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26일(현지시각) 오후 새너제이에서 팰로앨토로 차를 몰고 가는 길. 오후 4시쯤부터 시작하는 실리콘밸리의 퇴근 러시를 앞두고 도로는 한산했다. 20여 분 후 마운틴뷰를 지나면서 ‘웨이모(Waymo)’의 자율주행차를 만났다. 실리콘밸리에 거주하는 지인이 “자율주행차를 보려거든 마운틴뷰로 가라”고 한 말이 떠올랐다. 반가운 마음에 웨이모 자율주행차를 따라갔다. 잠시 후 십자형 교차로를 건너자 우측 도로에서 또 한 대의 웨이모 자율주행차가 합류했다. 두 대의 웨이모 자율주행차는 머지않아 동선을 달리했고, 또다시 첫 번째 웨이모 자율주행차를 쫓다가 다다른 곳은 마운틴뷰에 있는 웨이모 본사였다. 자율주행차는 웨이모 본사를 끊임없이 드나들었고, 주차장에는 어림잡아 십여 대가 대기 중이었다. 마운틴뷰를 빠져나오기 전 또 다른 자율주행차와 마주쳤다. 이번에는 ‘뉴로(Nuro)’의 자율주행차였다. 뉴로 역시 마운틴뷰에 본사를 두고 있다. 실리콘밸리에서 차량 지붕에 불룩 튀어나온 라이다(LiDAR·빛을 이용해 거리와 속도 등을 판별하는 센서)를 달고, 회사 로고를 박은 자율주행차를 보는 일은 어렵지 않았다. 라이다가 없다면 자율주행차인 것을 모를 정도로 운전실력이 능숙했다.

실리콘밸리는 전 세계의 ‘자율주행 연구소’나 다름없는 곳이다. 캘리포니아주 차량등록국(DMV)은 허가제를 통해 자율주행차 및 시험주행을 관리하고 있다. 올해 2월 기준 DMV의 자율주행차 시험주행 허가를 받은 기업은 66곳이다. 이 기업들은 자율주행차 테스트 장소로 실리콘밸리를 선택했다. 운행 허가를 받은 자율주행차는 모두 769대에 이른다. 기업별 자율주행차 등록 대수를 보면 제너럴모터스(GM)의 자회사 크루즈(Cruise)가 233대로 가장 많고, 그다음은 웨이모 153대였다. 크루즈의 본사가 있는 샌프란시스코 지역을 운전하면 마운틴뷰의 웨이모 자율주행차만큼이나 자주 크루즈 자율주행차를 만날 수 있다. 이어 애플(Apple) 66대, 죽스(ZOOX) 58대, 뉴로 36대, 테슬라(Tesla) 32대 순이었다. 이 기업들만 봐도 실리콘밸리에서 자율주행 ‘플레이어’로 뛰는 기업의 스펙트럼이 광범위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DMV의 자율주행차 시험주행 허가를 받은 기업은 크게 △자율주행의 핵심 기술인 인식·판단·제어에 이르는 풀스택(full-stack·운영 시스템과 소프트웨어 전반을 다루는) 기술 스타트업 △라이다, 레이다(RADAR·전파를 이용하는 센서), 카메라 등 자율주행 센서 스타트업 △자율주행의 안전성을 높여주는 인프라 기술인 3D 고정밀 지도 스타트업 △자율주행을 활용하려는 모빌리티 서비스 기업 △완성차 및 부품 회사 △글로벌 정보기술(IT) 기업 등으로 나뉜다.

‘21세기의 금광’인 자율주행 시장은 기업이라면 놓치고 싶지 않은 시장이다. 게다가 자율주행 시장이 조만간 확장기를 맞이할 것으로 전망되면서 자율주행 시장에 뛰어드는 기업은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글로벌 시장조사기관 IHS마킷은 전 세계 자율주행차 판매가 2021년 5만1000대에서 2040년 3370만 대로 급증할 것으로 내다봤다. 시장 규모도 2020년 221조원에서 2035년 1348조원으로 늘어날 것으로 전망했다. 세계적인 경영 컨설팅 업체인 보스턴컨설팅그룹(BCG)은 2030년 미국에서 승객 이동 거리의 4분의 1을 자율주행차가 책임질 것이라고 분석했다.

자율주행 분야에서 선도 기업을 꼽으라면 단연 웨이모와 크루즈다. 웨이모와 크루즈라는 이름이 낯설다면 구글(웨이모의 자매회사)과 GM(크루즈 모회사)의 대리전이 자율주행 분야에서 펼쳐지고 있다고 생각하면 된다. 기술 수준과 연구·개발 투자, 시험주행 거리, 차량 대수 등 자율주행과 관련해 수치화할 수 있는 모든 지표에서 웨이모와 크루즈는 매번 1, 2위를 놓고 다툰다.


‘글로벌 톱2’ 웨이모와 크루즈

2018년 네비건트리서치가 집계한 자율주행 기술 종합 순위에서 크루즈가 1위, 웨이모가 2위에 올랐지만 1년 만인 2019년에는 순위가 뒤집혔다. 미국 IT 전문 매체 디인포메이션이 상위 30개 기업을 대상으로 2019년까지의 자율주행 연구·개발 투자액을 조사한 결과, 웨이모 35억달러(약 4조2000억원), 크루즈 30억달러(약 3조6000억원)가량으로 각각 1, 2위에 올랐다. 전체 투자액 160억달러(약 19조원) 중 40% 가까이가 웨이모와 크루즈 두 회사에 집중된 것이다. 또, 캘리포니아주 DMV가 밝힌 업체별 시험주행 거리도 웨이모(234만㎞)와 크루즈(134만㎞)가 가장 길었다. 웨이모의 시험주행 거리는 서울과 부산을 무려 3079번이나 왕복하는 것과 맞먹는다. 글로벌 톱2가 모두 실리콘밸리에 본사를 두고 있어 자율주행 업계 관계자들은 항상 실리콘밸리를 예의주시할 수밖에 없다.

최근 실리콘밸리발(發) ‘빅 뉴스’가 전해졌다. 주인공은 역시 웨이모와 크루즈였다. 일단, 웨이모는 처음으로 외부로부터 무려 22억5000만달러(약 2조7000억원)에 이르는 투자 조달에 성공했다는 소식이다. 웨이모는 그간 모회사 알파벳의 지원만 받았다. 이번 투자에 알파벳도 참여하지만, 실리콘밸리 벤처캐피털 앤드리슨 호로비치와 사모펀드 실버레이크, 자동차 유통 업체 오토네이션 등 외부 투자자가 대부분이다. 웨이모는 투자 유치 소식과 함께 15t 이상 자율주행트럭으로 운영하는 장거리 물류 서비스와 밴 차량으로 택배나 세탁물 등을 배송하는 자율주행 모빌리티 서비스 ‘웨이모 비아’, 비용을 줄이고 설계와 제조 공정을 단순화한 차세대 자율주행 하드웨어도 공개했다.

웨이모의 외부 투자 유치 소식이 전해진 바로 다음 날 크루즈 모회사 GM이 “2025년까지 전기차와 자율주행차에 200억달러(23조8000억원)를 쓰겠다”고 밝혔다. 크루즈에 돈이 더 투입된다는 뜻이다. 웨이모와 크루즈는 자율주행 시장 판도를 결정하는 기업이다. 그래서 두 회사를 보면 자율주행 시장을 알 수 있다. 투자와 모빌리티 서비스, 비용 등은 비단 두 회사뿐만 아니라 자율주행 업계의 화두다.


완전자율주행을 향한 질주

실리콘밸리 자율주행 기업에 막대한 돈이 흘러들고 있지만, 막상 돈을 버는 곳은 거의 없다. 아직 투자가 필요한 단계의 스타트업이 주를 이루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진정한 의미의 자율주행 시장이 열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자율주행 시장은 자동화 ‘레벨’에 따라 두 개로 나뉜다. 첨단 운전자 보조 시스템(ADAS)처럼 레벨3(조건부 자동화) 이하 기술을 상품화한 시장과 레벨4(고도의 자동화) 이상의 ‘완전’ 자율주행 기술을 파는 시장이다. 레벨3 단계는 제한된 환경에서 운전자의 개입이 필요하지 않은 수준을 말한다. 환경이 바뀌면 운전자가 운전대를 잡고 차량을 운전해야 할 수도 있다. 레벨4 단계부터는 차량이 운전을 주도하기 때문에 완전자율주행으로 분류되는데, 운전자의 개입 없이 차량이 스스로 경로를 설정하고 안전하게 운행하는 단계다. 사고 등 위험한 상황에서 차량은 운전자에게 경고하고 개입을 유도할 수 있지만, 운전자가 개입하지 않아도 차량은 스스로 정차하거나 위험 상황을 회피할 수도 있다. 가장 높은 레벨5 단계는 운전자가 개입할 필요가 전혀 없기 때문에 운전자가 탑승하지 않아도, 운전대가 없어도 된다.

실리콘밸리 자율주행 기업의 목표는 완전자율주행의 상용화다. 캘리포니아주에서 시험주행 하는 차량도 레벨4 이상의 완전자율주행차가 대부분이다. 완전자율주행을 구현하기 위해 라이다나 컴퓨팅 시스템(센서로 인식한 정보를 처리하는 장치)처럼 값비싼 장치가 탑재되기도 한다. 비용 문제 때문에 완전자율주행 시장 초기에는 개인이 아닌 모빌리티 서비스 기업 등을 대상으로 한 B2B(기업 간) 거래가 주를 이룰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다. 그런데 정작 캘리포니아주에서는 현지 제도 탓에 자율주행 모빌리티 서비스를 제공하고도 돈을 받을 수 없다. 게다가 완전자율주행차에 운전자 탑승을 의무화하면서 써야 하는 인건비도 적지 않다. 애리조나주에서 운전자가 없는 완전자율주행차 호출 서비스의 상용화를 허용한 것과 대조적이다. 이에 웨이모는 2018년부터 애리조나주 피닉스에서 ‘웨이모 원’이라는 로보택시(Robo Taxi·자율주행 기반 차량호출) 서비스를 운영하고 있다. 웨이모 원 이용 가격은 기존 차량공유 서비스 회사인 우버(UBER)나 리프트(lyft)와 비슷하다.


‘융합 기술’ 자율주행, 인재 풀 필수

캘리포니아주의 자율주행 관련 제도가 기업에 매력적이라고만 할 수는 없다. 5세대 이동통신(5G)이나 지능형 교통시스템(ITS) 등 자율주행 개발에 활용할 수 있는 인프라가 잘 갖춰진 곳도 아니다. 하지만 자율주행 시장을 선도하는 기업은 실리콘밸리를 떠나지 않는다. 그래서 실리콘밸리 기업 관계자들에게 물었다. 자율주행 기업으로서 실리콘밸리의 장점은 무엇이냐고. 비슷한 답변이 돌아왔다. 다들 가장 큰 장점으로 ‘탤런트’, 즉 인재 풀(pool)이 넓다는 점을 꼽았다. 자율주행은 여러 요소 기술이 필요한 융합 기술이기 때문에 다양한 분야의 능력 있는 인력이 많이 필요한데, 그러한 인력을 구할 수 있는 곳이 실리콘밸리라는 것이다. 한국계 실리콘밸리 스타트업 팬텀AI(PhantomAI)의 조형기 대표는 “IT 기업의 산실로서 실리콘밸리의 장점이 그대로 자율주행 분야에서도 발휘되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 사시사철 시험주행을 할 수 있는 캘리포니아의 환상적인 날씨, 자율주행 등 각종 신기술에 친숙한 현지 성향과 분위기도 실리콘밸리의 장점으로 언급됐다.

‘이코노미조선’은 이번 커버 스토리에서 실리콘밸리의 자율주행 스타트업을 현지 취재했다. 알리바바와 손잡고 중국 모빌리티 서비스 시장을 넘보는 오토X(AutoX), 자율주행차의 ‘눈’ 라이다 회사 쿼너지(Quanergy) 그리고 한국계 실리콘밸리 스타트업 팬텀AI 사무실을 찾아 자율주행 기술을 체험했다. 협력과 연합이 불가피한 자율주행 시장에서 글로벌 주요 기업들의 생존 전략을 짚어보는 한편 자율주행 선도국이 되기 위한 한국 기업과 정부의 노력도 담았다. 자율주행차가 우리를 향해 달려오고 있다.

실리콘밸리(미국)=임수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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