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BBC 원 채널 드라마 ‘이어즈&이어즈’에 등장하는 극우 포퓰리스트 비비드 룩 총리. 현실 속에서도 제2, 제3의 비비드 룩이 집권하는 국가들이 늘고 있다. 이 국가들은 현재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위기를 맞고 있다. 사진 왓챠
영국 BBC 원 채널 드라마 ‘이어즈&이어즈’에 등장하는 극우 포퓰리스트 비비드 룩 총리. 현실 속에서도 제2, 제3의 비비드 룩이 집권하는 국가들이 늘고 있다. 이 국가들은 현재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위기를 맞고 있다. 사진 왓챠

“가자(Gaza) 지구의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 한 말씀해주세요. 이스라엘이 전기 공급을 하루 2시간으로 줄였다는데요.”

“저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에 대해서… 신경을 전혀 안 씁니다(I don’t give a fuck).”

영국의 여성 기업가 비비드 룩은 2019년 TV 방송 토론회에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관계를 묻는 시민의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그는 뒤이어 “세계 각지에서 이와 관련된 헤드라인이 빗발치는데, 저는 우리 집 쓰레기만 매주 수거되면 바랄 게 없어요”라고 소리쳤다. 국제 사회에 대한 관심보다 생활적 불편함이 더 크게 느껴진다는 답변이었다. 질문자를 비롯한 토론 패널들은 당황했지만, 방청석에서는 박수갈채가 쏟아졌다.

그는 2026년 영국 총리직에 당선된다. 물론 현실은 아니다. 2019년 방영된 BBC 원 채널 드라마 ‘이어즈&이어즈’ 속 이야기다. ‘이어즈&이어즈’는 극우 포퓰리스트 비비드 룩이 2019년부터 2034년까지 영국 정치를 바꾸는 미래를 그린 드라마다. 전 세계 국가들이 고립주의를 추구하는 정치사의 흐름을 현실적으로 그려냈다.

21세기 이후 전 세계 리더의 포퓰리즘 성향은 갈수록 증가하고 있다. 영국 일간지 ‘가디언’의 연구팀 ‘팀 포퓰리즘’이 2000년부터 40개 국가의 역대 대통령과 총리 140명을 연구한 결과, 평균 포퓰리즘 지수는 2000년대 초 0.2에서 현재 0.4로 두배 증가했다. 이 조사는 0.5 이상을 받은 지도자를 포퓰리스트로 분류했다. 포퓰리스트 지도자의 수는 2004년 7명에서 2019년 조사 시기까지 14명으로 늘었다. 지난 5년 동안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나렌드라 모디 인도 대통령, 안드레스 마누엘 로페스 오브라도르 멕시코 대통령, 자이르 보우소나루 브라질 대통령 등이 당선된 결과다.

모든 사회 현상은 물질적 변화에 영향을 받는다. 현실 속 ‘비비드 룩’들이 인기를 끄는 이유는 정보통신기술(ICT)의 발달 덕분이다. 인터넷 보급으로 모든 시민이 정보를 공유하면서 전통 미디어는 힘을 잃었다. 딱딱한 지식을 사실대로 전파하던 전문가의 권위는 하락한다. 국제 사회와 같은 피상적인 주제를 다루던 사람보다 직관적인 사람이 신뢰를 얻는다. 엘리티스트(elitist)가 지고 포퓰리스트가 득세한 배경이다.

지식의 전문성을 포기한 결과는 참혹하다. ‘이어즈&이어즈’ 속 인물들은 “세균의 존재는 제약 회사가 만든 거짓말”이라는 가짜뉴스까지 쉽게 믿는다. 비비드 룩도 총선 후보 TV 토론회에서 ‘수출 관세’에 대한 명확한 지식 없이 상대 당을 비판한다. 결국 상대 당 후보에게 “제대로 알긴 합니까? 아무것도 모르는 것 같군요. 아주 상세하고 정확한 정보를 당신은 이해도 못 하고 아무 말이나 주워섬기죠”라는 비판을 받는다. 그런데도 비비드 룩은 대중을 현혹하는 언변과 공약으로 당선에 성공한다.


전문가 배척하고 여론 의식해서 늦장 대응

다행히도 현실 정치에선 2026년에 비비드 룩 같은 정치인이 집권하지 않을 수도 있겠다. 포퓰리즘이 팬데믹(pandemic·감염병 대유행)이라는 거대 암초를 만났기 때문이다. 전문가의 지식보다 여론을 의식하는 포퓰리스트들의 태도가 잇달아 방역 대책의 실패로 이어졌다. 

보우소나루 대통령은 전문가의 권고에 반하는 지침을 내렸다. 그는 마스크 없이 집회에 참여한 사람들에게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은 ‘작은 감기’에 불과하고 바이러스보다 록다운(lockdown·제재)에 따른 경제 침체가 더 심각하다”면서 “‘사회적 거리 두기’를 하지 말고 직장에 돌아가 일하고 큰 집회에 참여하라”고 부추겼다.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는 늦장 대처로 ‘사망자 낳는 조커’라는 별명까지 붙었다. 코로나19 확산 초기에 5차례나 긴급회의에 불참하고 2주간 휴가를 떠난 총리는 결국 본인이 코로나19 확진자가 됐다.

전문적인 지식에 대한 무지는 웃음으로 넘어가기만은 힘든, 촌극(寸劇)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살균제 인체 주입’ 발언으로 논란을 빚었다. 한 정부 당국자가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살균제로 소멸된다는 정부 연구 결과를 발표하자 “소독제를 몸 안에 주입하거나, 세척하는 것 같은 방법은 없을까”라고 말한 것이다. 이로 인해 각 주 정부에 “살균제를 인체에 주입해도 되냐”는 문의가 수백 통 들어왔다. 이란에서 코로나19를 치료한다면서 소독용 알코올을 마셔 사망한 사례가 실존하는 상황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은 무책임했다.

여론을 지나치게 의식하면서 소극적인 대응을 하는 것도 문제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2월 다이아몬드 프린세스호 승선객들이 코로나19에 집단감염되는 사태가 일어나자, 크루즈 확진자 수를 축소하기 위해 검사를 소극적으로 진행했다. 도쿄올림픽 개최를 위해서 국외 반응뿐만 아니라 국내 여론을 긍정적으로 유지해야 했기 때문이다.

외부의 적에 책임을 전가하는 여론용 미봉책도 문제를 심화시키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코로나19가 전 세계로 퍼지기 전에 중국이 막을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이탈리아에선 극우 정당 이탈리아북부동맹 대표가 이주민의 배가 이탈리아에 도착하는 영상을 유포하면서 “이주민이 우리나라에 코로나19를 풀었다”며 책임을 물었다.

그간 경제 양극화, 이주민 문제 등 위기를 주장하던 포퓰리스트들은 실존하는 감염병 위기 앞에선 나약한 모습을 보였다. ‘전문 지식 부족, 여론을 의식한 지나친 낙관론, 문제의 원인을 외부로 돌리는 태도’가 그들의 발목을 잡은 것이다. 코로나19로 전 세계에 확산되던 포퓰리즘도 위기를 맞았다.

하지만 코로나19 이후 포퓰리즘의 운명은 우리의 선택에 달려 있다. ‘이어즈&이어즈’ 마지막 화에서 주인공 가족의 할머니는 가족에게 포퓰리스트 리더가 바꿔놓은 세상에 대해 설명한다. “어리석었지. 온갖 광대와 괴물이 웃고 나뒹굴며 우리에게 오는 걸 못 본 거야. 다 우리 잘못이란 사실은 변함없어. 은행, 정부, 불경기, 미국, 룩 총리, 잘못된 일은 모두 다 우리 탓이야.”

가족들은 “전 세계에 있는 일까지 다 왜 우리 탓이죠?”라고 묻는다. 할머니의 대답은 단호하다. “왜냐하면 여기 있는 우리는 모두 앉아서 종일 남 탓을 해. 경제 탓을 하고 유럽 탓을 하고 야당 탓을 하고 날씨 탓을 하고 광대한 역사의 흐름을 탓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고 핑계를 대지.” 그러면서 할머니는 포퓰리스트 리더가 집권하는 동안 모두가 조치를 취하지 않고 방관했다는 점을 지적한다.

이번 ‘이코노미조선’ 커버 스토리에선 위기 대응 능력이 뛰어난 리더상을 알아봤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는 전문가형 리더십이 다시 주목받지만, 전문 지식을 잘 전달하는 대중적 소통 능력 또한 갖추고 있어야 한다. ‘전문성’과 ‘대중성’을 모두 갖춘 이들을 ‘책임지는 리더’로 통칭했다. 기업을 운영하는 CEO에게 도움이 되는 조언을 함께 담았다. 어떤 리더를 선택할지, 어떤 리더가 될지 고민하는 분들이 읽어주셨으면 한다.

김소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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