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케미칼 연구소 직원들이 친환경 플라스틱 제품의 품질을 점검하고 있다. 사진 김흥구 객원기자
SK케미칼 연구소 직원들이 친환경 플라스틱 제품의 품질을 점검하고 있다. 사진 김흥구 객원기자

4월 13일 오전 경기 성남 삼평동에 있는 SK케미칼 연구소. 하얀색 연구복 차림의 연구원 십여 명이 마스크로 얼굴을 가린 채 각자 맡은 업무를 수행 중이었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억제를 위해 직원 상당수는 재택근무를 하는 상황. 반드시 출근해야 하는 임직원만 나왔다. 연구소 내에서도 사회적 거리 두기를 실천하려는 듯 연구원들은 뿔뿔이 흩어져 실험에만 몰두했다.

액체가 3분의 1 정도 들어 있는 기다란 시험관에 보라색 용액을 섞고 있는 한 연구원이 눈에 띄었다. “친환경 플라스틱 시제품이 의도한 대로 생산됐는지 확인하는 작업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제품을 액체 상태로 녹인 다음 거기에 화학물질을 주입해 측정기에 넣는 거죠. 측정기가 성분 정보를 수치와 그래프 등으로 나타냅니다.” 연구소에서 만난 황다영 매니저가 설명했다.

플라스틱에 대한 각국 규제가 강화되면서 이에 대응하는 SK케미칼도 분주해졌다. 이 회사가 만든 플라스틱 용기를 받아 쓰는 브랜드들이 진출 시장 기준에 부합하는 플라스틱 포장재를 주문해왔기 때문이다. 유니레버, 로레알, 에스티로더 등 글로벌 화장품 브랜드와 코카콜라, 네슬레 등 음료 브랜드가 SK케미칼 제품을 받아 쓰고 있다.

“거래 기업들의 요구는 크게 두 가지로 나뉩니다. 우선은 모든 소재가 재활용 가능해야 한다는 것, 두 번째는 PCR(post-consumer recycle·소비자 사용 후 재활용) 원료가 포함돼야 한다는 것. 우수한 품질을 유지하면서도 정책 변화에 맞는 플라스틱 포장재를 선보이는 게 우리 미션인 셈이죠.” 동행한 김응수 SK케미칼 코폴리에스터사업부장이 말했다.


SK케미칼이 페트를 재활용해 화장품 용기에 쓰이는 고투명 소재로 재탄생시킨 ‘에코트리아’ 제품군. 사진 SK케미칼
SK케미칼이 페트를 재활용해 화장품 용기에 쓰이는 고투명 소재로 재탄생시킨 ‘에코트리아’ 제품군. 사진 SK케미칼

유럽연합(EU)은 10년 후인 2030년까지 플라스틱 포장재를 100% 재사용(reusable) 또는 재활용하기로 했다. 당장 내년부터는 일회용 플라스틱 접시와 빨대 등의 사용을 제한한다. 한국도 2018년 1월부터 시행된 자원순환기본법에 따라 시중의 음료수나 생수 페트(PET)병을 올해 안에 전부 무색으로 전환할 방침이다. 다른 나라 플라스틱 정책도 비슷한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

국가 정책이 바뀌면 해당 시장에서 돈을 벌어야 하는 기업은 체질 변화를 택할 수밖에 없다. 에스티로더와 코카콜라는 2025년까지 재활용 페트를 50% 이상으로 확대할 계획이고 아디다스는 2024년까지 모든 제품에 재활용 페트를 적용할 예정이다. SK케미칼도 전 세계적인 플라스틱 사용 규제 움직임에 대응하기 위해 지난해 초 ‘지속 가능 패키징 소재 개발’ 태스크포스(TF)를 꾸리고 제품 연구에 박차를 가했다. 그 결과물이 ‘클라로’와 ‘에코트리아’다.

이 중 ‘클라로’는 SK케미칼이 2009년 옥수수에서 추출한 바이오 원료로 만든 플라스틱인 ‘에코젠’의 최근 라인업이다. 김 부장은 “클라로는 에코젠 시리즈답게 환경친화적일 뿐 아니라 높은 투명도와 내화학성을 갖추고 있다”라며 “다양한 형태로 생산할 수 있어 투명 화장품 용기 소재에 적합하다”고 말했다. 연구소 한쪽에서 직원 한 명이 비비탄처럼 생긴 작은 알갱이로 가득한 상자를 점검하고 있었다. “이게 클라로 입자입니다. 이 입자들을 틀 속에 넣어 다양한 형태의 화장품 용기를 만드는 것이죠.” 황 매니저가 말했다.

‘에코트리아’는 SK케미칼의 주력 제품 중 하나인 고투명 플라스틱 ‘스카이그린(PETG)’에 재활용 페트를 섞어 만든 것이다. ‘PCR 원료가 포함돼야 한다’는 거래 기업들의 요구 조건을 충족하는 동시에 기존 재활용 페트 소재의 고질적 문제인 색상·투명도 저하를 해결했다. 지속 가능 패키징 소재 개발 TF가 밤낮으로 연구해 얻은 결실이다. SK케미칼 관계자는 “현재 다수의 명품 화장품 브랜드가 클라로와 에코트리아를 화장품 용기에 적용하기 위해 움직이고 있다”고 전했다.

SK케미칼의 다음 스텝은 ‘화학적 재활용’이다. 지금의 재활용 방법은 폐플라스틱을 잘게 분쇄해 파우더 형태로 만든 다음 그걸 활용해 에코트리아 같은 제품 개발에 적용하는 것이다. 화학적 재활용은 플라스틱에 화학 결합을 시도해 원료 상태로 분리하는 개념이다. 완전히 분리해낸 원료로 다시 플라스틱을 만드는 것이기 때문에 단순 분해·재조합에 따른 물성 저하 부작용을 원천 봉쇄할 수 있다.

김 부장은 “기계적 재활용보다 화학적 재활용이 진정한 의미의 ‘지속 가능한 친환경 기술’이라고 판단한다”라며 “연구소에서 화학적 재활용 제품을 한창 개발하고 있고 연내 시제품 출시가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plus point

[Interview] 김응수 SK케미칼 코폴리에스터사업부장
“고가의 친환경 플라스틱? 없어서 못 팝니다”

김응수 SK케미칼 코폴리에스터 사업부장이 ‘이코노미조선’과 인터뷰에서 자사 친환경 플라스틱 제품의 특징을 설명하고 있다. 사진 김흥구 객원기자
김응수 SK케미칼 코폴리에스터 사업부장이 ‘이코노미조선’과 인터뷰에서 자사 친환경 플라스틱 제품의 특징을 설명하고 있다. 사진 김흥구 객원기자

기업은 돈을 벌어야 한다. 거역할 수 없는 공익적 요구가 밀려들어도 수익 창출은 기업의 존재 이유다. 원가 경쟁력이 취약할 수밖에 없는 친환경 플라스틱이 SK케미칼의 주력 먹거리로 부상할 수 있을까. 김응수 SK케미칼 코폴리에스터사업부장의 대답은 “충분히 가능하다”였다.

김 부장은 비용 측면의 경쟁력 비교를 소재 원가에 국한하면 안 된다고 했다. 그는 “최근 국제 사회와 글로벌 기업의 플라스틱 정책 변화는 매립·소각하거나 바다에 버려 발생하는 환경 비용이 결국에는 재활용 비용보다 비싸진다는 인식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했다.

김 부장은 “다소 비싸더라도 환경을 생각해 친환경 플라스틱을 택하는 기업과 소비자가 전 세계적으로 크게 늘고 있다”며 “장기적인 관점에서 보면 SK케미칼의 친환경 플라스틱 사업도 성장세를 지속할 것”이라고 했다.

친환경 플라스틱은 비싸도 없어서 못 파는 게 현재 분위기라고 김 부장은 귀띔했다. 그는 “시장에서 PCR(소비자 사용 후 재활용) 페트 가격이 새로 만든 페트보다 30%가량 높은데,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한다”며 “업계 플레이어들은 친환경 원료에 붙는 프리미엄을 이미 인정하고 있다”고 했다.

SK케미칼의 친환경 플라스틱 신제품인 ‘클라로’와 ‘에코트리아’도 이 회사의 기존 주력 제품인 스카이그린 대비 20~30% 정도 비싸다. 김 부장은 “그런데도 글로벌 화장품 브랜드 오너들이 주저 없이 클라로와 에코트리아를 선택한다”라며 “친환경 플라스틱 사용을 촉구하는 정부 정책까지 강화된다면 뛰어난 기술력을 지닌 국내 플라스틱 기업들이 세계 시장을 선점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전준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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