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순영 제42회 국제수학올림피아드 한국대표 단장, 한국과학재단 기초연구단 수리과학 전문위원, 서강대 교무처장, 대한수학회 부회장, 서강대 자연과학부 학장, 현 서강대 자연과학부 수학과 교수 / 사진 채승우 객원기자
정순영
제42회 국제수학올림피아드 한국대표 단장, 한국과학재단 기초연구단 수리과학 전문위원, 서강대 교무처장, 대한수학회 부회장, 서강대 자연과학부 학장, 현 서강대 자연과학부 수학과 교수 / 사진 채승우 객원기자

“수학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을 버려야 합니다. 산업 현장에서 수학적 접근 방식을 통해 해결할 수 있는 문제는 무궁무진하게 많아요. 경영자들도 수학적 판단능력이 필요합니다.”

정순영 국가수리과학연구소 소장은 3월 13일 그의 서강대 연구실에서 진행한 ‘이코노미조선’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정 소장은 서강대 자연과학부 수학과 교수로서 제42회 국제수학올림피아드 한국대표 단장, 한국과학재단 기초연구단 수리과학 전문위원을 역임했다. 그는 2018년 제5대 국가수리과학연구소 소장으로 취임했다.

국가수리과학연구소는 2016년 산업수학혁신센터(이하 혁신센터)를 개관하고 산업수학 활성화에 힘쓰고 있다. 산업수학이란 수학적 이론과 분석 방법을 활용해 세상의 문제를 해결하거나 산업의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학문을 의미한다. 혁신센터에선 기업의 의뢰를 받아 수학자들과 함께 산업 문제를 해결하고 있다.


산업수학이 무엇인가.
“수학은 과거 순수 이론에 그쳤고, 기술·과학계에서는 간접적으로 활용됐다. 산업수학은 산업 현장에서 수학을 직접 활용하는 학문이다. 수학적 지식을 활용해 산업 현장의 문제를 파악하고, 마치 방정식을 근의 공식으로 풀듯 해결하는 방식이다.”

산업 현장에서 적용되는 수학적 방법론은 크게 세 가지로 나뉜다. 첫째, 수식이나 그래프를 이용해서 수학적 방법론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이다. 둘째, 빅데이터 시대에 주목받는 데이터 분석이론을 이용하는 방식이다. 마지막으로는 데이터를 다루는 인공지능(AI)의 기술을 질적으로 향상시키는 것이다. 현재 인공지능은 학부 1학년 수준의 미적분학이 적용된 기술이다. 수학계에선 인공지능이 정밀해지도록 고급 수학 공식을 적용하려는 노력이 이뤄지고 있다. 혁신센터에선 주로 수학적 방법론과 데이터 분석이론을 이용하는 문제 풀이 방식을 차용하고 있다.

혁신센터가 주로 맡는 과제는.
“대기업처럼 별도 연구 기관을 만들기 어려운 스타트업을 중심으로 문제 의뢰를 받고 있다. 쓰레기차가 쓰레기봉투를 효율적인 경로로 수거하는 방법, 가스 검침원이 여러 가정을 효율적으로 방문하는 방법 등과 같은 문제를 해결한다. 기업의 의뢰 건수는 매년 배로 증가해 지난해 60건의 산업 문제를 해결했다.”

어떤 방식으로 해결하나.
“수학적 방법론에는 여러 모델이 있다. 앞서 말한 문제들은 ‘외판원 문제(TSP·Traveling Salesman Problem)’ 모델을 활용한다. 현상을 수식으로 간단히 압축해서 모델링한 이후 외판원이 어떻게 효율적으로 이동할지 계산하는 방식이다. 혁신센터는 지난해 한국수력원자력의 산업 문제도 외판원 문제 모델링으로 해결했다. 원자력 발전소 내부 핵연료 삽입체를 주기적으로 교체해야 하는데 이동 경로를 최소화할 방법을 산출하는 방식이었다. 한수원 자체 분석 결과, 7개 동일 원자로에 컨설팅 내용을 적용할 경우 연간 1억원의 비용을 절감한다고 한다.”

혁신센터가 문제를 해결하는 절차는.
“‘한국형 문제해결 프로세스’라 불리는 절차를 거친다. 우선 의뢰가 들어오면 수학자와 경영자가 참여한 ‘라운드 테이블’에서 논의가 이뤄진다. 수학으로 풀릴 문제인지 여부를 파악하는 과정이다. 수학의 영역이 아니라고 판단하면 의뢰를 거절하는 경우도 있다. 이후 수학자들이 호텔에서 3박 4일 동안 그룹별로 모여서 문제를 모델링하고 풀어낸다. 혁신센터 내부 연구원과 외부 문제 해결 전문가 100여 명 가운데 해당 문제에 적합한 사람이 참여한다.”

혁신센터의 성과는.
“5년 사이 산업수학의 생태계를 구축했다. 산업수학 전문 교수가 아니더라도 많은 수학자가 현재 컨설팅에 참여하고 있다. 이 교수들이 문제 풀이 현장에 대학원 조교를 데려온다. 실제 대학원생이 학계에선 접할 수 없던 현장의 데이터와 산업수학을 접하고 있다. 이는 산업수학 후학을 양성하는 계기로 작용하는 과정이다. 그간 교류가 없던 산업계와 학계 사이에 연결고리가 생겼다는 점도 엄청난 발전이다. 그간 꿈꾸던 일도 생겼다. 혁신센터처럼 산업수학을 기반으로 컨설팅하는 스타트업도 생겼다. 혁신센터 직원이 휴직하고 창업했다. 해당 스타트업이 의뢰받는 문제를 혁신센터가 협업해서 해결할 수도 있다.”

생태계 활성화를 위해 필요한 사항은.
“현재 수학계에서 필요한 인재는 산업수학 ‘모더레이터(조정자)’다. 산업계와 수학계가 사용하는 단어가 다르므로 서로에게 용어를 바꿔서 전달하는 역할이 필요하다.”

경영자에게 수학적 사고 능력은 얼마만큼 중요한가. 모더레이터가 있으면 수학 전문가 수준일 필요는 없다고 느껴진다.
“경영자가 수학을 깊이 탐구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어떤 문제를 수학적으로 해결할지 판단하는 능력이 중요하다. 환자와 의사를 생각하면 된다. 비전문가는 환자, 수학자는 의사다. 모든 사람이 의사일 필요는 없다. 중요한 지점은 내가 아플 때 안과, 내과, 이비인후과 가운데 어디를 가야 할지 판단하는 능력이다. 또 의사와 상담할 때 내가 어떤 이야기를 풀어놓느냐에 따라서 처방이 달라진다. 수학적인 정보나 데이터에 대한 이해도가 높다면 좋은 처방을 받을 수 있다는 의미다. 마지막으로 빅데이터 시대엔 데이터를 산출한 결과를 해석하는 능력을 키워야 한다. 인공지능이 주는 정보는 최적화한 결과일 뿐, 무조건적 사실은 아니다. 어떤 과정으로 그 정보가 생산됐는지 이해하면 분석의 한계도 고려할 수 있다.”

정 소장은 특히나 ‘수학에 대한 열린 마음’을 강조했다. 그는 “혁신센터에 전화하는 기업가들은 수학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면서 “막연한 두려움 없이 자유롭게 혁신센터에 문제를 의뢰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혁신센터는 기업의 진입장벽을 낮추기 위해 오픈 플랫폼 사이트 ‘풀림(PLIM·PLatform for Industrial Math)’을 3월 25일 개설한다. 기업가들은 사이트에 무료로 산업 문제를 의뢰할 수 있고, 수학자들이 집단지성을 모아 의뢰한 문제에 답변을 한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은.
“혹자는 산업수학이 상업적이라고 비판한다. 하지만 순수수학을 포함해, 수학의 학문적 발전을 위해선 산업수학 투자가 중요하다. 산업수학이 기업의 수익을 높이고 과학기술을 발전시키면 수학에 대한 대중의인식이 개선된다. 이는 수학계에 대한 투자로 이어져서 선순환 구조를 만든다. 하지만 현재 국가수리과학연구소도 투자 단계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다. 현재 1인당 연간 연구비가 1억원이 채 되지 않는 수준이다. 연구원들이 1인 2~4역을 소화하고 있다. 수학에 대한 벽이 높아서 그런 것 같은데, 전 세계적으로 산업수학의 중요성이 증가하고 있으니 투자가 활성화됐으면 좋겠다.”

김소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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