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필화 서울대 경영학 학사, 미국 노스웨스턴대 MBA, 하버드대 경영학 박사, 독일 빌레펠트대 초빙교수, 성균관대 경영전문대학원(GSB) 학장, 한국마케팅학회 회장, 교보생명 사외이사. ‘가격 관리론’ ‘승자의 공부’ ‘현대 마케팅론’ 등 다수 집필 / 유필화 성균관대 명예교수는 “‘남들이 하니까 나도 한다’는 식의, 철학이 없는 리더십은 위기를 자초한다”고 했다. 사진 채승우 객원기자
유필화
서울대 경영학 학사, 미국 노스웨스턴대 MBA, 하버드대 경영학 박사, 독일 빌레펠트대 초빙교수, 성균관대 경영전문대학원(GSB) 학장, 한국마케팅학회 회장, 교보생명 사외이사. ‘가격 관리론’ ‘승자의 공부’ ‘현대 마케팅론’ 등 다수 집필 / 유필화 성균관대 명예교수는 “‘남들이 하니까 나도 한다’는 식의, 철학이 없는 리더십은 위기를 자초한다”고 했다. 사진 채승우 객원기자

3월 22일부터 5월 5일까지 이어졌던 사회적 거리 두기가 5월 6일부터 ‘생활 속 거리 두기’로 전환됐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일일 확진자가 크게 줄며 공중 보건의 위기가 점차 해소되는 데 따른 것이다. 그러나 경제 위기는 이제부터가 본격적인 시작이다. 기업 대부분의 실적이 2020년 1분기보다 2분기에 더 악화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전의 세상과는 다른 ‘뉴노멀(new normal·새로운 표준)’에도 적응해야 한다. 위기의 리더십이 빛을 발할 수도 있지만, 리더십의 위기를 맞을 수도 있는 상황이다.

코로나19 사태가 전례 없는 위기라고 하지만, 역사적으로 봤을 때 이보다 더한 위기를 헤쳐나온 리더들도 분명히 있었다. 12척의 배로 국난을 극복한 이순신 장군부터 제2차 세계대전을 승리로 이끈 윈스턴 처칠까지, ‘이코노미조선’은 역사 속 리더십이 2020년에 필요한 리더십의 좋은 교과서가 될 수 있다고 봤다. ‘역사에서 리더를 만나다’의 저자이자 ‘경영 구루(guru·스승)’이기도 한 유필화 성균관대 명예교수에게 인터뷰를 요청해 경영자들이 취해야 할 ‘위기의 리더십’에 대해 물었다. 5월 1일 서울 대방동 자택에서 만난 유 명예교수는 “모든 상황, 모든 기업에 적용되는 절대적인 리더십은 존재하지 않는다”면서도 “역사적으로 탁월한 리더들은 당장 부닥친 위협과 타협하지 않고, 본질을 꿰뚫어 보는 지혜가 있었다는 공통점이 있다”고 말했다.


‘위기와 타협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정치에서 포퓰리즘이 나타나는 것과 비슷하다. 당장은 편하게 넘어갈 수 있지만, 반드시 미래에 더 큰 위기로 돌아온다. 예를 들어, 현대자동차는 지금껏 노조가 파업하면 당장 손해를 보기 싫어서 타협하고 넘어갔다. 한 번도 전면전을 벌인 적이 없다. 주문이 밀린 상황에서 공장 문을 닫으면 수천억원 손실을 보게 되니, 요구를 들어주는 것이 당장은 더 나아 보여서다. 그런 타협이 쌓이다 보니 현재에 와서는 경영자가 어찌하기 힘들 정도로 노동조합의 힘이 세졌다. 경영자가 시대 상황에 맞춰 기업을 바꾸고 싶어도 바꿀 수 없는 상황이 됐다. 민중은 달콤한 것(포퓰리즘)을 좋아하지만, 결국 그 달콤함이 독이 되어 국가를 해친다. 기업에도 눈앞의 달콤함은 독으로 돌아간다.”

역사 속에서 ‘타협하지 않은 리더’는 누가 있었나.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 총리였던 윈스턴 처칠을 가장 먼저 들 수 있다. 나치 독일과의 전쟁은 전혀 승산 없는 상황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히틀러는 계속해서 휴전을 청했는데, 처칠 총리는 단호하게 전쟁을 택했다. 일단 소련전에 집중한 뒤 다시 영국을 치겠다는 히틀러의 간계를 꿰뚫어 보는 지혜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1970년대에 서독을 이끌었던 헬무트 슈미트 독일 총리도 위기와 타협하지 않은 대표적인 리더다. 테러리스트 집단인 적군파(RAF)가 수백 명이 탄 루프트한자 여객기를 우간다로 납치하는 사건이 벌어졌고, 상공회의소 소장도 납치당했다. 투옥된 동료를 석방하라는 요구였는데, 슈미트 총리는 쉬운 길 대신 특공대를 투입해 승객을 구출하는 어려운 길을 택했다. 전원 구조에 성공해서 다행이지 이루 말할 수 없는 위험을 무릅쓴 것이다. ‘독일은 테러에 굴복하는 국가’라는 선례를 만들 수 없다는 철학 때문이었다.”

‘포스트 코로나’라는 미지의 영역을 향한 항해가 시작됐다. 기업 방향의 키를 잡은 경영자 역할이 어느 때보다 중요해졌는데, 지금 가장 필요한 리더십은 어떤 것인가.
“좀 더 엄격한 리더십이 필요한 시대라고 본다. 당장 구조조정이 절실한 기업이 한둘이 아니다. 흔히 잭 웰치 전 제너럴일렉트릭(GE) 회장을 두고 ‘사람 자르는 것밖에 할 줄 모른다’고 비판하는데, 반대로 구조조정이 얼마나 어려운 작업이면 ‘경영의 신’이라는 얘기가 나오겠나. 그만큼 조직 안팎으로 큰 미움을 사는 일이라는 거다. 나는 구조조정의 리더십은 마키아벨리에게서 배워야 한다고 믿는다. 마키아벨리의 통치 사상은 ‘수혜는 오랫동안 잘게 나눠서 베풀어 소위 약발이 떨어지지 않게 하고, 폭력은 단번에 행사해 혼란을 최소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회사가 구조조정해야 하는 인원이 1000명이라면 눈 딱 감고 ‘후다닥’ 해치워버려라. 그다음에 회사를 다잡는 게 훨씬 쉽다. 찔끔찔끔 50명씩, 100명씩 계속 사람을 자르면 회사 내부가 엉망이 된다.”

코로나19 사태 속에서도 성장하는 마이크로소프트나 아마존과 같은 기업을 보면, 아예 사업 구조를 뜯어고치는 대혁신을 하지 않았나. 우리 기업도 이런 결단을 해야 한다는 지적이 있는데.
“다 뜯어고치는 이노베이션(innovation)만이 혁신이라고 오해하는 리더가 많다. 시장 변화에 적응하는 체질 개선(improvement)도 혁신의 한 방법이다. 미국 기업은 인수·합병(M&A)을 통해 이노베이션하는 것을 잘하지만, 독일 기업은 체질 개선으로 사업을 알차게 키워나가는 데 능하다. 어느 것이 절대적으로 더 우월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문제는 ‘남들이 하니까 나도 한다’는 철학이 부재한 리더십이다. 쌍용·해태·진로 등이 좋은 기업이었는데 각각 자동차·전자·유통이라는 대세 업종에 뛰어들면서 역량을 깎아 먹고 망한 사례다. 매출 규모나 시장 점유율, 재계 순위에 집착한 ‘양 위주 경영’을 한 것이다. 몸집을 불리는 것은 쉽지만, 불어난 몸집 탓에 비만과 당뇨 등의 부작용에 시달린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나. ‘이익 위주 경영’을 철저하게 고집하는 리더십 지혜가 필요하다.”

재계에서는 ‘3세 경영’이 본격화하고 있다. 선대가 일군 기업을 이어받아 성과를 내야 하는 상황인데, 초반부터 코로나19 사태로 시험대에 올랐다. 이런 상황에서 본받을 만한 리더가 있다면.
“청나라 4대 황제였던 강희제에게서 배울 점이 많다. 아직은 미성숙하고 혼란했던 청나라를 선대에게 물려받아 내치와 외치 모두 완벽하게 다잡았다. 현재의 중국 영토가 확정된 것도 강희제 때이고, 삼번의 난(청나라 건국에 기여한 명나라 장수들이 일으킨 반란)을 평정하고 피지배층이 된 한족을 체제에 복속했다. 강희제가 스스로 꼽은 업적의 원동력은 바로 ‘공부’였다. 어려서부터 죽을 때까지 학문에 매진했고, 심지어 전쟁터에서도 책을 읽었다. 그렇게 쌓은 지혜를 토대로 어떤 위기가 닥쳐도 본질을 꿰뚫어 보고 현명하게 처신했다. 만주족 출신이라고 무시하던 한족들도 강희제의 학식에는 승복할 수밖에 없었다. 자신의 능력을 조직 내부에 증명해야 한다는 과제를 안은 3세 경영자들이 본받을 부분이다. 흥미로운 점은 강희제는 전쟁을 아주 많이 한 군주인데, 재위 내내 한 번도 증세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대신 황실 지출 등 국가 차원의 낭비를 대폭 줄여 예산을 충당했다. 얼마나 지독했느냐 하면, 재위 60주년 기념 연회를 하자고 신하들이 청했는데도 끝까지 거절했다. 재정 건전성의 중요성을 알고 몸소 실천한 리더다.”

최상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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