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우 작사가 한국음악저작권협회 이사, 현 남예종예술실용전문학교 실용음악학부 학부장 / 박현우 작곡가 현 한국음악저작권협회 이사 / 정경천 작곡가 한국음악저작권협회 부회장 / 2월 10일 서울 창신동에 있는 박현우 작곡가 사무실. 왼쪽부터 이건우 작사가, 박현우 작곡가, 정경천 작곡가. 참고로 정 작곡가는 이날 바이올린을 처음 잡았다. 박 작곡가와 정 작곡가는 사진을 찍으면서도 “기대지 마”라면서 투닥거렸다. 사진 김소희 기자
이건우 작사가 한국음악저작권협회 이사, 현 남예종예술실용전문학교 실용음악학부 학부장
박현우 작곡가 현 한국음악저작권협회 이사
정경천 작곡가 한국음악저작권협회 부회장
2월 10일 서울 창신동에 있는 박현우 작곡가 사무실. 왼쪽부터 이건우 작사가, 박현우 작곡가, 정경천 작곡가. 참고로 정 작곡가는 이날 바이올린을 처음 잡았다. 박 작곡가와 정 작곡가는 사진을 찍으면서도 “기대지 마”라면서 투닥거렸다. 사진 김소희 기자

“합치면 정이 되는 합정인데 왜 우리는 갈라서야 하나. 바람이 분다. 사랑이 운다. 아아아아아~합정역 5번 출구.”

개그맨 유재석, 아니 신인 트로트 가수 유산슬의 데뷔곡 ‘합정역 5번 출구’의 한 소절. MBC 예능프로그램 ‘놀면 뭐하니?’의 시청자라면, 가사만 봐도 노래를 흥얼거리게 된다. ‘합정역 5번 출구’의 숨은 주인공은 다름 아닌 박현우(78) 작곡가, 정경천(72) 작곡가, 이건우(59) 작사가.

유산슬의 트로트계 데뷔를 도운 이들은 자칭 ‘유벤져스(유산슬 + 어벤져스)’다. 이 작사가는 유산슬과 두 번의 만남 끝에 쓱쓱 노래 가사를 완성했고, 박 작곡가는 가사를 받아 들곤 15분 만에 작곡을 끝냈다. 정 작곡가의 2시간 편곡으로 합정역 5번 출구는 음원 차트에 이름을 올렸다.

음악은 본디 밤샘 고뇌의 결과물 아니었던가. 이들의 ‘뚝딱’ 창작 능력에 예능 자막을 다는 PD도 놀랐나 보다. 예능에서 그들의 호칭은 어느샌가 박토벤, 정차르트, 작사의 신으로 바뀌어 있었다. 방송 이후 현재까지도 그들을 향한 예능 출연, 광고 섭외, 인터뷰 요청은 끊이지 않는다.

하지만 유벤져스 3인방에게 때늦은 인기는 사실 새삼스럽다. 이들은 이미 대중가요계의 거장(巨匠)이자 살아있는 전설이다. ‘스잔나’ ‘천리먼길’ ‘사랑했던 까닭에’(박현우 작곡가), ‘J에게’ ‘평양아줌마’ ‘당신의 의미’(정경천 작곡가) ‘아모르파티’ ‘가인이어라’ ‘사랑은 아무나 하나’ (이건우 작사가). 이름만 들으면 아는 명곡이 이들의 손을 거쳤다. 이 작사가는 2018년 본인의 노래를 재조명하는 ‘불후의명곡’ 이건우편에 출연하기도 했다.

대중가요계의 장인(匠人)을 만나러 2월 10일 서울 창신동 동묘앞역 인근에 있는 박현우 작곡가 사무실을 찾았다. 방송에도 등장한 이곳은 33㎡ 남짓한 소박한 공간이었다. 벽면에는 현악기와 관악기 50여 대가 오밀조밀 걸려 있었다. 뿌연 유리창 너머 녹음실과 구석 뒷방에도 키보드를 비롯한 크고 작은 악기가 쌓여 있었다.


방송 이후 삶이 어떻게 변했나.

이건우 “바쁘다. 형님들은 한 달에 10곡 이상 작곡·편곡하고 계신다. 나도 밀린 신곡 작업을 소화해야 한다. (방송하면서 의뢰가 늘었나?) 몇 배로 늘었다.”


15분 작곡 실력이 대단했다. 비결은.

박현우 “우리 세 명이 도합 5000곡을 만들었다. 내 경우 가사를 받으면 자동으로 ‘아, 이건 발라드, 이건 트로트다’ 떠오른다. 악기 연주도 좋아하는데, 연주하면 암기도 잘된다.”

이건우 “데이터베이스가 머릿속에 쭉 있는 거다. 어떻게 갑자기 가사를 쓰겠는가. 수십 년 동안 숙련된 데이터를 머릿속에 차곡차곡 안고 있다가 끄집어내는 것이다.”


박 작곡가는 1973년 박우철의 ‘천리먼길’로 데뷔해 총 1000곡을 작곡했다. 1년 차이를 두고 1974년 고영준의 ‘정에 약한 남자’로 데뷔한 정 작곡가는 3000곡의 작곡·편곡 경험이 있다. 1981년 전영록의 ‘종이학’으로 데뷔한 이 작사가는 1200곡의 가사를 썼다.

그들에게 장인이 되기까지 노력의 과정을 물었다. 이 작사가는 작사가를 꿈꾸던 고등학교 시절 이미 준비가 끝나 있었다. 100여 편의 작품을 써놓고 이곳저곳 가사를 팔러 다녔다. 서소문 음악다방 ‘코러스’에서 만났던 가수 채은옥씨가 전영록씨를 소개해줬고, 그 길로 1년 반 동안 전씨 집에서 살았다. 거기서 “나 너를 알고 사랑을 알고 종이학 슬픈 꿈을 알게 되었네” 가사로 시작하는 종이학이 탄생했다. 100곡이 담긴 가사집이 준비된 덕에 매년 히트곡을 줄줄이 냈다.

정 작곡가는 “이 친구는 꽃길 걸었지” 하면서 웃었다. 그는 “나는 집안이 어려워서 부모님이 기술을 배우라 했지만, 음악이 좋아서 20대 초반에 무작정 집을 나왔다”며 “활동하면서도 10년 동안 굶으며 지냈다. 저작권 의식이 없어서 편곡료도 많이 안 나오던 때다. 칼국수가 80원이었는데 그걸 못 먹어서. 누가 점심 먹으러 가면, 나 좀 안 끼워주나 기웃거렸다”고 했다.

박 작곡가는 14세에 바이올린을 켜면서 음악 재능을 깨달았다. 작곡가로 데뷔했지만 돈벌이가 변변치 않아 연주 활동으로 생활비를 충당했다. 그는 “‘가요 톱10’ 10위권을 내가 절반, 고 박건호 선생님이 나머지 절반 차지하던 때였는데도 미래가 보장되지 않았다”고 했다.


그만두고 싶었던 적은 없나.

정경천 “배가 고팠지만 음악을 그만두겠다는 생각은 안 들더라. 음악 공부를 안 했으면 뭘 했을까. ‘참~ 잘했다! 천직이다!’ 오로지 그 생각뿐이었다.”


어떻게 해야 오래 살아남나.

이건우 “즉석에서 쓰는 훈련이 돼야 한다. 일주일 내에 작사, 작곡, 편곡 과정이 끝나는 루틴에 단련돼야 한다. 평소에 글을 많이 쓰고 아이디어를 축적해놔야 변화하는 시대에 맞춰갈 수 있다. 벌들이 꿀을 저장하듯이 머릿속에 많은 작품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정경천 “아마 작품 생활하는 사람 중에 우리만큼 음악을 많이 듣는 사람도 없을 거다. 자는 시간 빼고 밥 먹을 때도 음악을 듣는다. 아이돌 노래도 듣긴 하지만 조급하지 않다. 우리는 트로트만 파겠다는 장인정신이 있으니까. 앞으로도 그럴 거다.”


본인이 완벽주의자라고 생각하는가.

이건우 “완벽주의자라, 늘 고민한다. 세상에 나갔을 때 과연 그럴 만한 작품인가. 모자람이 없는가. 늘 부족함을 느낀다. 한 번도 자신 있게 내보낸 곡은 없다. 완벽한 곡은 없다. 시장이 곡을 빨리 달라고 하니 보내준다.”

박현우 “맞다. 항상 맘에 쏙 들진 않지.”

정경천 “완벽주의자이긴 하지만 때에 따라 기대치를 낮춰야 한다. 100% 퀄리티를 고집하고 싶은데 가수가 못 따라온다면? 기대치를 낮추지 않으면 몇 날 며칠 질질 끈다.”


완벽을 추구하면서도 보낼 줄 아는 정신. 음악 산업의 빠른 흐름에 적응한 장인의 모습이었다. 실제 유벤져스는 40년 넘는 세월 동안 유행에 부지런히 발맞춰왔다. 방송에서 유벤져스는 유산슬에게 트로트 버스킹을 제안한다. 이 작사가는 “트로트는 앞으로 그런 식으로 변할 거다. 이번에 14세 트로트 천재 전유진양을 발굴했는데, 앞으로 전국 단위의 버스킹에 나서보고 싶다”고 했다.


어떻게 변화에 적응하나.

이건우 “현시대에 맞추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쏟아붓지 않으면 오늘의 내가 없다. 유행에 뒤처지면 무조건 도태된다. 최근엔 중국, 일본, 몽골, 대만의 젊은이가 좋아하는 노래를 번역해서 보고 있다.”


트로트가 그간 대중의 관심에서 벗어났다.

박현우 “그래서 ‘놀면 뭐하니?’ 섭외가 들어왔을 때 ‘잘해야겠다’ 생각했다. 우리한테 작품을 맡겼을 땐 우리를 필요로 한 것이다. 우리가 맡으면 뭔가 나오겠다 생각했을 테니 책임감을 느꼈다.”

정경천 “적은 나이가 아닌데, 노력하다 보니 기회가 찾아왔다. 노력이 정말 중요하다.”


세상이 알아주지 않아도 언젠가 스포트라이트를 받는다는 뜻인가.

이건우 “이 말을 하고 싶다. 내 마음의 꽃은 언젠가 필 것이다. 60~70대에 이렇게 꽃이 폈다. 언제 필지 모르는 꽃이다. 종이는 접어도 꿈은 접지 마라.”

김소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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