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선도 업체들을 보면 그 회사의 규모가 우리를 압도하는 정도라서 엄청난 공포감, 이런 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김범수 카카오 의장은 카카오톡 출시 10주년을 맞은 지난 3월, 직원들에게 보내는 영상 메시지를 통해 이런 소회를 밝혔다. 한국을 대표하는 플랫폼 사업자로서 글로벌 시장을 바라보며 언젠가는 거대 플랫폼 기업을 협력자 혹은 경쟁자로 마주해야 할 숙명을 느꼈음을 추측해볼 수 있는 대목이다.

플랫폼은 사람들이 열차를 타기 위해 모이는 승강장이다. 온라인 공간에서는 전 세계 사람이 콘텐츠와 서비스를 이용하기 위해 모이는 지점이다. 디바이스로 시작한 애플, 소프트웨어 제조사 마이크로소프트(MS), 온라인 쇼핑몰 운영사 아마존, 포털 구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페이스북 등 글로벌 테크 빅 5 기업은 각기 다른 출발점에서 시작했지만, 지금은 같은 지점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바로 ‘플랫폼’이다.

2019년 9월 기준 전 세계 시가총액 상위 10개 기업 중 3곳(버크셔해서웨이·JP모건·존슨&존슨)을 제외한 나머지 7곳이 플랫폼 사업을 하고 있으며, 이들의 시가총액 합산액은 5조1243억달러(약 6300조원)에 이른다. PC 운영체제(OS) 플랫폼인 윈도를 주력 사업으로 하다 최근 B2B(기업 간 거래) 클라우드 플랫폼 사업에 집중하고 있는 MS의 시가총액이 1조616억달러로 1위에 이름을 올리고 있으며 스마트폰, 모바일OS, 앱스토어로 이뤄진 아이폰 플랫폼을 운영하고 있는 애플이 1조122억달러로 뒤를 쫓고 있다. 세계 최대 전자 상거래 플랫폼 기업인 아마존, 검색 기반 인터넷 광고 플랫폼과 유튜브 영상 스트리밍 플랫폼을 보유한 구글 지주회사 알파벳, SNS 페이스북까지 이른바 테크 자이언트로 불리는 모든 기업은 플랫폼 사업을 기반으로 한다.

플랫폼 기업은 전통적인 제조업에서 상상하기 어려운 매출과 영업이익을 내고 있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반도체 시장이 흔들리며 영업이익이 반 토막 났지만 애플은 전년보다 더 많은 이익을 벌어들였다. MS나 구글, 아마존, 페이스북도 매년 10조~50조원 규모의 영업이익을 거둬들인다. 불황을 크게 타지 않고 안정적으로 수십조원대의 돈을 벌어들인다.

삼정KPMG경제연구원은 플랫폼 비즈니스로 영향받을 5대 산업 분야로 모빌리티·유통·소비재·금융·헬스케어 등을 꼽았다. 기술 기업들이 플랫폼을 기반으로 이들 산업으로 영역을 확장하면서 전통 산업 생태계가 완전히 바뀌는 현상이 나타날 것이란 분석이다.

예컨대 모빌리티 분야에서 우버와 같은 플랫폼 사업자의 등장은 단기적으로는 택시 산업에 영향을 미치는 데 그치지만, 중장기적으로는 자동차 판매량을 줄이는 효과가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또 완전자율주행 기술이 상용화하고 전기차로 패러다임이 전환하면 미래 차에 들어가는 부품 수가 3분의 1 수준으로 줄어든다. 유통 산업의 경우 이미 테크 자이언트의 등장으로 큰 파장이 일고 있다. 아마존을 두려워하는 현상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아마존 이펙트’나 오프라인 유통채널의 몰락을 의미하는 ‘유통 아포칼립스’ 등의 신조어가 등장했다. 북미 최대 유통 업체 시어스가 설립 126년 만인 2018년 파산보호를 신청했다.


plus point

시장을 장악한 플랫폼
한·중·일 메신저 삼국지…카톡 vs 위챗 vs 라인

2010년 출시돼 순식간에 서구권을 장악한 모바일 메신저 왓츠앱. 월간 이용자가 10억 명에 달할 정도로 흥행에 성공했지만 한국·중국·일본 등 동아시아 시장은 노크조차 제대로 하기 어렵다. 동아시아 지역은 이미 시장을 장악한 메신저가 있기 때문이다.

글로벌 정보기술(IT) 업계는 한국·중국·일본의 토종 메신저 시장의 독특한 현상에 주목하고 있다. 한국은 카카오의 ‘카카오톡’, 중국은 텐센트의 ‘웨이신(영어명 위챗)’, 일본·대만·태국 등에서는 라인주식회사의 ‘라인’이 압도적인 시장 점유율을 보이고 있다. 카카오, 텐센트, 라인주식회사는 경영진과 지분 관계로 서로 긴밀하게 엮여 있다는 점에서 이목을 끌고 있다.

‘작은 쪽지’라는 뜻의 웨이신은 중국 최대 IT 기업 텐센트가 2011년 1월 21일 출시한 메신저다. 웨이신은 텐센트 광저우 연구개발센터 직원 짱 샤오룽과 텐센트 대표 마화텅이 협업해 만들었다. 웨이신이 중국 국민 메신저로 성장하는 데 가장 주효했던 기능은 ‘워키토키’와 ‘흔들기’다. 워키토키는 텍스트 없이 음성 메시지로 채팅할 수 있는 서비스다. 흔들기는 웨이신을 실행한 상태에서 스마트폰을 흔들면 같은 시간에 흔들기 기능을 이용하고 있는 사람과 연결되는 기능이다.

텐센트는 카카오와 인연이 깊다. 텐센트는 투자 계열사 막시모를 통해 2012년 4월 카카오에 720억원가량을 투자해 지분 13.8%를 확보했다. 다음카카오 합병으로 텐센트가 보유한 카카오 지분 가치는 5배 정도 뛰었다. 지난해 말 기준 막시모는 카카오 지분 6.49%를 보유, 국민연금공단에 이어 4대 주주로 이름을 올렸다. 피아오 얀리 텐센트게임스 부사장은 카카오 사외이사다.

텐센트는 웨이신을 기반으로 중국에서 O2O(온라인 기반 오프라인 서비스), 인터넷 전문은행, 핀테크 사업을 활발히 펴고 있는데 카카오도 이런 모델을 따라 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반대로 텐센트가 웨이신을 발전시킬 때 1년 정도 먼저 출시된 카카오톡 모델을 참고했다고 한다.

일본과 대만, 태국 등지를 장악한 라인은 네이버가 100% 출자한 기업이다. 라인을 운영하는 라인주식회사의 전신은 2000년 설립된 한게임재팬으로, 이후 NHN재팬, 네이버재팬 등의 이름을 거쳤다. 네이버와는 별개로 독자 경영하고 있다.

라인은 자리 잡기까지 많은 시행착오를 거쳤다. 네이버는 카카오톡 대항마로 2011년 2월 16일 모바일 메신저 ‘네이버톡’을 국내에 선보였으나 이미 카카오가 시장을 선점한 상태였다. 네이버는 국내보다 스마트폰 보급률이 낮은 일본 시장에 주목하고 라인을 출시했다. 라인은 출시되자마자 큰 인기를 끌었고 라인 이모티콘 캐릭터인 브라운, 코니 등 라인 프렌즈가 캐릭터 사업에서 빛을 보게 됐다.

카카오톡, 웨이신, 라인은 ‘이용자의 일상생활에 있는 모든 것을 연결하겠다’는 공통 비전을 갖고 있다. 이를 위해 3사 플랫폼은 생활에 필요한 모든 콘텐츠와 서비스를 자신의 플랫폼으로 흡수해 자체 생태계를 만들고 있다.

김유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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