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외 주요 기업들이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 여파로 공장 가동을 중단하고 있다. 사진 블룸버그
국내외 주요 기업들이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 여파로 공장 가동을 중단하고 있다. 사진 블룸버그

‘Designed by Apple in California, Assembled in China(캘리포니아에서 애플이 디자인, 중국에서 조립).’

애플 아이폰, 아이패드, 맥북, 에어팟 뒷면에는 어김없이 이런 문구가 적혀있다. 이는 ‘세계의 공장’ 중국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애플 본사에서 엔지니어와 디자이너가 공들여 제품을 개발하고, 팀 쿡 애플 최고경영자(CEO)가 무대에 서서 전 세계인을 상대로 제품을 소개한다 해도 중국 공장 가동이 멈추면 모든 것이 허사다.

지난달 중국 후베이(湖北)성 우한(武漢)에서 발생한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이하 신종 코로나)으로 글로벌 공급 체인(사슬)이 무너지자 기업들이 발을 구르고 있다. 중국 제조업 허브인 우한에선 자동차, 스마트폰, 컴퓨터 부품이 생산된다. 우한은 내륙 교통의 요충지로 중국 최초로 양산을 시작한 3D 낸드플래시 메모리 공장과 인공지능(AI) 개발 거점 등이 집결한 전략 도시다. 우한은 지난 30여 년간 중국의 개혁·개방 정책으로 탄생한 세계의 공장 중 한 곳이다. 중국은 1990년대부터 후베이성을 비롯해 산시성(陝西省), 안후이성(安徽省), 후난성(湖南省) 등 내륙 지방을 중심으로 공장을 짓고, 진입한 해외 기업으로부터 기술을 흡수하고 타 지역에서 온 노동자들이 밀집해 근무하는 방식으로 빠른 경제 성장을 이뤘다.

현재 중국은 전 세계 공급망에서 사용되는 중간 생산 제품의 세계 최대 수출국이다. 블룸버그 이코노믹스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무역 데이터를 근거로 추산한 결과, 2015년 기준 전 세계 중간 생산 제품의 약 20%가 중국으로부터 수입됐다. 특히 한국, 일본, 캄보디아, 베트남에서 소비된 중간 생산 제품 수입의 약 40%가 중국산이다.

영국 경제분석기관 옥스퍼드이코노믹스에 따르면 중국의 세계 무역 시장점유율은 2003년 5.3%에서 2019년 12.8%로 두 배 이상 증가했다. 같은 기간 중국의 연간 경제 생산량은 1조7000억달러에서 14조달러로 8배 이상 커졌다. 아울러 중국은 약 14억 명의 인구를 기반으로 세계 소비 시장을 주도하고 있다. 애플은 매출의 6분의 1을 중국에서 거뒀고, 인텔은 2019년에만 전체 매출의 28%(약 200억달러)를 중국에서 올렸다. 휴대전화용 칩 제조업체 퀄컴은 연간 매출의 47%(약 120억달러)를 중국에 의존한다.

앞서 신종 코로나 확산 직전까지 우한이 있는 후베이성의 분위기는 매우 좋았다. 1월 12일 대다수의 중국 성(省)이 올해 지역내총생산(GRDP) 성장률 목표치를 하향 조정했지만, 후베이성은 7.5%로 상향 조정했다. 지난해 GRDP 성장률이 전국 평균치보다 1.2%포인트 높았던 덕이다.

그러나 이런 긍정적인 전망은 신종 코로나가 발생하면서 물거품이 됐다. 1월 7일 중국중앙텔레비전이 우한에서 발생한 원인 미상의 폐렴을 일으키는 병원체가 신종 코로나라고 밝혔다. 이후 한 달여간 신종 코로나는 세계 28개국으로 퍼졌다. 뉴욕타임스는 2월 2일(이하 현지시각) “여러 유행병학 모델 등을 볼 때 실제 감염자 수는 이미 10만 명 이상으로 추정된다”고 보도했다. 글로벌 신용평가사인 DBRS 모닝스타는 “이번 사태로 글로벌 공급 체인이 붕괴할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중국 이어 한국 車 공장도 ‘셧다운’

다수의 중국 지방 정부는 2월 9일까지 춘제(春節·중국 설) 연휴를 연장했고, 우한이 속한 후베이성은 2월 13일까지로 늘렸다. 이에 따라 주요 공장도 가동이 중단됐다. 세계의 공장이 멈춰서자 그 파괴력은 자동차 분야에서 먼저 나타났다. 중국산 부품 수급이 끊기자 국내 완성차 생산까지 멈춘 것이다. 한국자동차산업협회(KAMA)에 따르면 2018년 중국에서 전 세계로 수출된 자동차부품 규모는 348억달러(약 41조3000억원)다. 우한에는 500개 이상의 자동차 부품 업체가 있다.

현대자동차 노사는 중국산 부품 수급이 끊기자 2월 7일부터 사실상 국내에서 모든 차종의 생산을 당분간 멈추기로 했다. 중국에서 만들어 수입하는 자동차 전선 뭉치인 ‘와이어링 하니스’ 부품 생산이 중단돼 재고가 없기 때문이다. 와이어링 하니스는 국내 부품사인 레오니와이어링시스템즈코리아와 유라코퍼레이션·경신·THN이 중국 산둥성 각지에 기지를 두고 만들어 거꾸로 국내 완성차에 공급한다.

신종 코로나가 초래한 공장 중단 사태의 여파는 전 세계로 확산하고 있다. 테슬라, 포드, 닛산, 제너럴모터스(GM), 도요타 등도 신종 코로나 때문에 중국 공장 문을 한시적으로 닫았다.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중국은 세계 최대 자동차 시장이자 자동차 부품 공급 거점”이라며 “신종 코로나가 일본을 비롯한 전 세계 자동차 생산 공급망에 위험 요소로 등장하면서 생산 차질 우려가 나온다”고 분석했다.

특히 글로벌 최대 자동차 부품사인 독일 보쉬가 중국 내 공장 가동을 전면 중단하면서 전 세계 완성차 업계가 긴장하고 있다. 보쉬는 우한에 있는 2개의 공장에서 조향 관련 부품, 열관리 시스템 등을 만들고 있다. 이외에도 중국 60여 개 지역에 23개의 공장을 뒀다. 폴크마 데너 보쉬 CEO는 1월 22일 기자간담회에서 “상황이 어떻게 전개되는지 지켜봐야 하지만, 이런 상황이 계속되면 글로벌 공급망에 차질이 생길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미국 자동차 업계도 비상이 걸렸다. 미국은 중국에서 110억달러어치(2018년 기준)의 자동차 부품을 수입했다. 멕시코에 이어 두 번째로 큰 규모다. 중국에서 직접 들어오는 부품 외에도 일본, 멕시코 등에서 가공을 거친 뒤 수입하는 부품도 많다. 중국 현지에 두 개의 합작 회사를 두고 있는 포드는 이르면 2월 10일 현지 공장 가동을 재개할 계획이지만, 신종 코로나 확산 여부에 주목하고 있다. 짐 해킷 포드 CEO는 “충격에 대해 언급하기는 아직 이르다”며 “신종 코로나의 의미를 이해하는 데만 몇 주가 걸릴 것”이라고 전했다.

독일 타이어 제조회사 콘티넨털은 최근 신종 코로나 관련 회의를 긴급 소집해 생산량을 유지하는 방법을 논의했다. 콘티넨털은 중국에 50개 공장을 운영하고 있으며, 이곳을 통해 유럽 주요 자동차 회사의 핵심 부품을 만든다. 콘티넨털은 “차질을 최소화하기 위해 협력사, 고객과 긴밀하게 협력하고 있다”고 했다. 폴크스바겐은 중국에 15개 공장을 운영하며 10만 명 이상의 직원을 고용하고 있다.

일본 자동차 제조업체 닛산은 후베이성에 혼다, 도요타, 포드 등과 함께 조인트 벤처를 만들어 공장 2곳을 운영 중이다. 닛산은 1월 21일 “중국 공장의 운영 중단 기간을 연장할 방침”이라며 “2월 14일 이후에는 생산이 재개될 것으로 예상한다”고 했다.

하지만 시장의 예상은 부정적이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는 “중국은 세계 2위의 경제 대국이자 전자 부품을 포함한 자동차 산업의 제조 중심지”라며 “중국이 자동차 판매와 부품 조달에 미칠 영향력은 2003년 사스(SARS·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 발생 때보다 훨씬 더 클 것”이라고 예상했다.

국내 자동차 업계의 한 관계자는 “완성차 공장 가동이 장기간 중단되면 가뜩이나 자금난에 시달리는 부품사가 연쇄 도산할지도 모른다”며 “자칫 자동차 산업 생태계 전체가 붕괴하는 사태에 직면할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왼쪽부터 중국 상하이 애플 매장 앞을 마스크를 쓰고 지나가는 사람. 중국 청두의 한 자동차 공장. 사진 블룸버그
왼쪽부터 중국 상하이 애플 매장 앞을 마스크를 쓰고 지나가는 사람. 중국 청두의 한 자동차 공장. 사진 블룸버그

1분기 애플 아이폰 생산 예상치 10% 하향

정보기술(IT) 업계도 직격탄을 맞고 있다. 애플은 전 세계에 유통하는 모든 아이폰을 중국에서 만든다. 아이폰 조립을 맡은 폭스콘은 소위 ‘아이폰 도시’라고 불리는 중국 정저우에서 대부분의 아이폰을 조립한다. 또 다른 조립 업체인 페가트론은 상하이 인근에 주요 공장을 뒀다. 우한 지역에도 아이폰 조립 공장이 있다.

팀 쿡 애플 CEO는 최근 실적발표 콘퍼런스콜에서 “우한 지역에 몇몇 공장이 있는데 지금 가동이 중단된 상태”라며 “2월 10일까지로 예정된 공장 폐쇄일 이후에도 문을 열지 못할 수 있다”라고 밝혔다. 애플은 신종 코로나 확산 속도가 빨라지자 중국 내 42개 ‘애플스토어’ 운영도 중단했다. 중국 내 애플 직원은 1만 명 이상이며, 아이폰·아이패드·애플워치 등을 생산하는 노동자까지 합치면 그 수는 수백만 명으로 늘어난다.

블룸버그는 “아이폰을 제조하는 폭스콘 공장이 있는 정저우가 속한 허난성에서도 신종 코로나가 확산했다”라며 “중국 정부가 폭스콘 공장을 폐쇄할 수도 있다”라고 전망했다.

앞서 애플은 2011년 일본 도호쿠 대지진 당시 아이패드2 부품 수급에 차질을 겪으면서 주요 부품을 각기 다른 곳에서 공급받는 이중화 작업을 했다. 팀 쿡 애플 CEO는 “중국을 대체할 공장이 있으며 부족한 생산량을 보충할 비상 계획을 세우고 있다”고 말했지만, 시장의 우려는 사그라지지 않고 있다. 애플 전문 분석가인 TF인터내셔널의 밍치궈 애널리스트는 2020년 1분기 아이폰 출하량 전망치를 3600만~4000만 대로 하향 조정했다. 기존보다 10% 줄인 수치다.

중국 화웨이 역시 타격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화웨이는 지난해 5세대 이동통신(5G) 스마트폰 판매 1위를 기록했다. 하지만 중국 전 지역으로 공장 가동 중단 방침이 확대되면서 전파 송신기 등 스마트폰 핵심 장비 생산에 차질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스트래티지애널리틱스(SA)는 글로벌 스마트폰 출하량이 기존 전망치에 비해 2%가량 줄어들 것이라고 수정했다. 앞서 SA는 5G 상용화 등으로 글로벌 스마트폰 출하량이 전년 대비 2~3% 성장해 15억 대 이상으로 늘어날 것으로 관측한 바 있다. SA는 “검역 및 여행 제한으로 인한 물류 및 공장 운영 지연이 결국 노동 부족과 공급 지연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디스플레이·반도체 업계도 비상

디스플레이 업계도 비상이 걸렸다. 중국 광저우와 옌타이, 난징에 사업장을 두고 있는 LG디스플레이는 옌타이와 난징 모듈 공장이 중국 지방정부의 권고에 따라 일시 휴업했다. 삼성디스플레이도 우한에서 750㎞ 떨어진 쑤저우 공장에 대해 바이러스의 확산 여부에 따라 향후 가동 중단을 비롯한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 중국은 세계 디스플레이 생산능력의 55%를 차지하는 핵심 생산 거점이다. BOE·비전옥스·CSOT·톈마 등 중국 디스플레이 업체들도 이번 사태로 공장을 정상 가동하지 못하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IHS마킷은 이번 사태로 중국 내 전체 액정표시장치(LCD) 생산능력이 2월 중에 최대 20% 이상 하락할 것으로 예측했다. 전염병이 공장 가동을 중단시키고 인력과 부품 공급 등에 차질을 주고 있기 때문이다.

반도체 회사들도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미국 CNBC 등 외신에 따르면 우한에는 중국 최대 낸드플래시 제조회사인 양쯔 메모리 테크놀로지(YMTC)가 있다. 이 밖에도 여러 중국 반도체 업체들이 공장을 운영 중이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중국에 공장이 있는 한국 반도체 기업들은 현재 정상 조업 중이지만 사태 악화에 따른 공장 차질을 우려하고 있다.

이들 회사들은 사태가 악화하면 공장 운영을 즉각 중단할 방침이다. 삼성전자는 장쑤성 쑤저우에 위치한 가전 공장도 시의 방침에 따라 가동을 일시 중단했다. 한 대기업 납품사 관계자는 “중국에 있는 1차 부품 공급사 대부분이 생산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자동차에서 시작된 생산 중단 사태가 향후 배터리, 가전, 디스플레이, 반도체 업계로 퍼져나가지 않을까 걱정”이라고 했다.


plus point

스타벅스, 맥도널드 등 서비스업도 타격

왼쪽부터 중국 스타벅스 매장 앞을 지나는 마스크를 쓴 사람들. 문을 닫은 중국 H&M 매장. 사진 블룸버그
왼쪽부터 중국 스타벅스 매장 앞을 지나는 마스크를 쓴 사람들. 문을 닫은 중국 H&M 매장. 사진 블룸버그

글로벌 서비스업 기업들도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이하 신종 코로나) 직격탄을 맞았다. 글로벌 커피 체인점 스타벅스와 패스트푸드 그룹 맥도널드는 중국 매장을 일시 폐쇄했다. 의류 업체 H&M도 중국 내 매장이 모두 문을 닫았다. 브리티시 에어웨이즈, 루프트한자 등 주요 항공사는 중국행 항공편을 취소했다. 신종 코로나가 팬데믹(pandemic·세계 전반으로 확산된 전염병)으로 번질 경우 다른 나라에서도 비슷한 상황이 벌어질 가능성이 크다. 로이터가 2월 5일(현지시각) 보도한 신종 코로나 타격이 큰 비(非)제조업 기업들을 간략히 정리했다.

△스타벅스: 중국 전역 4300여 개 매장 가운데 절반 넘게 운영이 중단됐다. 이에 따라 실적 전망 발표를 연기했다. △맥도널드: 중국 전역의 3300여 개 매장 가운데 수백 개가 문을 닫았다. 하지만 회사 측은 바이러스가 중국을 넘어 전 세계로 급속도로 확산하지 않으면 글로벌 수익에 미치는 여파는 크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나이키: 중국 매장 절반 가까이 영업이 중단됐다. 나머지 절반은 운영 시간을 단축했다. △H&M: 중국 45개 매장이 일제히 문을 닫으면서 1월 매출이 급감했다. △월트디즈니: 1월 25일부터 폐쇄된 상하이 디즈니랜드의 영업 중단이 2개월 넘게 이어지면 2분기 운영이익이 1억3500만달러 감소할 수 있다. △패스트리테일링(유니클로): 중국 전체 750개 매장 가운데 280곳의 운영이 중단됐다.


plus point

中 수요 줄자 국제 유가, 배럴당 50달러 붕괴

국제 유가도 급락하고 있다. 2월 4일(이하 현지시각) 뉴욕상업거래소(NYMEX)에서 3월 인도분 서부 텍사스산 원유(WTI)는 49.61달러에 거래를 마쳤다. 13개월 만에 처음으로 배럴당 50달러 아래로 떨어졌다.

세계 최대 원유 수입국인 중국이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이하 신종 코로나)으로 경제 활동이 위축되자 원유 수입을 대폭 줄인 영향이다.

중국은 전 세계 원유 수요의 25% 이상을 차지한다. 골드만삭스는 신종 코로나 확산으로 세계 원유 수요가 하루 평균 26만 배럴 감소할 것으로 전망했다. 이는 2003년 사스(SARS·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 당시 감소량인 16만 배럴의 1.6배 규모다.

국제 유가가 하락하자 석유수출국기구(OPEC)의 14개 회원국과 러시아 등 비(非)OPEC 산유국은 하루 평균 50만~100만 배럴 감산할 것을 검토하고 있다. OPEC은 당초 3월 5~6일로 예정돼 있던 각료회의 일정을 2월 중순으로 앞당길 예정이다.

김문관·정미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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