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조선 ‘내일은 미스터트롯’의 한 장면. 참가자들이 정장을 입고 트로트를 부르고 있다. 사진 유튜브
TV조선 ‘내일은 미스터트롯’의 한 장면. 참가자들이 정장을 입고 트로트를 부르고 있다. 사진 유튜브

최미연(27·가명)씨는 최근 TV에서 ‘폴댄스 트로트’를 접하고 깜짝 놀랐다. TV조선의 트로트 서바이벌 프로그램 ‘내일은 미스터트롯(이하 미스터트롯)’에서 20~30대 남자 트로트 가수가 폴댄스를 추면서 노래를 부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트로트에 관심이 없었지만, 호기심에 이전 회를 모두 챙겨봤다.

방송을 보면서 ‘원 픽(one pick·제일 좋아하는 사람)’도 생겼다. 태권도 트로트로 알려진 나태주가 좋아지기 시작했다. 아이돌 그룹 출신인 나태주는 방송에서 태권도 동작의 춤과 함께 ‘무조건’을 불렀다. 최씨는 “태권도 트로트뿐만 아니라 양복 입고 노래를 부르는 그의 모습이 인상적”이라면서 “그가 본업으로 돌아가도 트로트를 부르는 모습을 보고 싶다”고 했다.

트로트가 새로운 장르를 써 내려가고 있다. 젊은 세대에게 트로트는 흔히 50대 이상 중장년 가수가 반짝이 의상을 입고 나와 구성진 가락을 뽐내는 형식으로 인식됐다. 최근 기존 형식과 고정관념을 파괴하는 창의적인 무대가 나오면서 트로트의 인기가 되살아나고 있다.


‘올드’와 ‘뉴’의 만남…장르 새로 쓰다

인기의 핵심은 신구(新舊)의 조화다. 트로트의 원숙한 음색은 살리면서 무대의 부차적인 부분을 현대식으로 조합하는 것이다. 가요계의 뉴트로(새로움(new)과 복고(retro)를 합친 신조어)인 셈이다.

가수 요요미의 인기가 대표적이다. 요요미는 1994년생으로 아이돌 못지않은 하얀 피부와 큰 눈이 인상적이다. 그런 그가 미간을 찌푸리며 한의 감정을 담아 조용필의 ‘돌아와요 부산항에’, 심수봉의 ‘백만 송이 장미’와 같은 트로트를 부른다. 반전 매력에 그의 유튜브 구독자는 23만 명에 달한다.

독일 가수 로미나도 ‘외국인 트로트 가수’로 인기를 끌고 있다. 2009년 한국외대 교환학생으로 한국과 연을 맺은 로미나는 1980년대 트로트를 소화한다. 그의 애창곡은 이미자의 ‘동백 아가씨’. 그는 4개월 전부터 자신의 유튜브 계정에 어쿠스틱 기타를 치면서 방미 ‘올가을엔 사랑할 거야’, 혜은이 ‘감수광’을 부른 영상을 올렸다.

급기야 애니메이션과 트로트 곡의 조합도 생겼다. 최근 김연자의 ‘쑥덕쿵’에 애니메이션 헬로카봇의 토끼 캐릭터를 더해 만든 뮤직비디오가 김연자 유튜브 채널에서 164만 회, 원더케이 채널을 통해 25만 회 열람을 기록했다. 콘텐츠를 만든 초이락컨텐츠팩토리는 “애니 캐릭터를 이용한 뮤직비디오가 트로트와 거리가 먼 어린이 시청자를 사로잡았다”고 분석했다.


‘예능·유튜브·스트리밍 앱’ 젊어지는 트로트 플랫폼

이용자가 젊어지는 만큼 트로트가 서는 무대도 현대화했다. 과거 트로트의 단골 무대는 이른바 ‘밤무대’ 나이트클럽이었다. 이외에는 지역 공연이나 고전 프로그램이 전부였다.

이젠 트로트가 방송계 중심 콘텐츠로 떠올랐다. ‘미스터트롯’ 최고시청률은 30.4%를 기록했고, 개그맨 유재석이 트로트 신인 가수 ‘유산슬’로 데뷔한 MBC 예능 프로그램 ‘놀면 뭐하니?’도 인기를 끌었다. MBC에브리원에는 ‘나는 트로트 가수다’라는 가수 서바이벌 프로그램이 편성됐고, MBC 예능 프로그램 ‘편애중계’에선 어린이 트로트 가수를 발굴하는 코너가 진행 중이다.

유튜브에서도 트로트 콘텐츠가 대세다. 가수 홍진영은 유튜브 개인 계정을 운영하면서 트로트를 알린다. 일상 영상뿐만 아니라 신곡 공개도 이곳에서 이뤄진다. 유튜브 구독자는 60만 명에 달한다. 가수 주현미도 지난해 유튜브 채널을 개설하고 트로트를 부르는 영상을 주기적으로 올리고 있다. 주현미는 영상 게시 글에 노래와 가수를 다섯 문단 이상으로 설명하면서 젊은 세대가 옛 노래를 이해하도록 돕고 있다.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CD로 유통되던 트로트는 옛말이다. 음악 스트리밍 애플리케이션(앱)에서도 트로트 인기가 높아지고 있다. 지니뮤직에 따르면, 트로트 인기는 1년 새 5.8배 상승했다. 트로트 열풍이 시작된 2019년 2월부터 2020년 1월까지 지니 인기 순위 200위권과 전년(2018년 2월~2019년 1월) 대비 순위를 비교한 결과다.

멜론도 올해 2월 트로트 이용량(스트리밍 + 다운로드 수)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5배 늘었다. 멜론 관계자는 “멜론과 같은 스트리밍 앱을 이용하는 고객층은 주로 젊은 세대”라면서 “아직 절대적 이용량은 적지만, 트로트의 인기가 점점 높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노래방도 트로트가 주름잡는다

가요계의 인기 지표인 노래방 여론은 이미 트로트를 ‘대세’로 인정한다. ‘이코노미조선’이 2월 노래방 장비 업체 TJ미디어의 신곡 전체(181곡)를 분석한 결과 트로트는 49곡으로 27%를 차지했다. 노래방 업계에서도 트로트 신곡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트로트가 외면받던 때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다. 7년 전엔 노래방 업계에서 트로트를 신곡으로 등록하지 않아 트로트 가수들이 서울 등촌동 TJ미디어 사옥 앞에서 집회하기도 했다. 당시 전국연예예술인노조 소속 트로트 가수들이 “국민 정서 앞장선 성인가요(트로트) 천대가 웬 말이냐!”라면서 트로트 신곡 비율을 10%까지 늘려달라고 요구했다. 매달 트로트 입력 건수가 7%에 불과하던 상황이었다.

노래방을 자주 찾는 젊은 세대가 트로트 마니아를 자처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노래방에서 트로트곡을 자주 부른다는 김진명(28)씨는 “발라드나 힙합은 부르는 사람이 즐겁지만, 트로트는 듣는 사람까지 ‘떼창’을 하며 다 같이 놀 수 있다”면서 “최근 TV에 나온 노래는 특히 분위기를 띄우는 보증 수표다”라고 했다.

실제 신곡은 젊은 세대가 열광하는 서바이벌 프로그램 등재곡인 경우가 많다. 2월 TJ미디어 신곡 49곡 중 31곡(63%)이 ‘내일은 미스트롯’과 ‘미스터트롯’ 출연자의 노래로 구성돼 있다. 특히 ‘미스터트롯’ 출연자 임영웅의 노래가 4곡, 영탁의 노래가 2곡을 차지한다.

젊은 마니아층의 지원사격에 노래방 인기 차트에 트로트가 서서히 진입하고 있다. 가온차트에 따르면, 2018년 노래방 인기 순위 100위권에 트로트는 0곡이었지만, 2019년 1곡(홍진영의 ‘오늘 밤에’), 2020년 2곡(홍진영의 ‘오늘 밤에’, 유산슬의 ‘사랑의 재개발’)이 차트에 진입했다.


plus point

서양판 뉴트로 ‘컨트리송의 귀환’

한국에서 트로트가 열풍이라면, 서양에선 컨트리송이 귀환했다. 지난해 데뷔 앨범 ‘포니’를 발매한 컨트리송 가수 오빌 펙(Orville Peck)은 2019년을 자신의 해로 만들었다. 펙의 별명은 ‘얼굴 없는 가수’다. 그의 트레이드 마크는 ‘론 레인저’ 가면. 영화 론 레인저 주인공의 차림새처럼 카우보이모자와 검은 눈가리개를 쓰고 있다. 얼굴 하단은 기다란 실타래로 가린다. 그는 나이도 공개하지 않는다. ‘아마도 20대 이상 40대 이하’가 그의 신상 정보의 끝이다.

색다른 연출이지만 노래만큼은 모두가 공감할 만한 정서를 담는다. 자신을 퀴어(queer·성 소수자)라고 당당히 밝힌 그는 과거 한 인터뷰에서 “나의 음악은 외로운 사람과 사랑하는 사람 모두를 위한 것이다”라고 했다.

그의 신비주의 전략은 대중에게 통했다. 그는 ‘2019 폴라리스 뮤직 프라이즈’와 ‘2020 주노 어워드’의 수상 후보로 올랐다. 올해 미국 공연 투어도 계획하고 있다.

컨트리송과 힙합을 결합한 컨트리 랩의 선전도 돋보인다. 지난해엔 릴 나스 엑스(Lil Nas X)의 컨트리 랩 ‘올드 타운 로드(Old Town Road)’가 유행했다. 그의 노래가 중국의 동영상 플랫폼 틱톡에서 ‘이하우 챌린지(Yeehaw Challenge)’ 배경음악으로 유명세를 치렀다. 이하우 챌린지란 카우보이 복장을 하고 춤을 추는 영상을 올리는 유행으로, 카우보이가 내는 감탄사 ‘이하우’에서 이름을 따왔다. 급기야 2019년 4월 해당 노래는 빌보드 차트 핫 100, 1위를 차지했다.

김소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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