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8년 가을, 미국 매사추세츠주의 데븐스 병영에 있는 군병원에서 마스크를 착용한 의사와 간호사가 스페인 독감에 걸린 환자를 진찰하고 있다.
1918년 가을, 미국 매사추세츠주의 데븐스 병영에 있는 군병원에서 마스크를 착용한 의사와 간호사가 스페인 독감에 걸린 환자를 진찰하고 있다.

농업협동조합의 ‘축산물 가격 및 수급 자료’에 따르면 2004년 1월 국내산 쇠고기 소비량은 전년 1월보다 37.2% 감소했고, 소매 가격은 4.7% 하락했다. 같은 기간 쇠고기 수입량도 71% 줄어든 8157t을 기록했다. 이 추세는 3월까지 이어졌다.

원인은 2003년 12월 미국에서 발생한 소 해면상뇌증(BSE·Bovine Spongiform Encephalopathy), 즉 광우병이었다. 한반도에서 1만1000㎞ 떨어진 나라의 이슈였지만, 국내 쇠고기 시장이 곧장 흔들리는 건 당연했다. 당시 미국산 쇠고기는 한국 수입 쇠고기 시장에서 부동의 점유율 1위(70%)였기 때문이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은 미국 내 광우병 발생으로 한국 사회의 후생(厚生·풍요로운 삶)이 최소 1091억원에서 최대 3923억원 감소했다고 분석했다. 1996년에는 영국 정부가 “광우병 걸린 쇠고기를 먹으면 인간도 이와 유사한 질병에 걸릴 수 있다”고 발표하자 유럽연합(EU)의 쇠고기 소비가 40% 급감한 적도 있다.

이처럼 전염병은 발생 국가뿐 아니라 그 나라와 경제적 관계를 맺은 모든 국가에 크고 작은 영향을 준다. 2월 3일(현지시각)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가 중국 우한(武漢)에서 시작된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이하 신종 코로나)에 대응하는 각국의 폐쇄 조치를 보호무역과 같은 탈(脫)세계화 흐름과 비교하며 “바이러스를 얼마나 빨리 억제할 수 있느냐가 글로벌 성장을 좌지우지할 것”이라고 전망한 점도 같은 맥락이다.

신종 코로나에 앞서 전 세계를 공포에 빠뜨렸던 주요 전염병들은 국내외 경제·사회 분위기를 어떻게 바꿔놨을까. 스페인 독감, 사스(SARS·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 조류 인플루엔자(AI),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 신종 인플루엔자 등 과거 사례를 통해 이번 신종 코로나 유행의 결과를 미약하게나마 가늠해보자.


신종 인플루엔자가 기승을 부리던 2009년 11월 미국 유타주의 한 어린이가 백신 주사를 맞고 있다. 사진 블룸버그
신종 인플루엔자가 기승을 부리던 2009년 11월 미국 유타주의 한 어린이가 백신 주사를 맞고 있다. 사진 블룸버그

사스 2002년 11월부터 2003년 7월까지 유행한 신종 전염병으로, 원인 병원체는 사스 코로나 바이러스(SARS-CoV)다. 중국에서 처음 발생해 홍콩을 거쳐 세계로 퍼졌다.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사스 감염자는 8096명, 사망자는 774명으로 치사율이 9.6%에 이르렀다.

높은 치사율로 전 세계에 공포감을 심었으나, 사실 한국에서는 사스 사망자가 나오지 않았다. 그러나 이종화 고려대 교수와 워윅 맥키빈 호주국립대 교수 공동 연구팀은 “국가 간, 부문 간 연결고리가 많아 경제적 피해가 크게 나타날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연구진은 사스 발생으로 2003년 한국의 국내총생산(GDP)이 0.20% 감소했을 것으로 예상했다. 사스 피해가 컸던 중국과 홍콩의 GDP는 각각 2.42%, 5.46% 위축됐다. 이 기간 미국과 홍콩을 오가는 항공편은 종전 대비 69% 급감했다.


신종 인플루엔자 A형 인플루엔자 바이러스가 변이를 일으켜 탄생한 새로운 바이러스(H1N1)다. 2009년 3월부터 2010년 8월까지 크게 유행했다. 공식 집계 자료는 없지만 글로벌 감염자는 200만 명이 넘고 사망자는 2만 명 이상인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대와 호주 모나시대가 참여한 연구팀은 신종 인플루엔자가 발생한 연도에 미국 고용은 1.3%, 민간 소비는 2.1% 감소했다고 분석했다. 또 투자는 3.1%, 수출은 2.7% 타격을 입은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 유타대와 멕시코국립자치대 연구진은 2013년 신종 인플루엔자가 멕시코 관광 산업과 돈육 산업에 미친 경제적 영향을 추정하기도 했다. 연구자들에 따르면 멕시코 관광 산업의 손실액은 28억달러(약 3조3100억원)에 이르고, 돈육 산업은 2009년 말까지 2700만달러(약 320억원)의 무역 적자를 기록했다.


메르스 2012년 중동 지역을 중심으로 유행하기 시작한 급성 호흡기 감염병으로, 메르스 코로나 바이러스(MERS-CoV)가 원인균이다. 낙타나 박쥐가 바이러스를 옮겼을 가능성이 제기됐다. 전 세계적으로 1200여 명이 감염됐고, 이 중 500여 명이 사망했다. 한국에서는 2015년 5월부터 총 186명의 감염자가 발생해 38명이 목숨을 잃었다.

메르스는 다른 전염병처럼 발생 국가의 관광 산업을 얼어붙게 했다. 한국문화관광연구원에 따르면, 메르스 발생으로 외국인 관광객이 줄면서 국내 관광 업계의 수입이 약 3조원 감소했다. 취업 유발 효과와 고용 유발 효과는 각각 6만 명, 3만4000명 위축됐다. 한국경제연구원은 메르스가 3개월 동안 지속되면 GDP가 1.31% 하락해 20조원 이상의 손실을 낼 수 있다고 분석했다. 연구진은 “과도한 공포 심리가 감염 회피를 위한 사회적 격리를 늘리고 소비 심리를 위축시킨다”고 진단했다.


조류 인플루엔자 닭·오리 등 가금류나 야생 조류가 옮기는 동물 전염병의 일종이다. 1997년 홍콩에서 등장한 이래 동남아시아 지역을 중심으로 지금까지 빈번하게 발병하고 있다.

LG경제연구원은 2004년 베트남 정부가 조류 인플루엔자로 닭 1500만 마리를 살처분했을 때 발생한 생산 손실을 계산했다. 연구진은 “한 마리 가격을 3달러로 잡으면 4500만달러(약 533억원)어치의 생산액이 증발한 것”이라며 “방역 등에 필요한 돈까지 고려하면 비용은 더 늘어난다”고 했다. 인하대 연구팀은 2017년 한국방재학회에 제출한 논문에서 “조류 인플루엔자가 발생하면 음식료품과 제조 관련 업계의 피해가 가장 크게 나타난다”고 분석했다.


스페인 독감 제1차 세계대전 막바지이던 1918년 발생한 스페인 독감은 참전 군인들을 통해 미국과 유럽을 거쳐 전 세계로 퍼져 나갔다. 연구자들은 최소 2500만 명에서 최대 1억 명이 목숨을 잃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이는 1000만 명 정도인 제1차 세계대전 사망자를 크게 웃도는 수치다. 눈에 보이지도 않는 바이러스가 미사일·지뢰 등 온갖 살상 무기보다 더 큰 공포를 안긴 셈이다. 한국에서도 약 14만 명이 사망했다는 기록이 있다. 2005년 미국 연구진은 스페인 독감 바이러스가 인플루엔자 A형 중 H4N1형이라는 사실을 밝혀냈다.

‘20세기 흑사병’이라 불릴 만큼 악명을 떨친 스페인 독감이지만, 경제에 부정적으로 작용한 것만은 아닌 모양이다. 2002년 마크 시글러 미국 캘리포니아주립대 새크라멘토(CSUS) 교수팀은 1918~19년 유행한 스페인 독감이 이후 10년간 미국 경제 성장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쳤다고 주장했다. 연구진은 ‘노동 공급 감소로 인한 자본 집약도 상승은 도약기(이행기) 경제 성장의 중요한 요소가 된다’는 신고전학파의 내생적 성장 이론을 근거로 들었다. 그러나 2008년 미국 퍼듀대와 세계은행 공동 연구팀은 “스페인 독감 유행 당시 사망률과 유사한 상황이 재현될 경우 글로벌 GDP가 3% 이상 감소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전준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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