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홍 리자치(李佳琦)의 허위·과장 광고 논란을 일으킨 프라이팬과 민물 대게 판매 방송 모습. 사진 영상 캡처
왕홍 리자치(李佳琦)의 허위·과장 광고 논란을 일으킨 프라이팬과 민물 대게 판매 방송 모습. 사진 영상 캡처

“제품을 제값에 팔 능력을 갖춘 왕홍은 열에 한 명도 안 된다.”

중국 최대 전자상거래 플랫폼인 타오바오에서 여성복 셀러 사업을 하는 김준우(가명)씨는 ‘아웃렛 왕홍’이라는 말로 왕홍 마케팅의 약점을 지적했다. 아웃렛 왕홍은 판매가 대비 파격적인 할인가에 제품을 파는 왕홍을 말한다. 싸게 팔아야 판매량이 나오니 왕홍은 업체에 무리한 단가 인하나 대규모 증정 행사를 요구하는 식으로 시장을 오염시킨다. 피해는 고스란히 브랜드 몫이다. 싸게 팔수록 브랜드 이미지가 떨어지기 때문이다. 김씨는 “이 모든 것이 왕홍이 물건을 쉽게 팔기 위해 업체에 요구하는 것들”이라며 “여기에 섭외비, 판매 수익에 따른 인센티브까지 요구하면 정말 남는 것이 하나도 없다”고 말했다.

왕홍경제가 커지면서 왕홍 마케팅에 뛰어드는 한국 업체가 많지만, 투자 대비 마케팅 효과가 적다는 목소리가 크다. 원인은 왕홍의 몸값 상승. 이들의 영향력이 커지면서 생긴 자연스러운 현상이지만, 대부분의 브랜드 담당자들은 정도가 과하다고 말한다. 중국 마케팅 업체 관계자는 “지난해에 방한해 기업과 협업한 한 슈퍼 왕홍의 섭외비가 수십억원에 달했다는 이야기도 흘러나온다”면서 “이런 극단적인 사례를 제외하더라도 왕홍의 몸값은 2~3년 전과 비교해 천정부지로 치솟았다”고 말했다.

어렵게 왕홍을 섭외해도 이들을 컨트롤하기 어려워, 원했던 홍보 활동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실제로 지난해 연말 중소벤처기업부의 크리스마스마켓 행사 홍보에 섭외된 일부 왕홍은 현장에서 무성의한 태도로 일관해 빈축을 사기도 했다. 중기벤처부는 왕홍 20명 섭외에 1억원의 예산을 썼다. 당시 현장에서 만난 관계자는 “행사에 관심은커녕 행사장 반대편에서 일행끼리 장난을 치며 걷다가 차를 타고 떠나는 모습에 아연실색했다”고 말했다.

눈을 좀 낮춰 수백만 또는 수십만 명의 팔로어를 확보한 왕홍을 섭외할 수도 있지만, 이들 중 판매력을 갖춘 동시에 제품 이미지와도 맞는 왕홍을 찾는 일은 하늘의 별 따기다. 여기에는 왕홍경제의 성장과 함께 왕홍 이 우후죽순 등장한 영향이 크다. 한 중국 마케팅 회사 관계자는 “무턱대고 왕홍 마케팅에 돈을 쓰면 안 된다”며 “인위적으로 팔로어 수를 늘린 가짜 왕홍도 많아서 섭외한 왕홍이 진짜 왕홍인지 철저한 사전 조사가 필요하다”라고 했다.

믿을 만한 중개 업체를 찾는 것이 어렵다는 지적도 있다. 왕홍을 섭외하기 위해서는 중개 회사를 거치는 경우가 많다. 타오바오 셀러 사업자인 박주영(가명)씨는 “헬스 보충제를 판매하려고 왕홍 중개 회사에 연락했더니 화장품 파는 뷰티 왕홍을 연결해주더라”며 “비용이 저렴했지만 팔로어 10만 명 정도의, 왕홍이라고 할 수도 없는 왕홍이 와서 실망했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무엇보다 업체가 왕홍 마케팅을 시작하기 전에 제대로 된 조사를 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왕홍 배경이나 중국 시장에 대한 분석 없이 중개 업체의 말만 믿고 마케팅을 진행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는 것이다. 한 중개 업체 관계자는 “현지에서 어느 정도 인지도 있는 브랜드가 왕홍 마케팅을 할 때 효과가 있었다”면서 “그렇지 않은 신규 브랜드의 경우 현지에 다른 홍보 작업을 진행해 놓고 나서 왕홍 마케팅을 할 때 효과를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왕홍 마케팅의 효과를 걱정하기에 앞서 리스크도 염두에 둬야 한다. 홍보 모델로 섭외한 왕홍이 구설에 휘말리면 제품 판매나 브랜드 이미지에 악영향을 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는 스타 마케팅의 리스크와 다르지 않다. 홍보 모델로 활동하는 스타의 개인사 탓에 업체가 매출에 타격을 입는 경우는 적지 않았다. 중국 시장을 공략하기 위해 중국 톱스타 판빙빙(范氷氷)을 광고 모델로 기용한 국내의 한 화장품 업체가 판빙빙이 탈세와 사망설 등으로 대중의 외면을 받은 탓에 실적이 꺾인 사례가 있었다. 이 회사는 판빙빙 섭외를 위해 무려 100억원을 들인 것으로 알려졌다. 판빙빙 스캔들이 터진 뒤 중국에서 왕홍이나 스타 마케팅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기도 했다.


수천만 명의 팔로어를 거느린 슈퍼 왕홍은 흥행 보증수표가 될 수 있지만, 막대한 섭외비를 감당할 만한지에는 물음표가 따라붙는다.
수천만 명의 팔로어를 거느린 슈퍼 왕홍은 흥행 보증수표가 될 수 있지만, 막대한 섭외비를 감당할 만한지에는 물음표가 따라붙는다.

“판매에만 혈안 된 왕홍 걸러내야”

왕홍경제에 대한 우려는 이어졌다. 현재 최고 인기를 누리고 있는 왕홍인 리자치(李佳琦·Austin)의 허위·과장 광고 논란이 한 예다. 리자치는 5분 만에 1만5000개의 립스틱을 판매한 기록을 세우면서 화장품 ‘완판남’으로 불린다. 하지만 지난해 초 전문 분야가 아닌 프라이팬 판매를 위한 라이브 방송을 진행하던 중에 사건이 터졌다. 리자치는 강력한 코팅 성능을 강조했는데, 프라이팬에 굽던 달걀프라이가 들러붙어 떨어지지 않았다. 다음 날 리자치는 “이전 방송에서는 설명서대로 사용하지 않아 일어난 일”이라고 해명했지만, 해당 동영상은 왕홍 마케팅의 대표적인 폐단으로 온라인에서 회자됐다. 이어 리자치가 지난해 9월 라이브 방송을 통해 판매한 민물 대게의 산지가 다른 곳이라는 주장이 나오면서, 또다시 논란이 일었다.

중국 당국은 지난해 연말에 온라인 쇼핑몰,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라이브 방송 플랫폼의 허위·과장 광고, 품질 불량 등을 대상으로 단속을 벌였다. 사실상 리자치의 프라이팬 사건이 부른 ‘왕홍 단속’이라는 관측에 무게가 실렸다. 중국 정부는 지난해부터 왕홍과 따이공(보따리상)의 화장품 판매를 등록제로 전환하고 세금을 부과했는데, 점차 왕홍 관리의 고삐를 죄는 모습이다.

‘욕망의 인민공화국(People’s Republic of Desire·2018)’이라는 제목의 중국 인터넷 스타 다큐멘터리를 만든 하오 위 감독은 최근 CNBC와 인터뷰에서 “중국 인터넷 스타들은 대학을 나오지 않은 경우가 많고 사회적 자본을 가지고 있지도 않으며, 실제 사업을 운영하는 방법도 모른다”며 “그들이 식당이나 바를 차리면 모두 실패할 것”이라고 말했다. 왕홍이라는 직업의 불안정성을 지적한 것이지만 전문성도 경험도 없는 왕홍에 대한 불신이 담긴 말이기도 하다.

현재 중국에서는 ‘똑똑한 소비자는 왕홍을 믿지 않는다’는 인식이 퍼지는 것처럼 보인다. 중국 매체 징 데일리(Jing Daily)는 지난해 12월 “리자치 등 왕홍들이 중국 팬들에게 해외 브랜드를 소개하는 데 큰 역할을 할 수 있지만, 교육 수준이 높은 소비자는 왕홍을 신뢰할 수 있는지를 꼼꼼히 따진다”며 “왕홍경제의 미래가 불투명한 상황에서 소비자가 원하는 왕홍은 어떤 모습인지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임수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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