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학의 중요성이 어느 때보다 높아진 지금도 교육 현장에선 수포자가 속출하고 있다. 교육 방향이 지나치게 어려운 응용문제에 집중돼 있는 것이 원인으로 지적된다.
수학의 중요성이 어느 때보다 높아진 지금도 교육 현장에선 수포자가 속출하고 있다. 교육 방향이 지나치게 어려운 응용문제에 집중돼 있는 것이 원인으로 지적된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수학 경쟁력이 곧 국가 경쟁력으로 직결된다. ‘특출난 수학 천재를 얼마나 보유하고 있느냐’보다 ‘국민의 평균적인 수학 수준이 어느 정도인가’가 중요한 시대다. 과거에는 금융·공학·정보기술(IT) 등 일부 산업 종사자에게만 수학적 능력이 요구됐지만, 앞으로는 누구나 일정 수준의 수학적 소양을 갖춰야 한다. 4차 산업혁명은 모든 산업을 인공지능(AI) 중심으로 재편하는데, 그 AI와 대화할 수 있는 유일한 ‘공용어’가 바로 수학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작 ‘수학 경쟁력 시대’를 살아갈 초·중·고등학생들 사이에서는 방정식과 함수에 보이콧을 선언한 ‘수학 포기자(수포자)’가 늘고 있다. 종로학원하늘교육의 분석에 따르면, 2018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의 ‘수학 나형’ 과목에서 원점수 40점 이하(100점 만점)를 받은 응시생이 41.6%(13만9915명)에 달했다. 문과생 10명 중 4명이 ‘과락(과목낙제)’ 수준이라는 것이다.

‘이코노미조선’은 3월 17일 ‘나는 수포자다’라고 선언한 학생 4명을 인터뷰해 수학 교육의 현주소를 짚어봤다. 학생들은 공통적으로 “원래는 수학을 그렇게 싫어하지 않았는데, 학년이 올라갈수록 수학이 내게서 점점 멀어졌다”며 “급격히 상승하는 난도를 따라가지 못해 결국 수학을 포기하고, 증오하게 됐다”고 말했다.

연천 전곡고등학교 1학년에 재학 중인 조혜빈(16)양은 “‘수학을 포기할까?’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한 건 중학교 2학년 때부터였다”고 고백했다. 1학년까지만 해도 80점대였던 수학 점수가 2학년이 되자 갑자기 50점대로 떨어졌다. 범인은 ‘미지수’였다. 1학년 때 배우던 ‘일차방정식’ 단원에서는 미지수 한두 개만 찾으면 됐는데, 2학년 교과서에 등장한 ‘연립방정식’ 단원에서는 4개나 되는 미지수를 찾아야 했다. 조양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복잡한 수식 계산에 갇힌 기분이었다”고 했다.

조양은 수학 점수를 복구하기 위해 열심히 문제를 풀고 학원도 다녀봤지만, 그런 노력이 무색하게 학교 수업 진도를 따라가는 것조차 버거워졌다. 앞 단원을 다 이해하기도 전에 더 어려운 뒤 단원이 줄지어 나타났기 때문이었다. ‘일차함수’ 단원은 미지수 4개를 직선으로 만들어 모눈종이 위에 올려버렸고, 3학년 ‘이차방정식’ ‘이차함수’ 단원에 들어서자 난도가 제곱으로 뛰었다. 조양은 “시간 낭비라는 생각이 들었다”며 “‘수학 포기’는 자연스러운 수순이었다”고 말했다.

파주시 소재 고등학교 2학년 한윤제(17)군도 최대한 수학을 붙들어보려고 했지만 결국 수포자가 됐다. 한군은 “수학은 개념을 이해하는 것부터가 다른 과목에 비해 어렵다”며 “수업 시간에 ‘개념을 잘 모르겠다’고 질문해도 ‘일단 진도가 바쁘다. 문제를 풀다 보면 자연스럽게 이해된다’는 답변만 돌아왔다”고 했다. 선생님 말씀대로 무작정 수학 문제집을 풀다 보니 ‘어느 정도 알 것 같은’ 수준까지 올라갔다.

한군은 ‘이제 점수가 잘 나올 것’이란 기대를 잠시 품었다. 하지만 그 학기 내신 시험에는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모르는 ‘응용문제’들만 잔뜩 나왔다. “어떻게 해야 응용문제를 풀 수 있나요”라는 질문에 선생님은 “기본 문제를 풀었으면 유형별 문제집, 심화 문제집도 풀어야지”라는 가르침을 내렸다. 한군은 최근 수학 성적이 낮아도 들어갈 수 있는 대학의 로고 스티커를 샀다.


실생활·산업에 동떨어진 수학 교육

‘수학 과목에서 배우는 내용은 실생활에 전혀 쓸모가 없다’는 인식도 수학 포기의 원인으로 지목됐다. 경남 합천군에 사는 중학교 2학년 주예린(14)양은 “장래 희망이 디저트 요리사인데, 어렵기만 한 수학을 왜 배워야 하는지 모르겠다”며 “필요성을 느끼지 못해 아예 놔버린 상태”라고 했다.

안동 경일고등학교 2학년 임동규(16)군은 스스로를 ‘내신성적만 좋은 수포자’라고 칭했다. 어디까지나 입시를 위한 수단으로만 수학 공부를 하고 있고, 그마저도 다른 과목에 지장을 줄 정도로 힘들어지면 바로 수학 책을 놓겠다는 것이다. 임군은 “아직 명확한 진로가 없지만, 어떤 직업을 선택하든 수학은 절대로 쓸모가 없을 것 같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실생활뿐만 아니라 산업 전반과도 밀접한 관계인 수학을 학생들이 ‘무용하다’고 여기는 것은 교육 방식의 문제”라고 지적했다. 최수일 사교육걱정없는세상 수학사교육포럼 대표는 “미적분만 해도 이공학부터 경제·사회과학 분야까지 쓰이지 않는 곳이 없다”며 “그런데 교육 현장에서는 이런 본질은 제대로 가르치지 않은 채 넘어가고 복잡하게 꼬인 응용문제를 풀어내는 요령에만 집착한다”고 말했다. 최 대표는 “오직 평가 변별력을 갖추겠다는 명분으로 수학의 쓸모없는 부분만 골라서 가르치는 상황이다”라며 “미국, 유럽 등 선진국에서는 문제 풀이보다는 수학적 사고력을 풍부하게 배양하는 교육·평가 방식이 일반적이다”라고 덧붙였다.


plus point

문과생도 사회 나와 보니“수학 중요해”

김소희 기자

“무한등비급수 계산 방법이 마케팅 업무에서 쓰일 줄 몰랐습니다. 고등학교 시절 이 수식이 이렇게 활용될지 알았더라면 더 즐겁게 배웠을 것 같아요.”

온라인 커머스 스타트업에서 근무하는 박모(28·경영학과 졸업)씨는 고등학교 때 배운 수학의 중요성을 새삼 느끼고 있다. 그의 담당 직무는 마케팅인데 최근 회사의 마케팅 예산을 계산하면서 무한등비급수 계산법을 이용했기 때문이다. 무한등비급수는 일정 비율로 계속 증가 혹은 감소하는 수열을 모두 더하는 계산식이다. 수열을 무한대로 더하더라도 첫째 항과 비율을 알면 계산식을 구할 수 있다.

박씨가 무한등비급수를 이용한 이유는 마케팅 이론의 고객생애가치(LTV·Lifetime Value)를 구하기 위해서였다. 한 고객에게서 평생 얻을 수 있는 이익을 산출하면, 그 금액 이하로 고객 모집에 필요한 마케팅 비용을 지출해도 된다는 결론이 나오기 때문이다.

예컨대 첫 구매에서 한 고객당 평균 3만원의 이익이 발생한다면, 고객의 재구매율을 산출해서 추가 이익을 계산할 수 있다. 고객이 재구매할 확률이 50%라면 두 번째 구매에선 1만5000원의 추가 수익을 기대할 수 있다. 세 번째 기대 수익은 7500원에 해당한다. n번째 재구매 이익까지 무한대로 계산하면(3만원+1만5000원+7500원+3750원…) 평생 동안 한 고객에게서 얻을 수 있는 이익을 계산할 수 있다.

유통 회사에 다니는 김모(26·경제학과 졸업)씨도 빅데이터를 공부하면서 수학 개념의 중요성을 깨달았다. 데이터 프로그래밍 언어 ‘에스큐엘(SQL)’을 이용해 고객 파악에 필요한 정보를 불러와야 하기 때문이다. 김씨는 “조건을 나눠서 문제를 푸는 사고방식의 중요성을 깨닫고 있다”면서 “과거 수학 문제를 풀 때 변수 x의 조건이 x ≧ 0일 때와 x < 0일 때 답이 달랐는데, 데이터를 뽑는 수식을 만들 때도 비슷한 결과가 나오더라”고 했다.

박씨와 김씨의 사례처럼 이공계열 직무가 아닌데도 회사에서 수학을 활용한 업무가 늘어나고 있다. 문과생 직장인에게 수학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직무 경험이 없는 중·고등학교 문과생들은 수학을 ‘평생 사용하지 않을 학문’으로 여긴다. 김씨는 “고등학생 때는 수학이 쓸모없는 과목이라 생각해서 재미없었다”면서 “수학이 실생활에 적용되는 방식을 알고 나니 요즘엔 동료 직원들과 인터넷 강의를 들으면서 스터디할정도다”라고 했다.

최상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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