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채승우 객원기자
사진 채승우 객원기자

“여름엔 장어를 잡고 겨울엔 문어를 잡았어요. 배에 PC용 스피커를 달고 트로트를 들으면서 일했는데 덕분에 힘들다고 생각하지 않았던 것 같아요.”

뽀얀 얼굴, 조곤조곤한 말투의 박서진은 영락없이 곱게 자란 도시 청년의 모습이다. 최근 10㎏ 넘게 체중을 감량해서인지 고생이라고는 해본 적 없는 도련님 이미지가 더 강해졌다.

그런 그가 덤덤하게 털어놓는 어린 시절은 고운 외모와 달리 상처투성이였다. 그는 암에 걸린 어머니를 대신해 고등학교를 중퇴하고 아버지와 뱃일을 했다. 운이 좋아 방송을 타고 열여덟의 나이에 트로트 가수로 데뷔했지만, 크게 성공하지 못했다. 자신만의 차별점을 만들겠다며 장터에서 각설이들과 장구를 치며 노래를 불렀다. 고단한 시간의 연속이었지만 트로트 가수의 꿈은 끝까지 놓지 않았다.

긴 터널을 지나온 박서진은 오늘날 ‘트로트계의 아이돌’ ‘남자 송가인’ 등 화려한 수식어구가 따라붙는 톱스타로 우뚝 섰다. 2013년 데뷔 때부터 그의 진가를 알아본 사람들이 꾸준히 팬으로 유입됐고, 이제는 어마어마한 팬덤(열성 팬)으로도 유명세를 치르고 있다. 그가 공연을 더 많이 다닐 수 있게 팬들이 십시일반으로 돈을 모아 차를 사준 것이 대표적이다. 지난해 12월 열린 단독 콘서트는 예매 시작과 동시에 전 회차 전석이 매진됐다. 박서진의 공연이 열리는 곳에는 45인승 버스 20대가 팬을 실어나른다.

그는 현재 MBC에브리원의 ‘나는 트로트 가수다’의 초대 우승자로 조명을 받고 있고, 농림축산식품부 홍보모델로 노인을 위한 건강 체조송을 부르는 등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정상급 인기를 구가하며 대세로 부상한 박서진을 2월 21일 서울 광화문 조선일보 사옥에서 만났다.


어릴 적 트로트에 관심을 두게 된 계기는.
“동네가 시골이다 보니 나오는 노래가 전부 트로트였다. 나도 모르게 트로트에 익숙해졌고, 그 노래를 들고 ‘전국노래자랑’에 나갔다. 반응이 좋아서 그때부터 가수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지나고 생각해보면 음악에 많은 장르가 있는데 난 트로트라는 한 장르밖에 몰랐던 것 같다.”

유년 시절에 대해 말해 달라.
“동네에 노래 잘하는 애로 알려졌고 트로트 가수의 꿈을 막연히 꾸고 있었다. 그러던 중 엄마가 자궁경부암 3기 판정을 받았다. 당시 아빠와 엄마가 함께 어업에 종사했는데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고등학교를 중퇴하고 아빠를 따라 배를 탔다. 여름엔 장어를 잡고 겨울엔 문어를 잡았다. 자고 일어나면 그물에 미끼를 달고 또 건져 올리고 그다음엔 팔아야 하고, 힘들 시간이 없었다.”

트로트 가수의 꿈을 꿀 여력이 없었을 것 같다.
“무조건 트로트 가수가 돼야 한다고 생각했다. 뱃일하면서도 스피커를 사서 달아놓고 트로트를 계속 들었다. 트로트 덕분에 힘들지 않았던 것 같다.”

팬클럽의 활동이 상당히 화제다.
“원래 타고 다니던 차가 2년 정도 됐는데 행사가 하도 많다 보니 주행 거리가 20만㎞가 넘었다. 자주 고장이 나서 행사에 지각한 적이 많았는데, 팬분들이 ‘우리 가수를 지켜야 한다, 저 차를 계속 타고 다니다가 죽으면 우리의 활력소가 없어진다’면서 십시일반으로 돈을 모아 카니발 하이 리무진을 선물해주셨다.”

수입이 많이 늘었다는 얘길 한 적이 있는데.
“예전에 쌀 한 바가지를 받았다면 지금은 포대를 받고 간다. 수입이 열 배, 스무 배는 뛴 것 같다. 부모님 집을 사드리고 싶다. 그동안 지붕에서 물이 새고 담이 무너지고 바퀴벌레가 나오고, 심지어 집세를 못 내 한 달에 수차례 이사를 하기도 했다. 빚쟁이들 때문에 부모님이 숨어지내셨고 전기와 수도가 끊겼다. 우리 집이 꼭 갖고 싶어서 통장에 차곡차곡 모으고 있다.”

박서진에게 트로트란.
“등산 같은 거다. 한 계단 한 계단 올라가다 보니 처음엔 힘들었는데 중간쯤 오니 풍경도 좋고 공기도 좋고, 정상이 궁금해지고. 그런 등산을 하다 보니까 정말 잘했다는 생각도 들고. 복합적인 생각이 든다.”

가장 공감이 가는 트로트 곡을 꼽는다면.
“‘밀어밀어(박서진 첫 싱글앨범 타이틀곡)’다(웃음). 가사 중에 ‘힘없으면 무시하고  백 있으면 사랑받고 참새마저 무시하는 허수아비 같은 세상’이라는 부분이 있는데, 현대사회와 잘 맞지 않나. 아직 그런 사랑을 겪어본 건 아니다.”

모태솔로임을 최근 방송에서 밝혔는데 이상형은 누구인가.
“나와 반대되는 성격이 좋다. 털털하고 재밌고 같이 있으면 시간 가는 줄 모르는 사람. 김신영씨 같은 분이 좋다.”

앞으로는 어떤 가수가 되고 싶나. 롤모델이 있다면.
“누구를 롤모델로 삼은 적이 없다. 내가 역사를 새롭게 다시 쓰고 싶다. 그런 큰 꿈을 건방지게 꾸고 있다. 앞으로 오래오래 남는 가수가 되고 싶다.”

올해 계획은.
“새로운 앨범으로 찾아뵐 것이다. 사람들이 많이 공감할 수 있는 노래를 만들어 쉽게 따라 부를 수 있게 하는 게 목표다. 또 올해는 전국 곳곳을 돌아다니며 순회 콘서트를 열 예정이다.”

김유정 기자, 구정하 인턴기자

  • 목록
  • 인쇄
  • 스크랩
  • PDF 다운
ⓒ 조선경제아이 & economy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