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이후에는 집과 업무시설의 경계가 희미해질 것으로 보인다. 자택 책상에 앉아 노트북 웹캠을 통해 화상 회의를 하고 있는 여성.
코로나19 이후에는 집과 업무시설의 경계가 희미해질 것으로 보인다. 자택 책상에 앉아 노트북 웹캠을 통해 화상 회의를 하고 있는 여성.

통신 회사에 다니는 김민수(37)씨는 2월 말부터 4월 중순까지 회사에 가지 않고 재택근무를 했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대면업무를 굳이 하지 않아도 되는 직군은 회사 차원에서 재택근무를 시행한 데 따른 것이다. 재택근무 초기에는 집과 회사의 구분이 사라져 퇴근 시간이 돼도 업무를 마친 것 같은 기분이 들지 않았다. 하지만 방을 업무 용도로 꾸미고 의식적으로 회사에서 일하는 것과 비슷한 시간 패턴을 적용하면서 이런 이질감이 많이 사라졌다. 김씨는 “재택근무에 적응하다 보니 집과 사무실이 크게 다르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고 했다.

코로나19 확산으로 집의 개념이 바뀌고 있다. 재택근무가 시행되고 정부 차원에서 비대면 업무·교육을 권장하면서 업무·상업시설의 기능이 주거시설로 옮겨가고 있다. 각 부동산이 가진 고유의 경계가 희미해지는 것이다. 이런 추세가 지속하면 ‘직주근접’ 같은 전통적인 개념이 사라지면서 부동산 시장에도 커다란 변화가 나타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코로나19로 재택근무를 경험한 사람들은 집에서만 한두 달을 머물러도 생활하는 데 전혀 무리가 없다고 말한다. 온라인 쇼핑몰이나 배달 애플리케이션(앱)을 통해 생활용품과 음식 재료, 식사 등을 해결할 수 있고 인터넷으로 얼마든지 업무를 볼 수 있어서다. 요즘 지어진 아파트의 경우 커뮤니티 활동도 큰 무리가 없다. 카페, 도서관, 운동시설 등을 단지 안에서 마음껏 이용할 수 있다.

집을 벗어나지 않아도 얼마든지 여가활동을 즐길 수 있다. 인터넷을 통해 미디어 콘텐츠를 경험할 수 있는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의 발달 덕분이다. 이른바 ‘집콕인구’가 늘면서 3월 한 달간 넷플릭스 이용자는 전달보다 20% 넘게 증가했다. 신작을 보기 위해 영화관에 가야 한다는 건 옛말이 됐다.


똑똑해지는 집

부동산 시장과 관련 산업도 급속하게 변할 것으로 보인다. 영국의 라이프 스타일 전문 매체 디진(DEEZEEN)은 코로나19로 가구 내부의 해로운 바이러스와 박테리아를 제거하는 장치 수요가 늘면서 스마트 홈 시스템 제조 업체가 진화할 것이라고 봤다. 사실 이런 현상은 한국에선 이미 상당 부분 진행됐다. 중국발 미세먼지 영향으로 건설사는 초미세먼지를 잡아내는 공기 청정 시스템을 선보이고 있다.

집이 사무실과 비슷해질 것이라는 전망도 했다. 디진은 대형 창문과 사무용 가구 등 업무에 최적화된 시스템이 집에 갖춰지고, 업무에 집중하기 위해 방음 기능이 더 강화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집이 곧 사무실이 되는 셈이다. 디진은 “모든 걸 갖춘 최고의 회사도 평범해 보일 것”이라고 밝혔다.

가상현실(VR)을 통한 사이버 견본주택도 대세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이미 현대건설과 대림산업, GS건설, 대우건설 등 대형 건설사를 중심으로 건설 업계는 사이버 견본주택을 선보이고 있다. 드론과 부동산 전문가 등을 활용해 주변 입지와 청약 정보 관련 내용을 유튜브로 선보이고 있다. 앞으로 이런 콘텐츠 수요는 더욱 많아질 것으로 전망된다.

부동산 개발 회사 피데스개발의 김희정 연구·개발(R&D)센터 소장은 “재택근무나 온라인 쇼핑, 게임, 엔터테인먼트 등에 VR, 증강현실(AR)이 적용되는 현상이 보편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상영 명지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코로나19, 동향과 전망’이라는 책에서 부동산 시장 매매 패턴도 바뀔 것으로 내다봤다. 대면 중심의 기존 거래 관행이 바뀐다는 것이다. 소비자의 호응을 얻지 못하고 있는 부동산거래 전자계약과 부동산 전자등기가 본격적으로 시행될 수 있다고 이 교수는 말했다.


물류창고·데이터센터 성장 전망

오피스·상업시설도 주거공간 못지않게 획기적인 변화가 예상된다. 업무·구매·교육 등의 활동이 대부분 온라인으로 이뤄지는 만큼 이를 충족할 만한 시설이 마련돼야 하기 때문에 물류시설과 데이터센터 등의 수요가 그만큼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부동산 리서치 업체 세빌스코리아가 한국인의 주요 인터넷 쇼핑 결제 금액 표본을 조사한 결과, 1월 1조4400억원이었던 쿠팡 온라인 매출은 2월 1조6300억원으로 증가했다. 제주도 등 도서지역을 제외하면 전국 1일 배송이 가능한 한국의 상황 덕분에 굳이 밖에 나가지 않아도 온라인 쇼핑을 통해 생필품 등을 구매한 것이다.

세빌스코리아 리서치&컨설턴시 본부는 “생필품 위주의 다품종 소량 매출이 증가하고 있어 ‘전국의 모든’ 창고 수요가 증가했다고 단정 지을 수는 없다”면서도 “물품처리 능력과 시스템, 인력 수급 등이 양호한 지역이 더욱 부각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따라 가격과 임대료 차이도 크게 벌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데이터센터도 가파르게 성장할 것으로 보인다. 코로나19 사태를 계기로 정보기술(IT) 인프라와 서버, 클라우드 서비스 등이 재조명받아 앞으로 더 많은 기업이 서버 시스템에 대한 투자를 늘릴 것으로 예상된다고 세빌스는 전망했다.


plus point

[Interview] 안상태 대우건설 마케팅실장(상무)
“‘원스톱’ 기능 강조한 주거시설 나타날 것”

서울대 건축학 석사, 대우건설 주택건축기술실 실장, 대우건설 상품개발팀장
서울대 건축학 석사, 대우건설 주택건축기술실 실장, 대우건설 상품개발팀장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인한 주거문화의 변화를 가장 주의 깊게 지켜보는 곳은 기업이다. 한국 사람 10명 중 6명이 살고 있다는 아파트를 짓는 건설사는 특히 이런 변화를 관심 있게 바라보고 있다.

안상태 대우건설 마케팅실장(상무)은 4월 28일 ‘이코노미조선’과 인터뷰에서 “앞으로의 주거시설은 단지 안에서 모든 걸 해결할 수 있는 ‘원스톱’ 기능이 더욱 강조되면서도 개인과 지역에 따라 매우 세분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코로나19로 주거시설은 어떻게 변할까.
“재택근무, 온라인 교육 등이 시행되며 집에서 생활하는 시간이 늘었다. 앞으로 자택에서 모든 걸 해결할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지역과 개인마다 선호하는 점이 다르기 때문에 주거시설과 가구 구성은 더욱 다양해질 것이다.”

비대면 서비스나 로봇, 인공지능(AI) 등은 주거시설에 어떻게 활용될까.
“최근 공동주택에는 피트니스, 스크린 골프, 독서실 등 커뮤니티 시설의 중요성이 계속 강조되고 있다. 스마트폰 앱을 통한 커뮤니티 시설 예약·조회·결제 등의 기능도 제공된다. 앞으로는 스마트폰 앱에 인공지능 기술인 챗봇을 도입해 입주민이 더 편리하게 커뮤니티 시설을 이용할 수 있도록 할 예정이다. 바리스타 로봇이나 커뮤니티 시설 안내 로봇 등도 활용이 가능할 것으로 본다.”

비대면 업무가 많아지면서 교통이나 학군, 생활 인프라 등에 대한 선호도가 과거보다 떨어질 수 있다.
“교통·학군·생활 인프라를 수요자가 포기하리라 생각하진 않는다. 오히려 재택근무가 증가하면 출·퇴근 시간의 감소로 여가가 늘어 주거지역 주변의 교통·생활 인프라 등의 선호도가 더욱 높아질 것이라 생각한다.”

코로나19 확산으로 모여 사는 공동주택에서 홀로 사는 단독주택으로 주택 수요가 이동할 것이란 전망도 있다.
“이웃 접촉이 적은 단독주택 선호도가 높아질 것이라 생각한다. 앞으로 단독주택에서도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는 비대면 서비스를 개발해 삶의 질을 향상시킬 계획이다. 또 보안·편의시설 등 그동안의 단점을 개선한 블록형 단독주택도 추진 중이다.”

이진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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