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병권 서울대 수학과 박사, 국제수학올림피아드(IMO) 한국대표단 부단장, 서울대 수리과학부 학부장, 현 수리과학 미래인재양성사업단 준비위원장 / 사진 김소희 기자
오병권
서울대 수학과 박사, 국제수학올림피아드(IMO) 한국대표단 부단장, 서울대 수리과학부 학부장, 현 수리과학 미래인재양성사업단 준비위원장 / 사진 김소희 기자

국내에서 ‘수포자(수학 포기자)’에 대한 우려는 교과과정 축소로 이어져 왔다. 교육부는 2018년부터 고교 1학년에게 적용한 10차 개정 수학 교육과정에서 벡터를 뺐다. 2014년부터 적용된 9차 개정에서 행렬이 삭제된 이후 이뤄진 조치다. 벡터와 행렬은 인공지능(AI)과 밀접하게 연관된 수학 개념이다. 오병권 서울대 수리과학과 교수는 3월 3일 그의 서울대 연구실에서 진행된 인터뷰에서 “수학 단원 삭제는 신중해야 한다”면서 “언제 특정 학문이 쓸모를 발휘할지 예단하기 어렵기 때문이다”라고 했다.


교과과정이 너무 방대하다는 지적이 있다.
“수학 교과목의 난이도는 분량과 관계없다. 출제 범위를 교과서 1단원 집합으로 국한해도 전국 고등학생의 99%가 0점 맞는 시험 문제를 낼 수 있다. 양이 줄어든다고 시험이 쉬워지지 않는데, 벡터와 행렬이 안타깝게도 교과과정에서 삭제됐다.”

현실에 발맞춰 AI시대에 필요한 수학 개념만 학생들에게 가르치면 안 되나.
“앞으로 어떤 수학 개념이 사회에서 이용될지 예측하는 일이 ‘하늘의 별 따기’ 수준이다. 20세기에 탄생한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은 19세기에 정립된 비유클리드 기하학에 기반했다. 축적해둔 지식이 시간이 지나 우연히 활용된 사례다. 교과과정도 마찬가지다. 행렬과 벡터를 빼자는 논의도 AI에 대한 인식이 없던 시절(각각 2009년과 2015년)에 처음 나왔다. AI는 현재 기초적인 수준의 수학 지식을 활용하고 있지만, 정교성을 높이기 위해 다른 수학 지식이 쓰일 수도 있다. 사회적 흐름을 예단하기 어려우니 단원 삭제는 매우 신중해야 한다는 의미다.”

어떤 식으로 교과과정을 개편해야 하나.
“우리는 흔히 수학 교육을 이야기할 때 수학 난이도가 낮은 미국을 모범 예시로 든다. 하나는 알고, 둘은 모르는 소리다. 미국에서 정말 수학에 열의가 있는 학생들은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으로 배운다. 고등학생이 대학 과목 48학점을 미리 듣기까지 한다. 우리나라도 교과과정을 일괄적으로 하향 평준화하지 말고 새로운 시스템을 고안해야 한다. 모든 사람이 수학을 전문가 수준으로 배울 필요는 없다. 본인의 진로와 흥미에 따라 원하는 과목에 집중할 수 있는 교육 기회가 생겨야 한다.”

여태까진 문·이과 구분이 맞춤형 교육의 잣대로 작용했다.
“직무가 다양해지면서 이분화한 구분이 충분하지 않은 사회가 됐다. 예컨대 스포츠사이언스는 문·이과 과목을 섞어 들어야 한다. 희망 전공에 따라 본인이 듣고 싶은 과목을 선택하는 교육 환경이 조성돼야 한다.”

여전히 시험이라는 장벽이 높다. 고난도 문제 풀이 방식이 수포자를 양산하고 있는데.
“아마 한국과 같은 경쟁 사회에서 시험으로 변별력을 따지는 교육 제도는 쉽게 변하지 않을 것 같다. 학생들이 수학에 대한 흥미와 별도로 시험에 익숙해지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시험은 수학을 잘 이해하는 사람을 가려내지 않는다. 정해진 시간 내에 암기한 풀이 방식을 쏟아내야 한다. 중·고교 시절에 수학 성적이 잘 나오지 않아도 사회에 나가서 수학을 배울 기회가 충분히 생기면 좋겠다. 일본은 일반인을 위한 수학책이 많다. 우리나라도 그 방향으로 나아가면 좋겠다.”

김소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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