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대 규모의 자산운용사인 블랙록의 래리 핑크 최고경영자(CEO). 그는 올해 1월 14일(현지시각) 주주들에게 보낸 연례 서한을 통해 “앞으로 화석연료 관련 매출이 전체 매출의 25%를 넘는 기업은 투자 대상에서 제외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사진 블룸버그
세계 최대 규모의 자산운용사인 블랙록의 래리 핑크 최고경영자(CEO). 그는 올해 1월 14일(현지시각) 주주들에게 보낸 연례 서한을 통해 “앞으로 화석연료 관련 매출이 전체 매출의 25%를 넘는 기업은 투자 대상에서 제외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사진 블룸버그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인 미국 블랙록의 최고경영자(CEO) 래리 핑크는 1월 14일(현지시각) ESG(환경·사회·지배구조)를 자산 운용 기준으로 적극적으로 반영하겠다고 선언했다. 그는 이날 주주들에게 보낸 연례 서한(annual letter)에서 “기후 변화는 경제에 많은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기업들이 이 문제에 함께 대응해야 한다”라며 “향후 10년간 ESG 관련 투자를 10배 이상 늘릴 계획이다”라고 밝혔다. 그는 이어 “앞으로 화석연료 관련 매출이 전체 매출의 25%를 넘는 기업은 투자 대상에서 제외할 방침”이라고 덧붙였다. 블랙록의 투자 자산 규모는 지난해 말 기준 7조4000억달러(약 8998조4000억원)에 달했다.

이처럼 ESG 경영에 대한 ‘글로벌 큰손’들의 투자가 잦아지고 있다. ESG 경영이란 비재무적 요소인 환경(environment), 사회(social), 지배구조(governance)를 적극적으로 반영하는 경영 활동을 뜻한다. 최근 대세 투자 수단으로 부상한 미국 상장지수펀드(ETF)를 지배하는 키워드가 바로 탈(脫)플라스틱을 포함한 친환경이다. ESG 경영은 기존 기업 평가 지표인 재무제표만으로는 기업의 지속 가능성을 판단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시각에 따라 대두되고 있다.

미국 투자은행(IB) 모건스탠리가 2018년 공적 연금, 사적 연금, 보험회사 등 글로벌 투자사 118곳을 대상으로 벌인 설문 조사에 따르면, 응답 기관의 84%가 “투자 시 ESG 관련성을 고려한다”라고 답했다. 응답 기관의 60%는 “앞으로 4년 이내에 ESG 투자를 시작할 것”이라고 했다.

ESG로 대변되는 ‘착한 투자’가 중요하다는 얘기가 본격적으로 나온 것은 2000년대 들어서다. 이후 2006년 4월 기념비적 선언을 기점으로 자리매김에 성공했다. 당시 유엔(UN) 사무총장인 코피 아난과 글로벌 주요 연기금은 뉴욕 증권거래소에서 ‘사회책임투자원칙(PRI)’을 발표했다. 하지만 활발하게 투자가 이뤄지기에는 미흡한 점이 많았다. 기업의 관련 정보가 투명하게 공개되지 않았던 탓이다. 이후 MSCI(모건스탠리의 자회사인 모건스탠리 캐피털 인터내셔널이 산출하는 국제 주가 지수)가 ESG 관련 벤치마크(기준이 되는 지수)를 선보이면서 기관 투자자를 중심으로 ESG 투자가 활발해졌다. MSCI ESG 지수는 기업들이 제공한 정보를 기반으로 해 가치를 평가한다. MSCI ESG 지수 도입 후 북유럽을 중심으로 한 대형 연기금 펀드들은 ESG 투자에 대거 나서고 있다. 글로벌 펀드 평가사 모닝스타에 따르면, 지난해 ESG 이름을 내건 펀드에 신규 유입된 자금은 206억달러(약 25조원)로 2018년(55억달러)의 약 네 배 규모다.

ESG 투자는 커지는 관심만큼 수익률도 개선되고 있다. 미국 경제 매체 블룸버그와 SK증권에 따르면, MSCI ESG 지수가 최근 2년간 대부분 지역에서 벤치마크를 상회하는 수익률을 올린 것으로 나타났다. MSCI ESG 지수는 전략에 따라 ESG 리더스, ESG 통합, 네거티브 스크리닝 등 세 가지로 나뉜다. 이 가운데 업종 내 ESG 점수가 높은 회사를 선별해 투자하는 ESG 리더스 지수가 벤치마크 대비 가장 높은 초과 수익률을 기록했다. 예컨대 ESG 리더스 유럽 지수 수익률은 일반적인 MSCI 유럽 지수 수익률을 약 2.69%포인트 상회했다.

미국에서는 ETF 시장을 중심으로 ESG 투자가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미국에는 순자산 운용 규모가 1억달러(약 1200억원) 이상인 ESG ETF가 10개에 이르며, 지난해 그중 9개가 S&P500 지수 수익률을 웃도는 이익을 거뒀다. 이처럼 수익률이 높다 보니 ESG 관련 투자 유입이 활발해지고 있다. 외신 보도에 따르면 올해 2월 한 달간 전 세계 지속 가능성 테마 ETF에 투자된 자금이 57억달러(약 6조9000억원)에 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ESG 성장 배경에는 ‘글로벌 큰손’들의 힘이 있다는 게 관련 업계의 분석이다. 세계 최대 연기금 펀드인 노르웨이 국부펀드(GPFG), 일본 정부 연기금 투자펀드(GPIF) 등 대형 연기금과 블랙록 등 자산 운용사들이 속속 ESG를 핵심 투자 지침으로 삼으면서 관련 투자 규모가 급증하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 ‘글로벌 큰손’들은 ESG의 중요성을 연일 강조하고 있다. 미국 로이터통신은 3월 3일 “GPFG가 핵무기·담배에 이어 막대한 양의 온실가스를 배출하는 석유·철강·콘크리트 관련 기업 네 곳에 대한 투자를 철회할 방침”이라고 보도했다. GPFG는 전 세계 상장 주식의 1.5%를 소유하고 있어서 글로벌 시장에 큰 영향을 미친다. 요한 앤더슨 GPFG 의장은 “이들 네 개 기업을 투자 리스트에서 배제하거나 최소한의 변화를 강요하기 위해 투자 유예 조치를 할 것”이라고 밝혔다. GPFG는 투자 리스트에서 제외되는 기업의 사전 주가 하락을 피하고자 실제 주식을 매각하기 전에는 명단을 공개하지 않는다. 대세인 친환경을 거스르는 기업에는 투자하지 않겠다는 강력한 경고장을 날린 셈이다.


노르웨이 오슬로에 있는 노르웨이 중앙은행. 사진 블룸버그
노르웨이 오슬로에 있는 노르웨이 중앙은행. 사진 블룸버그
미국 뉴욕에 있는 모건스탠리 글로벌 본사. 사진 블룸버그
미국 뉴욕에 있는 모건스탠리 글로벌 본사. 사진 블룸버그

한국 ESG 투자는 아직 미미

이처럼 해외에서 ESG 관련 투자가 확대되고 있지만, 한국은 ESG 투자 시장 규모가 아직은 미미한 상황이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1월 말 기준 ESG ETF가 7개 상장돼 있는데 순자산 규모는 약 662억원에 불과하다.

다만 지난해 말 기준 기금 적립금이 736조7000억원에 달하는 국민연금이 기업들에 대한 ESG 기준을 높이고 있어 주목된다. 국민연금은 ESG를 고려해 사회적 책임 투자를 더 분명하게 하겠다며 체제를 정비하고 있다.

올해 초 국민연금은 13년 만에 기금 운용 원칙을 개정했다. 기존의 5대 원칙(수익성·안정성·공공성·유동성·운용독립성)에 ‘지속 가능성’ 원칙을 추가했다. 지난해 말 확정한 ‘국민연금 주주권 행사 가이드라인’에서도 ESG 평가 등급이 C등급 이하이거나, 사회적 책임과 관련해 예상하지 못한 기업 가치 훼손이나 주주 권익 침해 우려가 발생한 경우 적극적으로 주주권을 행사하기로 했다. 국내에서도 ESG에 소홀한 기업은 ‘큰손’의 지원을 받기 어려워진 셈이다.

한 투자 업계 관계자는 “우리나라는 해외보다 ESG 투자에 대한 대중의 인식이 낮은 편”이라며 “다만 국민연금이 ESG 요소를 주주권 행사 중점 관리 사안에 포함하고 있어 ESG에 대한 관심과 투자는 점차 증가할 것”이라고 했다.

김문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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