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존닷컴에서 ‘대박’ 매출을 올린 영주대장간 석노기 대표. 정보기술(IT) 플랫폼을 통해 빛을 발하는 장인이 늘고 있다. 사진 최지희 기자
아마존닷컴에서 ‘대박’ 매출을 올린 영주대장간 석노기 대표. 정보기술(IT) 플랫폼을 통해 빛을 발하는 장인이 늘고 있다. 사진 최지희 기자
영주대장간에서 만들어 판매하는 다섯 가지 종류의 호미. 사진 최지희 기자
영주대장간에서 만들어 판매하는 다섯 가지 종류의 호미. 사진 최지희 기자

장인은 먼 곳에 있지 않다. 아파트 단지 상가 영세한 세탁소 자영업자도 숨은 장인이다. 이들의 평균 연령은 50대 이상. 수십 년간 한자리를 지키면서 아이 교복부터, 어머니 코트, 아버지 정장까지 다양한 의류가 그의 손을 거쳐 간다. 하지만 공장식 체인점 세탁소가 많아지면서 폐업 위기에 놓인 자영업자도 많다.

이런 세탁 장인을 소비자와 연결한 기업이 있다. 세탁 플랫폼 기업 ‘리화이트’다. 리화이트는 고객에게 세탁 주문을 받아 세탁소에 전달해주는 서비스를 제공한다. 현재 실력이 검증된 수도권 420곳의 세탁소와 제휴한 상태. 세탁 장인들은 매출이 이전보다 배로 늘었다고 말한다.

숨은 장인이 정보기술(IT)과 결합하면서 재조명되고 있다. 애플리케이션(앱)으로 공급자와 수요자를 연결하는 온라인 플랫폼 기업이 장인을 발굴하고 있기 때문이다. 장인은 전통 산업에 오랜 기간 몸담았지만, 수입이 불규칙한 경우가 많다. 이 때문에 폐업 위기를 겪는 장인이 많다. 하지만 온라인 플랫폼 덕분에 판로를 마련하며 재도약하고 있다.

그간 ‘IT’과 ‘장인’은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었다. 오히려 장인의 수입이 감소한 이유가 기술 발전과 관련 있었다. 기술이 발전하면서 제조·서비스 방식이 자동화했고, 장인의 정성 어린 수작업은 생명력을 잃었다. 공산품에 밀려 장인의 고유 상품은 설 곳이 사라졌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최근 장인이 기술의 힘을 빌려 다시 ‘장인의 시대’를 재건하고 있다.

미국 IT 기업 아마존도 장인 빛내기에 일조하고 있다. 아마존은 전 세계 판매자에게 온라인 쇼핑몰 아마존닷컴 입점 기회를 제공한다. ‘아마존 글로벌셀링’에 판매자로 등록하고 절차를 따르면 3억여 명의 고객에게 물건을 팔 수 있다. 재야에 숨어 있던 장인이 세계 시장을 상대로 솜씨를 뽐낼 기회가 생기는 것이다. 돌솥이나 양은냄비와 같은 한국의 전통 생활용품도 아마존에서 주목받고 있다.

아마존닷컴에서 가장 큰 성과를 거둔 장인은 영주대장간의 석노기(66) 대표다. 그는 14세부터 대장간에서 배운 기술로 호미를 만들었다. 50년 넘게 한 우물만 팠지만 중국산 호미가 시장에 보급되면서 사업이 위기를 맞기도 했다. 이런 고민은 아마존닷컴에서 호미를 팔기 시작하면서 해결됐다. 원예가 취미인 미국인 소비자에게 호미가 ‘대박’ 상품으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급기야 2018년 중순 ‘가드닝(gardening·원예)’ 부문 판매 순위 톱 10에 올랐다.

온라인에서 이름값을 알려 장인의 명맥을 이어 나갈 수 있었다. 석 대표에게 젊은 후계자가 생긴 것. 해군 중사 출신 황덕환(28)씨는 유튜브에서 영주대장간 호미의 아마존 진출 소식을 접했다. 이후 고속버스를 타고 무작정 영주대장간을 찾아간 황씨는 석 대표에게 “돈을 받지 않겠다. 잠자리도 알아서 해결하겠다”며 제자로 받아달라고 했다고 한다. 현재 그는 호미 기술의 기본부터 다지고 있다.

국내에서는 수공예 플랫폼 기업 아이디어스가 장인의 값어치를 높이고 있다. 아이디어스는 ‘장인 전용’ 온라인 쇼핑몰이다. 장인들은 아이디어스의 앱과 웹에 기업 홈페이지를 만들고 상품을 올린다. 직접 만든 액세서리, 가방, 비누와 같은 수공예품이 주요 판매품이다. 2020년 1월 기준 입점 장인은 1만4000여 명, 등록된 작품은 20만여 종에 달한다.

아이디어스가 장인을 검증하는 작업은 까다롭다. 보통 온라인 플랫폼에 익숙한 젊은 장인은 아이디어스에 가입을 신청한다. 2014년 아이디어스 설립 초기 당시 가입 승인율은 10%에 불과했다. 최근에는 이 비율이 30%대로 유지되고 있다. 가입 이후 장인은 고객과 1 대 1 대화, 스토리 채널 등을 통해 피드백을 받고 품질을 관리한다.

아이디어스가 숨은 장인을 직접 발굴하기도 한다. 아이디어스가 연령대가 높은 장인에게 직접 연락을 취해 입점을 권하는 것이다. 입점이 성사되면 아이디어스 직원의 맨투맨 지원이 이뤄진다. 직원들은 온라인 판매 플랫폼의 성격에 맞춰 콘텐츠 관리를 돕는다. 수수료를 절감하고 1+1 행사를 제안하면서 입소문 마케팅을 권하기도 한다. 장인은 자연스럽게 현대식 마케팅 방법을 배운다.


1 아이디어스에서는 매주 한 명씩 작가(장인)를 소개하는 콘텐츠를 올린다. 사진 아이디어스 캡처 / 2 아이디어스에서 판매하고 있는 남성 수제화. 사진 아이디어스 캡처 / 3 임산부 맞춤형 서비스 기업 ‘더케어컴퍼니’는 지난해 손남경(60)씨를 대표로 영입했다. 손 대표는 산후조리원 업계에서 30년 가까이 실력을 쌓았다. 사진 더케어컴퍼니
1 아이디어스에서는 매주 한 명씩 작가(장인)를 소개하는 콘텐츠를 올린다. 사진 아이디어스 캡처
2 아이디어스에서 판매하고 있는 남성 수제화. 사진 아이디어스 캡처
3 임산부 맞춤형 서비스 기업 ‘더케어컴퍼니’는 지난해 손남경(60)씨를 대표로 영입했다. 손 대표는 산후조리원 업계에서 30년 가까이 실력을 쌓았다. 사진 더케어컴퍼니

장인 경영진은 숨은 장인 발굴하는 구심점

숨겨진 장인이 주목받으면서 스타트업 업계에서는 장인 대표를 영입하려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컴퍼니빌더(사업 아이디어를 발굴해 스타트업을 설립하고 육성하는 기업)인 더시드그룹은 임신·출산 사업에 진출하면서 숨은 장인 대표를 수소문했다. 보통 젊은 세대의 스타트업 경영진을 찾는 것과 달라진 분위기다.

그렇게 지난해 출범한 임산부 맞춤형 서비스 기업 ‘더케어컴퍼니’는 37년 경력의 여성 병원 행정 전문가 손남경(60)씨를 대표로 영입했다. 손 대표는 산후조리원 업계에서 30년 가까운 경력을 쌓았고 현재 대한분만병원협회 사무총장직을 역임하고 있다. 더케어컴퍼니는 산후조리, 임신, 출산, 육아 서비스를 제공하는 시설을 소비자와 연결해주는 플랫폼이다.

장인 경영진의 장점은 네트워크 구축에 있다. 장인 경영진은 플랫폼과 제휴할 또 다른 장인을 발굴하기 수월하다. 이미 알고 있는 인적 네트워크를 동원해 좋은 서비스를 제공하는 시설을 찾을 수 있기 때문. 이 과정에서 소비자에게 잘 알려지지 않았던 장인이 입소문을 타고 인기를 얻을 수 있다.

직접 스타트업 업계를 찾아간 인물도 있다. 웨딩 업계에 19년 동안 몸담았던 김종길(49)씨는 직접 웨딩 스타트업 다섯 곳의 문을 두드렸다. 웨딩 업계의 투명하지 않은 가격 체계, 불편한 고객 관리 시스템 등에 한계를 느꼈기 때문이다. 2014년 직접 웨딩홀 예약 사이트를 만들었지만 자본과 기술력이 따라주지 않았다. 결국 그해 그는 스타트업 웨딩북에 이사직으로 입사했다.

김씨의 합류 이후 웨딩북은 웨딩 업계 장인을 플랫폼에 입점시키기가 한결 수월해졌다. 웨딩홀, 드레스 매장, 메이크업, 혼수·예물·한복 시장에 내로라하는 장인이 김 이사와 이미 구면이기 때문이었다. 김 이사는 이들에게 전자 경영 시스템을 보급하면서, 장인의 혁신에 힘쓰고 있다.

‘다시 장인이다’를 집필한 장원섭 연세대 교육학과 교수는 “초연결 사회에선 묵묵히 일해 나가면서 결과물을 만든 사람이 과거에 비해 잘 드러난다”면서 “관심 분야의 장인을 IT 플랫폼을 통해 찾아내는 일이 훨씬 수월해졌고, ‘글로벌’ 단위의 연결도 가능해졌다”고 했다.


plus point

[Interview] ‘유기농 비누 장인’ 신동걸 고은재 대표
“아이디어스 입점 후 매출 6배 늘어”

2월 18일 서울 북아현동에 있는 비누 공방 ‘고은재’에서 만난 신동걸 대표. 오른쪽은 숙성 중인 대나무통 비누. 사진 김소희 기자·고은재
2월 18일 서울 북아현동에 있는 비누 공방 ‘고은재’에서 만난 신동걸 대표. 오른쪽은 숙성 중인 대나무통 비누. 사진 김소희 기자·고은재

2월 18일 서울 북아현동 골목길. 낮게 늘어선 기사식당 사이로 낡은 5층 빌딩이 자리 잡고 있다. 이 건물 2층으로 올라가 ‘삐걱’ 문을 여니 전혀 다른 세상이 펼쳐졌다. 한약재 내a음과 같은 허브향이 가장 먼저 문 앞에 나와 반겼다. 이어서 벽면을 둘러싼 나무 선반에 빽빽이 진열된 유리병이 눈에 띄었다. 유리병에는 석류, 어성초 등 허브가 담겨 있었다.

‘이코노미조선’이 수공예 플랫폼 아이디어스에서 ‘대박’ 매출을 올린 ‘유기농 비누 장인’ 신동걸(63) 고은재 대표를 찾았다. 신 대표는 ‘오래된 향이 흐르는 공방’이라는 뜻의 비누 공방 ‘고은재’에서 2007년부터 13년간 수제 비누 제작에 몰두했다. 그가 연구해서 판매하는 비누가 100종이 넘는다. 투박하고 거칠게 뭉쳐진 비누에는 저마다 고유 제조법이 있다. 대표 상품은 대나무통에 10년 내외로 숙성시킨 ‘대나무통 비누’로 2011년 일본 NHK, 후지TV에 소개될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신 대표의 사업이 탄탄대로만은 아니었다. 2010년 ‘관광 거점’ 서울 인사동 쌈지길에 매장을 열었지만, 2015년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가 유행하면서 관광객이 크게 줄어 판매가 되지 않았다. 모든 비누 연구 활동이 당시 중단될 위기를 맞았다.

변곡점은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찾아왔다. 2017년 수공예 플랫폼 기업 아이디어스에서 연락이 왔다. 아이디어스에서 숨은 장인을 발굴해 온라인 쇼핑몰에 입점시키던 시기였다. “나이가 있는 만큼 처음엔 온라인 쇼핑몰이 못 미더웠습니다. 담당자가 ‘한 번 해보자’고 설득해서 뛰어들어봤어요.”

이후 쇼핑몰에서 랭킹 10위 안에 이름을 올렸다. 인사동 매장에서 전성기 하루 매출이 50만원이었는데, 아이디어스에서는 300만원까지 기록했다. 매출이 6배나 상승했다.

안정적인 수익 덕분에 연구 활동에 전념할 수도 있다. 최근에는 식물성 오일과 허브를 다양하게 조합해 최적의 품질을 내는 방법을 찾고 있다. 지하 1층 창고엔 이렇게 만들어서 대나무통에 묵히고 있는 비누만 수십 통에 달한다.

그의 장인정신은 재료의 ‘디테일’을 집요하게 파고드는 것. 수백 가지 재료로 한약 제조법을 기술한 ‘동의보감’과도 같다. 그는 실험할 재료가 너무 많은데 뒤늦게 깨달아 항상 아쉬움이 남는다고 했다. “비누는 식물성 오일, 잿물, 가성 소다가 주재료인데, 자세히 들어가면 그 안에서도 다양한 재료를 연구할 수 있어요. 물만 해도 해양심층수, 플로럴워터, 수돗물은 말할 것도 없고 종류가 매우 많죠.”

그에게 언제까지 비누 공방을 운영할 거냐고 물었다. “일이 재미없어질 때까지요. 즐기는 사람이 노력하는 사람을 못 이긴다고 생각합니다. 아직은 일이 재밌어서 아침에 눈 떠서 밤에 눈 감을 때까지 비누 생각뿐이에요.”

김소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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