에 나섰다. 첫 번째 사모 재간접 공모 상품 ‘타임폴리오위드타임 펀드’의 운용 보수는 0.01%로 업계 최저 수준이다.


황성환 대표는 어떤 사람

역발상의 귀재
황 대표는 모두가 안 좋다고 말하는 업종을 일부러 한 번 더 들여다본다. 이런 업종의 주식은 약간의 모멘텀(동력)만으로도 주가가 많이 튀어 오를 수 있다는 게 황 대표의 평소 생각이다.

수퍼 개미
운용사를 차리기 전 황 대표는 주식시장에서 수퍼 개미로 통했다. 각 증권사가 여는 투자 대회에서 여러 차례 우승한 것은 물론 실전 투자에서도 차원이 다른 감각을 보였다. 그는 2004년 대우증권으로 스카우트되기 전에 이미 20억원대 자산가 반열에 올랐다.

통 큰 리더
타임폴리오자산운용은 처우가 매우 좋은 운용사 중 한 곳이다. 기업 이념을 고객은 물론 회사와 직원도 행복해야 한다는 의미의 ‘상생상락(相生相樂)’으로 정한 것도 임직원을 우선순위에 두기 때문이다. 그는 2015년 회사를 전 직원이 지분을 보유한 종업원지주회사 형태로 바꿨다. 매년 임직원 가족까지 챙겨 해외 워크숍을 떠난다.

전준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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