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현채 서울대 의대 졸업, 한국죽음학회이사, 한국인의 웰다잉 가이드라인 제정위원
정현채
서울대 의대 졸업, 한국죽음학회이사, 한국인의 웰다잉 가이드라인 제정위원

“대부분의 한국 사람이 죽음에 대해 방심하다가, 막상 죽음이 다가오면 당황하곤 합니다. 죽음 준비는 그래서 일찍 시작할수록 좋습니다.”

정현채 전 서울대 의대 소화기내과 교수는 13년 경력의 죽음학 교수다. 2007년부터 서울시 자유시민대학에서 ‘죽음학 강의’를 무려 566회에 걸쳐 진행했다. 학교, 공공기관, 사기업에서도 강연 ‘러브콜’이 끊이지 않는다. 어느새 그는 ‘한국의 죽음학 전도사’라는 제2의 직책까지 얻었다.

정 전 교수는 2018년 침윤성 방광암 진단을 받고 내과 교수직에서 은퇴했지만, 죽음학 전도사 활동은 계속하고 있다. ‘우리는 왜 죽음을 두려워할 필요 없는가’라는 책을 내고, 제주도로 거처를 옮긴 이후 죽음학연구소를 열었다. 자신의 죽음도 차분히 준비해 나가고 있다. 그가 죽음 공부를 시작한 10여 년 전부터 현재까지, 현재 진행형이다.

1월 20일 정 전 교수에게 전화를 걸었다. 무얼 하고 있었냐고 묻자 “내가 운영하는 죽음학 카페에 글을 막 올리던 참”이라면서 “매일 10개가량의 죽음 관련 글을 올린다”고 했다. 제주도에 내려가서도 죽음학 연구에 열정적인 그다.


‘죽음학 전도사’로 불리는 본인을 소개하면.
“전도사는 남들이 부르는 호칭이다. 나는 ‘삶이 유한하고 죽음은 예측불허인데, 이 두 가지 사실을 머리로만 이해하지 말고 실생활에 녹여보자고 목소리 높여 외치는 사람’이라고 설명할 수 있겠다. 죽음을 입에 달고 살다 보니 ‘정신이 이상해졌다’는 소리를 듣기도 한다. ‘먹고살기도 바쁜데 뭐 그런 소리를 하냐’는 핀잔이다.”

그러게, 먹고 살기도 바쁜데 왜 죽음까지 생각해야 하나. 죽음에 천착한 계기는.
“50대를 바라보는 나이에 문득 죽음이 낯설게 느껴졌다. 20년 동안 내과 의사로서 사람의 죽음을 봤지만, 나의 죽음은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죽음을 깊이 생각해보지 않으면, 막연한 두려움에 빠지게 된다. 나도 당시 두려움에 불면증을 앓곤 했다.”

그때부터 정 전 교수는 죽음 공부를 시작했다. 내과 의사로서 실증적 추론을 신뢰했다. 2001년도 세계적 의학저널 ‘랜싯’에 등재된 네덜란드 10개 병원의 공동연구에 따르면, 사망 판정을 받았다가 심폐소생술로 살아난 환자 344명 중 18%(62명)가 공통된 유형의 근사체험을 했다. 체외 이탈을 경험하고 밝은 빛을 맞닥뜨리는 등 10가지 공통 요소가 있다. 정 전 교수는 “수많은 단행본 자료를 조사하면 죽음 이후 영혼이 인간의 육신에서 다른 차원으로 옮겨간다는 것을 알 수 있다”고 했다.

우리는 왜 죽음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나.
“죽음은 ‘소멸이 아닌 옮겨감’이다. 중학교를 졸업한다고 세상이 끝나지 않고, 조금 쉬었다가 고등학교로 입학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종교적 교리나 문화적 전통이 아니라 과학적 연구 결과에 기반한 내용이다.”

방광암 진단을 받았다. 현재 건강 상태는.
“방광암 진단받은 지 2년째로, 상태가 호전됐다. 2018년 8월 말 방광을 들어내는 절제술을 받았다. 수술이 끝나고 5주간 입원했는데 화장실을 하루에 30번 정도 갔다. 이제는 7~8번 정도만 가니 아주 괜찮아졌다.”

대수술을 거치면서 실질적으로 죽음을 고민했을 텐데, 이후 수업 내용 중 달라진 부분이 있나.
“오히려 변한 건 없고 암 환자가 되니 더 자신 있게 강의에 나설 수 있다. 이전에는 ‘네가 건강한데 어떻게 아냐’라면서 나무라는 시선을 걱정해야 했지만, 내가 직접 ‘중견 암 환자’ 당사자가 돼보니 경험을 통해 강의 내용을 직접 확인할 수 있었다.”

죽음학 강의에서 강조하는 부분은 뭔가.
“죽음을 준비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이르면 이를수록 좋다. 나중에 병이 들고 나서부터 준비하려면 힘들다. 원불교 경전을 보면, ‘나이가 사십이 넘으면 죽어 가는 보따리를 챙기기 시작해야 죽어 갈 때에 바쁜 걸음을 치지 않는다’라고 나와 있다.”

살면서 행복을 느끼면 되지 않나. ‘왜 굳이 죽음까지 의식하면서 살아야 하냐’는 의견도 있다.
“실제로 대범하게 ‘나는 죽음 따위 전혀 두렵지 않다’고 이야기하는 사람이 있다. 그러나 막상 본인이나 가족 중에 누군가 말기 암 진단을 받아서 죽음 문제를 직면하면, 담대한 자세가 속절없이 무너지는 것을 자주 봤다.”

언제부터 죽음을 의식하기 시작해야 하나.
“독일의 경우 초등학교 5학년부터 죽음 교육을 받는다. 반려동물 죽음부터 시작해 고등학교 2학년 윤리 시간에는 ‘당신이 3개월 시한부 선고를 받았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주제로 토론을 한다. 우리나라에서 만약 비슷한 교육을 한다면 난리가 날 것이다.”

그래도 주변 사람에게 죽음을 준비하라고 권하긴 찜찜하다. 꼭 죽으라는 소리 같다.
“죽음을 눈앞에 둔 사람에게 이야기를 꺼내기는 당연히 어렵다. 그러니까 건강할 때 준비해야 한다고 말해야 한다.”

무엇부터 해야 하나.
“어려운 질문인데, 상황이나 연령대마다 다를 것 같다. 그러나 한 가지는 확실하다. 나이순대로 죽지 않기 때문에 젊은 사람도 준비가 필요하다. 내가 정말 살날이 얼마 안 남았다면? 가정하고 삶을 정리해나가라. 물건도 정리하고, 주변 사람의 관계도 정리하라. 죽음이 목전이면, 주변 사람에게 모질게 대하는 사람이 있을까? 좋은 말을 나누려 한다. 죽음을 생각하다 보면 역설적으로 삶이 긍정적으로 변화한다.”

정 전 교수도 죽음 준비에 한창이다. 최근엔 사전장례의향서 작성에 몰두하고 있다. 향후 장례식을 어떻게 치렀으면 하는지, 사전에 내용을 정리해두는 것이다. 그는 화장 이후 해양장을 생각하고 있다. 나무관을 쓰면 태울 때 공해가 유발된다고 해 종이 관을 알아보고 있다. 삼베 수의도 의무가 아니라고 생각해 친환경적인 면 수의를 구했다.

세상에서 하나뿐인 장례식 계획도 짜고 있다. 장례식장이 아닌 집에 추모하는 공간을 만들고, 죽음학 강의 2시간 분량 영상을 틀고 지인들을 초청할 계획이다. 와인을 제공할 예정이니 마시면서 강의를 양껏 시청하면 된다고 한다. 이외에도 추모 기간 틀어둘 음악 200곡을 추려놓은 상태다. 정 전 교수가 좋아하는 뉴에이지 피아니스트 케빈 컨의 작품 등이 있다.

좋은 죽음은 무엇이라 생각하나.
“건축가 정기용 선생은 인터뷰에서 ‘위엄 있게 맑고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죽음과 마주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이야기했다. 죽음을 외면하지 않는 자세다. 이분은 대장암으로 5년 이상 투병하다가 2011년 세상을 떠났다. 세상 떠나기 며칠 전 그분이 서울 아차산으로 소풍을 갔다. 그는 마지막으로 ‘여러분 고맙습니다. 하늘도 고맙고, 바람도 고맙고, 나무도 고맙고, 정말정말 고맙습니다’라고 했다고 한다.”

김소희 기자

  • 목록
  • 인쇄
  • 스크랩
  • PDF 다운
ⓒ 조선경제아이 & economy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