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확영 서울대 컴퓨터공학과, 삼성SDS, 프리챌, NHN, 카카오 / 사진 임수정 기자
이확영
서울대 컴퓨터공학과, 삼성SDS, 프리챌, NHN, 카카오 / 사진 임수정 기자

“카카오톡을 만들기 전 3년은 실패의 연속이었습니다. 인터넷에서 모바일로 플랫폼이 바뀌면서 기회가 왔고, 우리는 기회를 잡았습니다. 끝까지 버티면 성공하고, 중간에 포기하면 없어집니다.”

‘카카오톡 개발자’ 이확영 그렙(grepp) 대표는 4월 9일 서울 역삼동에서 진행한 ‘이코노미조선’과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이 대표는 김범수 카카오 의장, 이제범 전 다음카카오 신사업 총괄과 함께 카카오톡 개발의 주역으로 꼽히는 인물이다.

그는 삼성SDS에서 일하면서 김 의장과 처음 인연을 맺었다. 김 의장은 2006년 12월 카카오 전신인 아이위랩을 창업한 뒤 직접 이 대표를 불렀다. 아이위랩은 2010년 사명을 카카오로 바꿨다. 이 대표는 2013년 카카오를 나오기까지 6년간 김 의장과 함께했다.


어떻게 카카오톡을 개발하게 됐나.
“아이위랩은 PC 기반 서비스인 브루나닷컴과 위지아닷컴 성과가 좋지 않은 상황이었다. 애플이 아이폰을 개발한다는 소식을 듣고 모바일 서비스 출시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게임이나 교육 서비스를 하자는 아이디어가 많았는데, 김 의장은 모바일에서 커뮤니케이션 기능이 가장 중요하다고 봤다. 김 의장을 믿고 따랐다. 일대일, 그룹, 일대다 등 세 가지 방식의 커뮤니케이션 서비스를 만들었고 그중 일대일 커뮤니케이션 서비스가 카카오톡이다. 그룹은 카카오아지트, 일대다는 트위터를 벤치마킹한 카카오수다다. 세 가지 서비스를 출시한 뒤 성장이 가장 빠른 카카오톡에 집중했다.”

당시 한국 메시지 애플리케이션(앱) 시장은 어땠나.
“왓츠앱, 엠엔톡 등이 있었다. 왓츠앱을 벤치마킹한 카카오톡은 왓츠앱에 없던 그룹 채팅 기능을 추가했다. 왓츠앱은 사람들이 많이 썼지만, 유료였다. 엠엔톡은 서비스가 불안정하다는 문제가 있었다. 카카오톡은 무료였고, 엠엔톡보다 안정적으로 서비스를 제공했다.”

카카오톡 성공을 예상하지 못했나.
“2009년 11월 한국에 아이폰이 출시되고 2010년 8월에는 갤럭시가 나왔다. 그전까지 스마트폰을 사용하는 사람이 적었던 데다, 아이폰과 갤럭시 출시로 스마트폰 보급이 이렇게까지 늘어나리라 예상하지 못했다. 2010년 여름쯤 내부적으로 가입자가 얼마나 늘어날지 예상했을 때, 다들 50만~100만 명 정도로 봤다. 실제로는 그해 연말에 500만 명쯤 됐다.”

카카오톡 가입자는 2010년 11월 500만 명, 2011년 4월 1000만 명 그리고 불과 석 달 후인 2011년 7월 2000만 명을 넘어섰다. 2012년 6월에는 한국 인구와 비슷한 5000만 명에 이르렀다. 카카오톡이 키운 국내 메시지 앱 시장에 경쟁자도 늘었다.

위기의 순간은 없었나.
“2010년 서버 대여섯 대로 서비스를 시작했는데 가입자가 급격하게 늘면서 카카오톡 속도가 느려졌다. 2011년에 나온 틱톡이 빠르고 가벼운 서비스로 단숨에 가입자 1000만 명을 찍어 아이위랩은 위기감을 느꼈다. 그래서 ‘겁나 빠른 황소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이 프로젝트를 통해 카카오톡 속도를 확 높여 틱톡의 비교 우위가 사라졌다. 플랫폼 서비스는 시장을 선점하고 많은 이용자를 빨리 확보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당시 카카오톡 이용자는 4000만 명이었고, 틱톡과 큰 격차를 보였다.”

해외 진출이 어려웠던 이유는 무엇인가.
“한국에서 워낙 빨리 성장했고 수익 사업도 준비하다 보니 2011년에야 일본에 진출했다. 현지화에 성공하려면 투자도, 홍보도 많이 해야 하는데 그럴 여력이 없었다. 일본 이후 인도네시아 등 동남아에 진출했는데, 그때는 이미 위챗과 라인이 시장을 장악해서 쉽지 않았다.”

카카오톡 유료화 검토는 없었나.
“앱 자체를 유료화한다는 생각은 전혀 없었다. 김 의장에겐 사람이 많이 모이면 플랫폼이 돈이 된다는 믿음이 있었다. 기프티콘이나 이모티콘 수익이 있었지만, 본격적으로 돈을 벌기 시작한 건 2012년 ‘게임하기’가 나오면서부터였다. 게임하기도 처음부터 잘될 거로 생각해서 시작한 건 아니었다. 우리 제안을 받아준 게임 업체가 없어서 내부에 팀을 꾸려 게임하기를 시작했다.”

카카오톡 가입자가 1억 명을 돌파한 2013년, 이 대표는 카카오를 나왔다. 그는 2014년 게임 회사 ‘에잇크루즈’를 창업하며 새로운 도전에 나섰다. 2016년 사명을 그렙으로 바꾸면서 개발자 교육 사업에 주력했다. 이후 카카오 블라인드 채용 대회, SK주식회사 C&C 개발자 인턴 채용 등 기업 대상의 개발자 채용 서비스를 제공하기도 했다.

왜 카카오를 나왔나.
“카카오 직원이 200~300명 수준이 되자 직접 개발하기보다 직원을 관리하고, 전략을 세우고, 회사의 방향성을 고민하는 일이 많아졌는데, 재미가 없었다. 새로운 서비스를 만들고 싶어서 카카오를 나왔다. 아이위랩 시절 큰 회사의 높은 직책을 맡다가 온 사람이 많았다. 가벼운 작은 조직, 새로운 시도를 하고 무언가를 만드는 일을 좋아하는 사람들이었다. 회사가 커지면 그런 기회가 없어진다. 조직이 크면, 거기 맞는 사람이 따로 있다.”

카카오톡은 인생에서 어떤 의미인가.
“이렇게 많은 사람이 쓰는 서비스 개발에 발을 담근 건 큰 영광이다. 프리챌을 개발했지만 전 국민이 쓰는 서비스는 아니었다. 카카오톡은 전 국민을 위한 서비스다.”

‘제2의 카카오톡’을 꿈꾸는 스타트업에 조언하자면.
“카카오가 처음부터 성공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지만, 아이위랩 출범 후 3년 동안은 실패만 했다. 미국에서 선보인 부르닷컴은 반응도 안 좋았다. 한국에서 내놓은 위지아닷컴은 콘셉트는 좋았지만, 네이버가 인터넷 시장을 꽉 잡고 있어서 들어갈 틈이 없었다. 인터넷에서 모바일로 플랫폼이 바뀌면서 기회가 왔고, 우리는 그 기회를 잡았다. 이용자가 원하는 것을 만들려고 노력하면 성공할 수 있다. 꾸준히 가다 보면 길이 보인다. 끝까지 버티면서 가면 성공하고, 중간에 포기하면 없어진다.”

김유정·임수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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