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처드 레빅 미시간대 커뮤니케이션 석사, 아메리칸대 로스쿨, 아메리칸대 공공리더십 프로그램 디렉터
리처드 레빅
미시간대 커뮤니케이션 석사, 아메리칸대 로스쿨, 아메리칸대 공공리더십 프로그램 디렉터

“위기는 진공(眞空)을 용납하지 않아요(Crisis abhors a vacuum). 리더십의 공백은 또 다른 리더십으로 즉시 메워집니다. 현재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처에 미흡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대신 일부 주지사와 시장이 방역 리더로 떠오른 이유입니다.”

위기 대응 컨설팅 전문기업 레빅전략커뮤니케이션의 리처드 레빅 회장은 ‘이코노미조선’과 진행한 이메일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레빅은 위기 대응 커뮤니케이션 분야의 개척자로 2002년 천주교 사제 성 추문,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2010년 영국 에너지 기업 BP의 멕시코만 기름 유출 사고와 같은 굵직한 국제 사안의 위기관리를 맡으면서 명성을 쌓았다. 변호사 출신인 그는 현재 미국 100대 로펌의 절반, 전 세계 100대 로펌의 3분의 1가량을 고객으로 두고 있다.

그동안 수많은 세계적 리더에게 위기 리더십을 조언한 그에게 코로나19 리더십의 현주소를 물었다. 그가 보내온 답변의 첫 문장은 아리스토텔레스가 저서 ‘자연학’에서 주장한 명제 “자연은 진공을 용납하지 않는다(Nature abhors a vacuum)”를 변형한 말이었다. 자연이 공간을 비어 있는 채로 두지 않고 어떤 물질로라도 당장 채우듯, 위기 또한 리더십 공백을 또 다른 리더십으로 채우기 마련이라는 뜻이다.

코로나19로 ‘리더십의 대전환’이 일어나고 있다. 전 세계에 포퓰리즘이 확산하던 시점에 중요한 세계 정치사의 전환점이 찾아온 셈이다. 6쪽 분량의 답변에서 레빅 회장은 트럼프 정부의 리더십 부재를 지적했다. 그는 “미국이 250년 전 개국 이래 존재론적 위기를 맞고 있다”면서 “트럼프 행정부처럼 준비가 미흡하고 비효율적으로 대응하는 정부는 상상조차 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갤럽이 4월 19일(이하 현지시각) 발표한 트럼프 대통령의 지지율은 한 달 만에 6%포인트 떨어지면서 취임 이후 최저치로 하락했다.


미국은 코로나19 확진자와 사망자가 세계에서 가장 많다. 트럼프 정부의 리더십이 시험대에 올랐다.
“미국이 역사상 존재론적 위기를 맞은 것은 남북전쟁 이전인 1850년대 후반, 에이브러햄 링컨 전 대통령 암살 직후, 대공황 초기다. 코로나19는 바로 네 번째 순간이다. 코로나19 확산 5개월째에 접어들면서 트럼프 행정부처럼 준비가 미흡하고 비효율적인 대응을 하는 정부는 처음이다. 광역 진단이나 명확한 팩트가 모두 없다.”

트럼프 대통령은 4월 23일 브리핑에서 “환자에게 자외선과 강한 햇볕을 쬐게 하거나 살균제를 주입하는 방안을 검토해 보자”라고 말해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그가 선택한 대안은 정공법이 아닌 국면 전환용 미봉책이었다. 사흘 만에 모습을 드러낸 트럼프 대통령은 “코로나19가 전 세계로 퍼지기 전에 중국이 막을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며 “우리는 (중국에 대해) 심각한 조사를 하고 있다. 그들에게 책임을 물을 방법은 많다”고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의학 전문가의 조언을 거스르는 ‘트윗 정치’도 이어 가고 있다. 그는 4월 17일 극우 지지자의 자택 대기령 해제 시위를 지지하고 나섰다. “버지니아주를 해방하라!” “미시간주를 해방하라!” “미네소타주를 해방하라!”라고 트윗을 올렸는데 모두 정적인 민주당 주지사를 겨냥한 말이다. 최근에는 미네소타주에서 총 든 시위대를 “좋은 사람”이라고 칭하기도 했다.

전 세계적으로 확산한 포퓰리즘이 한계에 다다랐다는 관측도 나온다. 리더가 전문성에 기반한 철학을 제시하지 못하고 대중의 눈치만 보고 있다.
“50년 가까운 세월 동안 군, 주, 연방정부, 국제적 단위의 정치에 관여해왔다. 지금처럼 리더가 팔로어로 전락했던 때를 떠올릴 수없다. 리더가 (위기 극복을 위한) 공동체의 희생을 끌어내지 못하고, 여론 조사를 따라가는 데 급급하다. 플로리다주와 미시간주에선 실제 리더십이 포퓰리즘으로부터 도전받고 있다. 전국 규모로 조직된 시위대가 의학적 지식을 따르지 말라고 선출직 공무원을 압박하고 있기 때문이다. 전문가를 공격하지 않고 존중하면, 비난받는 시대다. 그러나 역사는 무엇이 대중에게 인기 있는지(what is popular)가 아니라, 위기 시기에 우리가 무엇을 하는지(what we do)에 따라 만들어진다.”

위기 상황에서 여론은 쉽게 분열된다. 미국에선 마스크 착용 여부나 자택 대기령 해제를 두고 반대파의 반발이 거세다.
“위기 상황에서 공동의 희생을 감수하지 않으면 문제가 생긴다. 제2차 세계대전과 대공황을 거치면서 우리는 수십 년간 희생을 경험했다. 민주주의와 자본주의는 자발적 체제다. 우리가 정지 신호에서 멈추는 이유는 경찰관이 모든 코너에서 지켜본다고 생각해서가 아니라, 질서 정연한 사회를 위해서는 공동의 희생이 뒤따른다고 믿기 때문이다. 이 체제에 대한 믿음을 저버리면 무정부주의자가 증가한다. 트럼프 대통령의 당선과 포퓰리즘의 부상과 같은 사회 조류에도, 여론 조사에서 팬데믹(pandemic·감염병 대유행)을 이겨내고자 희생을 무릅쓰겠다는 사람들의 욕구가 서서히 드러나고 있다. 명확성, 일관성, 보건 전문가와 협력을 보여준 정치인에 대한 압도적인 지지가 눈에 띄게 높다. 여론 조사는 전통적인 리더십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국민의 열망을 보여준다. 하지만 소수 권력의 목소리가 과두화한 상태에서 정권 교체는 쉽지만은 않을 것이다.”

대안으로 떠오르는 리더십이 있나.
“위기는 진공을 용납하지 않는다. 리더십의 공백은 정치 능력의 필요조건을 낮춘다. (기회를 잡기 위해) 주지사, 시장 이외에도 보건 공무원, 기업가가 공백을 메우려 달려드는 이유다. 소속 정당과 관계없이 위기에 능숙하게 대응한 주지사와 시장은 트럼프 대통령보다 30%포인트가량 높은 지지율을 보였다.”

레빅 회장은 현재 위기관리에 능숙한 리더의 특징으로 △투명성 △명확한 방향성 △취약점 인정 △진정성 △모르는 부분 인지를 꼽았다. 앤드루 쿠오모(민주당) 뉴욕 주지사가 매일 사실 기반의 브리핑을 진행하면서 시민과 소통하는 것이 대표적 예다. 래리 호건(공화당) 메릴랜드 주지사, 마이크 드와인(공화당) 오하이오 주지사, 개빈 뉴섬(민주당) 캘리포니아 주지사는 의학 전문가의 의견에 따라 이동 제한령, 공격적인 진단 등 선제적 조치를 했다. 로라 켈리(민주당) 캔자스 주지사는 향후 1년 동안 학교를 폐쇄하기로 결정한 첫 주지사로, 공화당 의원의 날카로운 비판에도 지침을 고수했다.

팬데믹 이후 포퓰리즘의 운명은.
“그것은 정말 미지의 세계다. 만약 제2, 제3의 바이러스가 퍼지면 어떻게 될까? 우리는 인식론이 반전된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사실을 수집하고 시간을 들여 결론을 도출하지 않고 반대의 과정을 거친다. 정부와 전문가의 입지를 부정하는 사람들은 무정부주의 지지를 위해 팬데믹에서 유리한 정보를 취사선택할 것이다. 공동 희생과 연대를 믿는 사람들 또한 증거를 선별할 것이다. 궁극적으로 질서 정연한 사회는 ‘공정성’과 ‘풍요’에 달려 있다. 사람들이 어두운 미래를 두려워할수록 ‘이기심’과 ‘분노’에 의존해서, 리더십은 더욱더 위기를 맞는다. 사람들이 ‘과거보다 나은 현재’를 인식하면 사회는 안정된다. 똑똑한 리더는 그런 계기를 발견하고 최적화한다. 희망은 사람들에게 최고의 선물을 안겨줄 것이다.”

김소희 기자

  • 목록
  • 인쇄
  • 스크랩
  • PDF 다운
ⓒ 조선경제아이 & economy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