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굴에 매달려 있는 박쥐들.
동굴에 매달려 있는 박쥐들.

2002년 경기도 파주시에서 젖소 목장을 경영하면서 생우유를 섭취한 남성(당시 41세)이 ‘브루셀라증’에 감염됐다. 국내에선 1939년 일본인 감염 이후 두 번째로 인간이 브루셀라증에 걸린 사례였다. 브루셀라증은 동물이 보유한 브루셀라균에 사람이 감염되는 인수공통감염병(동물과 사람 사이에 상호 전파되는 병원체에 의해 발생되는 전염병)이다.

비슷한 시기 ‘소 브루셀라증’에 감염된 소도 급격히 늘면서 감염 인구가 늘었다. 2003년 전라북도 정읍에서 소 브루셀라증이 발생했고, 살처분한 소와 접촉한 사람 가운데 4명이 브루셀라증 감염자로 나타났다. 2006년 브루셀라증 감염자는 215명까지 늘었다. 같은 기간 감염된 소의 수도 비슷한 속도로 증가했다.

하지만 현재는 브루셀라증도, 소 브루셀라증도 국내에서 발병률이 ‘0’에 가깝다. 그 뒤에는 유관 부처의 노력이 숨어 있다. 2004년 농림축산식품부가 도축 가능 요건으로 소 브루셀라증 감염 여부를 확인하는 소 브루셀라증 증명서를 규정했기 때문이다. 2008년부터는 모든 농장의 1세 이상 암소와 거래 대상인 모든 소는 소 브루셀라증 검사를 받아야 한다.

국내 브루셀라증 대처 사례는 현재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에 교훈을 준다. 동물에서 전염되는 인수공통감염병을 예방하기 위해선 동물 건강 관리가 중요하다는 점이다. 신종 감염병의 70%가 인수공통감염병으로 보고되는 현재, 인간의 건강은 동물의 건강과 직결된다.

‘인간의 건강=동물의 건강’을 주장하는 개념이 바로 ‘원 헬스(One Health)’다. 원 헬스는 더욱 엄밀히 정의하면 인간과 동물을 비롯해 이들이 살아가는 환경까지 건강해야 한다는 삼각 체계다. 원 헬스는 1855년 독일 의사 루돌프 피르호(Rudolph Virchow)가 인수공통감염병이란 단어를 만들고, 1984년 수의역학자 캘빈 슈바베(Calvine Schwabe)가 동물과 인간 의약품을 통합하는 ‘원 매디슨(One Medicine)’을 주장한 것이 효시다. 2003년 수의학자 윌리엄 카레쉬(William Karesh)가 처음으로 원 헬스 용어를 사용하면서 개념이 정립됐다.

특히 2003년 사스(SARS·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 충격으로 원 헬스 개념을 정립한 국가가 많다. 영국 정부는 2004년 HAIRS(인간 동물 감염과 위험 감시) 그룹을 설립하고 원 헬스 정책을 시행했다. 현재 공공보건국, 농식품환경부 등 12개 정부부처와 정부기관이 참여해 인수공통감염병의 위험이 있는 현상을 집중 모니터링하는 업무를 담당한다.

국내에선 보건복지부가 2018년 ‘제2차 감염병 예방관리 기본계획(2018~2022)’에 ‘원 헬스 기반 협력체계를 구축한다’는 내용을 포함했다. 각 부처가 보유한 전염병 감시 정보를 공유하는 내용이다. 미국, 프랑스, 스웨덴, 태국, 캐나다 등 여러 국가도 원 헬스를 전면에 내세운 유관 기관을 만들었다.


야생동물 공동 연구로 위험 바이러스 추적

각국 정부와 비영리단체가 추진하는 대표적 원 헬스 정책은 ‘공동 연구’다. 특히 야생동물에서 전염되는 인수공통감염병이 증가하면서 전 세계적인 야생동물 바이러스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브루셀라증과 같은 세균성 질환은 사후 관리로 해결 가능하지만, 변이가 심한 바이러스성 질환은 백신과 치료제 개발이 더뎌 예방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미국에선 글로벌 바이롬 프로젝트(GVP)가 진행되고 있다. 프로젝트를 지원하는 비영리단체 ‘에코헬스 얼라이언스(EcoHealth Alliance)’ 소속 의사 피터 다삭(Peter Daszak)은 “에볼라의 비밀을 밝혀내기 위해 현재 중국, 태국 등에서 박쥐와 설치류, 영장류, 물새 등을 대상으로 한 초기 연구를 시작했다”고 말했다.

연구진은 그동안 예비 연구를 통해 1000여 종의 바이러스를 찾아냈다. 전 세계 바이러스가 160만 종(추정치)에 이른다는 점을 고려하면 갈 길이 멀지만, 바이러스 데이터를 사전에 축적해나가는 것이 핵심이다. 인간이 신종 바이러스에 감염된 이후에는 인명 피해가 뒤따르고 바이러스 구조를 정밀 연구하는 데도 오랜 시간이 걸린다.

중요한 지점은 의료·수의·환경보건학자가 협력하는 것. 환경보건학자가 전염이 일어나기 쉬운 위험 지역을 특정하고, 바이러스를 발견하면 의료학자와 수의학자가 각각 인간과 동물에게 해당 바이러스가 어떤 영향을 미칠지 연구하는 방식이다.

유럽질병통제예방센터(ECDC)도 38곳의 식품·동물·의료 유관 기관을 연결하는 원 헬스유럽공동프로그램(OHEJP)을 운영하고 있다. 마찬가지로 의료·수의학·환경보건학자와 기관이 공동 연구를 진행할 수 있도록 연구실을 조성했다.

국내에선 한국생명공학연구원(생명연)에서 2015년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 발생 이후 원 헬스 방식의 연구를 시작했다. 연구 대상은 사스, 메르스, 코로나19의 공통 바이러스인 ‘코로나 바이러스’다. 코로나 바이러스는 알파, 베타, 감마, 델타 총 4가지 속(屬)으로 분류되는데 이 중 인간에게도 전염되는 바이러스는 알파와 베타다. 두 바이러스는 모두 박쥐에서 유래했다고 알려졌다.

생명연은 국내 동굴에서 550개 이상의 박쥐 분변을 채취해 50종의 박쥐를 연구했다. 연구 결과 베타보다 알파 코로나 바이러스가 더 많이 검출됐다. 알파 코로나 바이러스는 아직 인간에게 저병원성 감기 증상만 유발한다. 사스, 메르스, 코로나19처럼 중증 폐렴을 일으키는 고병원성 질병은 베타 바이러스에 해당한다.

다만 안심할 수 없다. 정대균 생명연 박사는 2월 3일 대전 한국화학연구원에서 열린 ‘신종 바이러스 대응을 위한 정부출연 연구기관장 간담회’에서 “연구원이 2016년, 국내 박쥐에서도 메르스 유사 바이러스가 처음으로 검출됐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한 적이 있다”면서 “인수공통감염병의 위험이 점차 커지고 있는 만큼 감염병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해서는 환경과 동물을 함께 연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소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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