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21일 서울 영등포동 효원힐링센터 ‘힐다잉 체험’ 과정에서 체험자들이 입관하고 있다. 사진 효원힐링센터
1월 21일 서울 영등포동 효원힐링센터 ‘힐다잉 체험’ 과정에서 체험자들이 입관하고 있다. 사진 효원힐링센터
힐다잉 체험 과정에서 제작한 기자의 영정. 찡그린 채 억지웃음을 짓고 있다. 사진 최상현 기자
힐다잉 체험 과정에서 제작한 기자의 영정. 찡그린 채 억지웃음을 짓고 있다. 사진 최상현 기자

“자, 웃으세요. 세상에 남기는 마지막 얼굴입니다.”

1월 21일 서울 영등포동에 있는 효원힐링센터. 30여 명의 남녀가 차례대로 영정 사진을 촬영했다. 활짝 웃어보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입꼬리를 어색하게 올려 웃는 것도 우는 것도 아닌 표정을 하는 사람도 있다. 기자는 후자에 속했다. 카메라 앞에 서는 순간 검은색 리본을 두른 내 영정 사진이 장례식장 제단에 올려진 광경이 선하게 나타나, 차마 웃음이 나오지 않았다. 안면 근육을 한껏 쥐어짜내고서야 간신히 사진사의 ‘OK’ 사인을 받았다.

이 센터에서는 매주 세 번씩 일종의 임종 체험인 ‘힐다잉 체험’을 진행한다. 힐다잉은 힐링(healing)과 죽음(dying)의 합성어로 영정 사진 촬영부터 유언서 작성, 수의 착용과 입관까지 죽음의 전 과정을 실감하고, 이를 통해 미래의 남은 삶을 새롭게 설계할 수 있도록 돕는 과정이다. 2012년 개소한 이래 600회가 넘는 임종 체험이 진행된 이 센터에서는 약 2만5000명이 가상 죽음을 맞이했다. 우울증에 시달리는 20대, 직장생활에 지친 30대, 부부 갈등에 각방을 쓰던 40~50대, 살아온 날보다 살 날이 적은 60대 이상 등, 다양한 연령의 사람이 저마다의 동기를 가지고 이곳을 찾아 새로운 삶을 회복했다고 한다.

영정 사진을 현상(現像)하는 동안 1시간가량 강연이 이어졌다. 강연을 맡은 정용문 효원힐링센터장은 “여기 온 이상 1시간 뒤면 세상과 작별하고 죽음을 맞이해야 한다”며 “아무도 죽음을 예상하며 살지 않지만, 모두에게 언제든 찾아오는 것이 죽음의 본질”이라고 말했다. 이날 모인 체험자 대부분은 20~30대. 정 센터장은 “10~30대 사망 원인 1위는 ‘극단적 선택’”이라며 “‘죽음’을 형식적으로나마 체험해보면 극단적 선택이 얼마나 어리석은 행동인지 깨달을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강연실을 나오자 각자의 영정이 모두 준비돼 있었다. 자신의 영정을 마주한 체험자들은 그제야 실감 나는 듯 숙연한 분위기가 됐다. 프레임 속 기자의 영정은 찡그린 채 억지웃음을 짓고 있었다. 이어 체험자들은 줄을 지어 마치 공동묘지처럼 관이 늘어선 위층으로 이동했다. 벽면에는 ‘이렇게 죽을 줄은 정말 몰랐습니다’라는 족자가 걸려있었다. 스크린에서는 시한부 선고를 받은 한 가장이 처자식과 작별하는 다큐멘터리 영상이 흘러나왔다.

“정말 기가 막히는 일입니다. 이제 여러분은 모든 미련과 후회를 뒤로하고 세상을 떠나야 합니다. 그래도 한 가지 다행인 점은 죽기 전 유언서를 남길 수 있다는 것입니다.”

각자 자기 몫의 관과 수의를 배정받고 유언서를 작성하기 위해 펜을 들었다. 마지막으로 누구에게 어떤 말을 남겨야 할까.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앞서 시청했던 영상에서처럼 졸지에 ‘유족’이 될 가족이었다. 내가 죽는다는 사실보다 내 죽음으로 인해 가족이 아무리 울어도 메워지지 않는 상실감에 오랫동안 시달릴 것이라는 사실이 더 슬펐다. 어느새 주변에서 훌쩍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다른 체험자들의 유언서 내용도 가족과 사랑하는 이들에게 전하는 ‘미안하다’ ‘사랑한다’는 유언이 대부분이었다. 유언서 작성이 끝나자 수의를 입고, 오동나무 관에 들어갔다.


영정 사진을 촬영하고 있는 한 고령 체험자. 사진 효원힐링센터
영정 사진을 촬영하고 있는 한 고령 체험자. 사진 효원힐링센터

‘쾅쾅’ 소리와 동시에 관 뚜껑이 닫혔고, 외부와 단절됐다. 어깨를 다 펼 수도 없을 정도로 좁은 공간엔 한 줄기 빛도 들어오지 않았다. 이제 앞으로 영원히, 몸이 다 썩도록 이곳에 갇혀있어야 하는구나. 길지 않은 지난 삶에 후회할 일이 너무 많았다. 나가고 싶다는 갈망이 솟구쳤다. 다시 한번 기회를 얻는다면 회한을 조금이나마 덜어낼 수 있을 텐데. 마침내 포기에 가까운 심정이 됐을 때 관이 열렸다. 10시간 같은 10분이었다. 갑작스레 회복한 빛에 눈이 부셨다.

수의를 벗은 체험자들은 눈물, 콧물을 닦을 화장지부터 찾았다. 정주희(24)씨는 “어둡고 비좁은 관 속에서 ‘언젠간 체험이 아니라 정말로 죽을 것’이라는 두려움에 떨었다”며 “관에서 나오자 마치 두 번째 삶을 부여받은 기분이었다”고 했다. 조서현(21)씨도 “‘가족과 작별 인사라도 하고 올 걸’ 하는 후회를 했다”며 “죽기 전에 가족과 사랑하는 사람과 얼마나 제대로 된 작별을 하는지가 중요한 것 같다”고 했다.

이곳 센터에서 임종을 체험하는 이들은 크게 두 부류라고 한다. 청년 체험자 다수는 우울증과 경제적 어려움 등으로 삶에 대한 의지가 떨어진 이들이다. 극단적 선택을 염두에 두고 ‘예행 연습’ 삼아 임종 체험에 참여하는 경우도 있다. 이 때문에 청년 체험자가 많은 회차에는 진행 과정에서 죽음이 절대로 쉽게 택할 수 있는 돌파구가 아니라는 것을 주지하고, 삶의 소중함을 깨우치는 데 중점을 둔다고 한다. 센터 벽면에는 “나를 포옹할 수 있는 좋은 시간이었다” “자존감을 높여주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살아있다는 게 얼마나 큰 행복인지 깨달았다”는 등의 후기가 빼곡히 붙어 있었다.

반면 고령 체험자에게 임종 체험은 전혀 다른 의미로 다가간다. 영정 사진을 찍으면서 자신의 초상을 되돌아본다. 유언서를 쓰는 것은 그동안 살아 온 인생 여정을 회고하고, 어떤 사람에게 작별 인사를 해야 할지 간추리는 계기가 된다. 입관 절차에 이르면 죽음이 성큼 다가왔다는 것을 실감하게 된다. 엉엉 울면서 관 뚜껑을 열어달라고 소리치는 이들도 부지기수다. 그러다 어느 순간, 죽음이 결코 피할 수 없는 필연적인 ‘엔딩’이라는 사실을 수용하게 된다.

정 센터장은 “죽음과 마주하면, 생전의 모든 번민과 갈등은 허망한 뜬구름처럼 느껴진다”며 “미워했던 사람을 용서하고 화해할 수 있게 된다”고 했다. 그래서 죽음을 통해 회복한다는 의미로, 힐다잉 체험이라는 명칭을 붙였다고 한다. ‘삶의 엔딩’이 있다는 사실을 수용하고 나서야 비로소 ‘엔딩 크레딧’를 준비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최상현 기자

  • 목록
  • 인쇄
  • 스크랩
  • PDF 다운
ⓒ 조선경제아이 & economy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