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바이러스 융합연구단에 참여하는 기관 중 한 곳인 한국파스퇴르연구소에서 연구원들이 코로나19 관련 연구를 하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신종 바이러스 융합연구단에 참여하는 기관 중 한 곳인 한국파스퇴르연구소에서 연구원들이 코로나19 관련 연구를 하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코로나 바이러스는 한 가닥으로 이뤄진 불안정한 RNA 바이러스인 까닭에 돌연변이를 쉽게 일으킨다. 사스(SARS·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모두 같은 코로나 바이러스를 기반으로 해도 인류를 위협하는 속도와 강도는 제각기 다른 이유다.

전 세계 과학자들은 이 변화무쌍한 코로나 바이러스를 개인의 힘으로 이겨낼 수 없다는 사실을 잘 안다. 이들은 각국의 연구 성과를 신속히 공유하고, 이를 활용한 후속 실험을 빠르게 추진하는 것만이 바이러스 정복의 꿈에 다가가는 유일한 길이라고 강조한다. 고도의 바이러스 분석 기술이 뒷받침돼야 하는 건 기본이다. 코로나19 위기의 돌파구를 마련하려는 과학계의 단합은 어떤 형태로 진행되고 있을까.

3월 4일 한국화학연구원으로부터 반가운 소식이 전해졌다. 이 연구원을 중심으로 뭉친 신종 바이러스 융합연구단이 코로나19 치료에 쓸 수 있는 항체들을 찾아냈다고 발표한 것이다. 연구단은 사스의 중화항체(바이러스의 독성을 없애주는 항체) 5종과 메르스의 중화항체 6종을 선정한 다음 이 항체들을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의 스파이크 단백질과 결합하는 실험을 진행했다.

스파이크 단백질은 코로나 바이러스의 세포 침입을 돕는 단백질이다. 만약 어떤 중화항체가 스파이크 단백질과 결합해 안정적인 구조를 보인다면, 그 항체는 치료 물질로서 큰 가능성을 지녔다는 의미다. 중화항체와 강하게 묶인 스파이크 단백질이 제 역할을 못 하면 코로나 바이러스도 세포 침투 능력을 상실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연구단은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통해 11종의 중화항체를 스파이크 단백질과 합쳐본 결과, 사스 항체 2종(CR3022·F26G19)과 메르스 항체 1종(D12) 등 총 3종의 항체가 가장 우수한 결합 능력을 갖추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연구단 측은 “이번 성과가 코로나19 치료제 개발을 앞당기는 데 기여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런데 여기서 궁금증이 생긴다.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하려면 단백질의 정확한 구조부터 알아야 하는데, 연구단은 이제 막 세상에 등장한 코로나19 바이러스 스파이크 단백질의 구조 정보를 어디서 어떻게 구해 실험에 곧바로 적용할 수 있었을까.

비결은 미국 콜드스프링하버연구소가 운영하는 ‘바이오아카이브(bioRxiv)’였다. 바이오아카이브는 출판 전 논문 공개 사이트다. 과학자들은 자신의 연구 결과를 ‘네이처’나 ‘사이언스’ 같은 국제 학술지에 싣기 전 바이오아카이브에 올려 전 세계 동료 과학자의 평가·의견·반박 등을 수집할 수 있다. 동료 입장에서는 다른 이의 의미 있는 연구 성과를 신속히 접하고, 거기서 새로운 아이디어를 포착해 후속 연구에 나설 수 있다.

이번에 한국 연구단이 사용한 스파이크 단백질 구조는 미국 텍사스대와 미국 국립알레르기감염병연구소(NIAID) 공동 연구팀이 지난달 발견한 것이다. 미 연구진은 극저온전자현미경(Cryo-EM)으로 스파이크 단백질 구조를 파악한 뒤 해당 정보를 2월 15일 바이오아카이브에 선공개했다. 국내 연구단은 이를 보자마자 미국에 연락해 필요한 자료를 얻었다.

해당 성과가 국제 학술지 ‘사이언스’에 소개된 건 2월 19일이다. 즉 바이오아카이브라는 플랫폼 덕에 한국 연구단은 실험 시작 시점을 나흘이나 앞당긴 셈이다. 사이언스에 따르면 올해 2월 마지막 주 학술 저널에 게재된 코로나19 관련 논문은 261편이다. 그런데 바이오아카이브 등의 출판 전 논문 공개 사이트에 등록된 논문은 같은 기간 283편에 달했다.

바이오아카이브만 ‘공유의 장’ 역할을 하는 건 아니다. 우리가 평소 즐겨 사용하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도 과학자들에게 훌륭한 소통의 도구가 되고 있다. 미국 위스콘신 국립영장류연구센터의 데이브 오코너와 톰 프리드리히 연구원은 1월 22일(현지시각) 기업용 메신저 서비스 ‘슬랙’에 수십 명의 과학자 동료를 초대했다. 코로나19 극복을 위한 공동 연구를 제안하기 위해서였다.

두 초대자는 슬랙의 이 공간 명을 유명 힙합 그룹 ‘우탱 클랜’의 이름을 흉내 내 ‘우한 클랜’으로 지었다. 우한 클랜 연구자들은 현재 각자의 코로나19 관련 실험 내용을 슬랙에 실시간으로 업로드하고, 다른 동료의 게시물에는 댓글로 의견을 내면서 활발히 소통하고 있다. 프리드리히는 “실험 현황을 공유하면 중복 연구가 줄어드는 효과도 누릴 수 있다”고 했다.


넥스트스트레인(Nextstrain)은 코로나19 확진자의 바이러스 게놈 정보와 감염 경로 등을 시각적으로 보여준다. 사진 넥스트스트레인
넥스트스트레인(Nextstrain)은 코로나19 확진자의 바이러스 게놈 정보와 감염 경로 등을 시각적으로 보여준다. 사진 넥스트스트레인

연구 공유 살리는 게놈 해독

전문가들은 풍성한 데이터베이스를 자랑하는 세계보건기구(WHO)의 ‘인플루엔자 감시망(GISAID)’도 최근 코로나19 연구 공유 열기를 뒷받침하는 동력이라고 분석한다. 인플루엔자 감시망은 전 세계 과학자가 각종 바이러스 게놈 정보를 공유하는 창고다. 인플루엔자 감시망은 ‘넥스트스트레인(Nextstrain)’이라는 시각화 툴을 통해 코로나19 확진자의 바이러스 유전자 염기서열 정보와 감염 경로 등을 일목요연하게 보여준다.

세계 최대 유전자 분석장비 기업 일루미나 등이 기술 진보를 통해 2000년대 초 1만달러에 이르던 인간 유전자 분석 비용을 1000달러 아래로 낮춘 점도 세계 각지의 코로나19 바이러스 게놈 분석 활성화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김태형 테라젠이텍스 바이오연구소 수석연구원은 코로나19 확진자의 바이러스 게놈 정보를 빠르게 해독하고 공유하는 일이 각국 정부의 방역 대책 수립에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를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정부가 확진자 50명을 상대로 감염 경로를 추적한다고 칩시다. 게놈을 해독하지 않으면 진술에 의존해야 해요. 문제는 확진자의 진술이 100% 정확하지 않다는 점이죠. 반면 게놈 정보는 거짓말을 하지 않습니다. A가 B로부터 감염됐다면, 두 사람 바이러스의 게놈 정보에는 공통점이 반드시 있어요. 이보다 더 정확한 감염 경로 추적 방법은 없습니다.”

전준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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