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글을 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5월 5일 애리조나주 피닉스에서 마스크 생산 기업 허니웰의 공장을 시찰하고 있다. 사진 AFP연합
고글을 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5월 5일 애리조나주 피닉스에서 마스크 생산 기업 허니웰의 공장을 시찰하고 있다. 사진 AFP연합

5월 5일(이하 현지시각), 38일 만에 처음으로 외부 행사에 나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끝내 마스크를 쓰지 않았다. 그것도 마스크 생산 공장을 시찰하는 행사에서였다. 대신 투명한 고글을 쓴 채 현장 연설까지 했다. 미국 질병관리본부(CDC)는 4월 3일 ‘직물로 된 마스크를 쓰라’는 권고 지침을 내렸다. 트럼프 대통령이 이 지침을 직접 발표했는데, ‘당신은 왜 마스크를 쓰지 않느냐’는 질문이 들어오자 “대통령 집무실에 앉아서 각국 정상을 만나는 내 모습을 상상할 수 없다”고 대답했다.

‘트럼프처럼’ 마스크 착용을 거부하며 소동을 일으키는 사례는 미국 전역에서 잇따르고 있다. 최근 미시간주에선 한 남성이 마스크 착용을 요구하는 상점 직원의 셔츠에 코를 닦는 사건이 일어났다. 트럼프 대통령은 4월 23일 백악관 브리핑에서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치료법으로 소독제를 몸에 주입해보면 어떻겠냐”고 제안하기도 했다. 관련 문의가 쇄도해 지방 정부와 전문가들이 급히 진화에 나섰다.

트럼프 대통령이 ‘주사용 소독약’을 찾아다니는 동안,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MS) 창립자는 사재를 털어 코로나19 백신과 치료제 개발 사업에 2억5000만달러(약 3063억원)를 기부했다. 게이츠의 자금 지원을 받은 생명공학 기업 이노비오는 4월 6일 코로나19 DNA 백신을 개발해 임상시험에 돌입했다. 게이츠는 백신 프로젝트 7가지를 지원한 것으로 알려졌다. 빠르면 1년 내, 늦어도 2년 내에 백신을 출시하는 것이 목표다. 행정부 수반이 드러낸 ‘리더십 공백’을 민간 기업 출신의 경영자가 메운 셈이다.

잭 도시 트위터 창업자 겸 최고경영자(CEO)는 코로나19로 피해 본 이들을 돕기 위해 10억달러(약 1조2200억원)의 개인 자산을 기부하겠다고 밝혔다. 코로나19 사태와 관련해 개인 차원의 기부로는 최대 금액이다. 도시 CEO는 “10억달러는 내 자산의 28%에 달하는 금액”이라며 “코로나19 종식 이후에는 해당 자금을 어린 여성의 교육과 건강을 증진하고 기본소득을 확충하는 데 쓰겠다”고 약속했다.

유전자 진단 시약 기업 씨젠의 천종윤 대표는 한국이 코로나19 방역 모범국이 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한 리더다. 천 대표는 언론 인터뷰에서 “코로나19 확산 초기인 1월 중순, 진단 키트가 대량으로 필요해질 것으로 예측했다”며 “적자를 각오하고 회사의 모든 역량을 총동원해 개발에 착수했다”고 했다. 당시는 국내에서 첫 확진자가 나오지 않아 정부가 낙관론을 펴고 있던 시점이었다. 씨젠은 2주 만에 진단 키트 개발을 마쳤고, 진단에 걸리는 시간을 24시간에서 6시간으로 줄였다. 이를 바탕으로 한국은 신천지교회 대규모 감염 사태 등 악재를 이겨내고 코로나19 진압에 성공할 수 있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계열사인 SK바이오사이언스를 통해 코로나19 백신 개발에 집중하고 있다. SK바이오사이언스가 최근 발현에 성공한 코로나19 백신 후보 물질은 다른 백신에 비해 높은 안정성을 갖춘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본격적인 동물 효력 시험을 진행 중이며, 이르면 9월부터 임상시험에 들어간다는 계획을 세웠다. 최 회장은 백신 개발에 매진하는 구성원들과 화상으로 만나 “코로나19 백신 개발이 곧 SK의 사회적 역할”이라며 “개발에 대한 관심이 압박감으로 다가가 힘들겠지만 최선을 다해 좋은 결과를 만들어 주길 바란다”고 격려하기도 했다.


‘사회적 거리 두기’를 촉구하기 위해 글로벌 시티즌이 4월 18일 개최한 온라인 자선 콘서트 ‘하나의 세계: 집에서 함께’에서 연설하는 게이츠 부부. 사진 AFP연합
‘사회적 거리 두기’를 촉구하기 위해 글로벌 시티즌이 4월 18일 개최한 온라인 자선 콘서트 ‘하나의 세계: 집에서 함께’에서 연설하는 게이츠 부부. 사진 AFP연합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에게 “의료용 마스크·안면보호대·방호복이 부족하다”고 켄지 키타하시 키타큐슈 시장이 트위터를 통해 호소하자, 손 회장이 이에 응답했다. 사진 트위터 캡처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에게 “의료용 마스크·안면보호대·방호복이 부족하다”고 켄지 키타하시 키타큐슈 시장이 트위터를 통해 호소하자, 손 회장이 이에 응답했다. 사진 트위터 캡처

마스크, 의료 기기 공수 나선 CEO들

코로나19 확산이 거세지며 세계 각국은 마스크와 의료 기기 확보에 초비상이 걸렸다. 웃돈을 주고서라도 물량 확보에 총력을 다하는 것은 기본이고, 타국으로 운송되던 마스크를 빼돌려 외교 문제로 비화하는 쟁탈전까지 벌어졌다. 중국·미국·터키 등은 의료 기기 국외 유출을 금지하는 긴급 조치를 내리기도 했다.

이런 상황에서 일본에서는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이 아베 신조 총리의 ‘방역 물품 공백’을 메우고 있다. 아베 총리는 도쿄 올림픽 개최에 집착해 코로나19 사태에 부실 대응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특히 저품질 천 마스크를 가구당 두 장씩 배포하는 졸속 대책으로 ‘아베노마스크(아베의 마스크)’라는 비아냥까지 이어지고 있다.

반면 손 회장은 사태 초기인 3월 11일 코로나19 검사 장비 100만 명분을 무상 지원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당시엔 손 회장의 선의가 ‘의료기관 혼란을 초래한다’는 부정적 여론에 부딪혔지만, ‘차라리 마스크를 기부하는 게 어떻겠냐’는 한 트위터 이용자의 제안에 방역 물품 공급으로 선회했다. 손 회장은 선제적으로 마스크 100만 장을 공수해 의료기관에 기부했고, 이어 중국 전기차 제조업체 비야디(BYD)와 매달 마스크 수억 장을 수입하는 빅딜도 체결했다. 손 회장은 4월 11일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5월부터 일본 정부를 통해 N95 마스크 1억 장과 의료용 마스크 2억 장 등 매달 3억 장의 마스크를 의료진에 원가로 공급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손 회장은 “제대로 된 장비도 없이 감염 위협을 무릅쓰고 코로나19와 싸우는 의료 관계자들을 방치해선 안 된다”며 마스크 외에도 안면 보호대와 의료용 안경, 방호복 등 방역 물품을 수십만 개씩 공수하고 있다. 이런 손 회장을 향해 “의료진에게 공급할 물품이 부족하니 도움 주면 감사하겠다”는 일본 지자체장들의 요청이 쇄도하고 있다.

마윈 전 알리바바 회장은 한국과 일본에 마스크 100만 장씩을 보낸 것을 시작으로 미국·러시아·이란 등 전 세계 약 110개국에 마스크 1730만 장, 진단 키트 240만 개와 산소호흡기 등 의료 장비를 실어 날랐다. 영국 BBC는 “마윈은 의료 물자가 필요한 곳에 직접 물자를 보내는 데 독보적”이라고 평가했다. 마윈 전 회장의 이런 행보는 ‘코로나19 발생 초기에 정보를 제대로 공개하지 않아 팬데믹(pandemic·감염병 대유행)을 촉발했다’는 서방 국가의 비판을 받고 있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는 대조적이다.

시 주석은 중국 내 코로나19 확산세가 누그러진 이후, 방역 마스크와 진단 키트 등을 타국에 원조해 국격 회복을 꾀했다. 그러나 원조한 방역 물품의 품질이 저급해 오히려 ‘안 하느니만 못한’ 지경이 됐다. 반면 중국에 적대적이었던 트럼프 미국 대통령조차도 마윈 전 회장을 “나의 친구이며, 산소호흡기 기증을 매우 고맙게 생각한다”라고 칭송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도 코로나19 사태 극복을 위해 나섰다. 삼성전자는 지난 3월 평균 경력 25년의 제조·설비 전문가 10명을 국내 마스크 제조 기업에 파견했다. 자사의 생산 노하우를 전수해 신규 설비 없이도 마스크 생산량을 늘릴 수 있도록 돕기 위해서였다. 삼성의 일부 제조사가 마스크 생산에 필요한 장비 확보에 직접 장비를 제작해 지원하기도 했다. 삼성의 지원을 받은 3개 기업은 마스크 생산량이 기존 하루 71만 장에서 108만 장으로 52% 증가했다.

최상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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