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재천 하버드대 생물학 박사, 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 환경운동연합 공동대표, 생명다양성재단 대표, 기후변화센터 공동대표, 유엔기후변화협약 명예대사, 유엔생물다양성협약 의장, 제1대 국립생태원 원장 / 최재천 교수는 “플라스틱처럼 편하고 가볍고 실용적인 발명품을 찾기 힘들지만, 다 함께 조금 불편한 길을 걸어보자”고 제안했다. 사진 채승우 객원기자
최재천
하버드대 생물학 박사, 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 환경운동연합 공동대표, 생명다양성재단 대표, 기후변화센터 공동대표, 유엔기후변화협약 명예대사, 유엔생물다양성협약 의장, 제1대 국립생태원 원장 / 최재천 교수는 “플라스틱처럼 편하고 가볍고 실용적인 발명품을 찾기 힘들지만, 다 함께 조금 불편한 길을 걸어보자”고 제안했다. 사진 채승우 객원기자

“미국의 전 부통령이자 환경 운동가인 앨 고어가 2006년 직접 출연한 다큐멘터리 영화 ‘불편한 진실’을 보셨나요? 동명의 책으로도 나온 작품인데, 당시 세상에 엄청난 충격을 줬어요. 많은 사람이 지구 온난화의 심각성을 새삼 깨달았죠. 그런데 14년이 흐른 지금 그 영화를 다시 보면 별로 놀랍지 않습니다. 영상 속 경고가 더는 경고가 아니어서요. 현실이죠.”

탈(脫)플라스틱의 필요, 나아가 환경 보존의 당위를 확인하려면 우선 그 심각성에 대한 경고를 들을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다. 한국을 대표하는 생태학자이자 유엔기후변화협약(명예대사), 생명다양성재단(대표), 환경운동연합(공동대표) 등 다양한 곳에서 지구 대신 목소리를 내온 최재천 이화여대 에코과학부 석좌교수에게 만남을 청했다.

4월 7일 서울 대현동 이화여대 과학관에서 만난 최 교수는 앨 고어 이야기를 꺼내며 인류가 이미 불편한 진실 한가운데 들어와 있다고 경고했다. 그는 무분별한 플라스틱 사용이 기후 변화와 생물 다양성 고갈, 생태계 붕괴 등을 야기하고, 이는 결국 숙주를 찾아 헤매는 바이러스가 인간을 더 자주 괴롭히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고도 했다.

“인간만큼 탁월한 두뇌를 지닌 동물이 없어요. 지구상에는 비교군이 없을 만큼 압도적이죠. 그런 동물이 매일 하는 짓을 보면, 좀 심한 말로 빨리 죽고 싶어서 환장한 것 같습니다. 요즘 전 세계를 괴롭히는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과 이전의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 더 이전의 사스(SARS·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 등이 과연 환경 파괴와 무관한 질병일까요?”


최재천 석좌교수(가운데)가 유엔생물다양성협약 의장을 역임하던 시절, 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사진 이화여대
최재천 석좌교수(가운데)가 유엔생물다양성협약 의장을 역임하던 시절, 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사진 이화여대

생태학자라서 환경 파괴 정도를 더 심각하게 보는 것 아닌가.
“굳이 학자나 전문가가 나서지 않아도 모든 개인이 느낄 수 있다. 자연은 정직하다. 나도 한 개인으로서 경험을 말해보겠다. 중학생 때부터 친한 친구 6명과 2년 전 코타키나발루로 부부 동반 여행을 갔다. 죽마고우(竹馬故友)들과 오랫동안 회비를 모아 떠나는 여행이라 무척 설렜다. 게다가 친구들에게 나는 최고의 자연 전문가 아닌가. 출발 전부터 신이 나서 여행지의 기후와 생태 특성에 관해 설명했다. 그런데 현지에 도착해 본 코타키나발루는 엄청 실망스러웠다. 해변이 쓰레기 밭이더라. 플라스틱 용기 천지였다. 당황한 가이드가 ‘며칠 전 태풍이 발생해 떠밀려온 쓰레기일 뿐 평소에는 깨끗하다’라고 변명했다. 아니, 비바람이 쓰레기를 몰고 오는 상황 자체가 문제 아닌가. 인간이 그동안 무슨 짓을 한 건가 싶었다.”

과거 개미·박쥐 등을 관찰하기 위해 오지에 머문 경험이 많아 지금의 환경 변화가 더 극적으로 느껴질 수 있겠다.
“내가 한창 동물 행동 등을 연구하던 젊은 시절에는 무조건 사람 없는 오지(奧地)로 들어갔다. 조금이라도 오염된 지역에서 연구하면 논문을 낼 수 없기 때문이었다. 학술지 에디터가 ‘오염된 환경에서 사는 동물이 정상적으로 행동할 수 있느냐’며 논문 게재를 거절하기 일쑤였다. 논문 심사는 현재도 엄격하다. 그런데 생태학자들이 연구할 수 있는 청정 지역은 과거에 비해 크게 줄었다. 아마존 밀림 깊숙한 곳까지, 사람 손길 닿지 않은 곳이 없다. 이제 오지는 없다고 주장하는 이도 있다. 도시생태학이 주목받는 시대이니 틀린 말도 아니다.”

최근 들어 ‘플라스틱 프리 챌린지(Plastic-free Challenge)’나 ‘제로 웨이스트(Zero Waste)’ 운동에 참여하는 기업과 유명 인사가 많아졌다.
“좋은 현상이다. 개인적으로 존경하는 제인 구달 박사는 대중 강연을 할 때마다 이런 말을 한다. 그래도 우리에게는 희망이 있다고. 한 사람 한 사람이 매일 실천하는 작은 일이 모이면 결국 큰 힘이 된다고. 나는 여기에 문장 하나를 추가하고 싶다. 전 세계 인구가 무려 77억 명이라고. 77억 명이 한뜻으로 무엇인가를 하면, 반드시 된다.”

문제는 77억 명의 뜻을 모으는 일이 어렵다는 점 아닌가.
“그렇긴 한데, 이번에 코로나19 사태를 겪으면서 나는 묘한 기대를 하게 됐다. 팬데믹(pandemic·전염병 대유행)이 선언될 만큼 코로나19가 몰고 온 충격은 매우 강하지 않나. 게다가 이런 감염증은 앞으로 언제든지 또 올 수 있다. 심지어 찾아오는 주기가 점점 짧아질 가능성도 있다. 이런 추측을 나만 하는 게 아니다. 2000년 이후 사스·메르스·에볼라 등을 쉴 새 없이 겪은 사람들이 서서히 인식하게 됐다. 그리고 곧 다 함께 생각하고 공감대를 형성할 때가 올 것이다. ‘아, 우리가 자연을 자꾸 건드리면 안 되겠구나. 개발이 생존인 줄 알았는데 보존이 생존이구나. 철새(조류인플루엔자)든 박쥐(코로나19)든 그냥 둬야겠구나’라고 말이다. 물론 자연을 안 건드려도 신종 바이러스가 또 찾아올 수는 있다. 하지만 지금처럼 자주는 아닐 것이다.”

자연을 내버려 두는 게 좋다는 걸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 이미 만들어진 사회·경제 시스템에서는 불가피한 측면이 있지 않나.
“지난 2년간 유엔기후변화협약 명예대사로 활동했다. 시간이 허락할 때마다 국내외를 오가며 강연하는 게 내 역할이었다. 유엔은 내가 앨 고어처럼 대중에게 환경 오염과 기후 변화에 대한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기를 기대했다. 그때 내 강연 제목이 ‘아주 불편한 진실과 조금 불편한 삶’이었다. 여기서 ‘아주 불편한 진실’은 앨 고어가 공개한 불편한 진실보다 지금이 더 불편해졌다는 의미다. 그리고 ‘조금 불편한 삶’은 각자 조금씩만 불편하게 생활해보자는 의미다. 갑자기 원시로 돌아가자는 주장이 아니다. 플라스틱 용기 덜 쓰고, 가까운 거리는 걷고, 물 절약하면서 살아보자는 것이다. 기왕이면 77억 명이 한마음으로 말이다. 익숙한 편안함에서 약간만 멀어지면 된다. 어렵지 않다. 요즘 유통 환경이 생산자 중심에서 소비자 중심으로 바뀌지 않았나. 대형마트에 농약 범벅인 과일이 대부분인 건 소비자가 여전히 벌레 구멍 없는 ‘예쁜’ 과일만 찾기 때문이다. 만약 벌레 먹고 못생긴 과일 찾는 소비자가 늘어나면, 기업은 그 수요에 맞출 수밖에 없다.”

평소 실천하는 ‘조금 불편한 삶’이 있나.
“(들고 다니는 가방에서 둘둘 말린 장바구니를 꺼내며) 가방 안에 1년 내내 들어있다. 와이프가 퇴근길에 자주 심부름을 시킨다. 내 덕분에 오늘도 비닐봉지 한 장 덜 팔릴 예정이다.”

전준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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